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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까치
이 범 선
“까치 들어왔니?”
아주 어린 놈을 얻어다가 꽤 오랫동안 집에서 키우던 까치새끼가 제법 자라서 마음대로 밖을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밖에서 돌아오면 현관에서 우선 그렇게 까치 안부부터 묻곤 했다.
그건 종일 제멋대로 싸돌아다니다가도 저녁때가 되면 담을 넘어 푸르르 날아 들어오곤 하는 그놈 까치를 그 동안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믿고 있긴 하면서도, 크래도 역시 그놈의 야성(野性)을 아직 완전히는 믿지 못하고 있는 불신 (不信)의 증거였다.
그런데 고2(高二) 인 아들녀석 종(鍾)은 나와는 다르다. 그 녀석은 까치를 아주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언젠가는 거리에서 어두워 집으로 들어온 내가 현관에서 구두를 벗으며 버릇대로,
“까치 들어왔니!” 하고 물었더니 현관까지 마중나왔던 종이 녀석이,
“그럼요! 아버지두.” 하고, ‘그럼요’에 힘을 주어 대답을 하며 빙글빙글 웃는 것이었다. 그건, 말하자면 두 가지 뜻을 가진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아, 그럼 …… 까치를 그만큼 키우노라고 제가 얼마나 애를 먹었는데 그래 제놈이 안 돌아와요 하는, 까치의 정말 주인격인 녀석으로서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겠고, 또한 아버지는 언제나 사람 안부보다 까치 안부부터 먼저 물으셔 하는 핀잔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녀석이!” 나도 그저 그렇게 모호한 대꾸를 하며 녀석의 어깨를 한번 건드려주고 방으르 들어가고 말았다.
어쨌든 까치 그놈이 그만치 자라기까지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식구들은 사람의 세계와 새의 세계, 그 두 세계를 같이 살아오는 셈이니까, 자연 사건도 그만치 많을 수밖에 없으리라.
우선 까치 그놈이 아직 어려서 날지도 못하고 겨우 손끝에 올라앉아 고개만 갸웃거리던 무렵부터 종이 녀석은 국민학교에 다니는 제 동생을 같이 데리고 집에서 꽤 먼 데 있는 들로 나가곤 해야 했다. 베짱이를 잡기 위해서였다. 까치는 연한 베짱이는 잘 먹었다. 도시 까치가 베짱이를 먹는 건지 쌀을 먹는 건지를 애들이 알 턱이 없다. 그것도 그 까치를 얻던 그날, 고궁(古宮) 지기 아저씨한테서 까치와 함께 배워온 지식이었다.
늦은 봄 어떤 일요일이었다. 우리 부처는 종이와 그 동생 두 아이를 데리고 오래간 만에 고궁으로 갔다. 막상 벚꽃이 피는 때는 그 사람들 틈에 끼어들 용기가 나질 않아서 일부러 늦은 봄을 택했던 것이다.
일요일인데도 고궁 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우리는 천천히 고궁을 한 바퀴 돌아 출입문 쪽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고등학교 이학년인 종아와 그의 동생 국민학교 육학년짜리는 우리 부부보다 저만치 앞을 걸어가며 연방 무슨 장난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연령의 차이가 많으면서도 아주 사이가 좋다. 아니 어찌면 그렇게 연령 차이가 많기 때문에 애당초에 싸움 상대가 되질 않아 사이가 좋은지도 모른다. 그련데 그렇게 터덜거리며 지만치 앞으로 걸어나가던 그 녀석들이 무슨 생각에선지 잔디밭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애들 봐.”
아내가 먼지 보았다.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지러지.”
나도 그들의 뒤를 눈으로 쫓았다. 그들은 거기 이제 새 잎이 피기 시작한 벚나무 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거기는 까만 제복을 입고 금테 두른 모자를 쓴 고궁지기 아저씨 두 사람이 마주 서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모자를 벗어 가슴 앞에 들고 있고, 또 한 사람은 모자를 쓴 채 마주 서서 그 벗어든 사람의 모자 속을 같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애들이 그들 옆으로 다가갔다. 고궁지기 아지씨들이 애들을 한번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애들까지 끼어서 네 사람이 그 아저씨의 모자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가 있는 모양이죠?”
“글쎄.”
우리 부부는 여전히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렇게 우리가 그들 가까이까지 갔을 때였다.
“야! 신난다!”
국민학교 육학년 녀석이 팔을 내두르며 이리로 달려나온다.
“뭐가 또 저렇게 신이 날까?’
아내가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엄마, 엄마. 까치새끼야 까치새끼!”
어린녀석은 잔디밭 한가운데를 이리로 마구 달려오며 소리질렀다.
“까치 새끼라니?”
아내는 달려온 어린녀석에게 콱 떠밀려 비칠 한 결음 물러서며 눈을 저만치 종이 녀석에게로 보냈다.
이번에는 종이 녀석이 자기 모자를 벗어 두 손으로 받쳐들고 이리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 뒤에 고궁지기 아저씨들이 빙글빙글 웃고 있다.
종 은 마치 물그릇을 들은 사람모양 조심조심 다가왔다.
