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고를 졸업하고 고교랭킹 1위로 연세대에 합류했을때 혹자들은 방성윤을 일컫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경은의 슛에 현주엽의 하드웨어를 가졌다"
"제2의 허재가 등장"
물론 제2의 허재라는 말이야 유망주들이 등장할때마다 구태의연하게 재활용되던 표현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문경은과 현주엽을 섞어놓은듯 하다는 평은 꽤 적절해 보이는 수식어였죠.
거리와 위치를 가리지 않고 과감하게 쏴올리는 3점슛은 분명 당대 최고슛터 문경은을 연상케했고
돌파후 인사이드에서 보여주는 저돌적인 몸싸움은 한국의 바클리라 불리던 현주엽을 닮아 있었습니다.
<연세대 시절의 방성윤>
196cm의 신장에 100kg가 넘는 몸무게.. 기술과 힘을 겸비한 차세대 장신 슛터로서 일찌감치 기대를 모은 그는
이미 대학무대에선 이렇다할 적수가 없었고, 연세대 2학년때부터 국가대표에 선발..
대학 초년생으로서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이충희,김현준,허재,서장훈,문경은등이 밟았던 엘리트 코스를 그대로 답습하며
2002 아시안게임 20여년만의 금메달 쾌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죠. (이것으로 병역혜택도 획득)
<당당하게 전설의 한 축이된 방성윤>
프로행을 앞두고는 드래프트 1순위가 떼논 당상이었는데, 그는 돌연 NBA 도전을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한국농구 그 어떤 수퍼스타도 범접해본적 없는 NBA 진출 선언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배짱이었고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당시 각종 농구 커뮤니티에서는 과연 방성윤의 NBA 진출이 가능하냐의 여부를 두고 팬들간의 갑론을박이
폭풍처럼 몰아치곤 했었는데, 방성윤은 주위의 시선이나 우려에 아랑곧 않고 본인의 소신대로 미국행에 몸을 싣게 됩니다.
그의 첫 행선지는 당시 NBA의 하부리그 격이었던 NBDL의 로어노크대즐.
여기서 방성윤은 평균 두자리수 득점에 3점슛은 1위를 차지하며 미국무대에 연착륙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NBA 까지 오르기에는 부족한것이 사실이었고 결국 고심끝에 국내로 유턴하게 되죠.
<로어노크대즐 시절의 방성윤>
국내유턴 후에는 예정된데로 드래프트 1순위의 영광을 얻으며 부산 KTF에 지명되었지만
KTF가 SK나이츠와 조상현등이 포함된 3:3 빅딜을 단행하며 방성윤의 KBL 커리어는 SK나이츠에서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뛰어났던 재능에 미국농구라는 값진 경험까지 얹었고, 부산아시안게임 우승으로 병역해택까지받은
드래프트 전체 1순위 방성윤의 농구 인생은 이때까지만 해도 탄탄대로행일것 같았죠.
시작은 좋았습니다.
대뷔 첫해인 2005~2006시즌에 평균 17.2득점에 4.2리바운드 1.8어시스트... 야투율 44.3% 3점슛 39.4%...
신인으로서 준수한 기록을 남겼는데 당시에 워낙 아우라를 풍기던 선수였던지라 주변에서 기대했던 것보다는
다소 못미치는 활약이었지만 그럼에도 신인왕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2005~2006 시즌 신인왕을 거뭐진 방성윤>
그리고 2년후인 2007~2008시즌엔 기량이 만개하면서 평균 22.1점에 3점슛 성공률도 40.7%로 처음으로 40%이상을 찍으며
문경은과 조성원 이후 오랜만에 국내선수 득점왕과 3점슛왕을 동시에 거뭐진 국내선수로 등극합니다.
