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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범회장님의 카톡에서]
★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세상 떠난 전직 대통령
며칠 전 100세 나이로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가장 겸허했던 대통령으로 불린다.
퇴임 후에도 돈 벌 기회가 숱했지만
모두 사절하고 방 두 칸짜리 집에서 검소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집 시세는 22만3000달러, 환율 1470원대를 적용해도
불과 3억원 남짓. 그마저도 국립공원관리청에 기부하고 갔다.
후임자들과 같은 욕심을 피했다.
사업가 친구들의 전용기를 마다하고
여객기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녔고
건강이 악화될 때까지 교회 주일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봉사 활동에 헌신했다.
땅콩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77년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백악관 주인이 됐다.
1980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 뒤엔
군소리 없이 짐을 챙겨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곤 임기 후에 따르는 정치적 부(富) 챙기기를 거부하고
참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강연이나 기업 컨설팅을 해주며 떼돈을 벌려
하지 않았다.
대기업 고문 등 통과의례처럼 주어지는
제의들도 모두 고사했다.
땅콩 사업 재정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100만달러 빚을 지고 있었다.
곧바로 사업을 처분하고 가계 회복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양한 주제의 책 33권을 출간해 빚 갚는 데 보탰다.
전직 대통령 연금 21만700달러도 쏟아부었다.
자신을 거물로 여기지 않았다.
거물인 양하는 사람도 싫어했다.
세금으로 충당되는
전직 대통령 연금, 경호 비용, 기타 경비를 최대한 절약했다.
클린턴 127만, 조지 W 부시 121만, 오바마 118만, 트럼프 104만 달러에 비해
연간 49만6000달러로 줄였다.
그는 돈을 좇지 않는 자신에 대해 “그게 뭐 잘못된 거냐”며
“다른 사람들이 그런다고 탓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9일 국립성당에서 장례식이 끝나면 그의 시신은 조지아주의 고향 마을로 옮겨진다.
기차 운송이 검토됐지만,
“차갑고 죽은 시신이 여기저기 거쳐 가면
내가 죽어서도 여러분을 괴롭히게 되는 것”이라는
고인의 생전 바람에 따라 군용 비행기로 직송한다.
77년간 해로했던 아내 로잘린 여사가 2023년 11월 먼저 묻힌
고향 마을 연못 가장자리 버드나무 옆 묘소에
나란히 눕혀진다.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는 언제 인간미가 넘치는
훌륭한 국가 지도자를 가질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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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편지와
아들의 편지를 읽고
마음이 찡하고 나이 탓인지 눈가에 이슬이 맺히네요... ♧
💌 어머니의 편지
파란 보리알
한 사발을
작은 손가락으로
만들어 들고 온
어린 아들의
곱고 고운 정성에
나는 울었다.
고사리 같은
너의 두 손을
꼬옥 안아
주고 싶었지만
나는
너를 위해
매를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아주고
싶은 자식을
때려야만 했던
엄마는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픔이었다.
엄마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 정말 고맙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집에
먹을 것은 없고
엄마는 몹시도 아파서
방에 누워 앓고 계셨다.
굶고
누워만 계시는 엄마를
지켜만 볼 수 없어
보리밭으로 나갔다.
아직
여물지도 않은
파릇파릇한 보리 이삭을
손으로 잡았다.
남의 것을 훔치려니
손이 떨리고 무서웠다.
엄마를 위해
용기를 내어
한아름 뽑아다가
불을
피워 놓고
태워 익혔다.
태운 보리를
내 작은 손가락으로
비벼서
파란
보리알을 골라
하얀 사발에 담았다.
누워
신음(呻吟)만 하시는
엄마 앞에 조심히
사발을 들고 앉았다.
“엄마,
이거라도 드시고
기운(氣運) 내세요.”
엄마는
힘들게 일어나
앉으시더니
내 손을 보시고
사발을 보셨다.
내 손은 까맣게
재가 묻어 있었다.
“어서 나가서
매를 만들어 오너라.”
소나무
가지를 꺾어
매를 만들어 왔다.
“굶어 죽더라도
남의 것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거야.”
바지를
걷어 올리고
많이 맞았다.
까칠까칠한
소나무 가지라서
아프기도 많이 아팠다.
“엄마,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도둑질 안 할게요.”
엄마를 위해
했던 일이
도리어
엄마를 슬프게
하고 말았다.
마음까지
아프게 한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 울었다.
“이대로 들고 가서
밭주인에게
사죄(謝罪)하거라”
사발 속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친구
달봉이네
집으로 갔다.
하얀
사발을 앞에 놓고
마당
가운데 무릎을 꿇었다.