“헤헤. 요거 보세요!”
녀석이 만족하게 웃으며 자기 모자를 우리 부부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과연 그건 새새끼였다. 그런데 모자 속에 옹크리고 있는 그 새새끼는 대가리만 크고 등에는 아직 털이 딜 나서 새빨간 살이 그대로 드러나보이는 괴물스러운 것이었다.
“얘는…… 그걸 어떡헐려구……. 아이 징그러워. 저리 치워라!” 아내가 낮을 찡그리며 손을 내지었다. 아닌게 아니라, 내가 보기에도 징그러웠다. 어린녀석 말로는 까치새끼라지만 그게 정말 까치새끼라고 보여지는 점은 어느 한 곳도 찾아볼 수가 없는, 그런 새끼였다.
“그걸 그래 어떡할 셈이지?” 나는 종이 녀석에게 물었다.
“키우죠!” 그는 연방 싱글벙글한다. 어린녀석이 형의 모자를 끌어내리며 그 안을 들여다본다. 하긴 그날 종일 그들 둘 사이에 일어난 장난 중에서 가장 신나고 신기한 일이었음에는 틀림없다.
“키우긴 네가 그 어린것을 무슨 재주로 키워 .”
내 말이었다. 그러자 아내도 곁들었다.
“얘, 도로 가져다드려. 그걸 무슨 재주로 키우니. 원 애들도 나중엔 정말.”
“아냐, 엄마. 베짱이 잡아먹이면 잘 자란대. 그지 형? 저 아저씨들이 그랬지, 잉?”
어린녀석이 제 형을 쳐다보며 말한다. 행여 제 형이 엄마의 말을 따라 고것을 다시 아저씨들에게 돌리기라도 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것이리라. 종이 녀석은 그지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그들은 또 우리들보다 앞질러 걷기 시작했다.
그리해서 궁전의 까치새끼는 초라한 우리 집 안방으로 옮겨진 것 이었다. 말하자면 유배를 당한 셈일까.
저녁상을 받은 자리에서 종이 녀석이 자기 누나와 누이동생에게 자랑스레 들려주는 설명에 의하면 그 까치새끼는 일주일 전에 높은 둥우리 자기집에서 잔디밭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고궁지기 아저씨들이 발견하여 다시 까치 둥우리에 올려주려 했지만, 워낙 높기도 하려니와 나뭇가지가 가늘어 도저히 사람이 올라갈 재주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 하는 수 없이 떨어진 그 잔디밭에 도로 내다놓고 어미가 내려와 어떤 수로 들어올릴까를 기대해 보았지만, 그저 두 마리의 까치가 새끼 둘레를 빙빙 돌며 울부짖을 뿐, 그들도 어떻게 고것을 업어올릴 재주는 없는 모양이더란다. 결국 그 자리 잔디밭에 눕혀놓고 어미가 번갈아가며 먹이를 날라다 먹이기도 하나, 아직 밤이면 기온이 차니 털도 미처 못 난 고것이 밤 사이에 얼어죽을 것만 같아서 고궁아지씨들이 지녁때면 그것을 금테 두른 모자에 담아다 숙직실 아랫목에 서 재우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저씨들의 골치거리가 되었더란다.
“누가 아주 집에 가져다 키워요.”
“그걸 어떻게?”
“먹이만 주면 될 테지 뭐.”
“에이 귀찮아. 제 자식 애비 구실도 제대르 못하는 주제에.”
“그렇지만 요걸 모른 체 그냥 버려둘 수도 없잖아.”
“그러게 말이야. 누구 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서 가져다 키우면 쓰겠는데.”
“내일은 그럼 우리 광고를 하나 써 붙여볼까? 흑 새 좋아하는 관람객이라도 들어왔다가 보게.”
결국 종이 녀석이 그 새 좋아하는 관람객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들애들은 그렇게 신이 나서 종이곽을 어디서 들춰내다 거기 솜을 깔고 제법 아늑하니 까치새끼 잠자리를 만들어준다, 지녁때라 미처 베짱이는 잡으러 갈 수가 없으니까 꼿꼿하고 짠 멸치꼬리를 부리에 가져다대고 비벼본다 하며 야단인데, 딸애들은 처음부터 냉담했다.
“얘얘, 너 고게 이제 죽으면 어떡헐래.”
큰딸의 말이었다. 그 어린 새새끼가 죽는 꼴을 봐야 할 일이 미리부터 걱정인 것이다.
“왜 죽어, 씨.”
어린녀석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럼 그게 그래 살 것 같아?”
작은딸애가 핀잔을 준다.
“왜 못 살아.”
“못 살지 그럼 살아.”
“우리가 자기 엄마처럼 잘 해주면 될 거 아냐. 그지 잉, 형!”
어린녀석은 마침내 제 형에게 응원을 청했다. 그러나 종이 녀석은 씩 웃기만 했다. 그렇게 고것을 솜에 싸서 아랫목에 놔두긴 했지만 역시 키울 자신은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어쩌면 정말 내일이라도 저것이 죽으면 그걸 어떡허나 하고 들고 온 것을 후회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도 까치새끼는 죽지 않았었다. 일어나는 참 옷도 안 입은 어린녀석이 종이곽 뚜껑을 열었을 때 까치새끼는 가장자리가 노리끼한 부리를 짝짝 하는 소리와 함께 크게 벌리는 것이 아닌가.
