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詩의 溫度」] ㉒ 정부正夫를 그리워하며
오랜 친구 벼 베어 갈 때
유독 국화 향내 풍겼는데
집 옮기니 누가 나를 찾으랴
시 읊으면 항상 그대 생각나네
요즘에 병이나 없는지
한양에 언제나 들어오는가
지금 『논어』 독서하는데
어떻게 의문의 뜻 들을까
故人割稻去(고인할도거)
時菊獨揚芬(시국독양분)
移宅誰尋我(이댁수심아)
哦詩每憶君(아시매억군)
伊來無病未(이래무병미)
何日入京云(하일입경운)
論語今將讀(논어금장독)
若爲疑義聞(야위의의문)
―『영처시고 2(영嬰處詩稿 二)』 이덕무(李德懋, 1741-1793)
*正夫(정부) : 유담후(柳譚厚, 1623-1686)의 호. 조선후기 부수찬, 울산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높은 학문·치적에 육예[六藝: 선비가 배워야 할 여섯가지 일로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가 뛰어나고, 성품과 행동이 청백하였다. 저서로는 『성능유의(成能遺義)』가 있다.
✺밤에 조촌(潮村) 지숙(智叔)의 집에 가서
심계(心溪)와 초정(楚亭)과 같이 짓다
저녁녘 개울 십 리 밖에 울리고
맑은 소리 한결같이 시원하네
단풍 숲속 서옥(書屋) 찾아
흰 연기 헤치며 징검다리 건너네
반가운 손님 달과 함께 찾아오니
어진 아우 서리 쓸고 맞이하네
밤 새워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니
등불 꽃 지워도 다시 곱게 피네
夕溪鳴十里(석계명십리)
淸聽一冷然(청청일냉연)
書屋尋紅樹(서옥심홍수)
漁梁涉白煙(어량섭백연)
佳賓携月到(가보휴월도)
賢弟掃霜延(현제소상연)
不寐團欒話(불매단란화)
燈花剔更姸(등화척경연)
―『아정유고 3(雅亭遺稿 三)』 이덕무(李德懋, 1741-1793)
*智叔(지숙) : 남지(南智, 미상-1453)의 호. 조선전기 호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心溪(심계) : 李光錫(이광석)의 호, 자는 汝範(여범).
*楚亭(초정) : 朴齊家(박제가)의 호.
『시경(詩經)』에는 이런 시가 있다. “사랑한다면 멀리 있어도 멀다 하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데 어느 날인들 잊겠는가!” 사랑은 연인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부모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자식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친구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다.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들 이렇지 않겠는가.
「詩의 溫度」/ 저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 편역 <한정주>역, 출판사: 다산초당, 출간일: 2020.02.17.
✵이덕무(李德懋, 1741~1793) : 규장각(奎章閣)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서적을 정리·교감했고, 고증학(考證學)을 바탕으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관(懋官), 호는 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형암(炯庵)·영처(嬰處)·동방일사(東方一士).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성호(聖浩)이다.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어려서 병약하고 집안이 가난하여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총명하여 가학(家學)으로 문리(文理)를 터득했다. 약관의 나이에 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와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라는 시집을 내어 문명을 중국에까지 떨쳤다. 이후 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홍대용(洪大容)·서이수(徐理修) 등 북학파 실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고염무(顧炎武)·주이존(朱彛尊)·서건학(徐乾學) 등 중국 고증학파의 학문에 심취하여, 당대의 고증학자였던 이만운(李萬運)에게 지도를 받았다.
1778년(정조 2)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 심염조(沈念祖)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淸)의 연경(燕京)에 갔다. 이때 기균(紀均)·당악우(唐樂宇)·반정균(潘庭均)·육비(陸飛)·엄성(嚴誠)·이조원(李調元)·이정원(李鼎元)·이헌교(李憲喬)·채증원(蔡曾源)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했다. 돌아올 때 그곳의 산천(山川)·도리(道里)·궁실(宮室)·누대(樓臺)·초목(草木)·충어(蟲魚)·조수(鳥獸)에 이르는 기록과 함께 많은 고증학 관계 서적을 가지고 왔는데, 이것은 그의 북학론 발전에 큰 보탬이 되었다.
1779년 박제가·유득공·서이수 등과 함께 초대 규장각 외각검서관(外閣檢書官)이 되었다. 근면하고 시문(詩文)에 능했던 그는 규장각 경시대회(競詩大會)에서 여러 차례 장원하여 1781년 내각검서관(內閣檢書官)이 되었으며, 사도시주부(司䆃寺主簿)·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적성현감(積城縣監) 등을 거쳐 1791년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가 되었다. 그는 규장각의 도서편찬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전통편大典通編〉·〈규장전운奎章全韻〉·〈기전고箕田攷〉·〈도서집성圖書集成〉·〈국조보감國朝寶鑑〉·〈규장각지奎章閣志〉·〈홍문관지弘文館志〉·〈검서청기檢書廳記〉·〈시관소전詩觀小傳〉·〈송사전宋史筌〉 등을 정리·교감했다.
1793년 병사(病死)했는데, 정조는 그의 공적을 기념하여 장례비와 유고집인 〈아정유고雅亭遺稿〉의 간행비를 내렸다. 서화(書畵)에도 능했다. 저서로는 〈영처시고嬰處詩稿〉·〈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기년아람紀年兒覽〉·〈사소절士小節〉·〈영처문고嬰處文稿〉·〈청비록淸脾錄〉·〈뇌뢰낙락서磊磊落落書〉·〈영처잡고嬰處雜稿〉·〈관독일기觀讀日記〉·〈앙엽기盎葉記〉·〈입연기入燕記〉·〈열상방언洌上方言〉·〈예기고禮記考〉·〈편찬잡고編纂雜稿〉·〈협주기峽舟記〉·〈천애지기서天涯知己書〉·〈한죽당수필寒竹堂隨筆〉 등이 있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이덕무 「詩의 溫度」, 저자: 이덕무, 편역: 한정주(역사평론가), 다산초당, 2020.02.7.》, 《Daum, 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