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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월요일 고진실, 김상진, 심선진, 이효정, 최규호
그리고 처음 온 오지원 선생님이 모였습니다. (오지원 선생님 다시 한 번 환영합니다!)
김승철 선생님은 월간 김승철로 참여했어요.
심선진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양억관 역, 문학동네
하루키가 썼다고는 생각못했다.
구술사 수업에서 추천받았다.
관찰자에서 기록자로.
생생한 다큐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얼마나 오래되고 많이들 봤는지 책이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이지만 저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구술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는 데 집중했다.
1. 기록자의 탄생: 통계에서 '개인의 얼굴'로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사건 앞에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펜을 꺾고 '기록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미디어가 소비하는 자극적인 가해자 서사 뒤에 가려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인터뷰집 [언더그라운드]는 피해자를 고유한 인생을 가진'얼굴 있는 개인으로 복원했다.
2. '양도된 자아'
하루키가 가해 집단인 옴진리교 신자들을 취재하며 발견한 핵심 통찰은 양도된 자아'이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 정답을 찾아 투쟁하는 대신, 특정 집단이나 리더가 제공하는 '심플한 인생 지도'에 자신의 비판적 사고라는 열쇠를 통째로 맡겨버린 상태를 말한다.
* 무사유의 안락함: 자신의 자아를 '정신 은행의 대여금고'에 맡긴 개인은 스스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안락함을 얻지만, 그 대가로 죄책감 없이 악을 행하는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고 만다.
3. [1Q84]와 시스템의 상징
이 논픽션 취재 경험은 하루키의 대표작 [1Q84] 의 거대한 세계관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리틀 피플과 시스템: 소설 속 '리틀 피플'은 개별 자아를 잠식하고 시스템 속으로 끌어들이는 보이지 않는 힘을 상징하며, 이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묘사된 사이비 종교의 메커니즘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라 함.
* 경계의 모호함: 하루키는 현실과 비현실의 벽이 매우 얇으며, 누구나 한순간에 '양도된 자아'의 세계(1Q84)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4. 기록학적 의의: 이분법을 넘어선 '사회적 백신'
기록자로서 하루키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거부한다. 가해자를 단순한 '괴물'로 격리하는 대신 우리 사회의 결함이 투영된 거울로 직시할 때만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스템의 광기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진실을 향한 강력한 열망을 가진, 양도되지 않은 강한 개인'이다. "기억은 희석되지만 기록은 남는다"는 말처럼, 타인의 구술을 온전히 듣고 기록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시스템에 저항하는 강력한 백신이다.
이효정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문학동네
“한 사람의 삶은,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서 이어진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던 이들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10주기를 맞아 한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심시선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누군가에게는 엄마였고,
누군가에게는 할머니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시대를 살아낸 한 여성이었다.
같은 사람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기억하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그 차이 속에는 심시선이 선택해 온 삶과, 그 선택이 만들어낸 관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서로 다른 세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시선은, 여성의 삶과 관계를 더욱 깊게 보여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하는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시선으로부터] 는 단순한 추모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한 사람의 삶이 계속 이어지고, 결국 그 삶이 완성되어 감을 전한다.
이 책을 덮으며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그리고 그 기억들이 모여, 과연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완성하게 될까.
무겁지 않지만 오래 남겨 기억하며 삶을 살아가게 하는 질문이 될 것 같다. 그런.. 머무름을 갖게 한 시선으로부터...
오지원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방승양 역, 김영사
잘 모른다. 모른다는 것
모른다는 것의 강렬한 깨달음이 있다. 아 내가 이것을 몰랐구나. 이부분이 부족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때, 흥미로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겹친다. 그래서 모른다는 것이 내 스스로는 뷸편하거나 속상한 사실은 아니다. 약간 연구의 촉매제처럼 나를 자극하는 힘이다.
