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사람 누구든...
한 번 태어나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분명히 갈라집니다.
그래서, 절대다수의 모든 교인들이 천국에 가고자 주님을 믿게 되는데,
그 믿음이 주님 기준의 믿음이 아니라, 사람 기준의 믿음이라면
큰 문제가 발생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그분이 나를 통해 그분의 성품을 드러내며
이 땅에서 성령으로 살아가는 모습의 실상을 말합니다. (갈5:25)
하여 반드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어찌 만나고 또 만난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저, 주일을 열심히 지키면서 충성 봉사하면 주님을 만난 증거입니까?
성경 지식이 다방면 풍부하다고 하여, 그것이 주님을 만난 증거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절대적 지표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간절함... 그 누구도 간절함 없이는 주님을 영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간절함이 어떻게 생길까요... 말씀을 접하다 보면 말씀이 머리가 아닌,
심장을 파고들 때, 내 죄성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죄성에 머물다간 끝내 사망할 것이기에,
사망치 않으려면 이걸 해결해야 하기에, 주님을 간절히 구하려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의 첫번 째 예이고,
두 번 째는...
평소 그냥 내 열심과 습관으로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
세상을 주목하다가, 인생의 위기가 닥치면, 그제서야 주님을 찾으면서
이 시련에서 꼭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며, 주님을 주목합니다.
위 두 예에서 보듯 결국 주님을 향한 간절한 목마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향한 그 간절한 목마름이 주님의 관심과 시선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주님의 은혜로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려 합니다.
주님을 구한다는 참 의미는 자기 부인과 회개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을 절대 만날 수 없음을
주님의 은혜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허다한 교인들이
'주님을 믿습니다' 하면서도 목마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육적인 모습을 벗으려 하지도 않고 간절함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믿기만 하면(?)주님께서 은혜로 다 알아서 하신다 확신하는 분들은
절대 주님을 향한 목마름이 생기지 않을뿐더러
주님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런 뜬구름 잡는 허망한 생각에서 부디 깨어나십시오.
성경 곳곳에,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의 말씀이
수도 없이 증거하고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성경 전체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라는 시그널입니다.
주님을 향한 목마른 마음... 이것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격적으로 만납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생명을 얻어 속사람이 변화된 분들을 보면
대부분 힘든 고난과 시련이 그들에게 휘몰아친 흔적이 보입니다.
사업 실패로, 교통사고로 몸이 고장나고, 가정 내 문제로, 인간관계로,
힘든 질병의 문제로, 경제적인 문제로, 사회적인 문제로...
그 외 여러 가지 문제로...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그 사연이 참 다양합니다.
어떠한 분들은 삶의 희망이 바닥나면 극단적인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믿음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봤던 사람은
낭떠러지기에 매달린 상황이 되면... 포기하지 않고
절박한 마음으로 주님께 내 손을 잡아달라며 매달리려 합니다.
이 낭떨어지기에서 구할 이는 주님뿐이란 걸 영적인 본능으로 압니다.
그동안 온전히 거듭나지는 않았어도 주님의 절대적 도움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에는 대충 스치며 머리로 들어가던 말씀들이
이제는 방향을 바꿔서, 심장을 향해 돌진하며 나를 찔러대기 시작하는...
육에서 영으로의 거룩한 크로스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여 주님께서는 종종
믿노라 하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빼앗을 때가 있습니다.
사회적 명예, 재산, 건강, 화려한 스펙 같은 부귀영화... 이것이 뭡니까!
사람의 육적 본능인... 탐욕의 마음으로 취하려 드는 우상입니다.
사실, 이것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육의 속성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제쳐두고 이것을 탐닉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이런 걸 배설물로 여기지 않고 우상으로 섬기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런 것에 잡혀있으니 영적 자유함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이런 걸 계속 놓지 않으려 하기에 말씀이 머리쪽에만 머무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슬금슬금 육의 바벨탑을 견고히 쌓는 것입니다.
이 굳건한 바벨탑이 무너지지 않으면
나는 영원 세세토록 생명으로 옮겨질 수 없는 인생이 됩니다.
하여, 주님께서는 우리를 회복시키고자 철옹성 같았던 내 모든 것들을
처참할 정도로 부수고,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왜 무너뜨리십니까... 바벨탑에 내가 계속 지배받는 한
그것에만 주목할 것이고, 주님을 향한 간절함이 안 생기기 때문입니다.
바벨탑이 무너져야 비로소, 주님이 내 심령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사람에게는 바로 고난과 시련 혹은 광야라고 합니다.
사실 이 과정이 참으로 괴롭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소연할 정도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오냐고, 왜!! 하필이면 나냐고 울부짖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떠납니다, 아니 내가 사회적으로 자신 없기에
스스로 사람들과 멀리하며 외톨이가 되어갑니다.
철저히 덩어리를 깨버리고 분해합니다.
