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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좌선법(坐禪法) 2. 좌선의 방법 좌선의 방법은 극히 간단하고 편이하여 아무라도 행할 수 있나니, 1. 좌복을 펴고 반좌(盤坐)로 편안히 앉은 후에 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여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하라. 2.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방심이 되면 그 기운이 풀어지나니 곧 다시 챙겨서 기운 주하기를 잊지 말라. 3. 호흡을 고르게 하되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내쉬는 숨은 조금 짧고 약하게 하라. 4. 눈은 항상 뜨는 것이 수마(睡魔)를 제거하는 데 필요하나 정신 기운이 상쾌하여 눈을 감아도 수마의 침노를 받을 염려가 없는 때에는 혹 감고도 하여 보라. 5. 입은 항상 다물지며 공부를 오래하여 수승 화강(水昇火降)이 잘 되면 맑고 윤활한 침이 혀 줄기와 이 사이로부터 계속하여 나올지니, 그 침을 입에 가득히 모아 가끔 삼켜 내리라. 6. 정신은 항상 적적(寂寂)한 가운데 성성(惺惺)함을 가지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가질지니, 만일 혼침에 기울어지거든 새로운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정념으로 돌이켜서 무위 자연의 본래 면목 자리에 그쳐 있으라. 7. 처음으로 좌선을 하는 사람은 흔히 다리가 아프고 망상이 침노하는 데에 괴로와하나니, 다리가 아프면 잠깐 바꾸어 놓는 것도 좋으며,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지나니 절대로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며 낙망하지 말라. 8. 처음으로 좌선을 하면 얼굴과 몸이 개미 기어다니는 것과 같이 가려워지는 수가 혹 있나니, 이것은 혈맥이 관통되는 증거라 삼가 긁고 만지지 말라. 9. 좌선을 하는 가운데 절대로 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를 구하지 말며, 혹 그러한 경계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요망한 일로 생각하여 조금도 마음에 걸지 말고 심상히 간과하라. 이상과 같이, 오래오래 계속하면 필경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 없는 심락을 누리게 되리라. |
반갑습니다. 오늘 좌선법에서 좌선의 방법을 공부하겠습니다. 앞 내용을 설명을 드리면, 수양의 과목 중에 염불, 좌선, 기도 등이 있고, 이중 앉아서 하는 수양이 좌선이지요? 수양이라는 것은 욕심제거가 핵심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수양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 욕심을 제거하고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양이 필요한데, 욕심을 먼저 기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서원을 통해 제거하는 방법, 신심을 통해서 제거하는 방법, 또는 수양을 통해서 제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결국은 내가 본래의 ‘나’, 내가 주인으로서 살자는 겁니다. 본래의 ‘나’는 어떠냐면, 공·원·정이라는 텅 비어서 아주 밝고 바른 그런 내 본래 마음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항상 때가 끼지 않고 그 자리의 주인이 돼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지혜롭고, 편안하고, 복된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 본래의 자성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선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텅 빈 본래의 마음자리를 어떻게 하면 그대로 합일해서 들어 가볼까 하는 방법 중에서 염불, 좌선이 있고 한데, 그러면 어떤 자세로 그 텅 빈 자성자리에 들어가느냐면 육신은 요골수립, 긴찰곡도를 할 때, 가장 편안한 자세고, 마음은 식망현진(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냄)의 자세여야 합니다. 망념이 쉬면 진성이 나타나고, 진성이 나타나면 망념이 쉬고 하는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몸에 있어서는 수승화강입니다. 수승이 되면 하강이 되고, 하강이 되면 수승이 되고, 수승화강이 되면 식망현진이 되고, 식망현진이 되면 수승화강이 되고, 이렇게 서로 맞물려서 마음의 식망현진과 몸의 수승화강이 서로 돌고 돌아서 작용합니다. 그럼 선을 할 때 우리 마음의 상태는 어떻게 되냐면 적적성성해야 하는데 우리 좌선법에 ‘고요하고 두렷하다’는 표현이 적적성성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면, 적적이 주로 되고 성성이 미약하면 성품입니다. 그런데 적적과 성성이 골라 맞아있으면 이것이 정신 상태입니다. 적적을 ‘정(定)’으로, 성성을 ‘혜(慧)’로 놓으면 ‘정혜등지(定慧等持)’, 또는 적적을 ‘지(止)’로, 성성을 ‘관(觀)’으로 놓고 ‘지관겸수(止觀兼修)’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1. 좌선의 요지
염불과 좌선은 사실은 깨닫고 나서 하는 수련입니다. 알고 난 다음에 그 마음자리에 그대로 합일하는 거지요. 그래서 수양을 잘하면 영통하여 영단이 쌓여서 내가 생사해탈을 스스로 천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정도가 되려면 우리 법위로 말하면 항마위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어어... 해야 하는데...’ 하는 사람은 ‘어어... 천도해야 하는데...’ 하고 안 되는 것과 같은 거예요. 우리 강연자가 하루 10분 정도는 좌선을 하겠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1시간에서 2시간 정도는 해야 할 겁니다. 대종사님 당대에는 초기교단이라 할 일도 많았지만 2시간 정도는 선을 했습니다. 1시간을 하고, 경행이라고 해서 10분은 좌선 했던 장소를 천천히 돌면서 기운이 통하도록 다리를 푼 다음에 다시 했습니다. 중간에 정산종사님 때 어떤 제자의 제안으로 인해 그 이후 원불교 전체적으로 선을 1시간 하고 있습니다. 훈련도 동하 3개월씩 하다가 한 달로 줄이고, 지금 일주일로 줄어버렸고, 우리 재가들은 만덕산 훈련, 우리교당 출가여행을 제외하고는 일주일 훈련도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만 24시간도 안 되는 1박2일, 아니면 만 이틀도 안 되는 2박3일 정기훈련을 납니다. 그러면 현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면 정기훈련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정 사정이 어려우면 상시훈련을 늘리면 됩니다. 그것도 못하겠다고 하면 중생으로 살다가 가겠다는 뜻입니다. 놀러가면서 훈련은 안 가는 것은 핑계이고, 놀러가기 위해 시간을 내는 것처럼 훈련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합니다. 