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 이윤숙
발행일2019-09-01
[제3160호, 3면]
힘든 때일수록 긍정적인 생각으로 묵상하며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다 보면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도 이루어지는 경험을 종종 하곤 한다.
행궁동벽화마을 훼손된 골목 복원을 위해 작가를 공모하여 ‘벽화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지난해의 일이다. 행궁동 금보여인숙 담장에 ‘큰 황금 물고기’ 벽화를 그린 브라질 작가 라켈의 죽음과 그녀의 훼손된 벽화를 복원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던 때였다. 2014년 국제협업아트프로젝트 ‘행궁동에 신화를 풀어놓다’ 참여작가로 라켈과 함께 한달 간 행궁동에 머물며 창조신화 벽화를 남긴 콜롬비아의 호르헤 이달고 작가로부터 메일이 왔다. 이번 벽화 복원 프로젝트에 꼭 참여하고 싶은데 8월~9월에나 시간이 가능하다며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 이미 5월부터 계획에 맞춰 진행하여 예산도 없고 외국 작가를 참여시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그가 벽화복원을 위해 다시 행궁동에 오겠다고 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훌륭한 작가임을 알고 있었기에 예술공간 ‘봄’ 외벽에 그려진 그의 벽화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 앞에서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걱정하지 마라, 안나야’ 하시는 말씀이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곧바로 그에게 오라고 답장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도착하자마자 예술공간 봄 맞은편 다실바의상실 큰 벽면에 벽화를 그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져온 작품 전시와 퍼포먼스, 붉은 칠로 훼손된 골목 낮은 담장 벽화 작업을 다 마치고 그 큰 벽에 그릴 스케치를 두 권이나 해 놓고 기다렸다. 나는 백방으로 후원을 받기 위해 뛰었고 그의 출국일 10일 전에야 가까스로 비계설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했다. 작가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상황이라 협업해줄 작가를 모집해 두 명의 작가가 순천, 군포에서 합류했다.
벽화를 시작하려니 이틀간 계속 비가 내렸다. 출국일이 8일 남았다. 도저히 불가능 할 것 같았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기적처럼 출국 전날 드디어 벽화가 완성됐다.
호르헤 이달고 작가는 “안타깝게 아기를 낳다 세상을 떠난 라켈에게 헌정하는 벽화”라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On memoria a RAQUEL’이라는 문구를 벽화 한켠에 새겼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라켈을 위해 그리고 행궁동 마을을 위해 기도드렸다.
모든 것은 그분께서 계획하신 일이고 우리는 그분의 도구였다. 작가, 자원봉사자, 비계설치에서부터 통역, 재료, 간식, 점심, 숙소비용 까지 엄청난 규모의 벽화 작업이 후원으로 완성된 것이다.
<끝>
이윤숙(안나·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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