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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훈데르트바서의 물방울☆]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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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의 물방울]
이보숙 시집 / 시와표현시인선 023 / 도서출판 달샘(2016.06.05)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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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의 물방울
이보숙
훈데르트바서가
도시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그렸다
물방울의 핵심은 푸른색이지만
멍이 들어 있었다
그 주위로 나선형으로 칠해 나간 것은
적색 보라색 초록색 흰색 황토색들,
그것들은
스무 가지 이상의 색깔로 번지고 있었다
언제나 검은색과 함께였다
훈데르트바서가 본 물방울은
고요하지 않았으며 맑고 깨끗지도 않았다
정지된 듯했지만
수없는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나는 가끔 꿈속에서
나선형 물방울의 색채 속으로
굴러 떨어지며
무섭게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다시 나의 세계로 돌아와
물방울의 나선형을 그리워했다
그곳이 나의 내면이었고
내가 사는 지구였다
하루에도 몇 십 번 색깔을 바꾸는 물방울이었다.
한여름의 연주자
이보숙
칠월에 우는 매미 소리,
처음 듣는 것처럼 가슴을 울린다
저 숲속 어딘가 나무줄기에 붙어서
오랜 세월 땅 밑에서 살던 시절을 생각하며
제가 가야할 길을 예감한다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한다
그는 지금 우는 것인가 노래하는 것인가
푸른 하늘과 서늘한 바람
초록이 바다처럼 출렁이는 숲,
목백일홍이 붉게 피는 계절,
매미는 지금 삶에 대한 명강의를 펼치고 있다
제 노래에 취해 매미는 세월 가는 줄 모르면서
인간이 살아 숨 쉬는 한여름이
얼마나 짧은 것인가,
어침 이슬만도 못한 목숨,
그것을 알리려고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인간이 어리석음을 염려함일까
밤까지 연주를 계속한다
듣지 못하는 귀들에게.
아랑후에즈 협주곡
이보숙
보이지 않는 남편의 눈 대신
피아노 반주를 넣는 젊은 아내
창밖에서 나무들이 목을 빼고
방안을 기웃댄다
훤칠한 키에 얼굴이 흰 남자,
갈색 머리칼이 이마 위로 반짝이지만
자신은 볼 수 없다
크고 선한 눈망울을 가진 여자를 위해
기타를 연주한다
아름다운 그녀의 미소를 볼 수 없지만
사랑이 솜털처럼 피부에 만져 진다
회색담장에 매달린 담쟁이도
붉은 잎새를 불타는 선율을 새기고 있는 듯,
바람도 고요하다
음악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아직 오지 않는 한 사람을 기다리는
내 마음도
기타 선율에 거기가 마치
아랑후에즈 오래된 궁전인양 걸음을 멈춘다
피아노 반주에 맞추는 기타선율이 손에 잡힐 듯
고요히 눈을 감고 듣는다
붉고 노란 가을 숲길에 멕새 한 마리
조용히 날아오른다
자작나무 흰뼈들의 숲
이보숙
자작나무 숲에서는 희고 맑은 내가 난다
슬픈 전설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려 할 때
어디선가 피리속리가 들릴 듯하고
나무들을 감싸고 있는 흰 눈발들
그 너머엔 순한 짐승들도 있을 듯하다
그대가 써 보낸 다정한 글귀들
자작나무 잎들이 읽고 있나
숲이 소란하다
겨울새들이 날개 치는 숲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차가운 물이 철썩대는 미시간 호수쯤일까
그대의 먼 나라, 그 길을 막아서는 아픔이
자작나무 검은 상처에 아직 맺혀 있네
그리운 숲,
흰 뼈들 위에 돋은 검은 돌기를 하나씩 만지면
그것들이 들려주는 말들이 있다
깊은 그리움이 만들어낸 흰 뼈들의 숲.
