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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기적의 주역은 박정희이다. 그의 산업화 전략은 당시 엄청난 반대를 뚫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여 성공한 금자탑이다. 박정희의 리더십은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맞다. 영원한 정답이다. 흔히 우리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다’라고말한다. 아니면 반대로 ‘그때는 틀려도 지금은 맞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박정희의 부국 전략은 그때도, 지금도 맞다. 이것이 박정희의 리더십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프로젝트에서 이 땅의 산업화는 싹이 튼다. 이후 원자력발전소와 각 지역마다 들어선 산업공단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밑거름이 된다. 월남 파병과 서독 등 인력 진출로 번 달러는 성장의 젖줄이 된다. 특히 전국의 민둥산을 정글지대로 만든 산림녹화와 새마을운동은 선진화의 상징이다.
한강의 기적엔 우리가 거의 잊어먹은 기막힌 사실도 있다. 바로 ‘8·3 사채 동결 조치’이다. 정부는 1972년 8월 3일을 기준으로 전국의 모든 사채를 동결했다. 개인이 기업에 빌려준 돈은 전액 신고하도록 했다. 신고하지 않으면 갚지 않아도 됐다. 실제로 당시 은행들은 기업에 빌려줄 돈이 없었다. 집집마다 곗돈을 쌓아두고 이 돈을 기반으로 사채시장은 커졌고 기업에 돈을 댔다.
그래서 기업은 매일 아침 사채시장 전주들을 찾았고 고리채를 빌려다 썼다. 삼성, 현대 등 국내 대기업들은 사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경제성장엔 돈이 절대 필요하다. 돈 없으면 공장 건설은 물론 생산 자체가 돌아가지 않는다. 해서 정부는 기업이 쓰는 사채를 동결하는 정책 결단을 내렸다. 이때부터 기업은 만성적인 자금난에서 해방되고, 사채시장은 점차 힘을 잃었다.
이런 특단의 조치가 시행될 때마다 야당과 일부 좌파 언론 및 지식인 등은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대기업엔 매판자본이라는 딱지까지 붙였다. 당시 야당을 이끌던 김영삼, 김대중은 박정희의 부국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했다. 이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상화하면서 박정희 정책은 죄다 틀렸다는 선전 선동을 일삼았다. 이들의 반대 주장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린다.’
박정희의 정책 중 가족계획이 도마에 올랐다. 최근 출생률 급감에 비상이 걸리자 그 단초를 1970년대 가족계획으로 꼽았다. 당시 산아제한은 지금 잣대로 재면 틀렸다는 지적이다. 인구도 성장의 주요 대목이라 그렇다. 그러나 가족계획은 당시 세계적인 운동의 하나였고, 1980년부터 이 정책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 연장선에서 의대 파동을 살펴본다. ‘지금은 맞지만 훗날 틀린다’와 ‘지금은 틀리지만 훗날 맞다’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그러나 지금도 맞고 훗날까지도 맞아야 그게 정답의 리더십이다.
박정희는 오직 조국과 민족의 앞날만을 내다보았다. 진정성을 갖고 반대와 비난의 여론에 끈질긴 설득을 펴거나,
때론 한발 물러서면서 밀고 나갔다. 해서 박정희는 어떤 문제이든 정답을 스스로 찾아갔다.
그 리더십이 더욱 그립다.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맞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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