“달봉이 엄마,
용서(容恕)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달봉이 엄마는
깜짝 놀라
달려 나와 물으셨다.
“난대 없이
이 사발은 뭐고,
용서는 무슨 말이냐?”
보리타작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달봉이 엄마는
나를 일으켜
세우시더니
내 다리부터 보셨다.
내 종아리를 보신
달봉이 엄마는
나를 안고 우셨다.
“이 어린 자식이
무슨 죄야,
가난이 죄지.
너의 엄마도 참~.”
달봉이 엄마는
눈물을 닦으시며
보리알 사발에
쑥개떡을 담아 주셨다.
“엄마 밥은
내가 만들 테니까,
너는
걱정 말고 가서
쑥떡이나 먹거라.”
먼 눈물 이야기로
시작한 나의 인생길~
이 편지(便紙)를
볼 때면
어린 시절(時節)
어머니와의
추억(追憶)에
눈물이 맺힌다.
나는
어머님의
임종(臨終)
소식(消息)을
도쿄에서 들었다.
타국(他國)에 있는
자식을 기다리다
눈을 감으신 것이다.
갚아야 할
은혜(恩惠)가 산 같은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신 지
어느새
18년이 지났다.
📧 아들의 편지
사랑 하나!
정성 하나!
눈물 하나!
날마다
자식(子息)
나무에 물을 주어
푸른 동산을
가꾸어 주신 어머니
자식의 기쁨을
당신의 기쁨으로
자식의 슬픔도
당신의 슬픔으로
어머니의
발자국 마다마다에는
마를 수 없는
사랑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힘든 농사일에
그토록
지치신 몸으로
자식에게는
곱게 곱게 입혀 주고
싶어서
깊어가는 밤!
그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직
닭도 울지 않은
이른 새벽
도시락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
조용한
그 칼도마 소리
정겹게 들려옵니다.
자식을 위한
어머님의 땀방울!
자식을 위한
어머님의 눈물!
은혜의 강이 되어
지금 내 가슴속을
흐르고 있습니다.
제가 그토록
고향(故鄕)이
그리웠던 이유는
그곳에는
어머님이 살아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디서
그 사랑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걸어온 길 뒤돌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뻤던 날들보다
슬펐던 날들이
더 고왔습니다.
산과 들에
뻐꾹새 뜸북새 우는
산 마을 내 고향
그 새파란
보리밭으로
어린
소년 하나가
엄마를 부르며
달려갑니다.
너무나 사랑, 교훈, 감동을 주는 글이라 퍼 나릅니다.
-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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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창을 열며..
따뜻함에 마음 녹이고
다정함에 미소 지으며
상냥함에 친구가 됩니다
사람을 얻는 것
그것만 큼 큰 "자산은"없다
어제의 시끄러운 세상
어제의 복잡했던 마음
새 아침에 깨끗이 떨치고
미소 가득한 날 되시길...
youtube.com/watch?v=gVqYuE5IKYg
새락골에서 띄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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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숙의 노래🍁
사연을 알고 계십니까?
🎋반세기(半世紀)도
훨씬 더 지나버린
1960년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가 무척 어려웠던 그시절,
그녀는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한채,
서울에 올라와
구로동에 있던 구로공단 가발공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받은 월급은
최소한의 내 생활비만 남기고
시골 부모님에게 모두 내려 보냈습니다
동생들 학비와
가사(家事)에 보탬이 되라고.
그러기를 십여년이 지나면서,
찌들게 가난했던 시골집 생활이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을 돌아 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서른이 가까운
노처녀 나이가 되어 있었고 지나간 세월이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이제라도 자신을 위해
투자(投資) 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검정고시 준비를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 글을쓰는
국어 선생님이되고 싶었던것입니다.
그래서 종로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고
중학교졸업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든 그에게 변화가 생깁니다.
다니던 학원의 총각 선생님을
사모(思慕)하게 됩니다.
착하고 순진한 동숙은
총각 선생 자취방까지 찾아가 선생님 밥도 해주고
옷을 빨아 주며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두 남녀는 장래를 약속하며 몸과 마음을
그리고 가진 금전까지도
그에게 모두 바치게 됩니다.
그런데 가발공장은 세월이 지나면서 전자산업에 밀려서
그녀가 다니던 가발공장도
감원(減員)과 부도(不渡)로
직장을 잃은 그녀는 학원비 때문에
학원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가 됩니다.
할 수 없이 동숙은 부모님 도움을 얻으려고 시골에 내려와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부모님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야 아~
여자가 공부는 무신공부냐?며
있다가 시집이나 가그라"며
냉대(冷待)합니다
10년 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동숙은 너무나 서운했습니다.