시간은 자기 마음에 따라 자기 관심 따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도 못내는 것은 시간의 노예, 결국은 욕심의 노예요, 무지의 노예입니다. 특히, 교당에 일주일에 1~2번 오시는 것은 꼭 지켜야 하며, 일 년 중에 가장 많은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는 보내는 집과 직장에서는 이 수행을 충분히 채워주고, 이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대종사님이 1시간 요가보다 10분선이 더 좋다는 표현도 하셨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설명했지요? 어떤 사람이 선하다가 몸이 아파서 운동을 했더니 ‘다 필요 없다, 운동이 최고다.’ 하는 사람은 대종사님이 나를 만났어도 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셨다고 했지요? 그래서 사실은 내가 정말로 참 나를 깨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겠다, 그리고 죽어서도 내가 크고 단단하고, 가벼우면서 무거운 영단을 내가 만들어서 육도윤회를 자유로이 하고 천도도 스스로 하고 싶은 사람은 수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현실에만 눈을 뜬 사람은 이 말이 되게 우습게 들릴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이게 당장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일, 돈, 명예 등 현실적인 것들이 중요할 수 있거든요. 내가 말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히려 죽어서는 이런 현실적인 것들이 제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한생만이 아니라 영원한 내 행복을 위해서는 큰 서원을 세워서 이루겠다는 사람은 수양을 안 할 수 가 없으며, 어떤 성자들도 이 수양 없이 성자의 대열에 들어선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듣고 ‘그러겠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겠구나!’ 하셔야 합니다. ‘하면 좋겠다.’정도는 안 됩니다. 관심 있는 사람 1000명보다 신념 있는 1명이 낫고, 신념 있는 1000명보다 실행하는 사람 1명이 낫습니다. 그래서 아침 수양이라든가 저녁 수양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심으로 기다리든, 서원으로 기다리든, 체험으로 기다리든, 기쁨의 시간을 준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핑계를 대고 마지못해 하는가는 여러분들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오늘 좌선의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다 하는 삶의 방향, 서원을 먼저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석․박사 따서 교수가 되고, 내 잘난 맛에 멋지게 한번 살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좌선을 안 하게 되어 있습니다. 좌선을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참 나를 깨쳐서 참 나를 잃지 않고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생을 마감할 때는 다음 생은 보다 큰 주인, 보다 큰 좋은 인연으로, 보다 큰일을 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즉 영생의 행복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생각하는 사람은 선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면 된다는 믿음, 타력을 잘 받드는 신심이 있는 사람도 선을 할 수 있습니다. 선을 안 하는 사람들은 핑계가 많습니다. 왜 안할까요? 안 해보고 몰라서일 수도 있고, 그리고 욕심이 많아서일 수도 입니다. 왜냐하면 선을 하는 것은 당장 효과가 나오지 않아요. 중장기의 투자, 무형의 투자이거든요. 그리고 욕심이 많으면 계문을 어기게 됩니다. 제가 보면 교도님 중에는 수양을 안 하고 싶은 분들은 없으나, 중간에 끊긴 분들은 많은 것 같아요. 어떤 일이 생겨도 내가 하고자 했으면 해야 해요. 그런데 경계가 왔을 때 잠깐 멈추게 되면 다시 챙겨야 하는데, 다시 챙길 수 있는 힘이 바로 서원과 신심이에요. 그리고 다시 법회나 훈련을 통해서 다시 채워집니다.
2. 좌선의 방법
좌선의 방법은 극히 간단하고 편이하여 아무라도 행할 수 있나니, |
The method of seated meditation is so extremely simple and easy that anyone can practice it |
대종사님이 극히 간단하다고 하셨죠? 어떤 분은 멍청히 앉아있어도 된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 말도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알고 하면 더 좋지만, 사실 그게 더 어렵거든요. “나무아미타불” 누가 못합니까? 마찬가지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누가 못합니까?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있으면 됩니다.
1. 좌복을 펴고 반좌(盤坐)로 편안히 앉은 후에 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여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하라. |
1. After spreading out the sitting mat and seating oneself comfortably in a cross-legged position, align head and spine in an upright, seated posture. |
좌복은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으로 조금 긴 게 있는데, 정사각형은 좌선을 짧게 할 때나, 골반 쪽 뼈가 앞으로 밀려나있는 요추전만증이 있는 사람은 정사각형 좌복을 써도 됩니다. 하지만 보통 동양인의 체형은 요추후만증이 많아서 뒤의 1/4를 접어서 앉아야 합니다. 반좌라고 했는데, ‘쟁반 반(槃)’자로, 쟁반 같이 안정되고 고정된 자세를 말합니다. 좌선의 방법 1조만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쓰신 분이 있어요. 그 논문을 제가 유인물에 소개했습니다. 먼저 앉을 때 신체와 체질에 맞게 해야 합니다, 다 똑같이 앉을 수 없고, 체질, 나이에 따라 수양 방법 비율, 시간, 자세 등이 다를 수 있습니다. 총부에 계시는 강성원 교무님의 논문을 여러분들에게 요약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좌복을 펴기 전 좌복 상태를 점검해야하는데 좌복이 평평해야 하며 솜이 미끄러우면 안 됩니다. 마치 신발처럼, 좌복에 돈을 아끼는 것은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솜이 쏠리지 않아야 하고, 두께는 5~8cm가 알맞으며, 냄새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넓이가 최소 가로세로 80, 60cm여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 크기는 약간 달라지겠지요?
