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색(傾國之色)의 여인들 (1) 매희, 달기, 포사 사기史記이야기
경국지색이라 했으니 나라를 기울게 한 그 때의 왕들과 경국지색의 여인들을 세트로 묶어 소개할까 합니다. 시대 순으로 정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 걸왕 vs 매희, 은 주왕 vs 달기, 주 유왕 vs 포사, 오 부차 vs 서시, 삼부이군일자 vs 하희
여기서 삼부이군일자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三夫二君一子, 즉 세 명의 지아비와 두 명의 군주와 한 명의 아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그마치 여섯 명이나 저 세상으로 보냈던 ‘傾家+傾國’之色의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위 순서에 의거하여 우선 하 걸왕과 매희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하(夏) 걸왕(桀王) 對 매희 - 주지육림(酒池肉林)
이 둘은 정말 타의 모범이 된 세트입니다. 일명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처음 시도하여 훗날 은나라의 주왕과 달기가 그 뒤를 잇게 하고, 오늘날까지 호화롭고 사치스런 주연(酒宴)의 대명사로 국어사전과 백과사전에 등재하도록 만든 선구자적 인물들입니다.
하나라 걸왕은 힘도 세고 지략도 뛰어난 인물인데, 악독하고 탐욕스러워 후세에 폭군의 대명사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매희는 걸왕이 정복한 오랑캐의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진상품으로 바쳐진 여인인데, 걸왕은 희대의 요녀인 매희를 보자마자 넋을 잃고 빠져들어,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궁전을 짓고 옥으로 만든 침대에서 밤마다 일락(逸樂)에 빠졌다고 합니다.
사기에 의하면, 걸왕은 그녀의 소원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한 3000명의 미소녀들에게 오색 찬란한 옷을 입혀 날마다 무악을 베풀었으며, 또 무악(舞樂)에 싫증이 나면 궁정(宮庭) 한 모퉁이에 큰 못을 판 다음 바닥에 새하얀 모래를 깔고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못 둘레에는 고기(肉)로 동산을 쌓고(肉山) 포육(脯肉)으로 숲을 만들었으며(脯林), 술로 만든 못에는 배를 띄울 수 있었고, 술지게미가 쌓여 된 둑은 십리까지 뻗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는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매희는 조국을 사랑한 애국지사였습니다. 그녀가 걸왕에게 올 때부터 딴 생각이 있었다는데, "내 조국이 이 자의 칼 아래 유린당하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한낱 노리개가 되어 붙잡혀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럽기 한이 없구나."하면서 하나라를 망하게 만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러했다는 설입니다. 말 그대로 ‘설’이니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쾌락에 푸욱~ 빠져있던 걸왕을 보다 못한 충신들은 말 몇 마디 못하고 모두 죽어 없어지고, 급기야 이윤(伊尹) 마저 상(商)나라로 망명을 합니다. 상나라의 탕(湯)은 명재상 이윤의 도움으로 하를 멸망케 합니다.
이 때 상나라는 하나라의 속국이었습니다. 상나라는 수도의 이름에 따라 은(殷)이라고도 불립니다. 우리에게는 은나라라는 말이 더 친숙합니다.
은(殷) 주왕(紂王) 對 달기(?己) - 포락지형(?烙之刑)
포락지형의 한자를 풀이해 볼까요?
통째로 구울 포(?), 지질 락(烙). 통째로 지지고 굽는 형벌이라는 뜻입니다. 으~
백과사전에 의하면 포락지형은, 은나라 주왕이 기름을 바른 구리 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 달군 후, 그 위로 죄인을 맨발로 건너가게 하는 형벌로, 특히 옳은 말을 하는 충간자(忠諫者)는 모두 이 형에 처했다고 한합니다. 약칭으로 '포락'이라고도 합니다.
주지육림의 하 걸왕을 무찌른 성탕(成湯; 탕왕을 이렇게 부르기도 합니다.)에 의해 건국된 은나라는 28대 주왕에 이르러 또 한 명의 경국지색 여인에 의해 나라를 말아 먹습니다. (이 말이 올바른 표현이 아니라는 건 다 아시죠? 그러나 옛 사관에 의하면 나라가 망하는 데 꼭 부정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달기는 오늘날의 하남성(河南省) 무척(武陟)의 동쪽에 위치한 오랑캐국 소(蘇)나라 유소씨(有蘇氏)의 딸이며, 주왕이 유소 씨를 토벌했을 때 그로부터 전리품으로 받은 미녀였다고 합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는 주공(周公) 단(旦, 주나라 무왕의 아우)이 정략적으로 육성한 것으로 나오는데, 믿거나 말거나...
얼마나 이뻤던지 주왕은 달기를 보자마자 “달기야말로 진짜 여자다. 지금까지 많은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달기에 비하면 목석에 불과하다. 정말 하늘이 내려 준 여자임에 틀림 없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떤 여자였을까요, 참으로 궁금합니다.