그녀는 부모님을 원망하며
울면서 서울로 다시 돌아옵니다.
동숙이가 만난 친구들은 모두가
"너가 사귀던 박선생 그분은 알고보니 약혼자도 있고 이번에 결혼한다더라.
너를 등처먹은 거나 다름없는기라,
가시나야!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동숙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고
그를 만나서 확인을 하고싶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마음이 이미 싸늘했고
"너와 난 학생과 제자 사이 아니냐.
내가 어떻게 너를 내 아내로......
그리고 니가 좋아서 날 따라 다녔지.
고등학교 검정고시나 잘 보라구......."
"알았씸더 샌님예~........."
더이상 긴 이야기가 필요 없었습니다.
이미 농락 당한 여자임을 알게된
동숙은 복수를 결심하게 됩니다.
동생들과 부모님에게 희생만 당하고
그리고 또 한 남자에게 배신 당하고 그렇게 살아 온 동숙은
과연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어차피 내인생은 이런거야 하며
동숙은 처절하게 비관을 합니다.
그녀는 동대문 시장에서
비수(匕首)를 하나 구입해서
가슴에 품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수업시간
그 선생이 칠판에 필기를 마악 쓰고
돌아 서려는 찰나
원한에 찬 동숙은 선생님 가슴에
복수의 비수를 꼽습니다.
"야, 이놈아! 짐승보다 못한 나쁜놈~" 순간적인 사건입니다.
비명 소리에 남자는 쓰러 졌고 동숙은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남자 어떻게 되었어요?
제가 잘못 했어요. 형사님!
제발 그 선생님만 살아나게 해 주세요"
자신을 탓하면서 사랑했던 남자의
안부를 더 걱정하는 여지지만 동숙은 결국 살인 미수죄로 복역을 하게 됩니다.
가난 때문에
자신을 전혀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그녀가 뒤늦게 얻은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살인미수자(殺人未遂者)라는
비극으로 마무리한
"사랑의 생활수기"가
여성 주간지에 실려서
그때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를 모델로 하여 '
영화도 만들어졌고
그 이름도 유명한
''동숙의 노래''도 만들어 졌습니다.
한산도 선생이
이 동숙의 사연을 노랫말로,
백영호 선생이 작곡을 하여
1966년 신인가수 문주란이
동숙의 노래로 가수 데뷰를 합니다.
그때 문주란은 특이 한 허스키한목소와 어린
나이인 10대를 벗어나지 않은 앳된 소녀였다고
신문과 방송에서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결국 이 사연은 힛트!
대힛트 였습니다.
그래서 문주란은 가수의 길로 들어섰고
낙조, 타인들, 돌지않는 풍차등의
힛트곡을 내기도 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합니다.
문주란이 부른
<동숙의 노래> 가사입니다
1절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마음
원한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수 없는죄 저질러 놓고
흐느끼면서 울어도 때~는 늦어리
때는 늦어리~''
2절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건만 그대 따라 못가는 서러운마음
저주 받은 운명에 끝나는 순간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참을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뜨거운 눈물~.'
찟어지게 가난했든
우리의 1960년대
그당시 우리의 많은 10대 여공들은
배우지 못한 서러움과 냉대속에 동숙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든
숙명이었습니다.
동숙의 일생이 잘 표현된
이 노래를 듣고 또 다시 들어 보세요.
60~80년대 우리는 그때에
남자들은
독일 광부로,
월남전 파견과
중동건설 현장파견등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여자들은
독일간호사 파견과
전국의 각종공단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여
번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식들이나 동생들 공부시켜가며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공헌해 왔던것이 사실입니다.
이들은 지금 70대 80대 90대 노년, 피땀흘리며 일하고 벌어서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세계 최빈국(最貧國)으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연명(延命)하며
살아가던 우리나라를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만든 동력들인데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피땀흘려 일하기 보다는
정부에서 나눠주는
몇푼의 공짜 돈에 현혹되어 눈이 멀어있다는 말이 풍설이기를
믿고 싶을뿐입니다.
또한지금,
우리나라 경제발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양 착각을 하면서 이들 경제 개발세대를 가르켜
꼴통, 들딱이라 하며 폄훼하는 현실이 정말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따라서 경제개발 주역들이
제대로 평가받는 교육과 인식이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한가한 휴식시간 때
동숙의 노래 한곡 들으시면서
그 내력(內歷)을 알아 보는
시간 가져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동숙의 노래
🎤노래: 문주란
https://youtu.be/GYZ4BNs8W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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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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