다음은 반좌로 앉는 방법에 대해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먼저 결가부좌, 양발을 대각선 허벅지 위에 꼬아서 올리는 것으로, 키 크고 날씬한 사람은 결가부좌가 가능합니다. 최고 좋은 자세입니다. 다음으로 반가부좌가 있는데 한쪽 발만 허벅지 위에 올리는 것으로 일반적인 자세입니다. 근데 한쪽만 올리기에 자세가 틀어지기 쉬워서 다리를 번갈아 가며 해야 합니다. 좌선도 축구나 등산처럼 잘못하면 무릎과 다리가 상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좌는 두 발을 모두 내리는 것으로, 일명 책상다리입니다. 이 경우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꿔야 합니다. 의자좌도 있는데, 짧게 선을 하기에는 좋습니다.
먼저 반좌로 앉을 때 골반과 대퇴골 상태에 따라서 자세가 달라집니다. 골반에는 한 8개 정도의 뼈 조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골반이 가지각색으로 틀어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자세가 틀어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허벅지 대퇴골 상태입니다. 안짱다리이신 분들도 알고 보면 이유가 있습니다. 어릴 때 교정 받으면 좋습니다. 세 번째는 고관절의 구조입니다. 이 부분이 이 논문에서 기가 막히게 가장 획기적인 부분으로 설명합니다. 예전부터 원불교에서는 방석 뒤에를 괴는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질책 받고 자세가 아파서 괴로웠는데, 이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이 이 논문에서 과학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서양인과 동양인이 고관절의 구조가 다릅니다. 서양인들은 고관절 사이의 엉덩이뼈가 깁니다. 따라서 반좌하는 것이 불편하고 어렵습니다. 이것을 핀서 구조라고 하고, 동양인은 캠 구조라고 합니다. 동양인들은 좌식 생활이 익숙해서 그러기도 하지만 뼈 자체가 달라 반좌가 더 잘됩니다. 서양인들이 반좌를 할 때에는 다리가 뒤를 괴지 않고 앉기가 매우 힘듭니다. 이는 사람에 따라 필요하면 방석을 뒤에 괴는 것이 옳음을 알려줍니다. 아까 이야기했다시피 요추전만증이 있는 사람은 뒤에 방석을 괴면 오히려 아프니 안걸치는 것이 좋고, 요추후만증은 뒤에 방석을 괴서 밀어줘야 단전에 기운이 갑니다.
손의 자세에 대해서도 총부에서 토론이 많았는데, 결국 핵심은 손에 힘이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의식과 기운, 마음을 단전에 둬야지 손에 두면 안 됩니다. 손에 힘이 안 가게, 손을 편안히 두고 잊어버리는 게 제일 좋습니다. 대종사님은 두 손을 주먹 쥐고 하시기도 했답니다. 최대한 손에 힘이 안가고 마음을 뺏기지 않게 놓고 놓은 줄도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 다음 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라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머리를 곧게 하는 것이 잘 안됩니다. 이는 일자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목의 각도에 맞게 하라는 뜻입니다 평균 40~45도 사이가 좋습니다. 목도 너무 반듯하면 충격에 약해집니다. 그리고 허리를 곧게 펴라고 했습니다. 체질에 맞게 하되 말씀대로 따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골격적인 측면에서 요골수립입니다. 허리가 S자인 사람도 있지만, 사람에 EK라서 흉추가 나온 사람, 요추가 앞으로 나온 사람, 혹은 뒤로 빠진 사람. 혹은 흉추가 뒤로 빠진 사람 등이 있습니다. 먼저 골격적인 면에서의 요골수립은 허리 척추가 원래의 정상적 자세인 S자가 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요추전만증은 꼬리뼈가 살짝 뜬 사람이고, 요추후만증은 꼬리뼈가 뒤로 눌려진 사람입니다. 이것에 따라서 전만증은 방석을 괴지 않아도 되고, 후만증은 괴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요골수립이 경락과 내장측면에서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뭐냐면 요추 정중앙에 명문혈이 있고 안쪽에 신장이 있는데 신장에서 수기를 만듭니다. 그래서 요골수립이여야 눌리지 않아 명문혈이 통하여 수기가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래야 침도 나오고 머리도 시원해집니다. 그 다음 또 하나 심장이 펌프질을 해서 혈액을 밀어주면 대동맥이 척추를 타고 안쪽으로 내려가면 다리로 가기 전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요골수립이 안 되면 여기가 눌려버립니다. 그러면 다리가 저리고, 차가워지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골수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 다음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한 부분입니다. 앉은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꼬리뼈 미추가 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통증이 생기는데, 통증이 있는 상태에서 마음을 단전에 둘 수 있을까요? 그런 상태에서는 마음이 아픈 곳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에 앉은 자세가 바른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동기 한분은 앉을 때 좌복 가운데에 수건을 말아 넣은 분이 있어요. 이분만큼 선을 오래 하는 분이 없을 거예요. 이 수건이 직장을 긴찰하고 회음부를 눌러줘서 선을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괜찮은 방법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해야 신경이 눌리지 않고, 신경이 안 눌려야 마음이 통증을 바라보는 데에 뺏기지 않게 됩니다.