이 책에서는 풀고 싶은 정의를 해결해가는 이야기와 유학때 겪었던 이야기 등의 내용이 있다. 한 수학자의 자서전이다. 약간 나의 생각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 하나의 수학 정리를 이렇게 풀어나간다는 점이 공감이 되었다. 약간 부러운건 어떤 정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초학문의 특성일 것이다.
사회과학은 열려있다. 열려있는 부분이 자유롭기도 하고 때론 막막할때도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학이 잊지 않아야 할 것에 발을 디디고 연구한다면 그리 막막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모른다는 그 힘으로 결국 문제를 풀어 나갔듯, 나도 모르기 때문에 열심히 듣고 읽는다. 방법론적 연구는 알고 있으나, 내용은 늘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 그 과정이 흥미롭다. 사람들의 진심어린 삶은 다른 내용이나 깊은 감동으로 다가선다.
잘 모른다라는 문장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모른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직 말랑한 내 열정이 지속되길 바라며 몰랐던 순간들 결국엔 알아갔던 순간들을 다시금 되새겼다.
이 책은 공부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책 내용 속에서 위대한 수학자의 끊없는 좌절과 실패 등의 내용이 나오고, 다시 일어서는 내용이 나온다. 이 부분 들이 공부로 좌절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잘하면 좋지만, 얻어 걸리듯 잘하는건 사상누각 같은 상황이다. 몇번의 실패와 좌절이 있어야 단단하게 바로 설수 있다. 이 실패로 인해 풀어나갈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공부가 막막한 그대에게 이책을 추천한다.
최규호 [예수님의 육성 도마복음] 도올 김용옥, 통나무
천국이 만약에 있다면, 그것은 죽어서 들어가는 하늘에 있는 별천지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지금 이 땅에 내려오는 것인가. 오랫동안 의문을 가져왔던 주제입니다. 마음으로는 후자에 조금 더 기울어져 왔지만, 죽지 않고 만수무강을 누리고 싶은 욕망도 있어서 전자에 미련을 버릴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가 사람과 사회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복지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삶을 산다고 할 때, 이 세계가 곧 썩어 없어질 심판의 대상이라면 도대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재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흉악한 일들이 넘쳐나고, 기후위기가 심화될 때, 그저 말세로구나, 예수의 재림이 코앞이구나, 하면 그만일까요. 주류기독교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종말론적 신앙으로 사람들을 ‘개종’시키는데만(혹은 배제시키고 구분짓고 죽이는 일에만) 열심일 뿐, 지금 여기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고난에 대해 어떤 해석도 전망도 내어놓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극우세력의 든든한 뒷배, 혹은 앞잡이가 되어 전쟁을 응원하고 있고, 비기독교인들보다 더 힘의 논리를 숭배하며 ‘천국행 티켓을 거머쥔 오만한 승리자’들을 배출해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바울신학, ‘바울교’이지,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고 도올은 주장합니다.
기독교 내의 어떤 깨어있는 분들은 현재의 기독교의 문제들을 ‘성경을 제대로 믿지 않아서(믿음을 구원받기 위한 조건으로만 여기고 구원 이후의 삶으로는 연결시키려 하지 않아서)’라고 진단하지만 이것은 반만 맞는 판단 같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문제들은 진짜 예수의 말이 가려진 채 바울신학 아래서 그 신조들을(혹은 바울신학의 일부만 강조해서?) 아주 제법 철저히 따른 결과는 아닐까 합니다. 지금 이 바이블을 바이블로 여기는 한 진정한 변혁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는 마가복음은 바울의 선교활동 이후, 즉 바울 서신들이 기록되고 그 초대교회의 신조들이 형성된 이후에 기록되었습니다. 4복음서는 바울신학의 영향 아래 바울신학의 관점으로 그려낸 예수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같은 내용의 구절도 도마복음에는 메시지 그 자체로 담백하게, 다른 복음서에선 종말론적 구원론이 덧입혀져 있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마복음엔 신화적 요소, 예수 자신이 메시야라는 인식, 기적이나 수난, 부활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어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마치 논어처럼). 바울의 종말론적 신학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예수의 말씀을 가장 순전하게 담은 최초의 복음서로 도올은 보고 있습니다.
