주교 수품 50주년을 맞이한 윤공희 대주교(88세)가 17일 광주 쌍촌동 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삶과 민주주의에 관한 소신을 밝혔다.
윤공희 대주교는 “1963년 주교가 된 이후 지난 50년 동안 내가 받을 영광은 없다”며 “90세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라는 뜻으로 알아듣는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에서 주교 수품 50주년을 맞은 주교는 부산교구장을 지낸 고(故) 최재선 주교와 전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뿐이었다.
윤 대주교는 1973년 광주대교구장에 임명되면서 대주교로 승품되었는데, 2000년 11월까지 27년 동안 광주대교구장으로 재직하면서 광주항쟁의 아픔을 겪었다. 윤 대주교는 항쟁 당시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계엄군에 의해 시민들이 트럭에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 어느 신부가 “돼지 싣고 가는 것 같았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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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공희 대주교는 “하느님께서 미천한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서 사도직을 이어가게 하셨다. 나 자신과 교회를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뿐 내가 받을 영광은 없다”고 겸손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한상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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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제 생활을 하면서 가장 부끄러운 일은 1980년 5.18 민주항쟁이 벌어지던 금남로에서 계엄군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된 시민을 가톨릭센터 주교 집무실에서 내려다보았던 일이다. 윤 대주교는 “이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야 할 텐데 무서워서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복음서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예로 들며 “나는 강도에게 두들겨 맞은 사람을 외면하고 돌아간 사제처럼 그 사람을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항쟁이 일단락되고, 6월에 광주 남동성당에서 열기로 한 ‘구속자 · 연행자 석방을 위한 시국미사’를 두려움 때문에 취소한 사실을 가장 부끄러운 일로 고백했다.
“억울하게 연행된 사람을 풀어주고 진상을 규명하라는 시국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계엄사가 이 미사를 막으려고 천주교 신자 장교들을 자꾸 나한테 보내고, 계엄군이 성당을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또 광주항쟁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자꾸 걱정이 되어서 미사 직전에 사제들에게 ‘그만두자’고 말렸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어떤 신부가 ‘계엄군에 꼬리 내리는 격이 되고 말았다’고 말해, ‘미사를 강행해야 했는데, 내가 실수했구나’ 생각했지요. 이후로는 시국미사에 함께했습니다.”
윤공희 대주교는 민주주의와 관련해 “정부는 국민이 만들어낸 것이니, 정부가 국민의 인권을 신장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먼저 생각하면서 공동선을 실현해야 한다”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와 사회정의가 바로 세워지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5.18을 ‘민주항쟁’이라고 부르는데, 광주의 큰 시련과 희생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그 노력을 잊어버리지 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천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국정원 문제에 대해 시국선언을 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 관해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의평화위원회의 신부들이 충분히 생각해서 판단한 것이며, 그런 노력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항쟁과 관련해 “높은 사람들이 지시하지 않았다면 계엄군이 일시에 시민들을 죽일 수 없었을 것이지만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용서는 정의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와 같이 가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윤공희 대주교는 “광주항쟁 같은 민족적인 큰 시련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권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잡아야 하며, 독재정치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이런 교훈을 받지 못한다면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윤 대주교는 “한국 교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했다고 하지만, 등록된 신자라고 해서 모두 복음 정신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교회 성장을 기쁘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사랑과 믿음을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믿음의 생활화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며, 어렵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는지 늘 반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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