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6번째 편지 - 올림픽에서 만난 도전, 목표, 꿈이라는 단어들
2024년 파리올림픽이 오늘로 딱 일주일 남았습니다. 지난 7월 26일 시작한 올림픽은 8월 11일 폐막식을 끝으로 종료됩니다. 현재까지 한국 선수들이 딴 메달은 금메달 10개, 은메달 7개, 동메달 7개로 총 24개의 메달을 따고 메달 순위에서 6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것은 엄청난 영광입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운동선수는 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좌절합니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꿈을 현실로 바꾸었습니다. 저는 이들이 꿈을 이루는 과정을 보면서 한 가지 우화가 떠올랐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철학과 교수 닉 보스트롬(Nick Bostrom/ 1973년생)이 2005년에 Journal of Musical Ethics에 발표한 <The Fable of the Dragon-Tyrant (용 폭군의 우화)>입니다.
닉 보스트롬은 빌게이츠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꼭 읽어야 하는 두 권의 책 중 한 권'이라고 평가한 <슈퍼인텔리전스 : 경로, 위험, 전략>의 저자로 AI 윤리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그 우화는 상당히 길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용-폭군(the Dragon-Tyrant)이 인간을 지배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놈은 거대한 성당보다도 컸고, 붉은 눈은 증오로 빛났으며, 두꺼운 검은 비늘로 덮여 있었다.
용은 매일 10,000명의 남녀를 공물로 요구했다. 용이 가한 비참함은 끔찍했다. 학살당한 사람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어머니, 아버지, 아내, 남편, 자녀, 친구들의 슬픔은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은 용을 물리치는 노력을 하였다. 사제와 마법사들은 저주를 내리고, 전사들은 최신 무기로 용을 공격하고, 화학자들은 독을 만들어 용이 삼키게 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용을 물리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의 명령에 따르고 조공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선택된 공물은 항상 노인이었다. 젊은이보다 적어도 수십 년은 더 살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용의 먹이가 될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 일찍, 더 자주 아이를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구가 줄지 않았고, 용은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다.
수 세기 동안 용은 배불리 먹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산만큼 커졌다. 식욕도 비례적으로 증가했다. 이제 매일 8만명을 요구했고 매일 저녁 어두워지면 8만명이 산기슭으로 운송되었다.
왕의 고민은 용 퇴치가 아니라 8만명을 운송할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 철도를 건설했다. 공물 관리 하인과 순서 기록 등록관이 고용되었다. 물류 프로세스 개선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생겨났다. 이를 위해 세금을 징수하였고 국가 전체 예산의 7분의 1이 용 관련 지출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용을 물리치는 시도 또한 계속되었다. 학자들은 용을 죽일 신물질을 연구하였고, 결국 용의 비늘을 뚫을 수 있는 물질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엔지니어와 학자들은 왕에게 이 물질을 탑재할 미사일을 만드는 자금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보냈다. 그러나 왕은 농민을 잡아먹는 호랑이와 전쟁하느라 정신이 없어 이 계획을 무시했다.
반용론자들은 사람들에게 직접 호소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이 계획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왕은 어쩔 수 없이 청문회를 열기로 하였다.
청문회에서 반용론자들은 용을 물리칠 과학적 방법을 설명했다. 이에 반해 왕의 수석 고문은 "인간 삶의 유한성은 모든 개인에게 축복입니다. 용을 없애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당할 것입니다. 용의 본성은 인간을 먹는 것이고, 인간의 본성은 용에게 먹힘을 당함으로써만 진실로 고귀하게 충족됩니다."라고 역설하였다.
그때 한 소년이 외쳤다. "용은 나빠요. 할머니가 크리스마스에 진저브레드 쿠키를 굽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할머니를 흰옷 입은 사람들이 용에게 데려갔어요. 할머니를 돌려주세요."
이 소년의 말에 감동한 왕은 결국 이 계획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많은 어려움과 실패를 겪고 성사되는 데 무려 12년이나 걸렸다. 마침내 용에게 발사할 미사일이 준비되었다.
발사 당일, 한 젊은 관리가 용 공물 마지막 열차에 자신의 아버지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12년 전 바로 그 소년이었다. 그는 왕에게 마지막 열차를 멈춰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왕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열차는 결국 떠나고 말았다.
그 직후 인류의 염원을 담은 미사일이 용을 향해 발사되었다. 몇 초 후 귀가 터질 듯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용이 쓰러진 것이다. 수십 세기의 억압 끝에 인류는 마침내 용의 잔혹한 폭정에서 자유로워졌다.
왕은 군중들에게 연설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오늘 용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늦게 시작했을까요? 5년, 어쩌면 10년 전에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리고는 마지막 열차로 아버지를 보낸 바로 그 청년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였다. "당신의 아버지 일은 정말 미안합니다."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내 아버지는 구해주지 못했지만, 내 목숨과 어머니, 누이를 구해줬습니다.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폐하,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가장 연장자인 신하가 물었다.
왕이 말했다. "우리의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미래가 우리 앞에 열려 있습니다. 미래로 나아가 과거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오늘 밤, 왕국의 모든 종을 자정까지 울려 죽은 조상을 기억하고, 자정 이후에는 해가 뜰 때까지 축하합시다.">
닉 보스트롬은 이 우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이 우화에 나오는 용은 <죽음>일 수도 <노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저는 그들이 왕에게 "용이 나빠요."라고 외친 바로 그 소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용-폭군>이 도처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도전을 포기한 그 많은 것, 우리 사회가 일찌감치 자포자기한 목표들, 대한민국이 구호로는 외치지만 마음으로는 단념해 버린 꿈들.
우리는 나이가 들면 도전, 목표, 꿈 같은 단어를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청춘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통해 도전, 목표, 꿈 같은 단어들을 머리에 일깨워 가슴 두근거리게 해준 태극전사들에게 찬사와 고마움을 보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8.5. 조근호 드림
<조근호변호사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