2.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어 일념의 주착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 주해 있는 것만 대중 잡되, 방심이 되면 그 기운이 풀어지나니 곧 다시 챙겨서 기운 주하기를 잊지 말라. |
2. Casually bring down all the bodys strength to the elixir field without abiding in even a single thought, be aware only of the energy that has settled in the elixir field. If the mind becomes distracted, then that energy becomes diffuse; do not neglect then and there to pull yourself together and bring that energy to rest. |
제일 어렵기도 하고, 중요한 부분이 여기입니다. 먼저, 단전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단이란, 맑아서 따뜻하고 뜨거운 것을 말합니다. 단은 깨끗할 단, 붉을 단(丹)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사랑, 부처님의 자비가 따뜻함을 생각하면 됩니다. 거기에 영단, 심단을 넣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은 뭉쳐있는 것을 말합니다. 단전은 마치 여과기와 같아서 단전에 기운을 주하면 맑아지고 사심잡념이 쉬어집니다. 그래서 단은 지극히 비어있고, 바르고 향내 나고, 아름답고 조화롭게 갊아 있는 것, 뜨거운 마음, 따뜻한 마음이에요. 단전에 그 따스한 기운이 있는 사람은 독하지 않고, 욕심도 줄어들어요. 여러분, 혹시 단전을 해부학적으로 보신 분 있나요? 없습니다. 단전은 해부학적으로 없어요.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나 존재합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 있는데, 상단전은 양 눈썹 사이, 인당입니다. 호흡을 들여 마시면 회음혈에서 척추를 타고 쭉 기운이 올라와서 송과체를 거치면서 백회를 통해 기운이 열리고, 하늘 기운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송과체에 전기 자극이 들어가면 빛이 납니다. 그래서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대종사님께서 몇 천 년 몇 만 년을 내다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 상단전을 해부해보면 부비동과 뇌를 분리시키는 막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선을 하실 때 부비동 염증이나 축농증 있는 사람은 상당히 불리합니다. 중단전은 가슴 중앙을 말합니다. 그다음 하단전입니다. 제가 하단전에 대한 주장을 다 모아봤습니다. 하지만 다 비슷합니다. 도가에서는 배꼽 및 세치(제하삼촌)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배꼽 아래 표면적 부분만 단전인 줄 아는데, 그 앞뒤내부 전체가 단전입니다. 불교 정전에서는 단전을 ‘관원’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배꼽 중심으로부터 세치 아래, 비슷한 말입니다. 구산 정귀원 교무님 말씀으로는 곡골(치골의 앞이음 부위)과 회음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좌산님은 배꼽아래 하복부 전체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맞는 말입니다. 그 중에 중심을 잡자면 배꼽과 최하복부 횡골선과의 중간지점입니다. 결국엔 딱 제하삼촌입니다. 그다음에 석문호흡이 한참 유행한 적이 있지요. 석문이 어디냐면 딱 배꼽 밑에 세치에요. 또 훈산 길도훈 교무님은 배꼽 가운데를 검지 길이만큼 아래라고 하셔서 별 차이 없습니다. 그런데 또 특별한 주장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요산 방도웅선생님이신데, 우리 성가 작곡도 많이 하셨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합창지도를 하셨던 분으로 저는 이분한테 상당히 신뢰가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배꼽 밑에 세치에 주하고 노래를 하니 성대결절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음혈에 주하고 노래했더니 성대가 결절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의 주장은 단전은 사실 태극혈이고 회음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거기서 동맥이 출발하는 겁니다. 그래서 등 뒤쪽 위로 머리 넘어 인맥이 시작되고 아래로 기운이 오는 것입니다. 또 논문을 쓰신 강성원교무님도 석문혈과 곡골혈 사이라고 하셨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일단은 제가 보기에도 단전은 아랫배 앞뒤내부 전체이며, 더 크게 말하자면 마음자리입니다.
좌선의 방법은 극히 간단하고 편이하여 모두가 행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좌복을 펴고 반좌로 편안히 앉은 후에 머리와 허리를 곧게 하여 앉은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전신의 힘을 단전에 툭 부리라 하셨습니다. 툭 부린다는 것은 단전에다가 툭 놓아버린다는 것입니다. 전신의 긴장을 완전히 풀어버리라는 뜻입니다. 일념의 주착도 없이는 무엇일까요? 일념이라는 것은 어떠한 다른 생각, 단전에 주하는 그 마음 아니고는 모든 게 다 망념입니다. 거기에 주착이 없어야 한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단전 주위에 있는 것만 대중 잡아라 하셨습니다. 단전에 무엇을 주해야 하냐면 첫째로 생각과 의식을 주하며, 두 번째로 기운을 주합니다. 이 두 가지가 따로 노는데 이를 어떻게 기운과 마음을 주할 것인가. 기운과 마음은 서로 하나이나, 굳이 말하자면 심단위주 기단활용이에요. 마음이 거기에 편안하면 기운도 편해지고, 기운이 편안해지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기단만은 아니고, 심단을 주로 하면서 기단을 함께 어울려서 합니다. 방심이 되면 그 기운이 풀어진다고 했는데 왜 방심이 될까요? 일심을 놓치기 때문에 방심이 되기도 하지만 마음을 외부에다 뺏기는 겁니다. 아직 서원이나 신심이나 오롯한 마음이 없거나, 내가 범계를 해서 마음이 거기에 뺏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곧 다시 챙겨서 빼앗긴 마음을 찾아야 합니다. 수양이 대단한 마음의 힘을 쌓는 것 중에 하나인 이유가 빼앗긴 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챙기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마음에 힘이 쌓이는 것입니다. 잡으려 해도 도망가고 도망가던 마음이 탁 잡으면 옵니다. 이 과정이 좌선 1시간동안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힘이 쌓입니다. 앉아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지만 이것이 엄청난 일입니다. 그래서 단전주는 단전에 초점을 정착시키고 그 초점에다가 기운과 의식, 마음을 집중하는 상태, 대중 잡고 있는 상태의 좌선법입니다. 주하긴 주하되 무주위주에요. 주하되 주착한 바가 없는 주함이에요. 그 주착은 무엇에 하겠어요? 관계형 사람들은 이 생각 저 생각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욕심이 많고 업이 많은 사람들은 추중번뇌가 많아요. 삼세 오욕심이 불끈불끈 올라옵니다. 젊을 때는 남녀문제, 중년엔 돈 문제, 노년에는 명예문제들, 속상한 마음, 억울한 마음, 화난 마음들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단전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도가에서는 면면밀밀이라 하지요.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촘촘한 것을 말합니다. 내 마음이 계속 똑같은 호흡으로 일정하게 하는 줄도 모르고 쭉 이어지는데 마음이 흔들리거나 생각이 다른 데로 가거나 호흡이 얽혀버리면 탁 끊어집니다. 면면밀밀로 이어지다보면 조화가 생기고 툭 열려서 우주기운이 통하기도 하고, 몸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마음과 기운과 호흡이 면면밀밀이 되어서 이어졌을 때 그 세계에 합일하여 들어가게 됩니다. 그 때의 그 기분은 누가 얼마를 줘도 안 바꿉니다. 그래서 심단위주, 기단활용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잘 안되면 병이 오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단전에 힘을 툭 부린다는 것은 뭐냐면 전신의 긴장을 단전에 툭 놓아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전에 기운과 의식, 마음을 거기에다 둔다, 이 말입니다.