“폐하, 환락의 극치가 어떤 것인지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후회없는 삶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요?”
캬~ 너무나도 직설적인 이 말에 주왕은 드디어 주지육림의 공사를 시행합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천여 명의 남녀가 뛰어다니며 여기저기서 탄성, 교성,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를 지켜보며 즐기던 주왕과 달기는 자기도 슬슬 달아올라 밀실에서 마음껏 환락을 탐닉했다고 전해 내려 옵니다. (이거 진짜 미성년자 열람 불가!)
이런 환락의 날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120일간이나 이어졌으니, 이를 일러 ‘장야의 음(長夜之飮)’이라고 불렀습니다.
달기는 또한 가학적인 면이 좀 많았나 봅니다. 위에서 말한 ‘포락지형’을 즐겼다고 전해집니다. 불 위로 떨어져 비명을 지르며 타들어가는 소리를 즐겼다고 하니, 이쯤 되면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연민의 정도 사라지고 맙니다. 누구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사디즘적 변태 성욕자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런 나라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 드디어 은나라도 주나라 무왕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주왕은 스스로 집에 불을 질러 죽었다고 하고, 달기는 사로잡혀 형장으로 가서 죽는데, 망나니들 조차 달기의 미색에 반해 함부로 죽이지 못하고, 결국은 얼굴을 보자기로 가리고 죽였다고 전해집니다.
주(周) 유왕(幽王) 對 포사(褒?) - 여산봉화(驪山烽火)
포사의 탄생에 관해서는 전설이 따라다니는데, 이건 생략...(죄송합니다.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주의 마지막 왕이 된 유왕은 성격이 포악하고 방탕하여 하(夏)의 걸왕(桀王)이나 상(商)의 주왕(紂王)에 못지 않는 폭군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폭군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간언을 하는 충신들을 죽이고 미녀들을 선발하여 유희에 빠졌다고 합니다.
어느날 포나라의 제후 포향이 유왕을 알현하고 간언을 올렸다가 유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포향의 친구들은 포향을 구하기 위하여 다방면으로 노력하였으나 뾰족한 묘수가 없었는데, 마침 포향의 아들 포홍덕이, 주의 무왕이 상의 주왕을 멸망시킨 고사를 떠올리고는 각지에서 미녀들을 모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포사도 응시했다고 합니다.
포사는 왕궁에 들어가자마자 뛰어난 미모와 총명한 지혜를 발휘하여 즉시 유왕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년 후 그녀는 아들 희백복을 낳았는데, 이때부터 그녀는 왕후의 자리와 태자의 자리를 탈취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이때 유왕은 포사에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해주었습니다. 심지어 국가 비상 사태에나 쓸 수 있는 봉화를 장난 삼아 피우기까지 합니다.
포사에 관해서는 탄생 설화 외에도 몇 가지 일화가 더 전해오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여산봉화(驪山烽火) 이야기입니다.
여산은 수도 호경(鎬京: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에서 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지역인데, 거기에 봉화가 있었습니다. 실수로 그랬는지 아니면 전해져오는 것처럼 괵석보라는 사람의 계획에 의해서 그랬는지, 여하튼 국가 비상 사태도 아닌데 봉화에 불이 오르는 일이 생겼습니다.
봉화가 오르자 그것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수도 부근에 있던 제후들은 밤중에 봉화가 올랐다는 급보를 듣고 수도 호경이 오랑캐에게 포위당한 것으로 판단하여 급히 지원군을 편성하여 달려왔습니다. 이때 유왕과 포사는 여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제후들의 군대가 집결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즐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왕실을 구원하기 위해 사방에서 달려온 제후들 앞에서 유왕은,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무런 외침이 없었으나 내가 심심해서 한번 봉화를 올려본 것뿐이오. 그러니 모두들 원대복귀하여 명령을 기다리도록 하시오."
허~ 이렇게 허탈할 수가! 이 모습을 본 포사는 비로소 웃음을 참지 못하고 생긋 웃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성공입니다!
뭐가 성공이냐구요?
원래 포사는 웃음이 없었다고 합니다. 주왕은 포사가 한 번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이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포사가 비단 찢는 소리를 좋아하여 (하여튼 취향도 독특합니다) 매일같이 비단을 빡빡 찢어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포사는 뺨 부근에 미미한 움직임만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드디어 제대로 웃게 된 것입니다. 유왕은 너무 기뻐 이 일을 처음 계획한 괵석보에게 상으로 황금 1천냥을 하사했다나 어쨌다나...
이쯤 되면 결론은 뻔하죠. 양치기 소년처럼 거짓말만 하다가 정작 견융족이 침입했을 때 봉화를 올렸는데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견융족의 침입으로 후에 주나라는 수도를 낙읍(=낙양)으로 옮기게 되는데 이때부터를 동주시대 또는 춘추시대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