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⑭
헤로디안 지역(예루살렘)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누가복음 19:47) 헤로디안 지역은 사두개파 제사장들이 살았던 예루살렘의 가장 부촌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야만 했던 실제적 이유가 이곳에 있었다. 헤로디안 지역 저택의 바닥 모자이크.
성지순례를 준비하는 사람들 가운데 준비성이 있고, 의미 있는 순례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서점에 들러 관련 서적 한권쯤은 미리 구매해서 읽기도 하고 또 필수품으로 챙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책자 어디에서도 헤로디안 지역(Herodian Quarter)에 대한 소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정작 시중에 나도는 순례 상품을 따라 수십 차례 이스라엘에 다녀온다 해도 이곳을 가기는 쉽지 않다.
헤로디안 지역은 웬만한 성지 순례 상품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그 중요성은 다른 어느 지역 못지않다. 헤로디안 지역은 기록된 역사책의 생생한 증거요 현장이다. 그리고 성경 사건, 그것도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가야만 했던 당대 권세가들의 일면을 눈으로 확인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를 알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곳이다.
예루살렘에는 구시가지(Old City)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대략 사방 1㎞쯤 되는 크기인데 성벽으로 둘러 쳐져 있다. 그런데 이 구시가지 안에는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유대인, 알미니안, 아랍인 크리스천, 아랍인 무슬림)이 네 곳에 일정한 지역을 나누어 살고 있다. 그중 남동쪽 지역에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데 이곳을 ‘유대인 지역(Jewish Quarter)’이라 부르고, 또 유대인 지역 가운데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헤로디안 지역’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특정한 곳이 있다.
헤로디안 지역에서 발견된 예수님 당시의 테이블과 물두멍
사실 헤로디안 지역을 포함해서 오늘날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이 일대는 다윗 왕이나 솔로몬 왕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 밖의 외곽 지역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자 수많은 피난민이 예루살렘의 외곽(왕하22:14, 둘째 구역)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유다와 히스기야가 처음으로 이 지역에 성을 쌓아 예루살렘으로 편입시켰던 곳이다. 그리고 헤롯 시대와 예수님 시대를 거처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고 불에 모두 타 잿더미로 변해 버리기 전까지, 이 지역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화했던 곳이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서 예수님 시대를 전후해서 이 지역에 어떠한 사람들이 살았으며,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떠한 인생관과 종교관을 소유했던 사람들이 거주했는지 추측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고학 탐사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증거물이나 그 실체를 손에 쥘 수는 없었다.
헤로디안 지역 저택에 사용된 기둥 머리
그런데 1947~48년에 걸쳐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독립전쟁’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역 건물들(회당, 학교, 병원)이 아랍 사람들에 의해서 파괴되고 폐허가 되어버렸다. 그 후 방치되어 온 이곳은 1967년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점령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고고학 발굴 작업을 선행하는 조건으로 유대인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개발계획이 수립된 것이다. 그때부터 히브리 대학교의 교수였던 아비가드(N. Avigad)를 단장으로 14년 동안 쉬지 않고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하는 헤로디안 지역은 마치 아파트 지하 주차장과 같은 구조를 이용해서 지하에는 유물을 보존하고 지상에는 아파트를 세워, 현재는 이곳을 유적지 겸 주거지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 이곳을 답사 갔던 것은 학교 수업의 일환이었다. 그때는 강의실에서 책으로 배운 사실을 교수와 함께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참으로 놀랍고 신기했다. 하지만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곳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그 이후 한참이 지나서다. 필자가 가야바 대제사장이 왜 궤계를 써가면서까지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가야만 했던 이유를 찾을 때였다(마26장).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 책을 뒤지고 다니다 헤로디안 지역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헤로디안 지역 저택의 복원도
헤로디안 지역을 포함해서 오늘날 구시가지의 유대인 지역은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서 최고 부유한 사람들, 최고의 권세가들이 거주했던 부촌이었다. 이곳의 주택들은 2~3층 구조로 궁궐과 같았고, 그 실내는 당대 세계에서 가장 유행했던 모자이크와 프레스고, 장식용 회벽들로 치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 하나하나는 수입품을 포함하여 가장 값비싼 것들이었다는 사실이 발굴 작업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당대 정치, 행정, 입법과 사법권을 모두 장악하고 성전의 제사까지 주관했던 제사장들이었으며, 사두개파 사람들이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가야바 대제사장 역시 사두개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두개파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자기들의 성경 해석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았던 독선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이며, 내세와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로(마22:23)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오직 이 세상만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부와 권세를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최고의 가치요 소망이었던 셈이다.
헤로디안 지역 저택의 규모와 특징을 설명하는 안내문
그렇다면 이들이 대제사장직과 권력을 얻을 수 있었던 수단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던 유대인들이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으로 로마 군인을 매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이 필요했고, 그 돈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던 세상적 삶에 최고의 사치를 부렸던 것이다. 그러니 돈을 위해서라면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일조차 서슴없이 행했던 것인데 예수님은 그 돈줄을 막았던 것이다(눅19:45-48). 그러니 예수님을 죽이려 꾀했다는 성경의 증거는 너무나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눅19:47).
이 모든 사실의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증명해주며,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 바로 헤로디안 지역이다. 이곳을 답사하며 눈앞에 있는 증거물 보며 나 자신이 현대판 가야바는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고 경성(警醒)하기를 기대해 본다.
헤로디안 지역
예루살렘 성전산 서쪽으로 구약에서 둘째 구역으로 불렀던 지역(왕하22:14)
사두개인과 제사장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음(마22:23, 막12:18-27, 눅20:27-40)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게 하심(마21:12-17, 눅19:45-48)
사두개인들은 영적인 세계나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음(행23:8)
사두개인
유대 종교의 당파 중 하나인 사두개파 사람들을 말한다(행23:6). 이들에 대한 명칭은 다윗, 솔로몬 시대에 제사장이었던 사독(왕상1:38)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부유한 귀족 지배 계층으로 제사장과 예루살렘의 권력가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고 산헤드린의 많은 자리를 점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전 2세기 하스모니안 시대부터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세력을 형성했다. 모세 오경만을 인정하고 내세와 부활, 영적 세계,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고 지극히 현세적이었다(막12:18, 눅20:27, 행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