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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는 곳에 하나님의 평화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귀한 찬양 불러주신 우리 기드온 찬양대 감사합니다.
오늘 미셔널 미셔널 주기도문 네 번째 강해입니다. 뜻이 이루어지리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어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러분 이 짧은 구절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충돌되는 곳에서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 하늘의 뜻이 인간의 뜻, 세상의 뜻을 수정해 온 역사입니다. 작게는 개인에게, 크게는 국가와 문명에 이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개인과 문명의 위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인간과 세상의 뜻이 수정되고 변화될 때 세상은 바뀌고 인생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문명의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날마다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께도 생각이 있으시고 계획이 있으시고 뜻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것이 온전하게 성취되는 순간에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늘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또 제가 원하는 바가 있는데 그거 이루어 주십시오.
제 뜻을 들으시고 하나님 제발 응답해 주십시오.
우리의 기도를 분석해 보면 기도의 80~90%가 내가 세운 계획,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 뜻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셔야 된다고 하나님이 이루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쓰러지고 넘어지고 또 시험 들 수도 있다고 하면서 애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협박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도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뜻과 우리의 계획도 존중하시고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의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아주 다정하시고 섬세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그 기도와 우리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는 순간에는 다릅니다. 그 순간에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겠다는 거예요. 너희가 구해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을 위하여 구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그 말씀에 맞게 구하면 응답하시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이 충돌되는 순간입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가 수정돼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에 우리가 맞춰야 되는 거예요. 우리 뜻에 하나님께서 맞출 수는 없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고난과 그 참혹한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셨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앞으로 벌어질 일, 그리고 그가 감당해야 될 그 십자가와 그 고초가 얼마나 참혹하고 고통스러우신가를 알았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도 예수님의 뜻이 있어요. 예수님의 마음은 제발 할 수만 있으면 이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했어요.
조금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요.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여러분 예수님의 생애에 이 순간보다 절박한 순간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 중에 이보다 더 절박하고 간절한 기도가 있었을까요?
풍랑을 잔잔케 할 때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하셨을 거예요. 그러나 이보다 예수님 개인을 위하여 절박한 기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피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주님은 곧 그것이 아버지의 뜻과 충돌하는 것임을 깨달으셨습니다. 이미 알고 계셨어요. 그리고 자신의 뜻을 수정하신 것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러분 이것이 우리 신앙과 우리의 기도의 기본입니다. 영성, 우린 영성 20세기 21세기는 기독교 영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요.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깊은 사람일까 영성 있는 사람일까 능력을 행하고 계시를 받고 이렇다고 영적으로 깊은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깊은 사람은 내 뜻을 내려놓고 하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하늘의 뜻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내 절박한 입장을 내려놓고 하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그것이 영적으로 깊은 것입니다. 그게 신령한 거예요. 여러분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순종한 사람들에 의해서 확장된 역사입니다. 힘 있는 사람들, 잘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역사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 앞에서 자신의 절박한 뜻조차도 내려놓고 수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사람들에 의해서 기독교의 역사는 확장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가 이런 기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과 가정과 사회에 하나님의 뜻이 일어나고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렇게 결단해야 돼요. 오늘 내가 무엇을 이루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오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내가 감당하겠다. 내 뜻을 관철시키겠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 내 뜻을 맞추겠다 이렇게 결단해야 돼요.
여러분 선교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금년에 선교적 교회로 전환하는 해로 정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할 것인가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꺾고 맞추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선교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선교에 우리가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여기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의미 그리고 땅에서는 아직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그 뜻이 이 땅으로 흘러들어와야 된다.
여러분 하늘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조화롭고 모든 것이 바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한 장소가 바로 하늘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있었는데 그 천사들 가운데 루시엘이라고 하는 천사장이 갑자기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자기의 뜻을 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천사가 3분의 1이었어요. 결국 루시엘은 하늘에서 쫓겨나 하늘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늘은 하나님의 뜻이 100%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거기에 반하면 쫓겨날 수밖에 없는 쫓겨난 루시엘이 루시퍼가 되고 그 루시퍼를 우리는 사탄 또는 마귀라고 합니다. 그리고 함께 탈락했던 3분의 1의 천사를 악령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들이 머무르는 곳이 음부입니다. 그들은 음부의 권세, 사망 권세를 가지고 역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사탄은 하늘에서 버렸던 자신의 그 일을 지금 이 땅에서도 버리고 있어요. 하나님을 도전하고 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부추겨서 하나님의 뜻과 반하는 삶을 살도록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문명 사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 사탄이 계속 하나님의 뜻과 반하는 반대하는 방향으로 밀어넣고 있어요. 그래서 이 사탄이 역사하고 또 그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와 문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반하게 되어 있어요.