게르니카 게르니카
이보숙
바스크 지역 부활절 축제 중 정오에 요란하게 울린 사이렌
고요하던 게르니카 소도시가 뒤집어졌다
43대의 폭격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장바닥에 모였던 인파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하늘에선 폭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노인과 어린이들의 비명소리 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
삼십 분간 쉬지 않고 쏟아 부은 폭탄들
온 도시가 피의 강물로 변한 시간
동물도 식물도 모두가 지옥으로 뒤엉켰다
부러진 칼을 든 채 죽은 사람
날뛰는 동물들
사지가 찢어진 시신들
온 시가지가 피로 물든 그날 1937년 4월 26일
가끔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를 들여다 볼 때면
무서운 비명이 화폭에서 튀어 나온다
독일구군에게 파괴해도 된다는 명령한
스페인의 프랑코 총통, 그는 지금
유황불 지옥에서 살려달라고
천국에서 아브라함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에게
제발 물 한 방울로 그의 혀를 적셔달라고
애원하고 있을 듯
한국전쟁 때 용산 지역에 커다란 항아리들처럼
떨어지던 폭탄에
남편의 얼굴이 날아가
손목시계와 바지를 보고 시신을 찾았다던
이웃집 아주머니의 창백했던 얼굴이
게르니카의 아이들
울부짖음과 겹치고 있다
이 땅의 남고 북 이산가족
울 힘도 잃은 사람들.
남한강가
이보숙
양수리 한 농장에서
여럿이 야외 식탁에 둘러앉았다
식탁과 의자가 비바람에 퇴색되어 오히려 정겨웠다
지붕 뒤쪽에 오동나무가 보였다
꼭대기 부분엔 빛바랜 가지들이
이리저리 뻗어있고
그 아래는 아직 초록잎이 무성했다
회색빛 가지에 산새 한 마리 날아와 앉았다
외로워서 인가를 찾아왔나 보다
농원은 정답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쪽빛 하늘이 펼쳐져 있고
바람이 시원했다
집 둘레는 온통 나무와 흙뿐,
시월 햇빛이 따스하고도 서늘했다
세상의 잡다한 소식이 침투하지 못할 것만 같은 곳,
빨간 꽈리열매가 담 아래 숨어 있었다
우리들의 담소와 웃음이 골짜기로 퍼져 나가고
강물 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나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된 느낌이 들었다.
*Henry David Thoreau : 19세기 미국의 철학자, 계몽주의자 <월든>의 저자
그리움은 완결하다
이보숙
연분홍 진분홍 진다홍 꽃별들의 잔치,
넓고 갸름한 잎새를 거느리고 작약들이
대단원의 꽃들을 피워낸 초원에
오월이 무르익는다
왼 들판에 다채로운 화원을 차려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구름들도 스카이블루의 하늘에
제 몫의 붓질을 하느라 바쁘다
세상에서 묻혀 온 먼지를 묻힐까
가까이 다가가기 조심스러운 마음,
뻐꾸기도 경계하는지
멀리서 뻐꾹뻐꾹…
작약은 사람을 살리는 약재로도 모자라
화사한 자태로 나를 놀라게 한다
어느 별자리에서 왔누?
우주의 신비를 둥글둥글 싸매고
조롱조롱 힘차게 솟아난 봉오리들이
복실 강아지처럼 귀엽다
별이 되어 가고 말 것 같은 조바심에
그들 모습을 머리에 새기고
가슴에 앉히느라
한참을 들여다보고 또 보고,
화려한 수채화들을
산운마을에 놓아두고 돌아서자니
꽃들도 내 허리를 잡고 늘어진다
깊은 산골에서 몹시들 외로웠나…
허는 수 없이 분홍 다홍 꽃들 위로
하얀 구름꽃 꽃다발을 사뿐히 놓아주고
뒷걸음치며 돌아선다.
해갈解渴
이보숙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린다
노랗게 죽어가던 나무들이
사방에서 젖을 빨듯
쭉쭉 물기 빨아들이는 소리 들린다
큰 나무나 작은 마무나 힘차게
물기를 당겨 마시는 소리 온 숲을 울린다
감자기
내 앞가슴이 불어나더니
뽀얀 젖물이 고인다
갓난아기가 눈도 못 뜬 채
암팡지게 젖을 빨던
생명의 근원
너와 내가 그리던 젖은 산등성이
사랑의 물줄기가 함께 모여 폭포가 된다
갈망이 해갈되는 물줄기
머지않아 푸른 강가에 닿으리라.
