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폐지된 문학나눔 사업과 문학진흥정책위원회를 복원하라!”
문학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공통적으로 향유하는 언어를 다루는 예술로 한 나라의 문화의 기저를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문학은 공동체의 에토스가 집약된 것으로 문학에 기술된 고유의 서사와 리듬의 공유를 통해 구성원 서로가 하나의 공동체 소속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독일,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이른바 문화강국들의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해당 국가의 국민이 향유하는 문학의 수준이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총체적으로 대변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문학에 대한 일련의 정책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지난 8.29일 발표된 정부예산안에는 문학나눔 사업을 세종도서 사업에 통합한다고 되어있다. 명분은 유사․중복사업의 통합이지만 이는 문학생태계와 출판생태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관료적 시각에서 기인한다. 문학나눔 사업은 산업으로서의 출판이 아니라 언어의 정련과 실험을 통해 모국어의 지평을 확대하는 기초예술로서 문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문학나눔 사업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문학이라는 별도의 예술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사업이 바로 문학나눔 사업이다.
하지만 세종도서는 문학이 아닌 출판에 방점이 찍힌 사업으로 산업으로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출판생태계 지원에 가깝다. 모국어가 아닌 해외작가의 번역작품이 포함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요컨대 문학나눔 사업의 폐지는 단순히 지원기관의 변동이나 지원금액의 감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초예술로서 한국문학의 고유성을 무시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는 기초과학분야 R&D 사업 예산 삭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현 정권의 기조가 중장기적 대계를 생각하기보다 근시안적인 보여주기식 정책에 매몰되어 있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하나는 문학진흥정책위원회의 폐지로 인한 문학진흥정책의 부재이다. 문학진흥정책위원회는 문학진흥법에 기초한 법정위원회이다. 하지만 정부는 폐지 과정에서 문학 단체나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 없이 단지 관련 부처의 의견을 근거로 폐지하였다. 단순 자문의 성격에 지나지 않는 위원회라는 것이 폐지 이유였다. 하지만 그래서 나온 결과는 무엇인가? 올해 초에 발표되었어야 할 법정계획인 제 2차 문학진흥계획(2023~2027)은 이미 2023년이 마무리 되어가는 지금까지 발표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분야 위원을 위촉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는 문학현장의 적격 판단에도 불구하고 관련 부처의 어떠한 해명도 없이 문학분야 위원을 위촉하지 않았다. 때문에 기초예술지원 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문학분야에 심대한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현 정부는 법치를 내세우면서도 법에 명시된 한국문학진흥 의무에 대해 어떠한 응답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학을 비롯하여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은 정권이 던져주는 시혜가 아니다. 이는 헌법의 문화국가원리에서 요청되는 국가의 의무로서 국민의 문화적 기본권이다. 지금 전 세계는 한국의 문화예술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K 콘텐츠의 성공에 자족하지 않고 이를 기저에서 지탱하는 문학과 기초예술의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말로만 법치와 공정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정책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산업의 논리에 경도되어 폐지된 문학나눔 사업과 문학진흥정책위원회를 복원하고 중장기적인 문학진흥정책이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제2차 문학진흥기본계획을 시급히 발표할 것을 촉구한다.
2023. 10. 25
한국작가회의, 국제PE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