물론 좋은 이상 좋은 이데올로기, 좋은 비전을 가지고 매우 헌신적으로 어떤 일을 추구하고 이루어 간다 할지라도 여러분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그 모든 제도와 그 이데올로기의 끝에는 하나님과 적대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선교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이 선교는 본질적으로 영적 전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이 세상의 문화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순간 영적 전쟁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흘러들어와야 합니다. 주님은 그 일을 위해서 오셨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이 세상이 하늘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에요.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복음을 정리하면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에서 구원론을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죄로부터 벗어나고 율법으로부터 벗어나서 새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영생을 얻는 것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옥중에서 자기 인생을 다 보낸 후에 이제 주님 앞에 가기 바로 전에 그가 에베소서를 쓰면서 옥중 서신을 쓰면서 구원에 대한 놀라운 구원에 대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원이 뭐냐?
하늘과 땅이 통일되는 거예요. 땅이 하늘처럼 되는 거예요. 하늘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야 하늘처럼 이 땅에 이루어지는 곳에 구원의 역사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 여러분 우리 구원은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받아서 천당 가는 것만 구원이 아닙니다. 그건 개인의 구원이고 하나님 나라의 구원은 더 포괄적인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세상은 자기 중심 편안함,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흘러들어와서 하나님 중심 거룩함,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움직이라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부름받은 하늘의 일꾼들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리면서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드리면서 마음으로 이렇게 더 기도해야 돼요.
하나님 먼저 제 안에 하늘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직도 내 마음에 갈등이 있어요.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너무 충돌해 그러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 안에 하나님의 뜻이 흘러들어올 때 거기에 거부감 없이 그 뜻에 순종하는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돼요. 그리고 그 뜻이 우리 가정과 사회와 우리 국가와 우리 문명에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라는 거예요.
주 기도문은 그냥 무슨 주문해 오듯이 하는 기도문이 아닙니다. 미션을 미셔널 주기도문입니다. 우리가 이 기도문을 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하고 그 뜻에 순종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선교가 내 안에 우리 가정과 내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기도문에 매우 깊은 뜻이에요. 매일 이 기도를 드리면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만 하면 되는 건 아니에요. 기도는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순종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계획하고 움직여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는 이 세상에 이루어져 가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기도하고 또 순종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담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첫째는 개인의 뜻이라고 하는 담을 넘어야 해요. 여기서부터 부딪혀요. 사도 바울은 선교사로 볼을 받은 다음에 2차 선교 여행을 떠나면서 마음의 소원이 있어서 뜻을 세웠어요. 이번에는 내가 한 번 1차 여행 돌아보니까 전략적으로 소아시아가 매우 중요한 전략지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2차 선교 여행을 준비한 다음에 아주 결심을 하고 거기로 갔습니다.
근데 하나님이 자꾸 막으시는 거예요. 아니다 저 거기 가야 되겠는데 아니다. 이리 돌리시고 저리 돌리시고 하다가 어느 날 마게도냐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여기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마케토냐는 아시아가 아니에요. 그 바다를 건너서 있는 유럽입니다. 오늘날 빌립보 지역이 그때 바울이 자기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드로아에서 출발해서 사모드라게 네아폴리 빌립보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게 됐습니다.
사실 바울이 그렇게 순종해서 가서 뭐 대단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에요. 갔더니 회당도 없어 늘 가던 회당도 없어. 그래서 오늘 어디서 예배를 드릴까 하고 이렇게 나가서 보니까 개울가에 여인들이 앉아 있어요. 그래서 그 여인들 만나가지고 얘기하다가 복음을 전하다가 루디아라고 하는 여성의 집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게 빌립보 교회가 되고 그 빌립보 교회를 통해서 유럽 선교의 길이 열리고 2년 2천년 동안 유럽이 기독교 문명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걸 알고 바울이 했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기의 뜻이 부딪힐 때 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깨달았을 때 딱 자기를 꺾고 이해는 안 가지만 왜 그렇게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꺾고 순종했을 때 당장 일어나는 일은 별거 아닌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난 다음에 보니 유럽이라고 하는 이 대륙을 기독교 문명으로 바꾸는 하나님의 대역사가 그 순간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유럽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런 말씀이에요. 여기 모인 저와 여러분도 자신의 뜻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헌신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실지 몰라요. 특별히 이렇게 해외에 나와 있는 디아스포라들 이건 우리가 그냥 국내에서 계시는 분들보다는 이 해외로까지 나왔을 때는 뭔가 조금 더 인생이 뭔가 좀 다른 거예요. 괴롭고 험난한 길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럴 때 날마다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훈련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의 뜻을 넘어야 돼요. 근데 이게 잘 안 돼요. 내 욕심이 있고 내 계획이 세기 때문에 잘 안 된다고 이걸 넘어야 역사가 일어나요.