청솔가지 위에서
이보숙
청솔가지 위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백로
그렇게 하얗고 맑은 삶을 살고 싶었다
가슴 안에 새파란 청솔을 기르며
그 위에 백로처럼 앉아
푸른 숲에서 이슬을 먹으며 살려했다
청솔가지 위에서 가랑비를 맞으며
조용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백로 가족
늪지 흩어져 삶의 고뇌를 온몸으로 헤쳐가야 하는
저 하얀 무리의 족속,
어제는 천둥번개가 초록 들판을 때리고 지나갔다
청솔가지 위에 앉아 백로들, 온 가족이
푸드덕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무언가에 놀란 눈치다
내 영혼도 깨어 날아올랐다
청솔가지가 나의 안식처가 아니었다
세상은 수시로 물결치고 가야할 길이 많았다
나도 백로 무리처럼 놀라 파랗게 질릴 때가 있었다
푸르른 청솔가지 위에서.
명자꽃나무 편지를 읽다
이보숙
이사할 때
뭔가를 두고 온 것 같은 마음을 따라
찾아간 곳
그곳에 연두 빛 꽃봉오리를 가지마다 매달고
봄 편지를 쓰고 있는 명자꽃 나무를 만났다
몰라보게 자라 성숙한 자태로
양지바른 정원 한 귀퉁이에서
그리움에 젖어 시를 쓰고 있었다
내 무심함, 인사도 없이 떠났던 애 불찰,
너를 잊고, 버려두고 간 내 마음을
떼어버리고 싶었다
이제 분홍꽃잎을 피우려고 기다리는
나의 옛 연인, 명자나무 앞에 서서
조석으로 바라보던 깊은 정을
어떻게 보여줄까?
내 안의 어여쁜 너를 가슴에 안고 이 계절을 지내마
이제야 가벼워진 나의 노래, 너를 위해 부르마.
나일의 신부
이보숙
구대는 한 송이 오월의 바람
깊은 곳에 뿌리 내려 진흙 속에서 온몸으로
맑은 물을 찾아 나섰지
작고 약하여 가쁜 숨을 토해내며
한 모금 이슬로 목을 축였지
푸른 줄기로 뻗어가는 일, 만만치 않았지
고뇌와 갈등으로 얼룩지고
산소와 햇빛을 찾느라 땀과 눈물로 젖은 길
젖 먹던 힘을 다해 헤쳐 나갔지
이윽고
늪가에 넓고 푸른 잎이 물결을 덮는 날
축복처럼
태양 아래 웃음을 머금고 흰 꽃잎 몸을 열고
해질녘 푸른 향내가
그대의 흰 옷자락에 감기어 들 때
부끄러운 모습으로 겸손히 꽃잎을 닫고
또다시 피어날 준비를 했지
희고도 흰 순결의 꽃
가슴에 한 아름 사랑을 품고 그대는
승리의 손짓을 하는 한 송이 싱싱한 수련.
극락을 찾아
이보숙
묘적사妙寂寺는 이름처럼 고요하고 아담했다
여느 절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낮고도 엄숙한 기운이 절 주위를 감돌았다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개울물이 소리쳐 말을 걸어왔다
상투적인 인사가 아니어서
미소로 대답했다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숲에서
뻐꾸기가 아는 체를 했다
나는 가슴이 충만해져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해묵은 보리수 노란 잎새들이 바람결에
우수수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인기척 드문,
서로 다투는 인간세상이 보이지 않는,
극락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내 친구 새 떼들
이보숙
산길을 내려오다가
참새보다 더 작은 새들을 만났다
지금 이곳은 나무와 산, 하늘과 구름, 냇물과 새들뿐
사람은 나 하나다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랐나 일제히 날아오르는 녀석들
배의 깃털이 하얗다
오랜만에 만나는 어린 굴뚝새들
내가 내려오는 것은
소나무 가지에 숨어서 눈여겨 보고있었나
내 가슴속 눈물도 보았을라나
저희들끼리 소곤소곤 의논하고
나를 놀래주려 했나
갈색 날개를 포로롱 포로롱 날리며
달아나는 녀석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이 좋아
외롭지 않아
마을의 곳간을 드나들며 먹이만을 챙기는 줄 알았는데
내 슬픔도 챙기네.