신화적인 예수, 흑백논리와 독선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우두머리인 예수, 신자와 불신자를 구분하여 천국 혹은 지옥으로 보내는 예수, 천국행 티켓을 거머쥐고 곧 썩어 없어질 세상에서 고고하게 승리자로 살아가는 교인들의 예수가 아닌, 지금 여기 이 땅의 문제와 고통과 소외된 자에게 빛이 되고 민중의 역사 가운데 사건으로 현현하는 그런 또 다른, 진짜 예수를 만나길 촉구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토포스, 즉 장소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는 아주 쉽고 비근한 예를 들어 말한다: “만약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 인간들보다 훨씬 더 빨리 천국에 도달할 것이다. 천국이 바다 속에 있다고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 인간들보다 훨씬 더 빨리 천국에 이를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저 높은 꼭대기 허공에 있지 않고 나의 존재 내면에 있다는 것은 이해가 쉽게 간다. 특히 20세기 실존철학의 유행을 거친 후에 ‘존재내면’이라는 식의 표현은 낯익다.
그런데 도마의 예수는 우리의 상념과는 다른 방식의 대답을 제시한다: “진실로, 천국은 네 안에 있고, 네 밖에 있다” 하늘이라는 토포스를 말하지 않고 ‘내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간다. 그러나 “네 안에 있고, 네 밖에 있다”는 것을 동시에 말한다는 것은 우리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안과 밖이 하나로 소통되고 융합되지 않으면 그것은 천국이 아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는 ‘하늘이 명命하는 것이 곧 나의 성性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성性은 선과 악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성선, 성악은 없다), 끊임없이 하늘의 명령을 받는 과정에서 형성되어가는 다이내믹한 중용의 성性일 뿐이다. 천국은 내 안에 있는 주관적인 존재가 아니라, 내 밖에 있는 모든 사물 속에도 천국은 있는 것이다. 밭을 가는 농부의 내면의 심성에만 천국이 깃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키우는 한 포기의 배추 싹에도 천국이 깃드는 것이다. 우리는 땅에서, 황토에서 천국을 발견해야 한다. 천국은 주관이 아니라 안과 밖을 전관하는 자에게 다가온다.
공자도 사물을 인식할 때 ‘양단兩端’을 다 두드려 양면적 인식체계의 가능성을 다 드러낸다고 말했다. 자신의 중도中道는 양단의 가운데가 아니요, 그 양단兩端을 다 장악한 후에나 가능한 중中이라 말했다. 여기서 공자가 말하는 양단은 도마의 예수가 말하는 안과 밖일 수가 있다. 존재의 안과 밖을 동시에 긍정하는 것이다. 천국은 내 안의 관념이 아니라 내 밖의 실천이기도 한 것이다. 예수는 도마복음 22장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너희들이 둘을 하나로 만들 때, 겉과 속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너희는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 99-103쪽
천국은 묵시나 계시를 통하여 오지 않는다. 신앙이란 피안의 세계에 있는 초월적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의 씨뿌림의 체험을 통하여 성취되어가는 연속적 과정이며 기다림이다. 여기 모든 악조건 위에 뿌려지고 있는 씨야말로 ‘천국의 임재성’을 상징하고 있다. 이 모든 씨가 천국인 것이다. 모든 씨가 결국 자라나고 풍요로운 결실을 맺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다림의 인내가 우리 신앙의 본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34쪽
김상진 [나는 집에서 죽음을 맞고 싶다 : 죽음의 질을 이야기하다] 임연옥·하정임, 박문사
노년학 연구자들이 2023년에 다양한 유가족을 만나 임종기 돌봄과 임종 경험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분석한 책입니다. 책 제목처럼 저자들은 노인의 욕구에 따라 집에서 살다가 집에서 편안하게 죽는, 임종의 'Aging in place'를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집에서 임종을 맡고 싶다는 아버님의 소망을 들어드리려는 자녀들의 효성스러운 마음과 달리 가족이 임종기 증상과 임종 과정에서의 돌봄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요양시설에서 아버님을 집으로 모셔 올 때, 시설에서 가족에게 임종기 돌봄과 임종 증상 등에 대해 조금이라도 설명하고 알려주었더라면, 또는 재택 임종이 가능하도록 임종기 돌봄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있었더라면 아버님의 죽음의 질과 유가족의 사별 경험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8-29쪽
전에 읽은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서 본 것처럼 일본은 상대적으로 Aging in place를 위한 제도가 활성화 되어 있는 반면, 우리는 제도도 인식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의료기관보다는 되도록 집에서 죽음을 맞고 싶은 마음이라, 노인과 가족에게 실제 필요한 것을 하나씩 채워가야 할 것 같습니다. 돌봄통합지원법 어딘가에 이런 것도 담기면 좋겠고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도 작은 것 하나씩 바꿔가면 좋겠어요.