“형 ! 형 ! 요거 좀 와봐! 살았어, 살았어 !”
우기긴 했었지만 어린녀석 자신의 생각으로도 한밤내 까치새끼가 정말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고 역시 걱정이었던 듯 큰 소리로 옆방의 형을 불렀다. 그러자 종이 녀석은 말할 것도 없고, 딸애들까지 모두 잠옷바람으로들 까치 새끼에게로 달려 왔다.
“가없어라!”
그저 아내만 여전히 비관적이었다.
종이와 어린녀석은 정말 용기를 얻은 모양이었다.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더니 대문을 나섰다. 다행히 집이 변두리라서 한참 나가면 들이 있다. 그 들로 가는 것이었다.
“얘들이 학교 갈 시간이 다 됐는데 뭣들 하고 아직 안 들어올까.”
아내가 들락날락 안절부절을 못하는데 골목 안이 시끄럽게 어린녀석의 소리가 들려왔다.
방에 들어온 두 너석은 양복바지 가랑이가 온통 이슬에 젖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아랑곳 없다. 그들은 다짜고짜 아랫목으로 가 종이곽을 열었다. 그러자 까치새끼는 그 대가리와 몸집에 비해 너무 가는 목을 길게 빼며 짝짝 입을 벌렸다.
“자, 이제 얼마든지 먹여줄께.”
어린녀석이 덕 가부좌를 하고 앉으며 손에 쥐고 있는 봉투를 열었다. 베짱이다. 서물서물 베짱이들이 봉투지를 기어나온다. 아직 베짱이도 난 지 얼마 안 되는 듯 겨우 성냥개비 반만밖에 안하다. 어린녀석은 그 중 한 놈을 손으로 쥐어서 까치새끼 부리로 가져간다. 조그마한 메짱이에 비해 까치 새끼의 입은 너무 크게 벌어졌다. 꿀떡 삼킨다.
“야 이것 봐. 씹지도 않고 막 먹는다!”
“임마, 새가 뭘 씹어먹니. 하하하.”
그들의 주고받는 말에 부엌에 있던 아내까지 온 식구가 모두 크게 웃어버렸다. 그런데 아침밥을 먹기 전에 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잡아온 베짱이새끼들이 봉투 속에서 나와 방으로 하나 서물서물 기어다니는 것이다.
결국은 남자녀석 둘이서 방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것들을 처리해야 했다.
어쨌든 까치새끼는 죽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아침이면 일찍 둘이서 뒷뜰로 나가 베짱이를 열심히 잡았고, 학교에 갈 때면 어린녀석은 꼭 밥하는 애에게 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낮에 까치 밥 좀 줘 응. 베짱이는 지기 꽃밭 돌 밑에 있으니까.”
그렇게 부탁은 하고 나가면서도 녀석은 역시 격정이 되는 듯,
“그 자식은 하루에 몇 번이고 먹는단 말야! 사람은 세 번밖에 안 먹는데.”
하고 중얼거려서 또 제 누나를 웃겼다.
그들 두 아이의 까치에 대한 정성은 대단했다. 그래서 살아났던지 그렇지 않으면 원래 까치란 놈은 생명력이 강한 새여서 그랬던지는 모르나, 그놈은 제법 몸에 털이 매끈하니 났고, 입가의 노랑색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기운이 팔팔하게 잘 자랐다.
여름이 되면서는 베짱이도 자랐으려니와 까치의 식 량도 늘어났다.
“이젠 베짱이 가지곤 안 되겠다.”
큰녀석 종의 말이었다: 그러더니 다음 날부터는 개구리새끼를 잡아오기 시작했다. 과연 그들 형제가 예상했던 대로 엄마와 누나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비난쯤으로 까치에 대한 봉사를 중지할 녀석들이 아니다. 그들은 식구들 몰래 자기네 둘이만 아는 장소, 꽃밭머리에 땅굴을 조그마하니 파고 거기에 소위 개구리의 감옥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까치의 비밀 식량 저장고인 것이다.
까치는 개구리를 참 잘 먹었다. 그래 그런지 자라는 속도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눈알이 새까맣고 윤기가 있다. 깃도 이제는 제법 까치다웠다. 머리와 깃은 아주 진하고 고운 남색인 데다 어깨와 앞가슴께는 하얗기가 눈 같았다. 게다가 사람을 따른다. 더구나 종이와 어린녀석은 더욱 따른다. 방안을 이방 저방으로 날아다니다가는 푸르르 사람의 어깨에 와 앉곤 했다. 그럴 때의 그 눈은 까맣고 큰 게 영락없이 개구장이의 눈 그대로다. 아들애 둘은 아주 고것이 귀여워 죽는다. 자기네 어깨에 까치가 앉았을 때의 그들의 그 만족해하는 얼굴 표정이란 정말. 그러나 집안 여자들에게는 밥하는 애에게까지도 영 환영을 못받았다. 그 이유는 하나 있다. 똥을 아무 데나 함부로 갈기는 그 버릇 때문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남자애들 둘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저거 똥만 방에 안 싸면 참 만첨인데!”