너의 눈을 닮고 싶다
이보숙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쉬는 짐승아
나의 눈은 순한 것이냐 슬픈 것이냐
긴 속 눈썹 아래 모든 비밀을 감추고
이 세상을 달관한 듯,
사막을 지나 먼 곳을 보는 것이냐
가까이 체념을 보는 것이냐
주인이 너에게 화려한 색깔의
천을 둘러 줄 때
사랑을 알았더냐 서러움을 알았더냐
푸른 물줄기와 숲을 향해
부르튼 발바닥을 한걸음씩 내딛을 때
아프더냐 눈물이 나더냐
사람은 자기가 갔던 고난의 길을
남에게도 똑 같이
등짐처럼 지우고자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너의 고뇌를 함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는
그래도 너의 눈을 닮고 싶다
모래바람과 열사의 사막에서 참기만 한고
말 못하는 낙타야,
네 등에 솟은 봉우리 위에 짐도 싣고 사람도 싣고
얼마큼의 시간 위에서 내 노동이 끝나야
내 생도 끝이 날까?
네 생에서 기쁨은 얼마였더냐?
햇빛 바다
이보숙
아침마다 내 창문으로 찾아드는 붉은 노을
시뻘건 햇덩이를 한 아름 안고
넘실대는 검붉은 바다
그 바다에서 오늘도 작은 배를 띄워
하루를 시작한다
붉은노을이 파도치는 나만의 바다애사
살찐 고기들을 낡아 올린다
바다가 내게 베푸는 풍성한 은총
마음속 천개의 손을 모두어
신에게 제를 올린다
작은 우리 안에 자라는 살진 송아지,
순한 어린 양, 수시로 우짖는 작은 염소들,
그것들을 나의 죄를 대신하여
순수의 제단에 올린다
높은 파도를 가르고
내가 헤쳐 나가야 할 바다
내 영혼의 해안을 헤엄쳐 달려가야 할
갈릴리 바다를 향해
경건한 하루를 건너리라 다짐하며
신이 베푸는 평안의 바다로 성큼 나선다.
담쟁이가 피는 집
이보숙
그 집 담쟁이는 오월에 가장 아름답다
기오지붕 밑으로 오월이면 진초록이 번뜩인다
손바닥만 한 잎새들이
푸른 별처럼 돌담에 촘촘히 붙어서
싱싱하게 반짝인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어딘가에서 좋은 소식을 한꺼번에 가져오는 듯
초록 물결이 파도처럼 출렁인다
오월이면 왠지 속이 허해져서
담쟁이 그 집을 찾아간다
밥을 먹으러 가지만,
푸른 오월을 함께 먹으러 간다
내 뱃속에 담쟁이 잎새들이
구수한 된장찌개와 함께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배가 부르고 나면
가물가물 잊혀져가던 사랑도
생각이 난다.
구름판화
이보숙
빨간 단풍잎들 하늘로 올라가 단풍 구름이 된다
느티나무 잎들도 노란 구름이 되고
붉은 버드나무 잎들, 색색깔
푸른 소나무도 함께 구름이 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판화가 생겼다
하늘로 간 부모님, 언니, 오빠 보고 있을까?
잚은 아들 먼저 보내고
중풍에 신음하던 아버지
좀 더 잘 돌봐드렸어야 했는데,
새로 생간 가을 판화,
우리 가족사진이 완성되었다
기러기 한 떼 날아가는 가을.