커리어 내내 '난사쟁이'다 '방난사'다 하며 비아냥도 많이 들었지만 방성윤이 갈수록 성숙한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요. 문태영같은 혼혈선수를 제외하고 순수 국내선수로서 시즌 평득 20점 이상을 돌파한것은
방성윤을 마지막으로 이후 10년째 맥이 끊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부상의 악령'이란 뿌리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대뷔 첫시즌에 다리부상으로 도중에 시즌아웃되며 54경기중 34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신인왕은 획득)
그 다음시즌에도 부상으로 36경기 출장에 그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즌스탯으론 커리어하이를 쌓았던 2007~2008시즌조차 무릅인대파열로 21경기나 결장해야 했지요.
게다가 그 다음시즌에도 또다시 부상으로 31경기에 결장하며 이미 방성윤은 농구팬들로부터
매시즌 어김없이 부상을 당하는 역대 최악의 유리몸 선수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었습니다.
<부상.. 부상.. 부상....!!>
점입가경으로 2010-2011시즌에는 겨우 5경기 출장에만 그치면서 그의 농구인생은 돌이킬수없는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었고
끊임없는 큰 부상과 재활반복의 굴레속에 정신적 피폐를 이길 수 없었던 방성윤은 마침내 농구에 대한 열정마저 사라졌는지
2010~2011시즌을 끝으로 30세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전격 은퇴라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 시즌별 방성윤의 출전경기수&결장경기수 ◀
- 05~06: 34경기출전 / 20경기결장
- 06~07: 36경기출전 / 18경기결장
- 07~08: 33경기출전 / 21경기결장
- 08~09: 23경기출전 / 31경기결장
- 09~10: 34경기출전 / 20경기결장
- 10~11: 5경기출전 / 49경기결장 (시즌후 은퇴)
방성윤이 소화한 6시즌의 총 경기수는 324경기이고 그 중 방성윤이 출전한 경기수는 165경기이니
경기출장률이 50.9%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가용경기중 거의 절반을 결장했다는 것이죠.
더욱이 KBL 역대 선수중 200경기 이상을 출전한 선수의 수만도 무려 70여명이 넘어가는 수준임을 생각할때
방성윤의 커리어통산 165경기 출전횟수가 얼마나 적은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너무도 잦은 부상 이탈은 그 자신에게도 고통이었지만 팀에게도 민폐였습니다.
SK나이츠는 팀내 에이스 없이 너무 많은 경기들을 치뤄야 했고 이는 빈번한 6강탈락의 암흑기로 이어졌죠.
이때문에 방성윤은 첫 FA가 되어서도 팀으로부터 제대로된 대우조차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방성윤에게 프로생활은 이래저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정이었던지라 그의 조기 은퇴 결정은
어찌보면 상당부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었지요.
미래의 수퍼스타로 각광받으며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차세대 기대주라 평가받던 그의 선수인생은
참으로 쓸쓸한 결말을 야기한채 그렇게 점점 농구팬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
그러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신문지상에 등장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좋은 소식은 아니었습니다.
사업관계차 알고 지내던 지인을 골프채와 하키채 등으로 상습 감금 폭행했다는 협의에 의한 기소사건이었죠.
더욱이 조사과정에서 모 지인의 돈까지 가로챈 혐의가 추가되었고, 1심에서 실형까지 선고받자
방성윤을 향한 여론의 비난은 빗발쳤으며 한때 방성윤에대한 좋은 추억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의 팬들조차
그에게 싸늘하게 등을 돌렸습니다.
과거 한국농구의 스타플레이어이자 희망이었던 선수가 한순간에 파렴치한 폭력배이자 범죄자로 몰락하는 순간이었죠.
<폭행 스캔들에 휘말린 방성윤>
이후 거듭된 2심과 3심 재판을 통해 기존의 실형이 축소되거나 일부 혐의가 무죄로 판결되면서
어느정도 명예회복을 해가는 양상입니다만 그에게 지워진 범죄자라는 굴레가 완전히 싯겨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듯 보입니다.
물론 방성윤이 정말로 결백한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재판의 결과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그에게 끊임없는 부상의 악몽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너무도 이른 시기에 은퇴를 하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그래서 사회의 물에 휩쓸리지 않았더라면... 오래토록 농구계에서 성실한 농구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더라면...