3. 호흡을 고르게 하되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내쉬는 숨은 조금 짧고 약하게 하라. |
3. Keep your breathing smooth, making the inhalations a little longer and stronger and the exhalations a little shorter and weaker. |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호흡을 ‘고르게’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면면밀밀이 가능합니다. 호흡을 고르게 하려면 먼저 내 환경이 골라져야하고, 주변 인연이 골라져야 하겠지요? 주변 사람들과 기운이 통해야 합니다. 좌선을 하는데 내 앞에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앉아있다고 해봅시다. 호흡이 고르게 될까요? 그래서 수양은 취사와 삼학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내가 계획적인 생활을 하지 않고, 주변관계가 얽혀있으면 기운이 통하지 않아요. 호흡은 희한한 게, 우리의 감정과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순화하기 위해 선을 하지만, 감정이 순화되어야 선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이 일면 먼저 염불을 하라는 것입니다. 호흡이 고르지 않으면 이 숨이 가쁘거나,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역기가 되어 소화가 되지 않고 배 주변이 딱딱해 집니다. 에너지는 호흡에서 나오는 겁니다. 옛날에 뜨거운 곳에 가서 땀을 빼면서 지방이 빠졌다고 하는데, 그건 수분만 빠진 것입니다. 지방은 불로 태워야 되는데, 그 불은 호흡에서 나옵니다. 호흡을 잘해야 지방이 빠집니다.
우리의 폐가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는 근육인 불수의근(민무늬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기가 코를 통해 콧구멍으로 들어가고 부비동→기도→후두를 거쳐 1차 기관지에서 2차 기관지(양쪽 폐)로 나눠집니다. 그 뒤에 3~6차 기관지를 거쳐 혈액 속으로 들어갔다 나옵니다. 이 역할을 민무늬근이 합니다. 근데 공기 중 산소농도가 20.98%에요. 그런데 우리 몸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5% 정도가 사용되고 16% 농도로 내뱉게 됩니다. 그런데 혈관 속에 들어간 산소를 쓰지 않고 오래 있으면 그게 활성산소로 남아 염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간 산소가 일부는 포도당과 만나서 에너지가 되고, 나머지는 혈관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예요. 이 피 속에 맑은 산소가 얼마나 들어갔느냐가 중요하며, 피가 얼마나 맑은 지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마음과 가슴을 열고 뱃속에 공간이 많은 상태에서 혈액 펌핑이 잘 되면서 가지가지에 혈액이 전달되어 몸이 따뜻해지고, 몸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면 몸도 따뜻해지지만, 몸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따뜻해진다는 거예요. 반대로 몸이 아프면 마음이 따뜻해지기가 어려워요. 거칠어지고, 냉정해지고, 예민해집니다. 같이 맞물려있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기관지에 있는 민무늬근이 수축이 되면서 산소가 팍팍 안 들어옵니다.
