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2년(선조 5) 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지내는 동안 척신(戚臣)인 그는 구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는데 이 때 김종직(金宗直) 계통의 신진 사류(士類) 출신인 김효원(金孝元)이 김계휘(金繼輝)에 의하여 이조정랑으로 천거되자 김효원이 일찍이 명종 때의 권신이던 윤원형(尹元衡)의 집에서 기숙한 사실을 들어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1574년 김효원은 이조정랑에 발탁되었고 이듬해 의겸의 아우인 충겸(忠謙)이 이조정랑에 추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전랑(銓郞)의 직분이 척신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하여 반대함으로써 두 사람은 대립하기 시작, 의겸을 지지하는 서인(西人)과, 김효원을 지지하는 동인(東人)으로 갈라져 당쟁의 시초가 되었다.
첫댓글 이조전랑직은 물러나면서 후임자를 천거할수 있는 권한이 있어 당쟁에 이용됐어요 서로 자기 당에 유리한 사람들을 천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니까.그래서 이조전랑직을 두고 심의겸과 김효원이 대립하게 된거에요 그러면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죠
우왕 대단해요~
이조전랑의 후임자 천거는 인사담당을 했던 이조판서도 관여하질 못했어요..관직은 낮았지만 노른자 자리였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