어쩌면 방성윤이 범죄자의 낙인까지 찍히게되는 이러한 일은 일이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얼마전 방성윤이 팬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또한 늦게나마 농구계에 다시 복귀하고 싶다는 희망어린 발언도 했더군요.
최근에는 동호회 농구에도 적극적으로 모습을 들어내고 있는듯 합니다.
<동호회 농구선수로 뛰고있는 방성윤>
거듭되는 불운속에 농구계를 떠나야했고 이후 부적절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지만 우여곡절끝에
다시 농구를 꿈꾸는 방성윤을 보니 마치 만화 슬램덩크의 정대만이란 캐릭터가 떠오르네요.
이제 몸도 망가지고 나이도 많은 그를 선수로 원할 프로구단은 아마 없을겁니다. 현실적으로 복귀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한명의 인간으로서 인생의 2막을 멋지게 열어젖힐 기회는 충분히 있을 것이라 봅니다.
아직 너무도 젊으니까요.
혹시라도 죄가 있다면 죄값 잘 치루고,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면 기꺼이 용서를 빌고,
앞으로는 어둠없는 밝고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한때 그의 열렬한 한 팬으로서 기원하고 응원해 봅니다.
첫댓글 개개인마다 생각은 다르지만 전 이미 응원도 보내주고 싶진 않네요. 적당히(?) 잘못을 했어야 말이죠.
법원에서는 상당부분의 혐의에 대해 이미 무죄를 선고했고, 피해자도 계속 발언을 번복하고 있는 상황이라 방성윤을 무조껀적으로 몰아세워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물론 본문에서도 밝혔듯 법원이 증거충분여부에 입각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해서 방성윤이 정말로 무죄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겠지요. 다만 그에대한 비난들이 '팩트'에 기반하기 보다는 너무 '썰'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았던 점들은 아쉽습니다.
@에고이스트 글쓴 분 말씀처럼 혐의가 해소된건 있죠. 나쁜 일에 연루되어 커리어가 마감 된 게 재능이 참 아까운 선수입니다.
잘 컸다면 정말 크블의 멜로 느낌나게 되었을텐데요..물론 덴버시절의 멜로입니다ㅎㅎ
@그랑부르 그러고보니 멜로삘이 좀 나네요~
전성기때 방성윤을 싫어하는 농구팬이 있을까요? 현주엽의 체격에 허재같은 승부사기질... 다른걸 떠나서 폭력이 함유된 점이 젤 싫습니다
그렇습니다. 복귀도 어려울 겁니다.
미국에서 뛸때 사진에서 방성윤 옆자리에 2000년대 중후반 레이커스에서 뛰던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처럼 보이네요^^
라대만 그립네요 ㅋㅋㅋ
저 아시안게임 멤버 사진속의
김진 감독 말고
코치 이름 아는 분 계신가요...?
95년에
연대 코치였던거 같은데
김진 감독님 고교 후배 박건연 코치님 입니다
방성윤 당시 댓글 중 기억나는게
'대학생 맞는지 헷갈릴정도로 잘하네요'
신입 드랩 할때 저 갔었는데 세월이..
깡과 열정이 멋있었음
하 무죄추정의 원칙,거기에 실제로 무죄를 선고받았고.. 근데또 팟캐스트에서 피해자라는분 이야기들어보면 도저히 용납이 안되구요 너무 어렵습니다 ㅜ
인터뷰에서 농구부 폭력을 옹호하는 발언을 당당히 했던 쓰레기...
범죄자
요즘 뛰었으면 클레이 성윤이라고 불렸을거고 국제대회에서 삼점 폭발 시키면 탐슨사진 올려놓고 "내가 미국의 방성윤이다"이런 게시물도 심심찮게 봤을것같네요
솔직히..