호흡은 흉식호흡, 복식호흡이 있습니다. 원불교는 단전주입니다. 호흡을 들이 마실 때, 최대한으로 들이쉴 수 있는 만큼을 100%라 하자면 고르게 하는 것은 50%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들이쉬는 숨은 조금 길고 강하게 하라고 하셨으니, 50%로 처음에 시작을 하고 나서 서서히 호흡이 안정되면 더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강하고 짧게 들여 마시게 됩니다. 대종사님은 배가 솥뚜껑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이것이 축기의 원리로, 대종사님이 호흡을 하실 때 처음에는 부드럽게 하되, 나중에는 점차 강하게 해서 단전에 기운을 쌓았다는 말입니다. 축기를 하고 이를 다시 운기로 순환시켜야 합니다. 가슴을 펴고 단전에 유념으로 주하여야 합니다. 쭉 들이마셨다가 무념이에요. 쉽게 말하면 들이마시는 것은 유념, 긴장이고 뱉을 때는 무념, 이완이라고 했습니다. 초보자는 이게 잘 안되어 호흡을 숫자로 세라고 합니다. 어른들은 50까지도 잘 안되나 어린이들은 100까지도 잘 됩니다. 호흡 세다가 숫자를 잃어버립니다. 그만큼 마음 일심하기 쉽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선수학이라고 합니다. 초보자는 이렇게 할 필요도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안하고 집중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해서, 점점 강하게 하면서 축기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이게 며칠 내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단전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로 설명은 해줬지만, 본인이 느끼려면 하루 이틀에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호흡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반복을 해야 합니다. 반복하다가 탁 정말 편안하고, 이것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것이 귀신도 모르게 적공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서 법과 마를 대조하면서 내가 철저하게 이겨나가는 것도 있고, 내 안에 심계를 둬서 계속 이를 챙기는 것도 적공입니다. 그런데 호흡에도 적공이 있습니다. 오롯하게 단전에 생각과 기운과 호흡이 가 있는 겁니다. 그것이 일치시키기가 어려워요. 아까 말했듯이 자세가 틀어져도, 배가 더부룩해도, 머릿속이 복잡해도, 몸이 너무 피곤해도 일치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호흡을 하면 훨씬 더 호흡이 짧아지고 힘이 들어가 이완되지 않고 근육과 신경이 더 굳어버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보통 18세 전까지는 들숨이 길어집니다. 그러다가 마음을 여기저기 많이 뺏기고 나면 호흡의 길이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임종을 앞둔 분들을 보면 호흡이 입가에서만 맴돌지요? 점점 위로 올라오는 겁니다. 그래서 호흡이 긴 동물일수록 오래 삽니다. 그래서 호흡이 구부러진 자세에 아주 안 좋습니다. PC방에서 간혹 죽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잘못된 자세로 장시간 있다가 폐도 닫히고 호흡도 닫혀서 산소공급이 안되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잠깐잠깐 나타나게 되면 틱 장애가 올 수도 있습니다. 틱은 순환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실은 선은 사치가 아닙니다. 영육쌍전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머리가 시원하고, 호흡이 되고, 집중이 돼서 하나가 되어보세요. 그리고 내뱉는 숨. 이것은 철저하게 놔버리면 됩니다. 놓아버리되, 호흡과 긴장을 놓으라는 거지 의식을 놓으면 안 되고 단전에 가 있어야 합니다. 대개 딴생각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호흡을 내뱉을 때 의식도 딴 생각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흡이 잘 올라올 때 백회에서 천기를 받습니다. 근데, 자세가 구부정하면 선을 할 때 엄청나게 마이너스입니다. 우리 폐포를 펼치면 70평 넓이가 된다고 합니다. 여자는 가슴이 있어서 오므리고, 남자는 등이 굽으면서 오므라듭니다. 그러니 얼마나 폐에도 무리가 가겠어요. 쫙 펴야합니다. 한번 내쉴 때 크게 내뱉는 것을 반복하면 머리가 어지럽지요? 뱉을 때 길게 내뱉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뱉을 때에는 철저하게 이완해야 합니다. 길게 할 것이 없습니다. 혹은 어떤 사람은 호흡을 길게 한다고 중간에 호흡을 멈추는데, 이는 절대 하지 마세요. 혈압 있는 사람 병원에 실려 가고, 중풍이 올 수도 있습니다. 중간에 멈추는 호흡은 절대 하지 마세요. 호흡에 힘을 주면 몸은 경직되어 숨은 더 거칠어지고 몸은 더 악순환으로 경직되어 갑니다. 몸이 이완되어야 마음이 이완되고 호흡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氣道)가 깨끗해야 호흡이 잘 됩니다. 따라서 염증이 있거나, 축농증이 있거나, 부비동에 염증이 있거나, 담배를 피거나, 역류성 식도염 등으로 기도가 맑지 못하면 충분하게 산소가 흡입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두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항상 잘 통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조식과 단전주의 관계, 이것이 제일 중요한 건데 쉽게 말하면, 마음이 단전에 주하면 호흡이 따라가고, 호흡이 단전에 주하면 마음이 따라가게 되어있습니다. 주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4. 눈은 항상 뜨는 것이 수마(睡魔)를 제거하는 데 필요하나 정신 기운이 상쾌하여 눈을 감아도 수마의 침노를 받을 염려가 없는 때에는 혹 감고도 하여 보라. |
4. It is necessary to keep the eyes open constantly to help keep the demon of drowsiness away. Or, you may try meditating with eyes closed when the energy of the spirit is refreshed and there is no danger of invasion by the demon of drowsiness. |
여러분 뜨고 하세요? 감고하세요? 대종사님이 항상 수마를 제거를 위해 눈을 뜨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전생부터 미리 닦아놓은 분들은 눈을 감아도 수마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닦았어도 너무 피곤하거나 몸을 안 풀고 하면 수마가 옵니다. 수마는 잠이 오는 마구니입니다. 수마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너무 적적한 무기의 수마는 수마가 온 줄도 모르고 잠들고, 자고 일어나 몸이 개운하니 좌선을 잘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단전에 주하다 보면 기운이 아래로 돌면서 머리가 상쾌해지고 침이 나오고 몸이 가뿐해지게 됩니다. 사실은 수마가 거의 안 옵니다. 저는 30년 넘은 기간 동안 졸아본 적이 열 번도 안 됩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스무 번 넘게 조는 사람도 있고 할 때마다 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합니다. 부처님 불상에서는 눈을 살짝 떠있죠? 이것이 시지불견이라, 눈을 살짝 뜨되 마음을 그곳에 두지 않습니다. 눈을 떴어도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가 들려도, 소리가 있되 내 마음을 거기에 빼앗기지 않습니다. 눈을 뜨되, 턱을 당기고 1.5m앞에 시선을 두고 거기에 마음을 뺏기지 않으면 됩니다. 정 졸리면 눈을 크게 뜨거나 몸을 움직인 뒤, 그래도 안 되면 일어서서 몸을 좀 풀어주시고 다시 하시면 됩니다.