“형! 존수가 있어, 뱐창고로 붙여둘까.”
언젠가는 형제끼리 그런 엉터리 없는 수작을 해서 또 한바탕 식구들을 웃기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온 집안에 까치가 똥을 한번 갈기지 않은 곳이란 없었다. 그렇게 까치가 똥을 갈기면 어린녀석은 얼른 걸레를 집어다 닦으며 슬금슬금 식구들의 안색을 살피곤 했다. 그래 식구들은 결국 그 어린녀석의 입장에 동정을 해서 까치똥에 대해서는 전처럼 짜증을 내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하도 여러번 당하다보니 만성이 되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련데 사실은 그보다 더 질색인 점이 하나 또 있었다. 그건 식사때다. 이제 아주 식구들에게 완전히 길이 들어버린 까치는 식사때면 자기도 식탁에 한 자리 끼여드는 것이었다. 참 잊었지만, 까치가 얼만치 커서 방안을 날아다니게 되었을 무렵부터는 베짱이나 개구리대신 날고기와 생선, 두부 등을 먹여 키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개구리 잡기에 어지간히 지쳐버렸던 두 녀석은 머리를 짜다가 좋은 것을 생각해내었던 것이다. 결국 까치란 새는 낟알을 먹는 게 아니라 벌레를 잡아먹는 새이니, 벌레를 즐겨먹는 그놈이면 쇠고기나 생선도 먹을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는 성공이었다. 쇠고기나 생선을 여간 잘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결국 두 녀석은 멀리 들에 나갈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하루는 밥상에 날아온 까치가 두부를 슬쩍 한 점 물고 달아났으니, 결국 두부도 또한 그의 좋은 양식임을 알아내었다.
그래 그들 형제는 그 후부터 그리 힘들이지 않고 까치 주인 구실을 할 수 있었다.
까치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이제 몸집이 거의 어미까치만치나 컸다. 깍깍 하고 제 소리도 때때로 질렀다. 방바닥을 그 독특한 걸음걸이로 깡총깡총 뛰다가는 후르르 날아올라 마루로 나간다. 유리에 부딪치고 털썩 바탁에 떨어지곤 했다.
그러던 어떤 날, 마침내 까치의 신의(信義)를 시험해야 할 날이 왔다. 이제 여름도 한고비에 접어들고 보니 까치를 위해 언제까지나 마루의 유리문을 닫아둘 수도 없었던 것이다.
“돌아올 거다.”
“그러다 안 돌아오면…….”
“글쎄 돝아올 거야.”
“그러다 사람들이 잡으면.”
“나는데 어떻게 잡아.”
“그래두…….”
형제끼리 마루에 마주앉아 하는 대화였다. 어린녀석은 까치를 두 손으로 잡고 그의 그 까만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형편이 언제까지나 그렇게 까치를 방 안에서만 키울 수는 없다는 것을 어린녀석도 잘 알고 있었다. 형의 말대로 어차피 밖에 내놓긴 놓아야 할 텐데 암만해도 불안했다. 녀석은 또 한번 까치의 그 까만 눈을 들여다보았다. 순하디 순해보이는 그 눈. 장난은 몹시 쳐도 악의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눈. 까치는 그의 손 안에서 가슴을 팔닥거리고 있었다. 어린녀석은 손바닥에 까치의 체온을 따스하니 느끼며 어쩐지 울고 싶어졌다.
“그까짓 제 주인도 모르구 돌아오지 않는 거라면 그건 키워 뭘해!”
방 안에서 그들 형제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은 듯 큰딸애가 마루로 나오며 말했다.
어린너석이 제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또 쥐고 있는 까치에게로 눈을 떨구었다.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까치가 두 다리를 바둥거리며 말똥하니 그를 올려다본다.
“돌아온다. 왜!”
어린너석이 제 누나를 향해 꽥 소리질렀다. 그러고 보니 이제 별수 없이 까치를 믿어보는 도리밖에 없이 된 것이다. 어린녀석은 일어서 마루끝으로 갔다. 또 한번 손의 까치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사람에게 이르듯이,
“꼭 돌아와야 한다. 안 돌아와만 봐. 넌 죽어!”
하고 등 뒤의 형과 누나를 돌아보며 멋적게 씩 웃었다. 그는 밖의 하늘을 높이 우러ㄹ보았다. 파랗고 넓다. 한없이 넓고 높다. 그는 까치를 쥔 손을 들어올렸다. 꼭 돌아와야 한다는 간절한 기대와 믿음으로 그는 한번 더 까치의 그 까맣고 순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아직 마음 한 끝에 희미하게 얼룩져있는 불신으로하여 그의 손끝은 까치의 가슴 위에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돌아온다. 어서 날려봐.”
등 뒤에서 형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어린녀석은 선뜻 손의 힘을 빼었다.
푸드득 .
까치는 기운차게 날아갔다. 저만치 대문기둥 위에 가 앉았다.
