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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청년회 스크랩 붓다의 명상법 - 사념처 수행의 오해와 진실 / 무엇이 진리인가?
대한민국고양이 추천 0 조회 27 14.04.28 10: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무한한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우주보다 더 무한한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기 때문에 지식으로써 알음알이를 주장하지 말라고 했던 인물이 도를 깨달은 인물들의 상징인 붓다 석가모니이다. 노자와 장자의 '도관'에서 밝힌바와 같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부처' 또는 '붓다' 또는 '여래'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 까지도 이해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석가모니가 제자에게 했던 말이 구전으로 전해지는데, 소리나, 음성이나 모양이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여래가 아니다, 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달마대사'의 말인데.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모두 중생이다, 라는 말이다. 사실상 석가모니의 형상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석가모니의 근본 가르침과는 천리만리 어긋난 짓이 아닐 수 없다. 

 

 

부처가 사념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이 사념처를 주장하는 것이며, 팔정도를 주장하는 것이며,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만 해도 300여 종류의 종교나부랭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어리석음은 '진리, 또는 '道' 마져도 다수결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거나 목소리가 큰 자가 옳은 것인냥 끊임없이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지나는 길에 보니. 한국 SGI 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석가모니의 말들 중에 어느 한구절 깨쳤다는 일본인이 스스로 대선사라며 설립한 종교란다. 남묘호랑개쿄... 라는.

우스운 일이다.

 

 

 

대체 광신자들이거나 맹신자들을 양산하는 자들은 정녕 가치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자들일까? 전쟁을 유도하는 자들일까? 진리 아닌 것들에 대해서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한다면... 전쟁을 하자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렇듯이 종교나부랭이들의 착각은 결국 인간이면서 인간들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말이다. 

 

만약에 그대가 어떤 종교에 세뇌 당한 광신자거나 맹신자라면... 이제라도 올바른 길을 가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에 그대가 진정 지성인이라면... 이런 사실에 대해서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은 현시대 까지도 석가모니의 말, 말, 말의 뜻에 대해서 연구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인간 지식으로써 '깨달은 자'들의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었더라면 어찌 수천년 동안이나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구절도 이해 할 수 없었겠는가말이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석가모니의 말과 예수의 말은 시대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표현되는 언어가 다를 뿐이며, '도를 깨달은 자'들의 말은 모두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설명되었으니 생략하지만, 이제라도 올바르게 알라는 뜻에서 '사념처'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사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면서 변질된 불경에 기록된 깨달음에 대한 단서들이 있는데, 그런 말들 중에서 단 한구절에 대해서만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어리석음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수의 말 또한 그러하다. 윤회 또는 육도윤회라는 말이 있는데, 일념법 수행으로써 일념의 뜻을 깨달은 인물들에게는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과 같이 '윤회는 윤회가 아니다' 라고 아는 것이며, 더 나아가 "생각의 윤회"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닫게 될때, 비로소 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말 중에 가장 중요한 말이 있다면, "원리전도몽상"이라는 말이며, 하나 더 있다면 "백천만겁난조우의 인연"이라는 말이다. 

 

석가모니 가르침의 요지는 "원리전도몽상"에서 깨어나라는 말이다. 예수의 진리로 깨어나라, 진리로 거듭나라, 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서 '원리전도 몽상'이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해답이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제시한 명상법에 기록되어 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핵심, 즉 이 법은 유일한 법이다, 라는 가르침이 있는데, 비야경이라는 초기 경전에 기록된 내용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너무나도 단순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그런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감히 실행하기 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런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 말이.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수생행식도 이와 같다, 그것을 관찰하라" 는 말이다. 

 

"관찰하라" 는 말... 이 말이 왜곡되면서, "觀" 이라고 큰소리를 치는 자들이 소위 옛 선사라는 자들의 말재간에서 볼 수있는 말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무한한 까닭은 이런 말에 대해서 실천하려는 것이 아니라 궁리하고 연구하여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런 어리석음에 의해서 인간들은 우상숭배사상의 노예로 전락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광신자들과 맹신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무지에 의해서 다른 말, 말, 말들이 재 창조된 것이 불경이나 여타 경전이라는 이름의 잡서들이다. 

 

 

위.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 는 말을 한글로 변화 시킨다면... "육체는 나가 아니며, 마음 또한 나가 아니다, 그것을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이름하여 일념법 수행이며, 일념명상법이다.

 

이에 대해서는 생각의 원리, 즉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한 설명으로써 한글을 깨친 자라면 누가나 지식으로써도 이해가 가능할 수 있도록 설명된 책이 '비밀의 언어' 이다.  

 

 

"사념처" 라는 말 또한 "수상행식"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마음의 작용을 일컫는 말이다. 

수상행식에 대해서는 12연기법의 설명과 같이 어린아이가 말을 배움으로써 생겨나는 앎(識)을 일컫는 말이다.

 

 

"수상행식"이라는 낱말의 본래의 뜻은 '얻을 수' 자와 '생각할 상' 자와 '다닐 행'자로써 '어린아이' 즉 순수의식으로 표현되는 "무명"의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에서 -타인들의 말을 통해서- 얻게 되는 생각들에 의해서 "앎(識)이 생겨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앎은 감각기관의 앎이며, 다섯가지 감각기관과 감촉을 합친 여섯가지의 작용에 의해서 마음이 형성된 것이라는 뜻이다.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에게는 마음이 없다.

