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려한 휴일이나 택시 드라이브를 보면 잘 묘사가 되었다
저의 후배한명은 충북증평 출신인데 공수부대 병장때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자기들이 광주에 투입 되는
시간에는 이른바 시민군들이 무장을 했다고는 했어도 극렬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광주 금남로를 수월 하게 진입하
여 도청을 장악하고 휴식도 취하고 있었고 하루가 지나서 갑자기 완전 무장을한 민간이 (시민군)이 도청을 완전 포
위를 하였답니다 이런 상황은 뉴스에도 나와서 잘 알것 입니다
포위 당한 집압군은 당장 보급품이 떨어지고 시간이 며칠간 지속이 되니까
날씨는 덥고 먹은건 없어서 배가 몹시 고팟는데 어두운 밤이면 비닐봉지에 김밥을 싸서 도청 울타리 안으로 막 던져
주는데 주둔한 공수부대가 부족 하지만 나누어 먹고 견딜 수가 있었답니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속이 되니까 김밥을
더 많이 던져주고 혹은 용기를 내라는 편지 까지 써서 보내주는 광주시민 아주머니들 첨에는 군인 경찰 공무원 부인
들이 주측으로 아들 같은 공수부대가 굶고 있으니까 김밥을 싸서 던져 주던 것이 소문이 나서 광주의 일반 시민들도
동참을 해서 허기를 면할수 있었고 그렇게 속절없는 시간이 길어 지던중 공수부대 사령부의 지상 명령이 떨어지더
랍니다
각 팀장의 인솔로 소개하여 광주시 외곽 부대와 합류 하라는 명령 이였다고 합니다
공수부대 팀이라고 해봐야 대위 1명 상사와 중사 서너명 병사 두명 합 7 ~ 8명이 한 팀인데 심야시간을 통하여 주둔
한 공수부대는 일제히 산개 하기 시작을 했는데 후배가 소속된 팀 8명은 밤에 길도 잘 모르는 광주 도심을 빠져 나가
는 찰나에 갑자기 총소리 나더니 팀원 중사 한사람이 총에 맞아서 쓰러지니까 시민군은 4층 옥상 에서 머리만 쏙 내
밀고 수십명의 시민군이 공수부대 팀에게 사격을 하여서 발생한 사고 었지만 고도의 훈련되 공수부대 하사관 들은
순식간에 반사 적으로 옥상을 향해 드르륵 긁어 버리니까 수명이 비명을 지른후 조용 하더랍니다
후배는 너무 급해서 은폐를 한곳이 지하 다방이였고 나머지 모두 산개를 한 상황에서
팀장님이 분대 전투 대형을 가추고 부상자를 업고 건물에 붙어서 그 위치를 벗어 났고 당했다는 내용을 무전으로 보
고하고 난후 헬기 두대가 날아와서 시내를 시위를 하기 시작 하고 소움이 강하니까 더이상 대응을 못해서 외곽으로
후퇴를 할수가 있었고 다른팀도 더러는 희생자를 내게한 그날밤 이야기 라고 하더라구요 ~전투의 유형별로 모두가 상
황을 다르겠지만 전남도청 공수부대 장악팀은 분명 많은 희생자를 냈다고 합니다.
이때 광주 시내에서 진압군은 완전 철수를 한후에 광범위하게 무장한 민간인 들이 타지역 으로 못가게 포위를 해서
일주일간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른바 시민군은 광주 교도소를 습격 했다는 뉴스를 들었답니다 그후 방송국이나 삐라
등을 통하여 시민군은 투항을 하면 어떤 첵임도 묻지 않고 그날 바로 가족들에게 보내 주겠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 요
령을 방송이나 삐라를 통하여 여러차례 고지를 하여서 일부 시민군은 총을 버리고 몰래 몰래 숨어서 투항을 하기 시
작을 했고 가족들을 통하여 투항 권유도 먹혀 들어서 많은 분들이 투항을 하고 남은 무장 시민군과 긴세월 대치할 수
는 없는 노릇 이라 집압군이 집압을 시작하자 불과 몇시간 만에 집압이 된 것 이라는 이야기를 그후배는 약 세시간에
걸쳐서 이야기를 했던 것을 들었습니다
그 후배도 제대후에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잘 이기고 사회의 구성원 으로 잘 살아갑니다
저는 그 후배의 말을 전부다 믿습니다 그후배의 증언이 진실 이라고 생각 합니다
첫댓글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하여 중무장 하고
아시아 자동차에 습격하여 장비를 탈 취 하여 무장까지 해서 시내로 진압하였다면
그것은 민주화 운동이 아닙니다
진실을 밝히는 자료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와야 하겠습니다~
경상도 공수 부대가 전라도 시위대를 때려서 죽인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심리전을 펼치는 바람에 경상도 공수 부대원 몇명 안되었는데 모두 빼고 호남 지역과
충청 지역 공수 부대원으로 채웠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