5. 입은 항상 다물지며 공부를 오래하여 수승 화강(水昇火降)이 잘 되면 맑고 윤활한 침이 혀 줄기와 이 사이로부터 계속하여 나올지니, 그 침을 입에 가득히 모아 가끔 삼켜 내리라. |
5. Keep the mouth always closed. If the water ascends and the fire descends readily after lengthy practice, clear and smooth saliva will flow continuously from the salivary glands, which you may gather in the mouth and swallow occasionally. |
입과 침의 문제입니다. 옛날에 보면 약간 모자란 분들은 매번 입을 벌리며 침을 흘리고, 턱이 틀어져서 고개가 뒤로 젖혀져 있죠? 이 모습이 전형적인 기운이 막힌 모습입니다. 고개가 반듯하고 턱은 당기고 입은 다물어져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평상시에도 입을 닫고, 닫고 있을 때는 혀를 입천장 앞쪽에 닿고 있으면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동맥에서 올라온 기운이 인맥과 연결되어 몸을 타고 순환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선을 할 때 반드시 양치질을 하고, 혀 클리너를 쓴 뒤에 물을 조금 마시고 하세요. 그렇게 하면 참 좋습니다. 입을 항상 다물면 수승화강이 잘됩니다. 공부는 오래하라고 하셨죠? 수승화강은 젊을수록, 몸이 덜 피곤하고 자세가 바를수록, 마음에 사가 적을수록, 단전주가 잘될수록 잘됩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침이 너무 많이 나와서 미안했습니다. 옥지라고 하죠? 이곳에서 신기하게도 단침, 감노수가 나옵니다. 이 맑은 단침은 개운합니다. 보약 한 첩 드신 것과 같습니다. 나이가 드실수록 침이 마릅니다. 기운이 안통하고 수기가 안 통해 잠을 깊게 못잡니다.
6. 정신은 항상 적적(寂寂)한 가운데 성성(惺惺)함을 가지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가질지니, 만일 혼침에 기울어지거든 새로운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정념으로 돌이켜서 무위 자연의 본래 면목 자리에 그쳐 있으라. |
6. The spirit constantly should be ever-alert in its calmness and ever-calm in its alertness. If it leans to torpor, refresh the spirit; if it lapses into idle thought, restore it with right mindfulness; rest in the realm of your original face, which is effortless and spontaneous. |
적적성성이라 하셨습니다. 이 적적성성은 그야말로 정신 자체입니다. 고요하고 두렷한 것이 정신이고, 이는 사가 없으며 분별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성은 두렷하여 영지가 있습니다. 소리, 보이는 것들 등 영지가 있어 앎은 있으나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적적만 있고 무기와 혼침이 있으면 안 되고, 성성만 있고, 망념과 번뇌가 있으면 안 됩니다. 적적이 위주일 때는 성품에 합일하는 것이고, 적적과 성성이 있을 때는 정신에 합일한 것입니다.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원적 무별의 진경이라는 것은 적적성성 혹은 적적에 그대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적적성성을 잘 하다 보면 성품자리에 합일해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수양에서 연구의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연구를 따로 해서 연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양을 하다 보면 그대로 연구에 진입해 들어가는 겁니다. 비우면 밝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반드시 연구 이전에 수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면목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외형적 면목은 낯짝을 말하는 것이고, 내형적 면목은 마음고향, 참 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수행품 12장을 보면 망념을 쉬고 진성을 길러서 오직 공적영지가 앞에 나타나게 하자는 것이 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은 공적영지를 단련하는 거예요. 적적성성을 단련하는 거예요. 적적한 가운데 성성함은 옳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은 옳은데, 이것이 적적한 가운데 성성이 없으면 무기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하지 않으면 이것은 망념일 뿐입니다.
양산법사님 예를 들자면, 그분이 유일학림을 다니실 때, 대학에서 여러 가지 책을 보고 공부를 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삼세가 애매하여 인과는 착한일 하라는 방편이라고만 내놓은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셨습니다. 정산종사님께서 그걸 아시고는 인과는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열려 직관하는 세계라, 마음에 때가 끼어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 세계를 알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좌선을 할 때 마음이 그대로 있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마음이 여여하여 적적성성하게 지속하기를 석 달 이상 한 후, 진리에 비춰보고 인과를 비춰본 후에 인과에 가늠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인과는 믿는 것이고, 세상에 공짜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지만, 진짜 인과를 깨치는 것은 대소유무를 주무를 수 있어야 하고, 수양의 체험을 통해 적적성성하고 완전히 밝아졌을 때 인과가 가늠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책 몇 권을 보고 어찌 인과를 부인하고 대종사님을 믿지 않으려 하느냐고 양산법사님이 정산종사님께 혼이 났어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인과가 어떻게 된 것인가 연구를 해서 그분이 고민하다 만든 책이 ‘인과의 세계’라는 책입니다.