본래 없던 마음이 생겨난 것이며, 마음에 의해서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뜻이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에 설명된 바와 같다. 

 

 

'원리전도몽상'이라는 말은 '인간이 본래 인간이 아닌데, -내가 인간이다,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아는 앎이 꿈과 같고 이슬과 같으며, 여몽환포령이라는 말과 같이 환상, 몽상이라는 뜻이다. 

 

그대가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아는 앎 자체가 원리가 전도된 망상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상천하유아독존, 하나님, 창조자, 참나, 진아, 부처, 붓다'... 진리로 거듭 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백천만겁난조우'라는 말은 어찌 하여 창조된 말이겠는가? 

그렇다. '도'를 만나는 일에 대해서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우상숭배사상 따위는 세상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들이며, 마음을 유린하기 위한 명상센타들 또한 세상에 널려 있는 쓰레기들과 같이 많은 것들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런 것들을 만남에 대해서 백천만겁난조우의 인연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는가? 

 

그렇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을 만남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 이해 할 수 있음에 대해서 "백천만겁 난조우의 인연"이라고 한 것이다. 인간 관념으로써는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한 일이기 때문이다.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다" 라는 말이 노자의 도관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런 말에 대해서도 이해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니... 어찌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아니 할 수 있겠는가? 

 

 

말은 똑 같은 말인데, 어찌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말이 있겠는가? 

그렇다. 인간 지식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도의 언어" 이다. 이런 말에 대해서 설명된 책의 제목이 "비밀의 언어" 이다.

 

 

말은 똑 같은 인간들의 말인데도 불구하고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증거하는 말이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인간관념으로써는 이런 말에 대해서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조차 할 수 없다 보니... 법거량이라는 말이나, 선문답이라는 말로써 말재간을 부리는 짓들을 일삼는 것들이 소위 옛 선사라는 자들이며, 머리깎은 중생들의 헛소리들이며, 우문우답들이거나, 개그... 와 같은 말재간들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언술이 뛰어나서 나의 말을 옮기는 자.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적이다" 라고 했다. 붓다, 부처, 석가모니의 적들이 곧 머리깍은 광신지들이거나 맹신자들이라는 말이다.   

 

 

지금 도가의 공개강좌 또는 '일념법 교육' 과정에서는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 이치를 공부하는 이들의 선문답이 이어지곤 한다. 물론 '도가'의 '화원'의 -언어의 상대성-에 대한 강좌에 바탕을 둔 말들이다.

 

"언어의 상대성" 이라는 말은 곧 석가모니의 연기법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이런 말들은 인간 세상의 지식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말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석가모니의 깨달음과 노자와 장자의 도에 대한 분명한 이해에 바탕을 둔 말들로써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말들이지만... 이런 설명 역시 지식을 내려 놓아야만 이해가 가능한 말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지식은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상대적인 말들로써 논쟁이거나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며, 지식은 지식이 왜 끝이 없는 것인지 그 이유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 무지라고 한 것이며,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지식은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으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그 결과는 아득한 예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논쟁과 투쟁, 경쟁, 전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서 설명된 바와 같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한자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것이며, 더군다나 우상숭배사상에 바탕을 둔 경전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본래의 가르침은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된지 오래다.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도를 깨달은 인물들의 가르침의 요점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생의 해답'을 찾는 일이다. 고통과 괴로움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삶 자체가 아귀다툼과 다르지 않은 이유는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올바른 앎이 없다는 말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법, 방법, 길이 있는데. 그 방법이 곧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니, 그것을 관찰하라" 는 단순한 가르침이며 진리이다.

 

진리란 종교나부랭이들과 같이 서로가 우리들이 믿는 신이 '진리'라고 주장하므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관념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며, 깨달아 알면 모두가 또한 동등한 앎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이름 지은 것이다. 

 

 

진리란 '진실된 이해' 라는 말이다. 

예를 든다면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석가모니의 말과 같이 언어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앎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등한 입장에서 다툼, 경쟁, 전쟁 없이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지인"이라고 했던 인물이 노장 사상의 노자이다. 이 길은 유일한 길이다. 이 방법은 유일한 방법이다. 이 법은 유일한 법이다. 예수의 말과 석가모니의 말이 그러하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 한구절만이라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대는 진리의 길을 본 것이며, 대도무문이라는 문을 본 것이다. 

 

왜냐하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예수의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 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며. 

석가모니의 "네 본래성품이 부처" 라는 말과 또한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해 할 수 없다면...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 을 열번이나 백번 쯤 읽어 보라.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순수의식의 어린아이 시절에는 마음이 없었으며, 내가 사람이라는 분별도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책의 설명으로써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앎에 대해서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아니라고 하는 까닭은 본래 인간이 아닌 것에 대해서 '인간'이라고 아는 앎이 분별된 앎이며, 원리전도몽상이기 때문이다. 

 

진리에 의존하라.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http://cafe.daum.net/husimwon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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