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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산- 설악
21:16 부산을 떠나 설악 오색으로 28인승 꽉 찬 버스를 타고 장도에 오르다.
초가을 설악을 방문한다는 설레는 맘과 모처럼 기대되는 장거리 산행으로 흔들리는 차속에서 아직 잠이 오진 않는 흥분상태...
오래된 버스인지 그 엔진음과 진동이 생생하게 전해온다.차체와 바닥 그리고 의자를 통해서 엉덩이와 허리 그리고 뇌를 감싸고
있는 두개골까지....그래도 좋았다. 12년만의 설약행이 또 다른 기쁨을 주리라 믿고 있었기에.....
01: 45 양양의 밤바다를 스쳐 지나가며...
5시간정도의 불편함이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게 한다. 여전히 엔진은 시끄럽고 주위는 깜깜하고 귓속의 이어폰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무의식적으로 쏟아낸다. 나 또한 귀를 통해 습관적으로 흘려 받아 든는다. 양양부근을 지나며 어두운 밤바다를 스쳐
지나는데... 연안의 고기잡이배의 작업조명이 히끄무레한 밝음으로 저 멀리 환하다가 이내 언덕사면으로 감춰지고 순간 나타나는
기암괴석의 바닷가 풍경은 어둡지만 모래사장을 연신 핥아대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포말로 눈에 흰금을 각인시킨다. 괴괴하지만
저 바닷가를 걸어가는 상상ㅇ를 한다. 그게 나인지 누구인지 정확하게 몰라도 상관없는 여행자의 눈이니까...
“1시간여를 더 가면 목적지인가? 조금만 더 눈을 감아보자...”
03:05 오색약수 버스 종착지에 도착하다
그리 쌀쌀하진 않지만 가을의 새벽임을 느께게 한다. 배낭과 조명, 스틱을 챙겨들고 어수선한 장바닥 같은 입구를 통해 설악의
치맛자락에 안겨 들어가 본다.
아직은 깜깜하고 어깨 위 조명빛과 앞사람의 뒷 모습과 뒷사람의 발자국 소리만이 가득하지만 점점 나의 호흡소리가 커져만 간다.
일단 대청봉까지 5km... 오르막을 올라야 하니 3시간 30분을 예상하고 오른다....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설악의 암흑속으로
점점히 파묻혀 간다. 횃불을 밝혀 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르는 오름짓은 언제나 힘들지만 개운한 무언가를 남긴다.
똑똑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팍팍해져 가는 허벅지와 종아리는 산행 후 조금씩 당기는 근육의 긴장으로 남고 또한 산을 보고
그 속에 잠시나마 안겨있다 내려온 고마움을 맞바꾼 결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설악 폭포까지 1시간 20여분을 온 것 같다. 보이진 않지만 계곡물 소리와 한줄기의 바람이 귓불을 스쳐지나가며 힘내라고 한다.
야간산행의 묘미란 이런게 아닐까 더불어 언뜻 언뜻 보여지는 하늘의 별들은 “참 많다” 란 한 마디로 말하기에는 안타깝지만
눈 속에 담아서 언제나 보여주고 싶을 정도이다. 사람들이 눈이 빛나는 이유가 저런 별과 달과 햇님을 눈 속에 담았다가
좋아하는 사람과 가족에게 되비쳐 주어서 일까?....(어디서 객쩍은 소리하시나...)
06: 10 일출(日出)을 맞이하다
05: 30분부터 대청봉이 가까워 지면서 종아리와 허벅지에서 찌릿찌릿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올라오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기보다는 의심과 불확실한 결과와 비교의 대상으로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지만 능선에 이르러 사람들의 순간적인
반응을 접하고 옆을 보는 순간..... 운해(雲海), 구름바다가 보인다 설악의 작은 봉우리는 섬이 되고 구름은 바다가 되어
속초와 양양을 해저 도시로 만들어 동해바다를 바다 밑의 다른 바다로 만들어 버리니 새벽녘의 어슴프레한 바탕색이 한층 더
운치있다.
정동향으로는 붉어지는 구름과 일직선의 오렌지 빛의 수평선은 아직도 어두운 산주위의 구름과는 그 태생이 달라 “구름”이라는
고유명사와는 다른 존재로 느껴진다. 주위의환경의차이가 내면의....순간적인 다름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하지만 아름답고
시원하고 상쾌한 산정부근의 풍경이 야간산행의 과정을 통해서 발현되어지는 과정중의 하나임을 말하고 싶다.
이미 산정상은 수많은 등산객으로 발 디딜틈 없지만 어수선한 그 속에 자연스레 잠겨서 저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풍광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지켜본다. 바람은 양볼과 귀에서 환호성을 지르라며 넋놓고 앉아있는 존재를 깨우려 하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몸속의 어딘가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같이 올라오는 듯 얼어버린 정신을 녹여버리고 있다.
사진으로 몇 캇트 저장도 하고 또 다른 분들의 사진을 보면 그 때의 감흥과 아름다움을 다시 느낄 수 있으리라 위안하며
충분히 즐긴다. “일출(日出)” 이라는 행위에 내가 포함되어있음을 감사하며....