깍깍깍깍, 깍깍깍깍,
까치는 아주 즐거운 듯 깍깍거리며 꼬리를 아래로 몇 번 까불거렸다.
“저봐 멀리 안 가지 않어.”
큰딸애가 어린녀석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역시 보기에 좀 안됐던 것이다. 어린녀석은 불안한 얼굴로 대문기둥 위의 까치만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어린 가슴 속에서는 아차 손에서 까치가 빠져나가는 순간, 방금 전까지 기대와 믿음이 차지하고 있던 부분으로 하나 가득히 불신과 불안이 확 번져나갔던 것 이 다.
까치는 한번 더 깍깍 하더니 훌쩍 다시 날아 지붕 위로 올라가버렸다. 어린녀석은 얼른 마당으로 달려내려갔다. 그리고는 지붕 위를 향해,
“깍깍 깍, 깍깍 깍.’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평소에 그가 까치를 부르는 신호였다. 그러나 까치는 둘레둘레 사방을 둘러볼 뿐 주인이 부르는 소리는 못 들은 체였다. 어린녀석은 그럴수록 더욱 더 열심히 불렀다. 지금이면 그래도 어찌어찌 불러들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시간이 흐르면 그만치 그럴 가능성이 희미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애타는 심정을 알 까닭이 없는 까치는 또 훌쩍 날더니 지붕을 넘어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안 돌아오면 난 몰라, 씨!”
그렇게 누구에게라 없이 투덜거리며 마루로 올라오는 어린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돌아올 거야. 걱정마!”
종이 녀석이 동생을 위로한다.
“안 돌아오면 난 몰라. 형이 놔주라고 했으니까.”
어린녀석은 이제 거의 기대를 걸고 있지 않는 그런 침통한 얼굴이었다.
“돌아와요!”
“난 몰라!”
“글쎄 돌아와요!”
“돌아올 게 뭐야. 내가 아무리 불러도 고새끼 돌아보지도 않고 홀짝 날아가던데!”
어린녀석은 방금 전에 지붕 너머로 날아가던 까치가 몹시도 서운했던 모양이다.
깍깍깍깍.
그러는데 금방 장독대 위에서 까치소리가 들려왔다.
“……?”
어린녀석이 획 돌아서 마루끝으로 달려나갔다. 왔다. 장독대 위 항아리 뚜껑에 앉은 까치가 두룩두룩 마당을 둘러보고 있었다.
“깍깍깍깍!”
어린녀석이 간절한 목소리로 까치를 불렀다. 손짓까지 하면서. 그런데 정말 까치가 주인의 음성을 알아들은 것일까, 푸르르 날아 마루끝에 내려앉았다.
“야 ! 하하하. 왔다 왔어. 하하하.”
얼른 마루문을 닫아버린 어린녀석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과학자들이 로케트를 발사했다가 그 캡슐을 성공적으로 회수했을 때도 아마 그런 얼굴을 하는 것이나 아닐까.
그렇게 첫번 외유(外遊)를 성공시킨 녀석들은, 마치 돌아온 우주비행사에게나처럼 까치에게 진탕 쇠고기를 다져먹이는 것이었다.
어린녀석은 이웃집 제 친구들에게 마음껏 까치 자랑을 했다. 나갔다가도 자기가 한번 깍깍 하고 부르기만 하면 푸르르 날아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어린애들뿐 아니라 이웃의 부인들까지도 신기해들 했다.
다음 날은 좀더 자신을 가지고 그들 형제는 까치를 밖에 내보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까치는 그리 멀리 가질 않았다. 거의 집 둘레에서만 왔다갔다 하였고, 생각나면 방 안에도 날아들었다 나가곤 했다. 그러니까 까치에게는 밖과 방 안의 구별이 있을 리 없다.
이제 종이 녀석과 그의 동생은 까치 때문에 누나나 엄마에게 꾸중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뿐 아니라 그렇게 밖에 나가게 되면서부터는 집 안에서 성가시게 굴지를 않으니까 식구들 중의 여자측에게도 어느 정도 귀염을 받게 되었다. 사실이지 아침에 문을 열어주면 날아 나갔다가 저녁때가 되면 푸르르 마루로 날아 돌아오는 그놈은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그런 그놈은 집의 바둑이와도 사귀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껑충껑충 뛰며 까치를 따라다니던 바둑이도 그놈은 언제든지 날 수 있는 놈이란 걸 깨달아 알았던지 이제는 아무리 가까이 와도 따라가 잡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런 기미를 알아차린 까치는 이번에는 이편에서 바둑이의 약을 올렸다. 누워자는 바둑이의 등에 턱 올라앉는다. 그래도 바둑이는 눈만 그느스름히 뜨고 한번 바라볼 뿐 덤벼들진 않는다. 덤벼들어 봤자 그놈은 번번이 홀짝 날아오르는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애당초 묵살해버리는 것이 좀 간지럽기는 하지만, 그대로 수문장으로서의 위신이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그뿐이 아니다. 까치 그놈은 참 익살스러운 데가 있다. 바둑이가 어쩌다가 골목길을 산책이라도 하노라면 까치 그놈도 그의 뒤를 따라온다. 그린데 제 장기대로 날아서 따라온다면 그거야 괴이할 것도 없겠는데, 그놈은 무슨 생각에선지 두 다리를 깡총깡총 뛰어서 바둑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이웃집 사람들이 신기해서 깔깔거리며 바라보았다. 그렇게 해서 까치는 근방에서 일약 명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골치아픈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까치가 이웃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재롱을 부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하루는 누군가가 요란스레 대문을 두들겼다. 마침 아내가 문을 땄다. 얼굴에 꺼멍칠을 군데군데 한 사나이가 서있었다.
