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0. 토요일
푸른 쪽빛 남해는 언제나 내 왼쪽 어깨에 머문다.
바다는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지만, 보이지 않는 바람은 이미 내 곁에 와 함께 걷고 있었다.
그토록 가물었던 하늘도 산들 투어가 길을 나서자 조용히 단비를 내려 주었다.
조금 불편하고 번거롭더라도 이 비가 농민들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된다면 기꺼이 맞고 싶다.
남파랑길은 눈 내리는 겨울도 걷고, 봄꽃이 피는 길도 걷고, 한여름 38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걷는다.
계절은 달라도 우리 산들 투어의 마음은 언제나 같다.
그저 즐겁게 길을 누릴 뿐이다.
새벽까지 세차게 내리던 비는 고성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그쳤다.
맑게 갠 하늘과 상쾌한 공기가 우리를 반겨 준다.
임포항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오늘도 무사한 완주를 다짐한다.
조금 걸으니, 육지와 연결된 작은 섬, 솔섬이 나타난다.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아도 10여 분이면 충분한 아담한 섬이다.
바다 위를 산책하는 기분이 참 좋다.
20여 분을 더 걸어 송천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고추밭에서 일하시던 한 농부께서 손짓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어젯밤 비바람에 고추대가 쓰러졌는데 그냥 두기 아까우니 가져가서 드세요."
도시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싱싱한 고추를 한 아름 받아 들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농부의 따뜻한 정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
산과 바다는 서로를 바라보며 길을 감싸고, 나는 왼쪽 어깨에 바다를 품은 채 한없이 걷는다.
바다는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의 곁을 내어주고, 나는 그 곁에서 바람과 파도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간다.
용암포를 지나면 고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상족암 구간이 시작된다.
겹겹이 쌓인 주상절리는 마치 시루떡 같기도 하고, 수천 권의 책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모습 같기도 하다.
절벽 아래에는 공룡 발자국이 남아 있어 수억 년의 시간을 함께 걷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상족암 공원은 아름다운 해안 절경과 자연이 만들어 낸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다.
33코스는 바다만 걷는 길이 아니다.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남해의 바다는 양식장과 어부들의 땀으로 일궈낸 삶의 현장이었다.
푸른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펼쳐진 어부들의 삶과 땀이 스며있는 또 하나의 세상이 있었다.
어촌과 농촌이 이어지고, 관광객들의 여유로운 발걸음과 부지런히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이 함께 흐르는 길이다.
관광객들이 한가롭게 쉬는 모습은 부지런히 길을 걷는 우리와 대조를 이루었고, 그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온 우리에게 이 길은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상족암을 지나 다시 바다는 거친 파도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잠시 바다와 헤어져 농촌 마을을 지나 30여 분을 더 걷자, 정곡마을이 나타나고, 이어 하이면 사무소에 도착하며 17.6km, 6시간의 여정이 마무리된다.
오늘 바라본 푸른 남해는 낭만적인 풍경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양식장과 작은 항구, 고깃배와 그 위에서 묵묵히 일하는 어민들의 땀이 만들어 낸 삶의 현장이었다.
휴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 먼 타국에서 가족을 위해 묵묵히 땀 흘리는 외국인의 모습까지.
바다는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낭만을 선물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사람의 삶을 품고 우리의 식탁을 책임지는 터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오늘 하루를 원 없이 바다를 보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상족암의 절경도, 공룡 발자국도 아름다웠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바다를 따라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걸은 17.6km는 6시간의 흔적으로 남았고, 어느새 남파랑길 33코스를 완주했다는 뿌듯함이 가슴 한편에 자리한다.
종착점인 하이면사무소에 도착한 우리는 짜장면집으로 향했다.
탕수육과 짜장면, 그리고 옌타이 고량주 한 잔.
해남에서 강화도까지 1,800km의 서해랑길 113코스를 완주한 청룡 형님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함께 박수를 보내고 웃음을 나누는 시간 또한 남파랑길이 우리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버스에 올라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나누어 먹으며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피곤한 몸에도 작은 칭찬을 건네며 달콤한 휴식을 선물한다.
동료들의 환한 미소, 바다와 함께 나누던 대화, 그리고 함께 걸으며 만들어진 웃음들.
남파랑길은 길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고, 추억을 남기고, 삶을 남긴다.
오늘도 그렇게 또 하나의 남파랑길이 내 마음속에 조용히 쌓여 간다.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었다.
-푸른산 최윤범이었습니다.-
첫댓글 푸른산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남파랑길 33코스의 아름다운 풍경뿐 아니라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과 정까지 따뜻하게 담아내셨네요.
함께 걸었던 바람과 파도, 상족암의 절경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바다는 풍경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었다"는 마지막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리내 사무총장님!!
원활하게 남파랑길 걸을 수 있도록 여러모로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푸른산님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답글 달아 주셔서
더 열심히 걷고
더 열심히 기록하려고 노력합니다.
34코스에서 뵙겠습니다.
푸른산 님 남파랑길 33코스 감동적인
후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섬사랑 최창현님은
뵐수록
넉넉한
정이 넘쳐나서
주워 담기가 힘듭니다.ㅎ
34코스에서 봬요.
맛깔나게 써내려간남파랑후기엿네요
잘 ~읽고 가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또
담구간이 기다려지네요
벌써.~~~
행복님 !
감사감사합니다.
아이고 이제
제대로 신경써서 써야겠어요. ㅎ
34코스에서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