갈매기의 날갯짓
이보숙
포구의 음식점,
창밖의 갈매기 날갯짓 소리가 쓸쓸하다
날은 어두웠는데
어선들도 어깨를 맞대고
잠자리에 들려하는데
새끼들에게 먹일 것이 부족한가
아직도 알을 품고 있을
어미 새가 걸리는가
서울 역 지하도에서
종이상자로 이불을 삼아
잠자리에 들던 사람들이 스쳐간다
전란 때,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주체할 수 없어
대문을 걸어 잠근 친척집 앞 들판에서
살을 에는 추위에
종이상자도 없이 옷을 깔고
잠을 청하던 일,
갈매기가 언제쯤 돌아가나
나는 자꾸만 창밖을 내다본다
새들은 종이상자라도 있을런지.
알타리 김치
이보숙
전쟁이 자꾸 길어지자 엄마는
큰 보자기에 비단옷을 싸가지고
시골로 곡식을 얻으러 나섰다
나와 엄마가 들어간 곳은
뜰이 정갈한 아담한 기와집,
주인도 없는데
마당 한 귀퉁이에 묻혀있는 항아리를
엄마가 열어 보았다
알타리 김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불러도 대답 없던 여주인이 밖에서 돌아왔다
깔끔한 알타리 밥상
전쟁이 난 후 처음 먹어본 흰 쌀밥,
그녀는 어린 내게 함께 살자고 했다
혼자 산다는 그녀의 진심이 눈꼬리에 묻어났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 말이 없으셨다
문고리를 잡고 선 그 여인을 뒤로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엄마를 따라 돌아왔다
알타리 김치밥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는 그곳에서 살고 싶었다
어머니도 내 마음을 다 알고 계셨을 게다
늙지 않은 은하
이보숙
은하도 늙어간다고 한다
은하의 온도가 낮아지면서
조금씩 삭아든단다
내가 은하에 기대했던 꿈은 어찌는가
나의 생명이 위협 받을까?
밤하늘에 하얀 은하수가 흐르면
그 언저리 오로라 같은 쉼터에서
나에게 예쁜 삶을 살기 원했던
부모님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했는데…
그런데 은하계에
젊어지는 샘물이 흐른다는 소식이다
가스로 이루어진 별무리가
끊임없이 은하를 달궈
절대로 늙지 않는단다
희망이 생긴다
내 유전자를 모두 동원해서라도
스러져가는 나의 별무리를 지켜야 한다
식지 않는 가스가 쉼 없이 분출할 수 있도록
내 아이들이
은하수처럼 파랗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새와 사람
이보숙
검은머리물떼새가 알을 품다가
인기척에 놀라
누군가의 관심을 돌리려 한다
제 딴엔 멀다는 곳으로 날아갔다가
한 참 후 돌아온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알이 사라졌다
사랑스런 아이들이 사라졌다
근처에 남아 있는 사람의 발자국!
머리가 검고 긴 노랑부리
검은 점이 많은 가슴깃털에 슬픔이 묻어있었다
피처럼 붉은 아픔
새끼를 잃어본 자의 가슴에선
끊임없이 붉은 것이 흘러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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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지금까지 지내온 나의 여정, 그 길에서 만난 동물, 식물이 얼마인가.
산과 강들, 그 중에도 여러 가지의 향기를 발하며 계절 따라
피어나던 꽃들, 또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은 모두 내가 건너온 전쟁과
죽음의 골짜기에서 나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 주던 것,
그들이 전하던 재미있는 이야기들 슬픈 전설들
그 것들을 내 나름대로 전하고 싶었다.
네 번째 의 작품이 솜씨가 뛰어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사람들 가슴에 조그마한 감흥을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부모, 형제 모두 타계하고 없는
이승에서 외로운 나에게 벗이 되어 준 시詩야 고마워.
너에게 마음속으로 절 한 번 하고 싶다.
2016년 6월 초여름 북한산 자락에서
이보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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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숙 詩集 [※훈데르트바서의 물방울※]
[ 해설 ] -
참척慘慽의 슬픔을 뛰어넘는 예술, 자연, 인간의 조화
― 이보숙 시인의 시와 삶
권 온 문학평론가
1.
