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벌어진 러시아 민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군사 반란과 관련해 다양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러시아 푸틴의 몰락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이것은 바그너의 리더인 프리고진과 푸틴의 짜고치는 자작극이라는 이야기까지 수많은 설들이 넘쳐 난다. 이런 이야기가 범람하는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 전쟁과 관련해 특파된 기자들이 많지 않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미국과 나토를 비롯한 서방 언론이라는 데 있다.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이 현대 국제 사회에서 용서받지 못할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전황이나 전쟁의 흐름은 나름 객관성을 지녀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바로 이번 바그너 용병들의 일종의 반란사건을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요즘 이 상황을 기사화하는 기자들이 용병의 세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작성하는 기사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용병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고 그야말로 다양한 직업이 존재했다. 아마도 생겼다 사라진 직업들을 모두 기록하면 한참 걸릴 것이다. 고귀한 직업도 있을 수 있고 천한 직업도 당연히 존재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직업가운데 가장 천하게 판단되는 것은 여자의 경우 몸을 파는 직업이요, 남자의 경우는 바로 용병이다. 용병도 몸을 파는 것이다. 여성이 성을 파는 대신 남자들은 힘을 판다. 전쟁에 참여해 자신의 나라와 자신의 고향과는 전혀 관련없는 타국과 다른 조직을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천하고 타인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직업이 됐다.
스위스에서 한때 가장 번창했던 산업이 바로 용병산업이다. 척박한 땅에 70%가 넘는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처와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타국에 용병으로 가는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여러 귀족들과 나라의 왕들이 이런 용병을 대거 고용했다. 일년 내내 전쟁이 있는 것이 아니니 정규군을 상비적으로 거느리는 것은 돈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필요할 때만 고용하는 용병들이 각광을 받았다. 스위스의 남자들은 대부분 이 용병으로 팔려가 죽음을 맞았다. 대신 처와 자식들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만들어 놓고 사라지는 것이다. 참으로 처참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스위스 용병들은 용감했다. 처자식의 앞날을 담보로 목숨 건 전쟁을 하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스위스 용병이라는 말이 나오면 상대 군인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곤 했다. 스위스 용병의 실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스위스 루체른에 위치하고 있는 빈사의 사자상이다. 사자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사자상은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전사한 스위스 용병 786명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위령비이다. 당시 프랑스 왕가에서는 밀려오는 프랑스 혁명대의 공격을 막기위해 스위스 용병을 기용했다. 고작 8백명도 안되는 용병으로 성난 프랑스 혁명대를 막기에는 그야말로 역부족이었다. 프랑스 혁명대는 스위스 용병들에게 " 당신들에게는 문제가 없다. 당신들의 나라로 돌아가라. 그러면 당신들의 퇴로를 열어주겠다" 고 밝혔다. 하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그들의 말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그들이 만일 프랑스 혁명대의 말을 받아드려 도망쳤다면 그들은 당연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식이 유럽 각지에 전해지면 그때부터 스위스의 용병 산업은 막을 내리게 된다. 아주 나약하고 연약한 모습이자 고용한 주인의 명령도 없이 철수한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일뿐 아니라 앞으로 용병으로 고용될 그 유일한 방법마저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모두 전사하고 만다. 그들의 머리속엔 이 싸움의 정의로움 여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결과적으로 불의를 위해 고용됐다해도 그 불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게 용병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스위스 마을에 사는 아버지와 아들은 각기 다른 나라의 왕들을 방어하기 위해 용병으로 팔려 간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아버지가 소속된 나라와 아들이 소속된 나라가 서로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 됐다. 아버지와 아들은 전쟁터에서 마주친다. 하지만 아버지도 아들도 물러서지 않는다. 서로 타협해 도망을 가거나 숨어버리면 목숨은 구할 수 있겠지만 그런 용병들을 앞으로 누가 고용하겠는가. 이제 앞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잠시 고민하지만 결국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된다. 둘은 처절하게 싸우다 숨져간다. 용병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그런 스위스 용병의 정신을 높이 사서 바티칸 교황 근위대는 지금도 스위스 용병들이 담당하고 있다. 바티칸을 방문하면 성베드로 성당을 지키는 근위병들은 모두 스위스 출신 용병들이다. 스위스 용병들의 피와 정신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자 세계에서 대단한 선진국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러시아 바그너 용병들의 반란은 과연 무엇일까. 용병들이 자신들을 고용한 주체를 향해 총을 겨눈 것 아닌가. 이런 것은 용병들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에 정말 그러했다면 그것은 용병도 아닌 잡병들이다. 지금 러시아 푸틴과 바그너 용병의 수장인 프리고진 사이에 모종의 협약이 있었던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물론 시대가 혼란하니 용병들도 옛 용병들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용병들도 마지막 자존심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을 고용한 주체에 대해 반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자신의 목숨을 생각해 슬슬 전투는 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을 고용한 주체에 대해 총을 겨누는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럴경우 앞으로 그들을 누가 용병으로 기용하겠는가. 회사에 고용해 타 기업과 경쟁을 벌이는데 자신을 고용해 준 회사 대표에게 칼을 겨루는 그런 꼴 아닌가. 물론 일반 기업에서는 가능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처와 자식의 앞날을 기약하는 용병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그런 기본이 안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번 러시아 용병 사태가 무척 의심이 가는 충분한 이유이기도 하다.
2023년 6월 2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