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5월 28일)
<고린도전서 14장> “예언의 유익과 방언에 대한 지침”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고전14:1-40)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살전5:19,20)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5:19,20)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모든 은사를 행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랑의 특성과 영원함에 대해 선포한 바울은 이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나며 문제를 일으키는 은사인 방언과 비교하여 예언의 유익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방언을 하기보다 예언을 사모하라고 권고하는데, 그것은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져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은 모든 은사의 목적이 교회를 세우는데 유익이 되게 하는 데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예언이 방언보다 더 큰 은사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언이라는 것은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메시지)을 대언하는 것으로서, 오늘날의 공예배에서의 설교와 같은 기능을 했던 은사입니다. 초대교회 당시는 아직 성경 정경이 확정되지 않았던 시기이며, 또 교회의 설교자인 목사 제도가 정립되기 전의 잠정적인 기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은사로서 예언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서 방언은 교회의 유익보다는 개인의 덕을 위한 은사이므로 예언의 은사가 방언보다 더 유익함을 바울은 말하는데, 여기서 바울이 언급하는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거나 감사를 하며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고린도 교회의 방언 현상은 오순절에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이 임할 때 120명 성도들이 교회에 성령의 임재하셨음을 나타내는 표징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선포했던 방언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 현상의 신기함과 황홀감에 도취되어 공예배 시간에도 무질서하게 방언으로 말하기도 했던 것인데, 바울은 가능하면 방언은 개인적으로 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방언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방언을 많이 한다고 말하면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영적으로 도움이 됨을 말합니다(14:14-15). 비록 방언은 자칫 잘못하면 신비주의나 열광주의적 경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지만,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성령을 소멸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살전5:19).
그러면서 바울은 공예배에서 예언을 할 때에도 무질서하게 할 것이 아니라 순서를 따라 예언하며, 또 각 사람의 예언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인지 분별함을 통해서 교회가 잘못된 직통계시에 이끌려가는 것을 조심하도록 경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의 바울의 교훈은 오늘날의 교회 예배에는 문자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방언이나 예언의 은사들은 신약의 정경이 확정됨으로써 성경 계시가 완성되기 전까지 임시적으로 나타났던 계시적 은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교훈하고 있는 예배 모범은 오늘날의 제도화되고 경직된 의식적인 예배보다는 모든 성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령의 은혜가 나타나는 가운데 자유로우면서도 질서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기도 ● “우리 교회의 예배 속에 성령의 임재가 있게 하시고 말씀이 풍성하게 선포되게 하소서!”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MuKX/161
첫댓글 아멘
자유와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