이보숙은 1992년 등단한 이래 다수의 시집 곧 『새들이 사는 세상』,『코코넛 개』,『목련나무 어린 백로』등을 출간한 바 있는 중견시인이다. 화려한 목소리를 내세우지는 않지만, 그녀의 시에는 호소력이 있다. 진실의 언어로 독자의 내면에 다가서는 이보숙의 시는 이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시집 『훈데르트바서의 물방울』에는 오래 숙성된 삶의 향기가 가득하다. 이보숙의 시는 음악과 소통하고 미술과 교감한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작품은 참된 삶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당신과 나에게 이보숙의 시를 읽는 일은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는 소중한 경험과 다른 말이 아닐 것이다.
2.
칠월에 우는 매미 소리
처음 듣는 것처럼 가슴을 울린다
저 숲속 어딘가 나무줄기에 붙어서
오랜 세월 땅 밑에서 살던 시절을 생각하며
제가 가야할 길을 예감한다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한다
그는 지금 우는 것인가 노래하는 것인가
푸른 하늘과 서늘한 바람
초록이 바다처럼 출렁이는 숲
목백일홍이 붉게 피는 계절
매미는 지금 삶에 대한 명 강의를 펼치고 있다
제 노래에 취해 매니는 세월 가는 줄 모르면서
인간이 살아 숨 쉬는 한 여름이
얼마나 짧은 것인가
아침 이슬만도 못한 목숨
그것을 알리려고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염려함일까
밤까지 연주를 계속한다
듣지 못하는 귀들에게
-「한 여름의 연주자」전문
이 시를 주도하는 대상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한여름의 연주자’ 곧 ‘매미’이다. 흥미로운 점은 매미의 ‘연주’또는 ‘명 강의’와 더불어 ‘인간’의 입장을 대변하는 잠재된 화자의 심경이 지속적으로 솟아오른다는 사실이다. 이 시의 화자는 ‘매미’의 ‘한여름’이 ‘인간’의 ‘일생一生’과 동일함을 인식하고 세티멘털한 기분에 휩싸인다. 작품의 화자는 여름마다 늘 듣던 매미 소리를 낯설게 느끼고, 그것이 노래가 아닌 울음일 수 있음을 자각한다. 이제 인간의 삶은 너무나 짧아서 “아침 이슬만도 못한 목숨”이 된다. 이 시에서 흘러가는 ‘세월’이 유발하는 덧없음과 허망함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집약된다. 평범한 자연 현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를 가리켜 시인이라 부를 때, 이보숙은 진정한 시인인 셈이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을 듣노라면
몇 번을 들어도
귀에 뻔쩍 들어오는 대목이 없다
언제나 처음 듣는 곡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 것처럼 낯설다
안단테인가 하면 아다지오고
알레그로인가하면 비바체이다
어설프게 듣다 보면 숨이 멎을 듯 내달리는
오케스트라의 속도에 긴장한다
높은 파도를 타고 찬란하게 끝을 맺는 피날레
그 순간만은 허망한 쾌감에 젖는다
교향곡은 삶의 여정, 내가 살아온 길이다
평지가 어느 날 고갯길로 변하다가
다시 평온해 지는가 하면 깊은 계곡으로 떨어지기도
캄캄한 터널로 빠져 속수무책이다가
다시 평지가 되기도 한다
폭풍우 속을 헤매더라도
라흐마니노프의 몃진 결말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직 다 가지 못한 여정
다시 한 번 그 복잡한 선율을 들어보면
삶의 숙제가 풀릴 듯한 예감이 든다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전문
이보숙은 시「한여름의 연주자」에서 ‘매미 소리’를 “처음 듣는 것처럼 가슴을 울린다”라고 형상화한 바 있다. 시인은 이번 작품에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을 “언제나 처음 듣는 곳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 것처럼 낯설다”로 이해한다. 처음 듣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음처럼 들리는 ‘매미 소리’와 처음 듣는(만나는) 음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음 듣는(만나는)음악처럼 들리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은 공통적으로 형용사 ‘낯설다’와 관련된다.