이런 과정은 매우 힘들겠지만, 고난을 줘야만이 겨우 정신을 차리면서
뜨거운 심장으로 주님을 찾게 해야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은혜입니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호세아 5장 15절)
이 과정에서... 마귀는
너 하나도 챙겨주지 못하는 하나님을 버리라고 충동합니다.
마치, 욥이 모든 걸 잃고 힘들어할 때, 마귀는 욥의 부인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며 하나님을 철저히 버리라 일갈했고, 또한
욥의 친구들도 충동하여 모욕을 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마귀는 우리가 주님을 만나려 간절한 마음으로 결단할 때...
가족을 이용하고,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여, 또 어떤 상황을 만들어서
철저히 주님과 이간하려 합니다.
또는 끈적끈적한 세상 것들에 자꾸 몰입하게 하여
방향을 혼미하게 흐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기에, 그분을 철저히 신뢰하며 인내로
고난을 극복했듯, 우리도 고난의 상황에서 욥과 같은 이런 모습으로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매달려야 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내 자아와 세상적 바램이 철저히 무너지면...
그저 입술로만 '주여 주여~ 주님을 믿습니다' 하던 상투적인 모습에서
이제는 심령으로 간절히 주님을 부르짖게 됩니다.
사실, 전에는...
나는 죄인이라며 늘 입버릇처럼 말은 해왔지만,
내 죄성을 못 보면서 상투적 죄인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자신과 세상 것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나는 모든 걸 내려놨노라
스스로 가스라이팅 하기도 합니다.
주님께 굴복한 적이 없었으면서 말로만 굴복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게 했다면 반드시 삶의 열매를 통해 증거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없다면 나는 입술로만 다 '퉁'치려고 한 것입니다.
정말 자신이 죄인이라며 심장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필히 자기를 부인하며 마음을 찢는 회개에 이르도록 되어있습니다.
영은 혼과 달라 거짓이 없기에 있는 그대로 삶에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적 상태에서는 실상 돌이키지 않고는 도무지 견딜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살리려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이런 상태에서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불쑥 치고 올라옵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알고싶어, 기록된 성경을 간절함으로 접하면서
주님께 의지하려는 상황이 분명히 찾아옵니다.
예전에는 지식적, 평면적, 기계적으로만 쭉 읽어갔었던 성경 말씀들이
이제는 입체적으로 나의 심령을 사정없이 자극하며 찌릅니다.
말씀이 생명이 되어...
내 철옹성을 무너뜨리며 나를 점령해 들어오는 과정입니다.
물론, 큰 고난의 과정도 없이 누구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는 순간 혹은,
성경의 어떤 말씀에 찔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고,
자기를 부인하고 애통히 회개하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고난이란 것을 통하여 말씀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 과정을 겪어본 분들은 바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렇듯, 말씀에 부딪히면서 나는 더더욱 철저히 무너집니다.
이제, 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슬금슬금 가치관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뀝니다.
말씀과 삶이 다른 위선자가 아니라, 말씀이 삶에 묻어나기 시작합니다.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간다는 증거입니다.
옛사람은 떠나가고 새사람을 입은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 주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생명이 되어 진정으로 주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즉, 성령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새 생명을 얻은 이후부터는...
그동안 집착했던 것들이, 그저 하찮은 배설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왜!!! 이런 의미 없는 것에 집착했나 자신의 미련함을 질타합니다.
이제는... 빈곤 가운데서도 영적인 풍요함을 느끼게 되고,
몸이 약한 가운데서도 영적 건강함이 찾아들고,
육의 눈에서 영의 눈으로 바뀌었기에 정말 모든 게 달라 보입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고 즐거워하는 어린아이처럼 참자유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내 자아와 세상적인 모든 걸 철저히 깨뜨려
우리 시선을 주님께로 돌려놓습니다.
고난 중에 있는 분들께 간곡히 권면드립니다.
지금의 고난에 매우 힘들 수는 있어도 결코 절망하지 마십시오.
설마 이런 고난이, 상상만으로도 경악스러운 지옥의 그것만 하겠습니까...
주님은 더도 덜도 아닌, 반드시 감당할 시련만을 허락하십니다.
소망을 가지십시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고난의 과정은 지금 주님께서...
나와 같이 동행하자며, 우리에게 보내는 시그널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 시그널을 거부하지 말고 인내와 소망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장 4절)
하오니...
하필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쳤냐며 절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왜 날 포기한 것이냐며 주님을 원망하며 눈물 흘리지 마십시오.
나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시간이 지나며
진정으로 주님의 은혜 아래 들어가 보면 바로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의 간절한 싸인에 화답하여 이제는 육에 머물려하지 말고,
더욱 주님만을 꽉 붙잡고 나아가시길 간절히 권면드립니다.
진실로 간절하면 주님은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으려는 자를 만나주겠다는 주님의 굳은 약속에 대해
굳게 믿으며 목마름으로 응답을 기다리는 분들이 되길 원합니다.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랑별파파 (daum cafe: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첫댓글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잠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