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본문: 고린도전서 10장 14-22절
설교자: 조정의
지금까지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답변했다(고전 8:1). 이에 관한 분명한 지식은 1)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만 유일하신 신이시다’(8:4), 2) ‘음식은 하나님 앞에 우리를 내세우지 못한다’(8:8)였다. 이 지식을 앞세운다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유롭게 우상의 제물을 먹을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지식으로 교만해지지 말고 덕을 세우는 사랑을 실천하라고 권면했다. 첫째, (연약한) 성도를 사랑하기 위하여, 둘째, 하나님만 사랑하기 위하여 우상의 제물을 멀리하라고 명령했다.
형제자매가 실족한다면 영원히 제물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울은(8:13), 여러 면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하여 자기 권리를 쓰지 않고 절제한 본보기가 됐다(9장). 반면 광야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권리와 자유를 마음껏 행사하면서도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 안에 있다고 과신한 자의 비참한 결말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됐다(10:1-13). 그렇다. 결국 이것은 사랑 문제다.
참사랑은 본질상 이타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익을 자기 이익보다 더 추구한다. 참사랑은 본질상 희생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한다. 참사랑은 배타적이다. 여러 대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다고 하셨고(눅 16:13), 가족보다, 자기 목숨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다(눅 14:26). 그러나 광야 이스라엘과 고린도 교회 일부 성도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앞세웠다. 자기를 끔찍이 사랑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그들에게 이렇게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14절). 바꿔 말하면 하나님만을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이다. 그 사랑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우상(자신)을 계속해서 쳐서 복종시키라는 말이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사랑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무엇을 절제하고 버리고 피해야 할지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을 깨우쳐주시기를 구한다. 그래서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께 합당한 제자 즉 그분을 그 무엇/누구보다 사랑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과 견고한 사랑의 관계 속에 함께 지어져 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1. 명령: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14절)
먼저 바울은 성도들을 가리켜 “내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른다(14절). 바울은 정말 그들을 사랑했다. 복음으로 그들을 낳고 기른 아버지같이 그들을 아끼고 돌봤다(고전 4:15).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자기 권리를 과감히 버렸다(영원히). 지금 이 권면을 하는 것도 그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혹은 단순히 화가 나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하는 말이다. 바울은 그들을 향한 순수하고 풍성한 사랑을 가득 담아 이렇게 권면했다: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14절). 우상 숭배는 눈에 보이는 신상을 만들어놓고 하나님 대신 섬기는 노골적인 배교행위를 가리키지만, 단지 그것만을 피하라고 말한 게 아니다. 우상 숭배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하나님보다 더 간절히 사모하고, 바라고, 원하는 무언가/누군가를 마음에 품는 것이다(탐심 = 우상숭배, 골 3:5).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 관계를 전제할 때, 우상 숭배는 간음과 같다. 사랑의 관계를 배신하는 행위다. 남편과 아내가 맺은 사랑의 언약 관계에서 육체적인 간음만 문제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 다른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마음으로 이미 간음한 거다(마 5:28).
만일 결혼한 남자의 마음속에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이 계속해서 떠오른다면, 머무른다면(음욕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으로 시작된 감정) 그때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제로 간음 행위까지 가지 않도록 노력하되, 계속해서 그 여성을 떠올리고 상상하고 간절히 바라는 걸 마음으로 즐겨도 되는가? 절대 안 된다.
성경은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라고 명령한다(딤전 5:2). 그러니까 친여동생을 대하듯 완벽하게 깨끗한 마음이 되도록 계속해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는 명령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피하라는 명령 앞에 전치사 아포(“~로 부터”)가 붙는다. 그것으로부터 “냅다 달아나라”는 의미다. 눈앞에 사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라. 그 즉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냅다 달아나는 것이다. 얼마나 가까이 와도 괜찮은지 시험하다간 죽는다.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목숨 걸고 내달려야 한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나 라이벌이 될 만한 무언가/누군가 나타났다면, 즉시 달아나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백성들을 정복하면서 남녀노소를 모두 진멸하고, 살아남은 이들과는 통혼하지 말고, 그들의 음식, 의복을 따르지 말 것을 명받았다. 왜 그런가?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멀어지게 만들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최대한 제거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에겐 세 가지 절제할 것을 요구하셨는데, 병마, 아내, 은금이었다(신 17:15-20). 모든 왕들이 최대한 얻기 원하는 것들이지만, 하나님은 이것들이 왕과 그의 백성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금하셨다.
참사랑은 배타적이다. 둘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마 6:24). 진실로 한 대상을 사랑하면 나머지는 그 사랑을 위하여 미워하는(덜 사랑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 맞다. 우상의 제물 문제도 마찬가지다.