또 하나는 공동체의 뜻을 넘어야 합니다. 공동체도 자신들의 뜻과 목적이 있어요. 그러나 그게 절대 선이 될 수는 없어요. 근데 우리는 흔히 공동체 절대주의에 빠집니다. 공동체의 결정은 다 옳다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수가 옳다고 하면 다 옳다. 그렇지 않습니다. 100명이 옳다고 해도 틀릴 수가 있는 거예요.
공동체 전체가 만장일치로 옳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벗어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유럽 교회가 중세 교회가 타락한 것은 교회가 결정을 했지만 하나님의 뜻과 반하는 결정을 자꾸 하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 개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지만 우리의 결정이 때로는 잘못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늘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물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맞습니까? 우리가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과 반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반한다면 그것을 고칠 수 있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근데 이 공동체 절대주의에 빠지면요. 보이는 게 없는 거예요. 그냥 무조건 옳은 거예요. 그게 문제입니다. 우리도 틀릴 수 있다. 심지어는 교회도 틀릴 수 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문명의 뜻도 넘어서야 합니다. 기독교 문명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흘러 들어와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낸 거예요. 기독교 문명도 틀릴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중세가 그랬어요. 복음이 전파되는 처음 전파되던 로마 문명. 사실 지금 우리가 로마 문명을 보면 이 세상이 창조된 이후로 이보다 위대한 문명은 없어요.
오늘날 우리가 첨단 과학 시대를 살아가지만 이 로마 문명의 그 위대함을 우리가 넘어설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위대한 문명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그게 절대적이었어. 그러나 그 로마 문명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들어가서 변혁시켜야 되는 왜곡된 문명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결국은 복음이 들어가서 로마를 기독교 문명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독교 문명조차도 나중에 하나님의 뜻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개혁하는 거예요. 종교 개혁자들이 개혁을 한 다음에 뭐라 하겠느냐 개혁된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된다.
개신교회는 우리 개신교회는 이제는 개혁했으니까 틀리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가 개혁을 했다는 얘기는 그래서 개혁 교회가 됐다는 얘기는 계속해서 개혁될 가능성이 많다는 거예요. 실수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맞추어 갈 때 우리가 바른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서구 기독교의 역사에는 명암이 있어요. 왜곡된 부분도 있지만 또 긍정적인 면도 많았어요. 기독교 문명이 만들어낸 위대한 일들, 노예 해방, 의학의 발달, 인권과 긍휼 제도를 만들어냈고 여성과 약자 어린이들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일들을 기독교 문명이 했습니다.
그 뿌리는 성경이었어요. 그런데 그 문명조차도 왜곡되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날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어떤 제도나 사람도 절대화시키면 안 돼 우리는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다. 왜 음부의 권세 아래에 있기 때문에 사탄이 계속 역사하기 때문에 그래서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오늘 내 인생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그리고 이 사회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셔야 해. 그래서 도시가 바뀌고 가정이 바뀌고 문명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니까 뭐 엄청난 우리가 담론을 나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소박하게 매일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기도를 드리면서 내 안에서부터 작은 변화를 실천해 나가며 자꾸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에 내 자신을 맞춰 나가고 우리 가정을 맞추고 교회를 맞추다 보면 여러분 로마가 변한 것처럼 세상도 변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 후에 이제 선교 축제를 합니다. 바자회를 하면서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렇게 하는 것 같지만 이게 선교 바자이거든요.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기도하면서 음식을 만들고 하나님이 뭘 또 기뻐하실까 생각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내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또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구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의 욕심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도가 바뀌어야 돼요. 특별히 우리 교회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젊은이들 여러분들은 여러분 개인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와 세계 역사를 짊어지고 가야 될 사람들이에요.
너무 자신을 소박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어쩌면 이 세상의 역사를 바꿀 사람인지도 몰라요. 그런 큰 그림을 그리고 내 안에서부터 하늘의 뜻을 구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확장은 하나님 뜻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역사입니다.
어떤 탁월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굴복시킨 사람,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바꾸셨습니다. 하나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사회와 문명 속으로 흘러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과 기도가 특별히 주기도문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 일을 위해서 쓰임 받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