전성기 문경은의 슛과 비교 안됨(문경은 승)
허재의 테크닉과 당연히 비교 안됨(허재 승)
서전트로 덩크 꽂던 현주엽의 운동 능력과 비교 안됨, 버티는 힘은 조금 근접(그래도 현주엽 승)
너무 과대평가되었고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스스로 무너진 케이스죠..
좋은 마인드로 재능을 잘살렸다면 기억될만한 스타 선수가 됐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제가 한때 방성윤 팬이긴 했지만 그부분은 동감합니다.
방성윤이 등장한 시절은 인터넷 농구 커뮤니티들이 활발하던 때라 신화가 자주 만들어지던 시절이기도 했고 간판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NBA에도 도전했던 사나이]라는 간판은
엄청난 아우라를 뿜어내는 것이었기에 실제 실력보다 다소 과대평가된 선수였죠.
그래도 어쨌든 KBL 기준에서는 정상급 잠재력을 갖춘 선수인건 분명했는데 여러모로 아쉬워지고 말았네요.
현실적으로 30대 중후반인데다가 7년이라는 공백기간을 가진 선수를 영입할 구단은 아무데도 없겠죠. 있다면 그 구단이 정신나간거고요.
무작정 농구 코트 위에 다시 서고 싶다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지도자 연수를 받아서 지도자로 데뷔하던지, 아니면 3x3에 도전하는게 나을거라 생각합니다.
요새 근황도 휘문고에서 슈팅 가르치고 있다던데요.
연대방성윤 고대 정상헌 두01학번 쌍벽들이 멘탈문제로 재능을 날렸네요
그에게 김효범 같은 운동능력이 있었다면 느바에 갈 수 있었을지도
어쨌든 이런 한국에서 나오기 힘든 유형의 선수가 좀 더나왔으면..
KTF가 1순위로 지명했는데 왜 방성윤이 입단을 거부한건가요? 결국 KTF-SK간 트레이드로 KBL 선수 생활의 길이 열리기는 했지만... 방성윤과 KTF 구단 간에 마음 상할 일이 있었나요? 아무 문제 없는데 단지 전력이 약한팀에서 뛰기 싫어서 입단 거부한거면 이것 역시 욕먹을 일이네요
드랩 지명되고 연봉협상을 할때 방성윤은 에이전트를 통한 대리 협상을 하려했고 ktf는 직접 협상을 통한 계약을 원해 이견이 있었죠. 또 에이전트 측은 ktf구단이 방성윤의 해외도전을 막는다고 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또 ytn 뉴스로는 방성윤이 70억을 요구했다는 기사도 나오는등... 우여곡절 끝에 ktf와 계약하긴 했지만 이때부터 마음 상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sk나이츠가 임의탈퇴신분을 풀어줘야 복귀할 수 있는 걸로 아는데 흠.. 한때 방성윤빠긴 했으나 냉정하게 딴거 다 떠나서 지금 프로에서 뛸 폼이 안될거라고 봅니다.
10살때부터 꾸준히 농구를 하고,
농구경기를 봐왔습니다만....(약30년)
방선수의 슛셀렉션은 소위말하는 스타플레이어중에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재? 제2의허재? 승부욕?
저는 단하나도 동의를 못하겠네요..
특히 승부욕..
못하는 수비로 공뺏으려고 덤벼대다가 쓸데없는 파울을 하고, 팀원이 같이 뛰는 속공에서 3점을 던져버리는 행동은 승부욕이라고 할 수 없죠.
저는 방성윤의 실력에 "갑론을박"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게 정말 신기합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겠지만, 2002년도에 야오밍 앞에서 당당하게 골밑으로 올라가다 떡블락을 연속으로 당해도 결국은 한 개를 꽂아넣던 그 깡다구가 아직도 기억나네요. 그리고 중요한 승부처에서의 3점....이 선수의 배짱 하나만큼은 정말 기억납니다. 좋은 선수가 될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 운명이란 게 쉽게 풀리지 않는 건가봐요....
미국에서 조금 더 버텨봤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