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골 木骨 / 최경숙
가야 천년의 숨결이 느껴지는 김수로 왕릉 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입구부터 현대와 고대가 공존하는 왕릉의 굽이진 돌담길은 와룡이 잠든 듯 자세를 낮추고 있다. 돌담을 올라탄 능소화가 망연하게 나그네를 내려다본다. 담치기로 무료입장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고개를 돌리니 돌담은 긴가민가하며 나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왕릉공원엔 확고하고 육중한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어 사철 내내 깊숙한 풍경을 자아낸다. 무희송을 연상케 하는 붉은 소나무는 휘굽은 몸으로 춤을 추고, 노거수에 태점처럼 달라붙은 검버섯은 불가능한 충절도 가능케 한다고 버텨내는 모양새다. 왕릉을 호위하는 거목에서 회상과 사연으로 무변의 추억을 함께한다.
이곳 와목臥木은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왕릉을 지켜내는 호위 무사였다. 단단한 골격에 수백 겹의 나이테로, 위세가 웅장하고 근엄하였다. 10m에 가까운 용형을 벌떡 일으켜 세울 수도 있었다. 옹두리 무늬 새겨진 껍질 옷을 입고, 펼침 폭이 큰 생기 왕성한 잎사귀 월계관을 쓰고, 뻗음이 좋은 가지창과 둘레 폭이 넓은 둥치 방패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목재 향 풍기며,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가려 용틀임하고 있었다. 뛰는 맥박으로, 기울지 않는 용맹으로, 강한 생명력으로 충절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 표출은 불굴의 의지였다. 비록 몸은 눕혔지만 뿌리는 금관가야의 역사를 숭배하듯, 깊게 박혀 굳건했다. 당찬 몸통은 골격의 뻗음이 좋아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헤아릴 수 없는 잔 가지로 잎사귀를 펼쳤다. 그 위상은 천수천안관음상을 대면하는 듯했다. 틀어지고 꼬인 듯 뻗어나간 수형은 위세마저 당당 했기에 충절의 심지를 지닌, 충신의 진면목을 목격하는 듯했다. 등짝으로 수백 년을 밀어 도착했고, 무성한 가지 손을 잡고 펄떡이는 가슴으로 수백 년 더 밀고 갈 기세였다.
절대적이라 여겼던 거수목의 살과 골이 허물어졌다. 그 자리를 안식처로 삼아 풍수화토의 흐름 속에서 역사의 필경사 노릇만 하고 있다. 밑둥치 성긴 곳에 틈틈이 파고든 잡풀들, 유품 같은 초록 이끼, 거미줄 친 구멍으로 바람이 드나드는 휑한 몸통엔 작은 생명들이 오가고, 연한 풀싹엔 풀벌레가 쉬고 있다. 부유하는 나이테는 흐려져 낙관조차 찍을 수 없도록 살이 검어졌다. 껍질은 물론 잔가지까지 내려앉아 생을 툭 놓아버린, 충목忠木의 잔해가 바람에 들썩이고 있다.
나무가 움직인다. 태어난 자리에서 비상을 반복하며 성장하는 몸을 따라 뿌리는 영역을 넓혀간다. 가지를 뻗어 몸을 움직이고, 씨를 날려 자리를 이동하고, 열매를 맺어 동물의 먹이가 되어 새 터전을 마련한다. 이는 나무가 유전자 보존을 위해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까닭이다. 골만 남은 나무도 끈질긴 생의 원천이 되어 다시 뿌리를 내린다. 새 가지를 뻗고, 새잎을 달아 내고, 허물어진 몸이라도 중심추 역할을 해낸다. 가지 끝에 펼쳐진 이파리들은 환생을 알리는 초록 신호이다. 고사목은 재생의 양분이 되어 동식물과 곤충 등 다양한 목숨의 터를 마련해준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존재를 부활시키는 자연 물이다.