어느 날 아버지는 "병실에서 환자가 죽으면 시신은 사람이 타는 엘리베이터를 못 타고, 병원 건물 구석에 있는 짐 싣는 엘리베이터에 실려서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더라."며 당신이 죽으면 짐짝처럼 취급받으며 그 엘리베이터에 타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다. (중략)
딸은 병원 직원과 옥신각신한 끝에 한밤중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괜찮지 않겠냐며 하여튼 한동안 실랑이를 한 후에 일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아버지를 장례식장으로 모셨다. 불과 몇 분 전에 살아계셨던 고인에 대한 예의나 존중을 갖추기는 어려운 것일까? 63쪽
몇 년 전 어머니는 당신의 소원대로 집에서 돌아가셨다. 경찰이 와서 어머니가 사망하셨음을 확인하는데, 가족에게 잠시 다른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어머니를 살펴보는 듯 했다. 경찰은 사고사가 아님을 확인하고 법의학자에게 연락하였다. 경찰이 나간 후 어머니를 살펴보니 어머니를 탈의시켜놓고 이불로 덮어 놓은 채 나간 것을 발견하였다. 깜짝 놀라 어머니 옷을 입혀드렸다. (중략)
법의학자가 나간 후 이불로 덮힌 어머니를 살펴보니 또 어머니의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였다. 경찰이나 법의학자가 검시를 마친 후 어머니께 옷을 입혀 드리는 것이 힘이 드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시신을 검시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막 임종을 한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음에 당혹스러웠고, 분노하였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63-64쪽
가끔 넷플릭스로 일본드라마를 보다보면 법의학자가 먼저 합장을 한 후 정성스럽게 부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위 에피스드도 일드 내용도 일반화 할 수는 없는 이야기겠지요. 그럼에도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얼마 전 사례관리 사회사업 연수에서 김세진 선생님이 소개하신 Saleebey의 글에 따르면 당사자 변화를 위한 네 가지 요건이 있는데 그중 조력 관계의 질이 30% 정도 영향을 미쳐, 기술이나 기법의 15%보다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배려, 공감, 긍정적 존중, 진실성 같이 일하는 사람의 태도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예의에 대해 성찰해 볼 일입니다.
어느 유가족은 "좋은 죽음이란 돌아가시는 분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돌아가신 후 장례 절차를 비롯한 여러 일이 가족들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을 고인이 원하였다."라고 하였다. 96쪽
삶도 그렇지만 죽음도 잘 준비해야 하는 일임을 알 수 있어요. 웰다잉 교육,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장례절차 결정과 유언장 같은 준비가 필요하지요. 저희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병원에서 잠시 외출하여 집을 둘러보고 물건 정리, 금융 서류 정리도 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당부도 하셨어요. 덕분에 장례와 정리가 수월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 더하여 존엄한 죽음 테마 3부작으로 보았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고진실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오증자 역, 민음사
공연을 위해 쓰인 희곡이다. 그냥 읽으면 무슨 소린가 싶은데, 무대를 상상하며 읽으면 나름 재미있다. 사실 중반까지도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허무맹랑하고 문학에는 기승전결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구조도 없다. 클라이맥스라고 할 게 없으니 내내 의아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나 역시 극 중 인물들처럼 언젠가 등장할 ‘고도’를 기다리며 마지막까지 읽었다.