“저 죄송하지만 저의 담배를 좀 …… .’
사나이는 헤헤 웃으면서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담배라뇨?”
아내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
“.그런게 아니구, 저 요 골목 안집에서 온돌을 고치고 있는데요, 댁의 까치가 그 우리들이 피다 옆에 놔둔 담배갑을 물고 날아갔습죠. 헤헤헤.”
사나이는 저만치 장독대 위를 가리켰다. 과연 거기 장독 위에서 까치가 무언가 열심히 물어뜯고 있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아내는 알아차렸다. 장독대로 달려 올라갔다. 까치가 홀짝 날아갔다. 거기 담배를 남겨둔 채. 그런데 그 담배란 게 거의 매 개피마다 까치의 그 제법 억센 부리로 구멍이 뚫려있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게 어찌다 못난 장난을. 그런데 담배를 다 뜯어놨구먼요. 정말…….”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는 것을 결국 아내는 새 담배를 사다주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 일꾼들의 담배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까치는 심심치 않게 이웃에 사건을 일으키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웃집 빨래에다 똥을 갈겼다는 것쯤은 담 너머로 부인들끼리 한바탕 웃고 말았지만, 어떤 날은 아침 일찌감치 반장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까치가 치솔을 물고 도망쳐왔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어린녀석이 뒷마당에서 집어다주는 치솔을 받으며 이가 몇 대밖에 없는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다.
“허허혀, 이제 이도 몇 대밖에 안 남은 주제에 치솔을 다 해 뭣하느냐는 거지. 허허허.”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사건은 점점 발전해갔다. 구멍가게 앞에 내놓은 두부 목판을 마구 쪼아먹어서 난장판을 만들었다는 둥, 아랫집 부인이 쇠고기를 사다놓고 잠깐 돌아선 틈에 그 중 한 점을 물고 달아났다는 둥, 그저 웃고만 지낼 수가 없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으머 아내가 애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얘, 그 까치 말이다. 이젠 정말 이웃에 너무 피해를 끼쳐서 어떻게 해야겠다.”
“으응, 그까짓 쇠고기 한 점 가지구 뭘. 사다주면 되지.”
어린녀석이 수윌하게 대꾸했다.
“그런게 아냐. 어떻게 새장을 만들고 가두어 키우든가 해야지.”
까치가 나가서 말썽을 부릴 때마다 그 뒷처리는 꼭 자기가 맡아야 하는 아내로서는 정말 귀찮은 존재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주 재롱까지 부릴 줄 알아, 대야에 물을 떠다 놔주면 그 안에 들어가서 제법 찰랑찰랑 목욕까지 하고 나오는 그놈을 어린녀석이 놓을 리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까치는 점점 그 날아 돌아다니는 범위를 넓혀갔다. 이제는 낮에 그가 어디까지 날아가서 무슨 짓을 하다 돌아오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오히려 이웃에서의 말썽은 덜 부렸다. 그러나 그건 반드시 까치가 이제 얌전해졌다는 증거로 볼 수 없었다. 다만 까치가 장난을 치고 돌아다니는 장소가 집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그 피해자의 원성이 집에까지 들려오지 않을 따름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그 증거로는 어느 날 저녁 기어이 까치가 집으로 돝아오질 않았다.
“이상타 형. 까치가 아직 안 돌아와.”
까치에게 제일 관심이 많은 건 역시 어린너석이었다.
“글쎄 ? 이제 올 거야.”
종이 심상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벌써 골목에는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는데도 까치는 돌아오질 않았다.
“형, 좀 나가봐! ”
어린녀석이 제 형을 조른다. 그 녀석 자기는 어슬하기만 하면 밖엘 못 나가는 것이다.
“이제 올 거야. 좀더 기다려봐.”
마루에 앉아 전등 밑에서 신문의 만화를 보며 킬킬거리던 종이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벌써 어두웠는데.”
어린녀석은 울상이 다 되었다. 그 너석은 밤이 되면 새들이 눈을 못 본다는 것쯤 삔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가본들 어딜 어떻게 찾아볼 수 있을 건가. 별 수도 없이 어린녀석은 자리에 들고 말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어린녀석이 유난히 일찍 눈을 비비며 마루로 나왔다.
“호오, 오늘은 웬일인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 나오게.”
나는 조간신문을 뒤적이다 말고 그 녀석을 돌아보았다.
“그지.”
어린녀석은 신발을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나는 대충 짐작이 갔다. 밤새 생각하던 까치를 새벽같이 찾아나서는 것이리라 하고. 한참이나 있다가 식구들이 모두 일어나 마당에서 세수를 한다, 구두를 닦는다 법석을 하고 있는데 어린녀석이 비실비실 기운 없이 돌아왔다.