시의 화자 ‘나’또는 시인이 익숙한 소리나 음악을 낯설게 인식하게 되는 계기는 “삶의 여정”과 관련된다. “내가 살아온 길”은 “아직 다 가지 못한 여정”이지만, 그 ‘길’ 또는 ‘여정’은 이제 곧 ‘끝’이나 ‘피날레’ 또는 ‘결말’을 생각해야만 한다. ‘라흐나미노프의 교향곡’이 갖는 매력은 그것의 ‘끝’이 ‘피날레’가, ‘결말’이 찬란하고 멋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보숙에 따르면 더 이상의 길이 없다는, 더 이상의 여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 허망하지만, 그 길 또는 그 여정의 끝이 찬란하고 멋지게 마무리된다면 우리는 “그 순간만은 허망한 쾌감”에 젖을 수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허망’과 ‘쾌감’ 사이에서, ‘허무’와 ‘기쁨’사이에서 진동하는 것이 삶이라고 말한다. 이보숙은 ‘허망’과 ‘허무’에 포위된 인생을 ‘쾌감’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이라는 음악 또는 예술에서 발견한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며 삶의 허무를 위무하는 극히 짧은 시간의 힘을 곧 순간의 힘을 깨닫는다. 그런 순간이 있기에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자신에게 허락된 여정을 감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당의 제단은 흰 레이스가 깔려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세상의 티끌을 걷어낸
천상에서부터 오는 빛이다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자기의 심장을 활로 켜듯이 그의 얼굴은
심줄이 불거지고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무반주 파르티타 마지막 부분인
샤콘느를 연주하는 중이다
내 몸 속으로 격렬한 파도가 치고 지나간다
한 번도 어미 곁을 떠나본 적 없던 딸아이가
마지막으로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어 들려주던 곡
그 애가 가장 나중 보여주었던 얼굴은
피에타의 성모마리아가
차마 그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던
아들 예수의 고개 숙인 모습을 닮아 있었다
관객 없는 고요한 교회당
그 곳은 천사들로 가득 찬 빈 좌석이
하나도 없었다
맨 앞자리에서 샤콘느를 들을 때
먼 곳에서 백 코러스가 들려왔다
하늘 저 편에서 들려오는 마태 수난곡
나는 베 옷 입은 딸아이를 가슴 한 가득 안고 있었다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서 날아오르던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바흐의 파르티타 제2번」전문
이 시의 공간인 ‘교회당’은 ‘세상의 티끌’과 격리된 ‘천상의 빛’과 같다. 교회당은 번잡한 세속이 아닌 신성한 무대로서의 의미를 갖고, 이보숙은 이 지점에서 ‘음악’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시인은 앞에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을 도입했는데, 이번에는 ‘바흐의 파르티타 제2번’을 제시한다. 이 작품에는 ‘바이올린’, ‘무반주 파르티타’, ‘샤콘느(샤콘)’, ‘백 코러스’, ‘마태 수난곡’ 등 음악과 관련된 다수의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시의 화자 ‘나’를 위무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 시의 화자 ‘나’가 처한 상황은 비극적이다. ‘어미’로서의 ‘나’는 ‘딸아이’의 죽음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보숙은 ‘나’와 ‘딸아이’의 구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피에타’곧 ‘성모마리아’와 ‘예수’를 도입한다. ‘딸아이’와 ‘예수’는 죽은 자식이 되고, ‘나’와 ‘마리아’는 죽은 자식을 감당해야 하는 부모가 된다. ‘나’는 ‘딸아이’의 마지막 절규를 하나의 ‘곡’으로, 어떤 ‘음악’으로 수용한다. 특히 2연 7행의 “내 몸 속으로 격렬한 파도가 치고 지나간다”나 5연 5행의 “하얀 비둘기 한 말미가 날아올랐다” 등의 진술은 음악에서 발원한 시적 환상의 참신한 본보기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음악으로 참척慘慽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수목원에서 들려오는 동고비 울음
삐요오 삐요오 소리 따라 자꾸만
숲으로 들어간다
작은 몸짓
푸른 회색, 흰색, 주황색 깃털도 곱다
딱따구리가 쪼아놓은 나무 등걸 속
짹짹거리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내 아이에게 젖 먹이던 생각이 난다
피 같은 것
하늘에서 너도 기억할까?