목생木生의 숭엄함이 드러나고 있다. 무늬마저 해부된 와목의 곡선. 풍장을 거친 굵은 뼈, 곧은 뼈, 구부러진 뼈, 가늘어진 뼈 . 푸석한 허연 갈비뼈가 천년이 넘는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곰배팔 가지에 눈길을 둔다. 말라가는 몸체를 잡아당겨 옆으로 뻗어 가느라 옹이가 빠져나간 구멍을 들여다본다. 부려져 나가는 가지를 붙들고자, 방향을 바꾸느라 고통이 컸을 것이다. 죽음조차 왕명을 받들어 절개를 지키는 사목신死木臣이 되어 가락 국에 관한 질문에 답한다. 존재만으로 묵중한 울림을 주는 목골이 왕조 역사의 흥망을 가늠케 한다.
모세의 지팡이는 목골의 기적이다. 단단한 나무로 만든 지팡이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면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오게 하고, 아말렉을 물리치는 기적도 일으킬 수 있다. 아론의 지팡이에서도 구원의 꽃과 아몬드가 돋아나는 초자연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재앙이 닥쳤을 때 모세의 지팡이처럼 우리의 삶에도 내가 나를 성취해가는 단단한 지팡이가 필요하다. 목골의 부활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무수한 의미가 되어 희망과 용기를 준다.
부산박물관에 독립투사들의 사진이 있다. 하나같이 응시하는 눈빛이 평범하지 않다. 구국의 일념으로 결기에 찬 강한 눈빛이다. 죄수복을 입고, 죄수 번호를 붙인 채, 살점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피골상접한 몸이지만 눈빛엔 조국 광복의 염원이 가득하다. 형형한 눈빛. 그것은 오직 조국 해방이 목적인 강한 의지다. 그런 의지가 일제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쟁취하려는 애국 심과 연결될 때, 그 근본과 주관이 진정한 애국자로 만든다. 조국 광복을 위한 신념의 지팡이가 된다.
새 생명이 움텄다. 시작된 죽음으로부터 다시 소생시켜 줄 혼의 씨알. 그 씨알이 나무를 생육하려고 물과 빛을 찾는다. 사그라진 몸체에 더듬이 같은 가냘픈 뼈대와 뿌리와 가지들을 양극 사이로 생기를 밀어 넣어 촉수를 곤두세운다. 둥치를 뚫고 나온 여린 가지들과 돋아난 잎사귀가 태양을 향한다. 겉으로는 텅 빈 몸체가 생이 끝난 듯 보이지만 뿌리에는 원천이 있었다. 쓰러지더라도 지심한 뿌리를 다시 내리는 것이 윤회의 순리다. 나무도 이를 받아들여 발끝에 힘을 모은다.
폐목이 된 와상臥像의 형해形骸에 생령生靈들이 터를 마련하고 있다. 속이 비어 휑하고 침침한 몸통에 잡풀이 터를 잡고 작은 생명체와 교류하면서 햇빛을 붙잡으려, 바람을 움직이려, 새 소리를 들으려,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삭여진 밑둥치 끝자락에 매달린 곁가지가 결절점에서 기어코 새잎을 틔웠다. 살과 껍 질의 무거움도 없는 몸이 생명을 다시 품고서 흥망성쇠 역사의 윤회를, 생로병사 인간의 생애를 보여준다. 생명은 이렇게 속에서 바깥으로 불거져 나와야 한다. 생존이라는 화두에서 곁가지로 환생을 알리는 환희의 기표가 된다.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 한다. 마침표에서 새롭게 생겨난 뼈대는 신념으로 선택한 삶이 어떤 의지와 연결될 때 살아 있음의 확고한 증거를 내보인다. 우리는 이런 사실 하에 생로병사의과 정을 따르며 인간성을 형성한다. 속이 옹골찬 사람. 품은 뜻이 깊고 진지할수록 말과 행동은 더뎌 보이고, 쉽게 드러나지 않아 신뢰를 주는 법이다. 강한 의지란 목표 의식이 뚜렷하여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존감을 지키는 사람을 말한다. 고목의 웅숭깊은 품격처럼.
세상엔 어둠을 수반하지 않는 밝음이란 없는 법. 햇빛을 보채 새로 돋은 가지와 잎들은 환생을 알리는 깃발이 된다. 무한한 변화의 씨앗, 그 역전의 비밀을 담고서 와목은 김수로 왕릉을 지키기 위해 다시 태어났다. 마른 몸피의 어웅한 옹두리에 새살이 채워지는 꿈을 꾸는지 가지 손이 바람결에 오므라진 몸을 쓰다듬고 있다. 몸뚱어리에 물길이 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