“너 어딜 갔댄?”
제 형 종이 물었다.
“까치 찾으 .”
볼이 잔뜩 멘 소리였다.
“까칠 어디서 찾아. 제가 날아 돌아와야지.”
“찾아봐야지 그럼 내버려 둬?”
“글쎄 임마, 어디 간 줄 알고 무틱대고 찾아?”
“그럼 어떡해!”
어린녀석은 공연히 역정을 냈다.
“그래 어딜 어떻게 찾아봤니?”
“뭘 어떻게야. 골목마다 들여다봤지 뭘.”
“골목을 들여다봐? 하하하. 왜 까치가 혹 거기 떨어졌나 해서?”
“누가 떨어졌대. 골목 어구에 가서 가만히 서서 들어보곤 했지 뭐.”
“들어봐? 왜. 까치가 나 좀 살려주 하고 소리라도 지를까 해서?”
종이 녀석은 시종 놀림조였다. 그게 나빴다. 어린녀석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거기 어디 있으면 깍깍 하구 소리를 낼 거 아냐?·…·그러면 찾아같 수 있지 뭐야. 씨이…….”
“걱정 말어. 이제 날이 밝았으니까 돌아올 거야. 너무 멀리 날아갔다가 그만 밤이 돼서 못 돌아온 거야.”
종은 막상 동생이 울기 시작하자 그만 측은한 생각이 들어 그렇게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녀석은 대문을 박차고 들어서면서 대뜸,
“까치 왔어?”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응, 아직 안 왔구나!”
아내의 대답도 어쩐지 젖어있었다.
“정말 어디 가 총에라도 맞아죽은 게 아냐?”
어린녀석은 마루에 책가방을 내동맹이치고 털썩 주저앉으며 또 울먹울먹한다. 그런 바로 그때였다.
깍깍깍,
지붕 위에서 까치소리가 들렸다.
“응! 왔다!”
어린녀석은 후닥닥 마당으로 달려내려가, 지붕을 쳐다보았다.
“엄마! 왔어 왔어! 까치가 돌아왔어!”
안방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엄마, 누나, 그리고 법하는 애까지 모두 마당으로 내려갔다.
“응. 정말 왔구나! ”
모두들 환히 웃었다. 어린것이 부엌에서 쇠고기 부스러기를 들고 나와 사냥꾼들이 나무 위에 매를 불러내리듯이 깍깍깍깍 하며 까치를 불렀다. 그러자 한번 자기의 발목께를 부리로 쪼아보더니 푸르르 날아내려와 어린녀석의 어깨에 앉았다. 그리고는 걸신이 든 것처럼 어린녀석의 손에서 고기를 받아 꿀꺽 꿀꺽 삼켰다.
마루로 까치를 데리고 올라온 어린너석의 기뻐하는 모습이란 정말.
“이봐 엄마. 누군가가 잡아서 매두었었어.” 과연 어린녀석 손 안에서 버둥거리는 까치의 가는 발목에는 흰 헝겊줄이 한 뼘쯤 달려있었다, 그러니까 아마 밤새도록 그 줄을 부리로 쪼아 끊어 간신히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날 저녁, 그들 형제는 자기네 방에 까치를 잡아들고 들어가 뭔가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다음 날 보니까 까치 발목에 하얀 은빛 고리를 해 감아주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집에서 사람이 키우고 있는 까치라는 것을 남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 형제는 그날만은 다시 까치를 밖에 내놓기를 주저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반을 먹는 자리에서 년지시 어린녀석의 의향을 떠보았다.
“얘, 그 까치를 제 고향으로 다시 데려다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왜, 아버지?”
어린녀석이 까치를 법상머리에 앉히고 두부를 떼어 먹여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걸 다시 놔주면 또 누가 잠아 가둘지 아니 ? 그리고 총 가진 사람도 요즈음 많구.”
“……. 그렇지만 이제 이렇게 발목에 표를 했는데.”
“표를? 음.”
나는 어린녀석의 얼굴을 보자 아무래도 내 의견이 잘 통하지 않을 것을 짐작했다. 그러나 한번 더 구슬러 보았다.
“그 까치는 말이야, 본시 태생이 귀골이란 말이야.”
“귀골이 뭐야?”
“응, 그러니까 그 까치는 보통 까치가 아니구 궁전에서 태어난 까치란 말이다.”
“그래 정말!”
“그러니까 태자까치 야, 태자까치.”
“응 정말 까치태자야. 하아! 고향이 궁전이니까.”
어린녀석은 신이 났다.
“그러니까 말이다. 이제 그만하면 다시 궁전으로 돌아가게 해줘야지. 우리집 이런 나무 한 그루 없는 데보다는 궁전의 그 넓은 숲속에 가면 얼마나 호화롭고, 좋겠니. 안 그래 ?”
“그야 궁전 숲이 좋지 뭐.”
“그러니까 이제 그만 궁전으로 돌려보내요. 태자까치가 불쌍하지 않어!”
