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1921~92) 이병주는 하나의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와 만나는 것이라 했다. 이는 문화를 뜻하는 것이나 우리 역사를 짚어보면 외국어 구사 능력은 ‘벼슬’이라 할 만했다. 일제강점기나 미 군정 치하에서 일본어나 영어를 아는 이들의 행적이 좋은 예다. 멀리 들 것도 없다. 요즘 유행하는 조기유학이란 것도 그 심저에는 계층 상승의 만능열쇠인 영어를 익히려는 목적이 가장 클 것이다.
책은 조선 시대 사대교린 정책의 실무를 맡았던 역관(譯官)들의 활약과 치부를 다뤘다. 대부분 중인 출신으로 외교 실무를 담당했던 이들은 때로는 국가의 위기를 구하기도 했고, 때로는 청나라나 러시아의 위세를 업고 횡포를 부리다 못해 자기네 임금을 암살하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正史)를 중심으로 풀어간 만큼 인물 이야기치고는 소략해 읽는 맛은 다소 덜하지만 그간의 우리 역사에서 소홀히 취급됐던 인물들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선조 때 활약한 한학역관 홍순언은 임진왜란의 저울추를 돌려놓았다고 평가 받는 큰 인물이다. 사행(使行) 도중, 훗날 명의 병부상서 등을 지낸 석성의 후처가 된 여인을 구해준 인연으로 임진왜란이 터지자 명의 군사적 지원을 성사시켰다. 이에 앞서 명 황조의 사서에 이씨 왕가의 족보가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는 종계변무(宗系辨誣) 문제를 해결해 왕실의 경호를 맡는 종2품직 우림위장까지 올랐다. 이는 양반과 중인 신분의 경계를 무너뜨린 일로 사간원에서 들고 일어날 정도로 파격적 인사였다.
홍순언이 나라를 구한 외교첨병이었다면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인조를 괴롭힌 정명수다. 그는 광해군 때 강홍립 휘하로 후금과의 싸움에 출전했다가 포로가 된 뒤 귀국을 거부하고 여진어를 배워 청나라의 역관으로 활동한 호역(胡譯)이다. 노비 출신인 그는 병자호란 때 청군의 선봉 용골대의 통역으로 다시 조선 땅을 밟은 후 호가호위의 진수를 보여줬다. 청나라 사신으로 한양으로 내려오는 길에 기생을 빼앗고, 관리를 구타하는 행패는 예사였다. 관노였던 처남, 친구 등은 현감, 군수가 됐다.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의 친구 하나를 장살(杖殺)했던 호조판서 민영휘는 자기가 맞이해야 할 사신단에 정명수가 끼어 있다는 말을 듣자 사직서를 내고 도망쳤을 정도였다.
역관들은 사행을 따라 다니며 개인적으로 밀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기도 했다. 비단 수출, 유황 수입 등 대일무역을 독점해 조선 경제계를 주무르던 왜학역관 변승업은 “내 재산으로 양반인들 못 사겠는가”고 장담했는데 결국 아들 변이창을 첨지, 즉 양반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단순한 ‘돈벌레’는 아니었던 것이 1709년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시중에 푼 돈 50만냥의 채권문서를 모두 태워버리라고 유언을 했다. 결국 이로 인해 훗날 그의 가문이 패가망신을 면하는 방패가 되기도 했으니 나름 혜안이 있었던 셈이다. 책은 개화기 윤치호까지 다루되 단순한 인물 이야기에 그친 게 아니라 당시 정치 상황과 역관 양성소인 사역원의 교과과정, 교재, 역관 시험 등을 덧붙여 역관사 완결판이라 부를 만하다. 단지 당시 관직, 용어가 별도 설명 없이 등장하는 대목이 많아 교양서치고는 쉽게 읽히지 않는 아쉬이 있다.이 (김성희(북칼럼니스트)
이상각
그는 시인이자 역사 관련 저술가로 출판기획 ‘작업실’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저술활동을 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정사를 기반으로 색다른 역사 해석을 내리는 데 힘쓰고 있다. 충남 태안 출신에서 태어나 화백문학회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월간 "통일" 기자, 계몽사/종로학원 고등부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복원하고 단절된 소통의 끈을 이어 줄 온기있는 책을 써 내는 것이 바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최근 그는 역사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개혁군주 정조, 세종, 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역사책 저술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일방적이고도 단순한 역사의 기록을 절개하고 분석해서, 당시의 복잡다단한 상황과 그 안에 살아 숨 쉬던 인간들의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방식으로 역사책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때 그는 왜 그런 일을 했을까?’, ‘그는 정말로 그런 사람인가?’ 등의 화두를 앞세워 한 인물과 그 주변을 훑어내는 저자의 끈질김은 결국 교과서와는 많이 다른 모습들의 역사책으로 탄생하고 있다.
첫댓글 훌륭하신 사위의 글 읽어보겠습니다. 나도 역사를 즐겨읽는 편이라서....이상각(본관 경주?)
이상각이라는 분이 조카 사위시군요. 좋은 책을 많이 쓰셨네요. 특히 역관들의 이야기를 쓴 책은 매스컴에서 소개되는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숙종 시대의 장희빈도 중인인 역관의 딸이었지요. 기회가 되면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책에 대한 소감이라는지 줄거리라든지 본인이 쓴 글을 올리는 것은 되지만, 이렇게 책의 전적인 소개는 이 게시판에 올리면 안되는거 모르셨나 봅니다. 다음부터는 본인의 글로 소개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려요~~~^*^
애고.... 몰랐어요. 내가 아직 읽지 못했으니 자세히 소개를 할 수 없어서 ㅜ.ㅜ
초카사위- 작품 -훌륭한분이시네요--나는 역사 소설을 좋아 해서요-- 사봐야하겠네요--
역사에 대해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가지셨나 봅니다.
자랑스런 사위를 두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