정상을 조금 지나 북동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설악의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진다. 유명한 공룡능선, 용아장성, 울산바위등
설악의 예쁜 능선과 계곡, 그리고 속초바다, 저 멀리 어슴프레 해금강까지..... 영남.충청권의 산과는 또 다른 자태로
바람에 따라 흐르는 구름 사이사이 히끄무레한 멋진 암봉과 이제 단풍으로 조금씩 옷갈아입고 있는 계곡과 능선이
가을맛으로 채색되어가며 시원스레 펼쳐져있다.
순식간에 산과 계곡이 바다로 변하기도하고 다시 산으로 태어나기도 하며 그 변화무쌍함을 만들어감은 신이 만든 자연이라도
그 변화의 수를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이니....오늘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일출과 운해와 그리고 설악의 너르고
이쁜 풍광을 한번에 맞이할 수 있는 행운을 함께 한다.
지리의 산을 수수하고 단아하지만 넉넉한 품이 살아있는 어머니의 정서를 가졌다고 느낀다면 설악은 화장한 이쁜 새색시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한다. 역시 그 곱디 고운 자태는 남자인 나를 가슴뛰게 한다.
07:30 아침식사 후 봉점암까지
중청대피소 길바닥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식당으로서의 인테리어와 분위기는 설치된것은 없지만 어느 고급 식당의
야외 테라스보다 더욱더 좋은 자연의 테이블에서 온기는 없지만 도시락으로 허기를 덮는다. 싱그러운 자연을...
변화무쌍한 설악을... 가족과 함께하면 더욱 좋은 여정이었을 터이지만 아직 어린 자녀와는 수년 내에 같이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만큼 보여주고 싶을 만큼 좋았다라고....
소청산장을 향해가며 점점 더 설악의 내면으로 가까워진다. 멀리보이던 공룡과 용아의 능선이 레고 퍼즐을 맞추듯이
부분 부분 가까이서 클로즈업 되고 빨간 단풍잎이 그 퍼즐조각을 배경으로 더욱 더 빠알갛게 느껴지며 욕심이 하나씩
잉태되어진다. 가보고 싶다...나도 저 속에서 조그만 점으로 보여지고 싶다....
집에 마나님이 출발할 때 이런 조언을 했음을 떠올리며..... “함부레 위험한데는 댕기지 말고 남가는 길만 잘 따라 가라고...
까분다고 좋다고 아무데나 댕기면 뉴스에 나오게 된다...” 좋은데 가는데 이 무신 망발을 ...
봉정암을 향해서 또다시 부지런히 걸어간다 내리막 돌길은 역시 팍팍한 반복의 일상이지만 오늘은 주의의
바위가, 나무가, 산세가 그 힘든 무게를 덜어주고 긴 거리를 줄여준다.
봉정암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중 하나로 본존불을 모시지 않고 절 위쪽의 진신사리탑에
진신사리 모셔놓은 절집으로 주위의 암봉과 산세가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다. 사리탑으로 올라가보면 설악 최고의
뷰포인트(view-point)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변화무쌍한 설악의 원경을 지척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용아장성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설악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다. 대청에서 본 원경의 그 광경과는 다른 접사한 듯
또렷하면서 세밀하게 하다고 할까.... 황홀함이 시도 때도 없이 찿아든다... 기암괴석이 절을 둘러싸고 있으며 오세암으로
가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탑은 기존의 사리탑과 약간 형식이 다르다. 기단부분이 없어 반석위에 탑신이 그대로 얻혀져 있다. 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여전히 항상 생겨나는 궁금증... 무엇이 저들을 저리도 절박하게(?) 하게 하면서 나에게는 그러한 절박함을 가져다 주질 못할까?...
불행한 존재(나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여...
설악의 다람쥐는 이미 야생의 존재가 아니고 우리도 설악의 일부로 인정한 듯 자유로이 부담없이 다니며
겨울을 준비한다고 부산스럽다. 참 귀여운 존재....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 시계보는 것을 잊어먹다.
백담사로 향하며 수렴동 계곡으로 내려선다. 그 중간 중간의 절벽과 암벽위의 금송과 적송들은 소나무가 아닌
하나의 그림으로 꽃혀있다. 그리 중간중간 단풍의 모습과 자태는 생명의 신비로움이 절로 궁금하도록 보이고
탄성만이 나오도록 배치되어진 수려함은 금수강산의 표본인것 같다. 갑자기 애국가가 생각나는 촌스러움이란...
아직도 관제의 의지가 나를 가두고 있구나...어쩔 수 없는 습관이 무서움이여....조건반응의 무조건 반응화한 슬픔..
이 코스로 오면 등산객의 70~80%가 중장년 여성분이다. 성지를 향해 차분히 오르는 행위가 바로 정성이며 지성인데.....
수렴동계곡....<수렴동> 낯이 익은 이 단어..어디서 보았던가...생각중에 “서유기”가 생각났다. 손오공이 제천대성이 되기 전
원숭이 무리의 우두머리로 동굴을 통해 용궁으로 가서 여의봉을 강탈하기전의 아주 아름답던 지상낙원의 보금자리....