2. 이유: 겸하여 사랑하지 못하리라(15-22절)
바울은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실례를 통하여 우상의 제물이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지 설명했다: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15절). 그들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자랑하는 자들이었는데(고전 1:25), 바울은 16-21절의 설명을 들으면 그들 스스로 바울의 말이 옳다고 판단할 정도의 지혜는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한 번 각자가 진지하게 따져보고 생각해 보라고 권면한 것이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16절). 성도들은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함께 모여 떡을 떼고 잔을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예배를 드렸다. 그것은 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일이면서, 그분이 이루신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게 된 축복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경배하는 일이었다. 단지 떡과 잔이라는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한 몸으로서 그분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것이다.
한 떡에 참여하는 것은 또한 그것을 먹는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와 한 몸을 이룬 것뿐만 아니라 그분 안에서 서로 연합된 한 몸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시켰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17절). 그러니까 함께 한 떡을 먹는 자리에서 성도들은 ‘이렇게 우리는 주 안에서 한 몸입니다’라고 함께 선포한 것이다. 이것은 신약 성도가 드린 예배만의 특징이 아니다. 구약 성도도 마찬가지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18절). 민족적 이스라엘 즉 유대인들은 성전에 제물을 바치고 그 일부를 제사장, 제사자, 그 가족이 함께 먹었다(때로는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함께). 하나님은 제물을 통하여 제사자들의 죄를 간과하고 계속해서 언약의 축복에 참여하는 백성이 되게 하셨다. 제물을 먹는 모든 자들이 그 은혜를 함께 누리는 자로서 한 몸처럼 연합했다. 또한 제단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누렸다.
그러면 이방인이 제사하는 신전에 가서 우상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은 왜 문제가 되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먹는 것과 왜 충돌하는가? 바울은 먼저 우상과 음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19절). 앞서 바울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8:4). 음식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하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8:8). 그러나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분명 그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다. 귀신이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은 아니니(20절). 결국 귀신에게 하는 제사는 또 다른 연합을 가져온다.
실제로 이방인이 귀신 즉 타락한 천사를 알고 숭배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마귀와 그 졸개들은 우상을 이용하여 항상 사람들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숭배하도록 미혹한다(롬 1:23). 그러므로 앞선 사례에 따르면 이방인의 신전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은 결국 귀신과 교제(코이노니아, “참여”)하고 귀신에게 제사하는 무리와 한 몸으로 연합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금했다: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20절).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과 그 백성의 배타적인 사랑의 관계가 강조된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21절). 핵심 단어는 “겸하여”이다.
당신은 우상 숭배자로서 귀신에게 제사하고 귀신과 그 숭배자들과 연합할 수 있다. 아니면 당신은 하나님의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연합할 수 있다. 둘 중 하나만 가능하다. 겸하는 건 안 된다. 우상 숭배자들은 하나님도 그들이 섬기는 “알지 못하는 신”에 포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행 17:23). 하지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는(요 17:3),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예배해야 한다. 다른 무언가/누군가를 겸하여 사랑할 수 없다. 아무리 우상이 허상이고 우상의 음식이 단지 음식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 자리가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자리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연합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더욱이 귀신의 식탁에서 귀신의 잔을 나누는 또 다른 사귐과 교제를 요구하는 자리라면, 그곳으로부터 냅다 달아나는 게 하나님만 사랑하고 우상을 피하는 길이다.
왜 우리는 이처럼 배타적으로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하고 사랑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기 위하여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제거하고 멀리하고 피하고, 그것이 내 몸이라면 계속해서 절제하고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가?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새번역)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22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갈라진 마음, 두 마음이 아니라 전심을 원하신다(약 1:8).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다른 대상을 마음에 품거나 겸하여 사랑하는 것을 결코 두고 보지 않으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4).
주님보다 강한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도 그렇다. 만일 우리가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거역하고 우상 숭배를 즐긴다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처벌하실 것이다: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 위에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을 부으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지워버리시되 여호와께서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구별하시고 이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언약의 저주대로 그에게 화를 더하시리라”(신 29:20-21).
3. 적용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배신하면(우상 숭배) 강력한 처벌이 있을 것이다’라는 경고는 무시무시하지만 경이롭거나 감격스럽게 들리지 않는다(‘바람피우면 진짜 죽는다’). 하지만 애초에 어떻게 우리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 되었는지(창세 전에), 어떻게 우리가 그분의 원수에서 자녀로 받아들여지게 됐는지, 이를 위하여 주께서 얼마나 큰 희생으로 자기 유익을 버리고 나의 유익을 구하셨는지, 얼마나 일방적인 사랑으로, 두 마음이 아닌 전심으로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는지, 그 무엇, 누구도 그 사랑을 끊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손으로 그 사랑을 지키시는지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분만 사랑하라는 요청이 더욱 달콤하게 들린다(요일 3:1, ‘나는 너만을 사랑하겠다. 너도 그러겠느냐’).
모세는 하나님만 사랑하는 자에게 복이, 우상 숭배하는 자에게 저주가 임할 것을 실컷 이야기한 후에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이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주님의 구원 그 넘치는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분의 사랑은 어떤 위협도 막아내고, 어떤 원수도 이겨낸다. 우리는 다만 주님만 사랑하면 된다. 모든 우상에게서 달아나 주님 품으로 항상 달려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