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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의 친일문학
未堂 徐廷柱의 親日文學(1915~2000)
경 력?1946 청문협 시분과 회장 ?1948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 ?1961 시집<신라초>로 5.16문예상 수상 ?1966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1977 한국문인협회 회장 ?1984 범세계한국인예술기회의 회장2000 사망
미당 서정주는 한국 최대 최고의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시 <국화 옆에서>는 줄줄 외면서도, 그가 일제 말기에 그 눈부신 시적 재능을 일제에 대한 찬양과 황국신민화 정책의 선전에 기꺼이 쏟아부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또한 조선 청년들에게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 죽을 것을 강권하고, 일본 군대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종군기사를 썼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더러 있었다고 해도, 해방 이후에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이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고, 또 미당이 지금 누리고 있는 문단적 지위와 업적, 그리고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수많은 후배와 제자들의 엄호에 가리어 미처 제대로 드러날 기회가 없었다.
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마쓰이 히데오!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귀국대원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살아서 벌써 우리에게로 왔느니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수백 척의 비행기와대포와 폭발탄과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원수 英美의 항공모함을 그대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장하도다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서정주의 <오장(伍長) 마쓰이 송가(頌歌)>부분이 시는 미당이 1944년 12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발표한 그의 대표적인 친일시다. 이른바 '자살 특공대'로 알려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자살 놀음을 숭고한 애국행위로 한껏 찬양하고 있는 시다.그가 친일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1942년 7월 평론[시의 이야기-주로 국민 시가에 대하여]를 '다츠시로 시즈오'이라는 창씨명으로 [매일신보]에 발표하게 되면서부터이다.그는 최재서(崔載瑞)의 주선으로 '인문사'에 입사해 친일 어용 문학지인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일을 맡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친일 작품들을 양산하기 시작한다. 1942년부터 1944년 사이에 그가 집중적으로 발표한 친일 작품의 목록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시의 이야기-국민 시가에 대하여(1942,평론)><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평론)><인보(隣保)의 정신(1943,수필)><스무 살 된 벗에게(1943,수필)><항공일에 (1943,일본어시)><최체부의 군속 지망(1943,소설)><헌시(獻詩1943,시)><보도행(1943,수필)><무제(1944,시)><오장 마쓰이 송가(1944,시)>.미당의 당시 문단 지위나 연배로 보아 이것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상당히 많은 양이다.이 가운데 수필인,<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와 <수므 살 된 벗에게>,그리고 단편 소설인<최체부의 군속 지망>,시<헌시>등은 학병 지원을 권유하거나 징병의 정당화 내지는 신성화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친일 작품들이고,그 외의 작품들도 대개 일제의 군국주의 파시즘정책에 동조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거나 태평양전쟁을 일본인들의 표현대로 聖戰으로 미화한 작품들이다.미당은 또 1943년 10월 18일부터 엿새 동안 일본군 경성사단이 김제 평야에서 벌이는 추계 훈련에 평론가 최재서, 일본인 히라누마등과 함께 종군해 그 훈련 참관기를 쓴 [보도행]이라는 글을 발표 했다. 훈련 마지막 날, 이 훈련을 견학하기 위해 나온(입영을 앞둔)조선의 스무 살짜리 청년 수십 명과 미당 일행이 벌이는 수작은 차라리 서글픈 심정이 들 만큼 한심한 장면이다. 특히 미당의 몇 가지 미덕 가운데 그래도 높이 사주고 싶은, 우리 토박이 말을 빼어난 시어(詩語)로 빚어 내는 그 재주를 떠올리면 그 서글픔은 더욱 배가된다.
최재서 씨가 먼저 우리들의 신분을 간단히 소개한 후에"이 중에 국어(일본어를 가리킴)를 모르는 이는 없겠지요?"하고 동석한 교관에게 물으니"없습니다."하는 교관의 대답이 떨어지기 전부터 그들은 연방 빙글빙글 합니다.지금 세상에 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하는 눈치입니다."그래, 명년에는 여러분이 모두 다 병대로서 입영을 하게 되는데 그 감상이나 희망을 말해 주시오, 병정이 될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어떤지?"최씨가 이번엔 그들을 향해 물으니, 그 중에 한 소년은 참으로 유창한 국어로써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나는 열다섯 살 때부터 용산의 어느 내지인 상점에서 일을 보고 있다가 금년 봄에사 고향으로 왔습니다. 용산에 내 일터가 있던 관계로 나는 늘 병정들이 오고가는 것을 보고는 참 씩씩하다,나도 한 번 저렇게 되어 봤으면 쓰겠다 하고 늘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러던 만큼 우리도 군인이 된다는 기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뛰었습니다. 지금의 감상은......감상은, 그저 하루라도 빨리 입영해서 나라를 위해 한몸을 바치고 싶은 것입니다."어떻습니까 *형. 이것은 결코 제 문장이 아닙니다. 소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안정되어 있는 어조와 능란한 국어에는 뭐라고 한마디 물으려 했던 나 자신이 주저될 정도였습니다.
[서정주'보도행','조광',1943년,12월호] 해방이 되자 미당은 문단에도 몰아닥친 이념과 정치적 선택의 기로에서 주저없이 우익쪽을 선택해 그것도 이승만 노선에 충실한 쪽으로 선회한다. 훗 날, 친일하게 된 연유에 대해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 는 미당의 고백은 그 솔직함과, 또 솔직함 뒤에 놓인 그 우매함 덕에 이제 제법 많이 알려진 말이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은 뒤집어 보면, 일제가 1945년 8월에 패망하지 않았으면 그의 친일행위는 더 연장되었을 것이란 말과 똑같다. 열 발짝을 양보해 그의 말을 다 받아들인다 해도, 그 일제 말의 참혹한 상황에서 설움을 곱씹으며 묵묵히 버텨낸 수많은 우리 민족의 선남선녀와, 징병 가라, 학병 지원해라, 당신 아들 지원병 보내라고 떠들고, 가미가제(특공대)의 자살 놀음을 숭고한 애국 행위로 본받으라 소리 높여 노래하고, 혈서로 군속 지원을 하는 젊은이를 미화시키고, 일본 군대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종군 기사를 쓴 그가, 대체 어떻게 동일시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 행위에 감히 '하늘 뜻에 따라(從天)'이라는 변명이 붙을 수 있는가. 친일이 하늘 뜻에 따른 것이었다면 당시에 혹독한 탄압을 무릅쓰고 나라 안팎에서 항일 운동을 한 애국 지사들은 '하늘 뜻을 거스른 사람'들이란 말인가.1980년대 중반에 미당이 민중 문학자들을 향해 그토록 강조했던, 문학자가 지녀야 할 신중함과 글쓰기의 엄중함은, 거꾸로 그의 친일행위와 해방 이후에 그가 보여 준 체제 순응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숱한 발언과 행적을 향한 경구(警句)가 되어야 도리에 옳을 것이다. -한수영(문학평론가)-
Verdi-Nabucco노예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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