우연의 일치일까? 수렴(水簾) 동 계곡은 역시 선경이고 절경이었다 파스텔톤 암반위를 지나는 옥수(玉水)는 그 경사로 인해
만들어진 폭포와 그로인한 수많은 담(潭)과 소(沼)를 잉태하여 설악을 그 속에 담아둔다. 그 담아둔 설악이 사람들의 얼굴엔
알록달록 흥분과 기쁨의 단풍표정을 물들이고 계곡물 소리가 탄성으로 교체되어 터져 나온다. 동해로 빠져나가는 물길을 따라
우리도 같이 흘러내려간다. 어떤 곳에서는 하늘만 보다가 또 어떤 곳에서는 옆면의 아슬아슬한 암벽을 따라 걸어가고
쌍룡폭포에서는 그 속에 풍덩 뛰어드는 상상을 하며 그 물미끄럼틀을 타고 설악산자락 끝까지 슬라이딩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며.....그 맑은 물과 푸르른 색감, 햇볕에 반사되는 일렁거림의 마술은 누구라도 탄성과 즐거움의 마법에
걸릴거라고 생각된다.
유유자적 걸어내려오다 너른 반석위에서 잠시 “탁족”을 한다. 발을 흐르는 물속에 담그자 시간의 흐름이 빨라져 10초가 1분같고
1분이 10여분 같다. 전기가 찌릿하게 전달되는 차가움... 시원함과 상쾌함이 등산의 피로를 잠시나마 풀어준다.
소량의 알콜로 갈증난 목을 식히며 이게 행복이다 싶어진다. 흐르는 물소리는 시간의 흐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도록 자연스레
일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묘한 재주가 있다. 한없이 쉬고 싶구나..... 새벽부터 움직인 몸의 시계가 현재 시간 10시 30분경을
마치 오후 3시, 4시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영시암을 지나서 내려오는 산길은 잘 만들어놓은 산책로이다. 다리는 걷고 있되 눈은 사방이 즐거운 걷는 재미가 있는 코스이다.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서 12시가 되어 나무그늘을 찿아 점심을 해결한다. 그리고 막걸리가 기다리는 집결지를 향해 간다.
정말 정비가 잘되어 있어 하얀 게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백색이 아닌 흰색과 녹색의 향연이 마감되어감을 아쉬워 한다.
백담사 너른 계곡과 깨끗한 경내는 눈부신 햇빛으로 빛나고 이제 셔틀버스를 타고 종착지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오는동안
펼쳐진 우측의 백담사계곡 역시 절경이었다. 설악의 일부라는 듯이.....
13:30 산행을 마치고 -------15:30 출발 22:10 부산도착
산행 후 등목으로 찝찝한 땀의 기운을 씻어 내루고 옷을 갈아입으니 개운하다. 후미를 기다리며.... 아마 맘껏 즐기며
내려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려와 있는 지금도 그들이 있는 산이 금방 부럽다.
막걸리 한잔이 무척이나 시원하다. 차에 자리잡고 비몽사몽 어딘가 힘들게 느껴지는 엔진과 불편한 동행을 한다.
길이 심하게 밀리진 않았나 보다. 팍팍한 다리를 움직여 쉼터인 집으로 향한다.
에필로그...
여염집 새색시(표현은 이렇지만 마음은 기생집 이쁜 기생 명월이....입니다.) 비단 치맛폭 같은 설악이 당분간 마음속에서
저를 유혹합니다. 언제나 자기를 떠올리며 맘껏 연애하라고...가을산과 함께...그래도 자기는 자신 있다네요...
언제나 자기가 최고라면서....
9월 19-20일 무박산행으로 다녀온 산행기임다.
첫댓글 에로스님 멀리 다녀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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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만큼 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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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함께 가까운 산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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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행 잘다뎌오셨지요.... 담번 산행에는 같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설악의 아름다운 절경을 보니 못타는 산이지만 막 가고싶네요...덕분에 너무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운해도 일출도 빠알간 단풍잎도 모두 멋지지만 저 모든것을 담아오신 에로스님이 젤 멋져요~^^
거짓말 하시면 코가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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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나 갈 수 있는 우리나라 산....가셔서 직접 경험해보세요 정말 좋습니다..
좋은 사진과 글들 잘보고 갑니다...운해가 장관이네요...
한동안 설악이 머리에서 요동치겠네요...
거운 나날 되세요...
꼭 한번 경험하고픈 장면들입니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바로 도전하세요...마음먹으면 됩니다..허
가 아니더라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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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집니다.
라미나님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멋진 장면 맘껏 찍어 극한의 편집신공을 보여주세요...정말 좋을 거예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신지행님 좋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가셔도 좋으실듯 합니다.
함께 설악을 다녀온듯한 기분을 왜일까...? 너무도 멋진 설악의 모습 자~알 봤습니다.
정말 가보고 싶은곳인데... 부럽습니다...
사진과 설명이 마치 그곳에 있는듯합니다. 가보고 싶네요... 구경 잘 했습니다. ^&^
설악 너무 멋진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