7. 처음으로 좌선을 하는 사람은 흔히 다리가 아프고 망상이 침노하는 데에 괴로워하나니, 다리가 아프면 잠깐 바꾸어 놓는 것도 좋으며, 망념이 침노하면 다만 망념인 줄만 알아두면 망념이 스스로 없어지나니 절대로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며 낙망하지 말라. |
7. Novices at seated meditation may suffer from aching legs or invasion by idle thoughts. If your legs ache, you may occasionally switch their positions. In case you are invaded by deluded thoughts, if you merely recognize them as deluded thoughts, they will vanish of themselves. You absolutely must not become vexed or discouraged by their presence. |
좌선을 처음을 하는 사람은 다리도 아프고, 온갖 망상이 들어와 괴롭기 때문에 그만두기 쉬운데, 좌선은 인내력 테스트가 아닙니다. 다리는 아프면 발을 바꾸거나 자세를 바꾸면 됩니다. 나중에 깊이 있게 하려면 평좌에서 반가부좌로, 반가부좌에서 결가부좌로 바꾼다던지 인내할 때도 필요하지만, 초입자 때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아플 때에는 내가 왜 그곳이 왜 아픈지 봐야 합니다. 그리고 망념은 그저 망념인 줄 알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무념했던 것들이 생각나거나, 착한 마음이 들 때도 망념일까요? 여기서의 정념은 바른 마음이지만, 단전에 집중하는 것이 정념이고 그 이외의 모든 다른 생각들은 망념입니다. 좋은 생각, 안 좋은 생각, 필요한 생각, 하기 싫은 생각, 성가신 생각 등 모든 것이 망념입니다. 망념이 왔을 때 대개는 망념과 재미있게 놀거나 이를 혼을 내는데 잘못된 방법입니다. 이럴 때는 그저 망념인 줄만 알고 두면 알아서 망념이 도망갑니다. 그런데 좋은 생각들은 아까울 때가 있습니다. 좌산종사님이 정산종사님께 질문을 하니 명념을 해놓고 잊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좌선이 끝난 후에는 메모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보통 교무님들이 설교 연마나, 중요한 일들이 있으면 좌선 중 혹은 끝난 후에 혹은 의두연마 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나온 생각은 희한하게 내가 봐도 좋습니다. 본래 맑은 마음이기 때문에 그 안에 상당한 지혜가 동반됩니다. 그래서 망념이 들면 성가시게 여기지 말고 성질내지 마세요. 거기에 ‘절대로’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표층의식의 모든 망념들이 다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누르고 쟁여두면 안됩니다. 차라리 한편으로는 나와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들은 선을 할 때 나오기도 하고 녹기도 하고, 요가나 기도, 운동으로도 녹기도 합니다. 다리는 바꾸고, 망념은 알아만 놓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망념 중에는 가벼운 망념, 무거운 망념이 있습니다. 무거운 망념은 추중번뇌로, 전생의 업입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올라오는 것으로 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 혹은 불필요하게 주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별로 의미 없는 생각들이 많아요. 이것은 미세유주라고 하고, 가벼운 망념이 있는 것입니다. 힘센 것들은 아니나 단전에 집중하는데 방해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도 별로에요. 추중번뇌가 오면 다시 단전에 주하면 되고, 너무 심하면 서원대조를 하면 됩니다. 사실 서원도 번뇌이긴 합니다만, 이를 통해 번뇌를 녹이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작하면 됩니다.
8. 처음으로 좌선을 하면 얼굴과 몸이 개미 기어다니는 것과 같이 가려워지는 수가 혹 있나니, 이것은 혈맥이 관통되는 증거라 삼가 긁고 만지지 말라. |
8. When first beginning seated meditation, you may find your faces and bodies feeling itchy, as if there were ants crawling over them. This sensation is evidence of the blood flowing more actively through the capillaries. Be sure not to touch or scratch. |
좌선을 하면 막힌 기운이 뚫립니다. 혈액순환도 잘 되고, 뭉친 기운도 풀립니다. 저리는 것은 막혔다가 통하기 때문에 저리는 것입니다. 얼굴이나 몸이 가려운 이유 또한 기운이 막혔다가 뚫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을 하면 얼굴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좋은 현상이니 굳이 성가시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9. 좌선을 하는 가운데 절대로 이상한 기틀과 신기한 자취를 구하지 말며, 혹 그러한 경계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요망한 일로 생각하여 조금도 마음에 걸지 말고 심상히 간과하라. |
9. During seated meditation, you absolutely must not seek bizarre states and mysterious signs. Even if such sensory conditions occur, think of them only as freakish; pay them no attention and look past them unconcernedly. |
좌선을 하다 보면 동기부여 하려고 신기한 것들에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정법이 아닙니다. 설사 선을 하다가 기운이 열리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잠깐 있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스승에게 물어봅니다. 사실은 다 심상히 간과하여도 되고 요망한 일로 생각하고, 마음에 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이, 오래오래 계속하면 필경 물아(物我)의 구분을 잊고 시간과 처소를 잊고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 없는 심락을 누리게 되리라. |
If you continue practicing in the above manner for a long period of time, you ultimately will forget the distinction between self and others and will forget time and place and, resting in the genuine realm of consummate quiescence and nondiscrimination, you will rejoice in an unparalleled bliss of mind. |
오래오래 계속하라고 하셨죠? 그러면 마음에 들어가니까 필경 물아의 구분을 잊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마음은 시공을 초월합니다. 오직 원적 무별한 진경에 그쳐서 다시 없는 심락을 누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동기부여를 위해 진경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왜 진경에 안 들어가나 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것이 선에 방해가 됩니다. 진경은 언젠가 느껴지는 것이고 체험이 되는 것이지 이를 찾으면 더 도망갑니다. 쫓아가면 더 도망가고, 놔두면 옵니다. 진경에 들면 다시 없는 심락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다시 없는 심락을 누리게 되면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선을 하게 되어 있지만, 이를 누리기 전까지는 서원과 신심으로, 법률에 대한 보은의 마음으로 수양을 해야 합니다. 상시응용주의사항 5조에 정해놓은 것을 지키는 보음의 심경으로서 하다보면 이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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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우 서현, 혜진 교우님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우와 넘넘 고생하셨습니다~~~!!!
우왕 너무 잘해주셨어요ㅎㅎ
감사합니다ㅎㅎ
초벌이 좋아서 수월했어요 ^^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