“그야 물론 궁전 숲이 좋겠지. 허지만…….”
어느 정도 그럴싸하게 듣기는 듣는 모양이었으나 그래도 역시 미련이 더 강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이상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토요일이었던 다음 날 그들 형제가 까치를 종이곽에 넣어들고 나섰다. 밤 사이에 종이 녀석이 어떻게 무슨 소리로 제 동생녀석을 구슬렀던지 어린녀석도 마침내 까치를 궁전으로 돌려보내 주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태자까치는 역시 궁전 숲에서 살아야 해. 그래야 공주까치도 만날 거니까. 그지 형?”
제법 어린녀석의 기분이 좋았다.
“좀 안됐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걸 잡아들고 나가는 걸 보니까. 제 누나들한테 그렇게 구박을 받아가며 키우더니!”
아내가 방으로 들어오며 언짢아한다. 나도 어쩐지 서운했다. 그놈이 꼭 늘 귀염엽만 굴던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반 년 동안에 완천히 한 식구가 되어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한긋, 그렇게 합부로 날아다니다가 총에라도 맞아 변을 당하기보다는 고궁 울창한 숲속에서 절대 보호를 받으며 날아다니는 편이 얼마나 그를 위해 좋은 일일까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아, 멋지더라! 푸르르 날아서 궁전 지붕 위를 한 바퀴 휘 도니까 사방에서 깍깍깍깍 하며 딴 까치들이 모여들지 뭐야. 아마 환영을 하는 모양이지.”
“그러더니 우리 까치가 쓱 돌아서 궁전 기와지붕에 가 앉으니까 딴 까치들이 양쪽으로 쪼르르 늘어서지 뭐야. 그지 형!”
저녁때 집에 돌아온 그들 형제는 방 한가운데에 아주 일어선 채 손짓까지 해가며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허지만 좀 서운하더라! 우리가 돌아올 땐 고건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지 뭐야.”
어린녀석이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임금님을 뵈오러 갔었나보지 뭐. 호호호.”
작은딸애가 깔깔거리는 바람에 모두 웃고 말았다.
“허지만 봄의 그 아지씨한테 잘 부탁했으니까 뭐!”
어린너석의 말이다. 봄에 그들에게 까치새끼를 주던 그 아지씨가 크게 자란 까치를 보고 반가워 해주더라고 한다.
그날 저녁에는 모두들 까치이야기로 늦게까지 앉아있었다. 딸애 둘은 까치가 있을 때는 제일 귀찮아하던 주제에 그렇게 궁전에 돌려보내고 나니까 ‘신데랠라’ 이야기까지 하며 한껏 화려한 상상을 까치를 위해 꾸미는 것이었다.
다음 날 새벽이다. 한방에서 나란히 누워 자던 형제가 잠이 깨어 이불 속에 엎드린 채 또 까치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 밖은 채 밝지 않았다.
“형, 우리 까치도 일어났을끼다 잉?”
어린녀석은 못내 서운한 소리였다.
“그래, 지금쯤 숲속을 이리지리 신나게 날아다니겠지.”
형 종이 녀석도 두 손으로 틱을 고인 채 훤히 밝아오는 문께를 향해 멍청히 시선을 띄웠다.
“정말 그 아저씨가 우리 까치 잘 봐줄까, 형?”
“그럼. 우리 까치는 발목에 표가 있으니까.”
“어쨌든 우리집보다 궁전이 좋지 뭐. 그지 형?”
“그럼!”
그들 형제는 잠시 잠잠하였다.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 까치의 궁전에서의 새 아침을 상상해보고 있는 것 이었다.
깍깍깍,
까치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둘이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형! 까치소리 났어!”
“글쎄?…….”
둘이는 숨소리마지 죽이고 귀를 밖으로 기울였다. 한동안 그러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렸다.
“아냐. 까치가 여길 어떻게 돌아와.”
종이 비시시 웃어보였다.
“그래. 궁전이 더 좋을 텐데, 잉?”
어린녀석도 뭐 아는 체를 했다.
깍깍깍!
이번에는 좀더 분명히 들렸다.
“……?”
“…….”
두 녀석의 눈이 말끔히 서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거의 동시에 화닥닥 일어나며, 문을 드윽 밀고 마루로 달려나갔다.
“형!”
“응!”
두 녀석은 서로 꼭 끼어안았다.
거기 지금 마악 솟아오르는 아침 햇빛을 담뿍 받은 장독대 큰 항아리 위에 분명히 까치가 앉아있었던 것이다.
깍깍깍깍! 그 긴 꼬리를 크게 아래 위로 흔들며 마루쪽을 내려다보았다.
“형!”
어린녀석이 제 형의 팔을 잡아 흔들며 좋아했다. 그러자 온 식구가 모두 마루로 나왔다.
“우리 까치는 역시 태자까치 아니었나베요!”
밥하는 애가 부엌문 앞에 나와 서서 장독대 위 까치를 바라보며 식구들을 웃겼다.
하하하하!
깍깍깍깍!
까치는 또 한번 꼬리를 흔들었다. 아침 햇살에 앞가슴께가 유난히 희다.
-끝-
2017년 5월 26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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