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타임(About Time) - 하나님의 시간 (2) -
늘푸른언덕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이 말씀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선언하신 것인 동시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우주와 세계와 온 인류의 주인이심을 단언하신 절대적 선언입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요 원인이며 시작일 뿐만 아니라 그 지으신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선포하시며 더 나아가서 이 역사와 우주 만물의 운명을 주관하고 계심을 천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라이프성경사전 참조
성서에 따르면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여섯 날 동안을 일하시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에는 복 주시고 안식하셨습니다.
여섯 날 동안의 천지창조의 과정을 보면 첫째 날에 빛과 어둠을 지으시고 둘째 날엔 궁창(하늘)을, 셋째 날에 바다와 땅과 식물을,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그리고 다섯째 날에는 공중을 나는 새와 바다의 물고기를 지으신 후 여섯째 날에 마지막으로 짐승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이처럼 천지를 창조하시는 과정에서 대별되는 시간 개념으로 첫째 날, 둘째 날과 같은 ‘날’의 개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때 표현되는 ‘날’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24시간의 일반적인 하루라는 개념과는 다르게 구별되는 시간 개념으로 해석됩니다.
이 시간은 온전한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인간이 가진 생각의 한계로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가령 창조의 둘째 날, 말씀으로 궁창을 지으실 때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그 결과만을 볼 뿐이지만 지극히 창대하고 심오한 신비의 대상인 궁창을 만드시는 것은 어마어마한 작업으로서 시간의 개념으로 환산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며 그 놀라운 신비 앞에 지극히 낮아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시간은 실로 광대하며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의 개념입니다.
이러한 신비로운 하나님의 시간을 비유하여 만든 유머 하나가 생각납니다.
<하나님의 시간>
계속해서 사업에 실패한 어느 사업가가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 무엇이냐? 말해 보거라.”
“인간 세상의 1억 년은 하나님께 얼마나 되는 시간인지요?”
“그야, 1초밖에 안되지.”
“그럼 인간의 1억 원은 하나님께 얼마나 되는 금액인지요?”
“그야, 1원밖에 안되지”
“그럼 저에게 1원만 주십시오. 하나님!”
“알았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니까 주도록 하지.”
“하나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언제 주실 건가요?”
“1초만 기다려라!”
유머글 - 하나님의 시간
일견 웃고 넘길 유머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 짧은 이야기 속에 담긴 놀랍고 신비한 하나님의 시간을 묵상하게 됩니다.
흔히 우리가 시간을 이야기할 때 다음과 같은 두 종류의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크로노스의 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시간을 이야기할 때 표현되는 ‘크로노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간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을 말하기도 하며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수동적’이고 객관적인 시간을 뜻합니다.
반면 ‘카이로스’란 그리스 로마 신화의 또 다른 시간을 관장하는 신으로 각 개인에게 다른 의미를 지닌 ‘주관적인 시간’을 말하며 특별한 시간 즉, 기회를 관장하는 신입니다.
우리 삶의 속성을 시간의 개념으로 생각해 보면 위에서 언급한 두 종류의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크로노스적인 삶에 갇혀 살아갑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의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대개의 경우 그 시간을 계획 없이 보내거나 그 가운데 소중한 시간들을 놓쳐 버리기 십상입니다. 흔히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놓쳐버린 시간은 내일 다시 올 것이기에 내일로 미루기도 합니다.
반면 카이로스적인 시간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위 성공적인 사람들의 부류에 속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라는 시간을 남다르게 포착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카이로스의 시간’에 대하여 좀 더 알아봅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기회의 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회의 신으로 불리는 ‘카이로스’의 풍모의 특징으로 두발(頭髮)을 들 수 있습니다. 후대에서 그의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할 때 흔히 앞머리는 길지만 후두부가 벗겨진 미소년으로 나타내고 있어 ‘기회의 신은 앞머리밖에 없다. 즉, 좋은 기회는 빨리 포착하지 않으면 나중에 파악할 수 없고 나중에 잡으려고 해도 머리가 없어 잡을 수가 없어 놓치게 된다.’라고 합니다.
위키백과 참조
살아가면서 흔하지 않게 찾아오는 기회라는 것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예화입니다.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이야기할 때 표현되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이며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든, 혹은 그렇지 않든 우리 모두에게는 살아가는 동안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다시 정리하자면 하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이라는 크로노스의 시간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 공평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서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이러한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성장과 발전의 기회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찾아내고 잡아가는 과정의 연속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을 영화 가운데 의미 있게 삽입한 명대사 하나가 문득 생각납니다. 그것은 제가 감명 깊게 본 영화 중의 하나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극 중에서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선포하듯이 외치는 대사입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중에서 '스칼렛 오하라'
사실 이 대사는 사랑하는 연인 렛트를 떠나보낸 ‘스칼렛’이 그를 찾을 궁리를 하면서 머리가 복잡하니까 내일 생각하자며 내뱉은 말입니다만 1부의 엔딩 부분에서 던져지는 대사라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그 장면은 너무나 인상적이라 아직까지 오래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이 대사를 오늘의 이야기 속으로 가져오면 이렇게 해석됩니다.
비록 오늘의 시간은 지나갔지만 내일은 오늘과는 다른 시간이 될 것이며 새로운 삶의 기회의 시간으로 만들 것이라는 주인공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도 이렇게 새로운 생각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 시간은 곧 새로운 변화와 더 큰 성장의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카이로스의 시간이 바로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이 카이로스의 시간은 믿는 이들에게 일상의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과의 깊은 소통의 시간인 기도와 말씀을 통한 묵상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선택의 결단을 도와주시며 또한 확신을 통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로 나아갈 때 감사와 영광의 시간이 주어지게 됩니다.
때로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주어지는 침묵의 시간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의 시간은 반응이 없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은 은밀하게 하나님께서 일하는 시간임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의 확신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장 34절
첫댓글 지난 주에 이어 우리의 삶에 주어진 시간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시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우리의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기회의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늘푸른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