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외 8 __ 김일연
연필을 깎아주시던 아버지가 계셨다
밤늦도록 군복을 다리던 어머니가 계시고
마당엔 흑연빛 어둠을 벼리는 별이 내렸다
총알 스치는 소리가 꼭 저렇다 하셨다
물뱀이 연못에 들어 소스라치는 고요
단정한 필통 속처럼 누운 가족이 있었다
극락강*
극락강 가에 앉아
어머니와 나와
아기를 들쳐 업고 기저귀 보따리 안고
가난한 어린 엄마가
앉아 울던 그 강가에
옛이야기 나누며
어머니와 나와
한참을 울다 돌아가 다시 살던 타관 땅
강 너머
극락을 가는
구름 가마에 앉아
* 광주에 있는 강 이름
향수
남녘 바닷가에서 주워 온 작은 몽돌
책상 서랍 구석에 버려져 있는 너를
네 고향 모래밭으로 데려다주고 싶다
손잡고 거닐었던 어머닌 가셨지만
품속에 안겨보는 아이의 그 기쁨을
나처럼 늦지 않았다면 돌려주고 싶다
뉴욕에 있는 딸에게
너와 아가 모두 무탈하길 소원하며
아마존의 유모차를 마천루의 정글로
열 달을 고르고 골라 실한 것으로 보낸다
못 잊어
불갑산 상여꽃길이
흘리는 피
상여꽃*
"요것이나 살려주면 요것이나 살려주면"**
다 삭은
흙 고무신 안
엄마와
아기가 피어
* 불갑산에 많이 자생하는 일명 상사화
**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 생존자 증언ㅡ불갑산' 중에서
옷가게에서
점원인가 하고 마네킹을 바라본다
마네킹인가 하고 점원을 바라본다
누군가 날 바라본다 사람인가 하고
점원인가 하고 마네킹에게 말을 건다
마네킹인가 하고 점원을 지나친다
인생이 날 지나친다 마네킹인가 하고
차마고도
눈앞에 길 있으니 걷지 않을 수 없고
그대 알아버린 맘 거두어들일 수 없어
두 발이 부르트도록 구름 영봉을 넘네
아름다움의 근원
우주 먼지 알갱이가 만들어내는 별빛
못난 돌멩이들이 만들어내는 물소리
이 밤의 아름다움의 근원은
돌멩이다,
먼지다
세상 등불이 꺼진 깜깜한 어둠이라도
난 그런 돌멩이
그런 먼지다 생각하면
사랑도 혼자 가는 길도
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
물꽃
그저
여울인 것을
바위인 당신 만나
일말
주저 없이
산산이도 부서져
당신을 감싸 안으며
나를
꽃 피웁니다
ㅡ김일연 시조집(한글+영문) "세상의 모든 딸들"(Seoul Selection, 2023)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시조 9편 / 김일연
백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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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6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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