‘고도는 누구일까? 사람일까? 사람 아닌 다른 존재일까? 실체가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 그보다 대체 고도는 왜 만나려고 하는 걸까?’
머릿속에 질문이 이어지지만 책에서 답을 말해주진 않는다. 각자 자기 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매력이다.
극 중 인물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린다.
본적도 없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사실상 모르는 존재인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반복되는 기다림은 매우 권태롭고 때로는 덧없이 느껴진다.
이 둘은 기다림에 지쳐 죽음을 떠올리면서도 삶을 놓지 않고 끝까지 고도를 기다린다. 허무한 일상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서로 다퉜다가 화해했다가,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깔깔대고, 목적을 잊었을 때는 다시 서로에게 인식시키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분명 서로의 존재가 가장 큰 의지가 되었으리라.
이 말은 즉, 고단한 삶도 내 곁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처럼 들렸다.
글이 마칠 때까지 고도는 등장하지 않는다. 정작 그 고도를 만난대도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그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함에도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삶의 궁극적 목표, 의미를 찾고자 함일 것이다. 대개 많은 사람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괴로워하며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데, 늘 그렇듯 삶의 의미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문득 [싯타르타]가 떠오른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방황하는 싯타르타는 시대의 현인을 만나서도 그 답을 찾지 못하고 결국 자기 경험으로 깨우친다. 타인의 말이 아닌 그냥 자기 삶을 살아냄으로써 자신만의 진리를 찾는다.
삶에 반드시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할까? 대단한 목표가 없어도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 산다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게 아니야. 문제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를 따져 보는 거란 말이다. 우린 다행히도 그걸 알고 있거든.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김승철 [사람이 하는 일] 노수현, 마음대로
사회복지기관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잘러로서 갖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저자 선생님은 사회복지기관의 특성을 소개하며 '다정함' 을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다정한 사람은 무엇을 잘하는지를 소개하는데, 바로 인사와 감사였습니다. 인사와 감사,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 쉽게 하고 있는 행동이지만, 이 행동을 저와 우리는 얼마나 잘, 그리고 자주 했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더하여, 이렇게 인사와 감사 잘하는 다정한 사람을 기관에서 우대하고, 그 과정을 (리더가) 알아주며 더욱 잘 하게 돕는 것이 기관을 보다 인간적이고 협력적인 곳으로 만드는 과정이 될 수도 있겠음을 글을 통해 봤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과 생각을 비추어 상상할 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기관에서 리더 자리에 있다면, 인사와 감사를 누가봐도 진정성 있게 하는 다정한 직원을 눈여겨봐두었다가 그 사람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며 힘을 실어준다면 우리 기관이 보다 인간적인, 협력지향적인 곳으로 변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6년 4월 서울 책사넷 모임 안내
일시 : 4월 13일(월) 저녁 7시 30분 ~ 9시 30분
장소 : 가람작은도서관 (가양5종합사회복지관 1층)
참여자 : 참여를 원하는 당신!
준비물 :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 1~2권
신청 : 기존 참여자 외에 참여를 원하는 분은
비밀 댓글 혹은 연락책에게 문자 남겨주세요.
연락책 : 김상진 (010-7308-2433)
첫댓글 오지원 선생이 함께했군요.
서울 책사넷이 있어 참 다행하겠다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오지원 선생님과 반갑게 만났고 책 이야기도 잘 나누었습니다.
심선진 선생님과는 2024년 다산초당 학습여행 때 대화 나눈 사이라고 하더라고요.
3월에도 변함없이 모임 운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4월에도 만나서 나누는 시간들이 풍성하고 즐겁기를 소망합니다 :)
매달 참여와 응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