하느님은 엄마들을 위로하려고
새들에게 노래를 지어주셨을 게다
저렇게 아름다운 깃털도 입혀주셨을 게다
동고비동고비
이름만 들어도 미소가 돈다
천사처럼 쌕쌕 잠들던, 날아간 나의 동고비
-「동고비를 따라가다」전문
‘동고비’는 작고 예쁜 새이다. 2연의 진술인 “작은 몸짓/푸른 회색, 흰색, 주황색 깃털도 곱다”는 이를 뒷받침한다. 시의 화자 ‘나’는 수목원에서 만난 동고비의 외양과 행동과 조성鳥聲에서 쉽사리 눈길을 돌리지 못한다. ‘나’가 동고비에게 집착하는 까닭은 ‘나’에게 동고비는 단순한 새가 아니기 때문이다. 화자는 동고비를 ‘내 아이’ 또는 ‘너’로 인식한다. ‘내 아이’는 지금, 여기에 없고, ‘하늘’에 있는 돌아간 ‘너’이다. 죽은 자식인 ‘너’와 ‘동고비’는 ‘하늘’이라는 공간에 거주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제 우리는 ‘나’가 동고비의 소리를 따라서 자꾸만 숲으로 들어가려는 까닭을 알 수 있다. ‘나’에게 동고비는 ‘내 아이’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너’에게 젖을 먹일 수 없는 상황 곧 ‘참척’이라는 비극 앞에서, ‘나’는 동고비의 ‘노래’를 발견한다. 시인은 동고비의 노래 곧 ‘음악’이 자식을 잃은 세상 모든 엄마들을 위로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6연과 7연은 이 시의 백미白眉이다. 이 대목은 삶의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시키는 위대한 순간을 감각적인 리듬으로 포착했다. 이보숙은 일찍이 정지용 시인이「유리창1」에서 포착했던 절제의 미학에 비견할 만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린다
노랗게 죽어가던 나무들이
사방에서 젖을 빨듯
쭉쭉 물기 빨아들이는 소리 들린다
큰 나무나 작은 나무나 힘차게
물기를 당겨 마시는 소리 온 숲을 울린다
갑자기
내 앞가슴이 불어나더니
뽀얀 젖 물이 고인다
갓 난 아기가 눈도 못 뜬 채
암팡지게 젖을 빨던
생명의 근원
너와 내가 그리던 젖은 산등성이
사랑의 물줄기가 함께 모여 폭포가 된다
갈망이 해갈되는 물줄기
머지않아 푸른 강가에 닿으리라
-「해갈解渴」전문
시의 화자 ‘나’의 상상력은 1연과 2연에서 나무들이 물기를 “빨아들이고”,“당겨 마시는” 소리를 들었다는 진술로 구체화되고 3연의 “내 앞가슴이 불어나더니/뽀얀 젖 물이 고인다”에 이르러 시적 환상으로 심화된다. 나무의 목마름이 ‘나’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까닭은 여기에서의 ‘나무’가 단순한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의 ‘나무’는 ‘갓 난 아기’ 곧 ‘신생아’를 가리킨다. ‘나’의 젖을 빨던 ‘아기’ 곧 ‘너’는 더 이상 ‘나’의 곁에 없다. 목마른 나무에 내리는 비는 이제 산등성이를 적시고, 물줄기를 이루어 폭포가 된다. ‘나무’의 ‘갈증’을 해소하는 물줄기는 ‘너’를 향한 ‘나’의 ‘갈망’을 해갈하는 역할을 동시적으로 담당한다. ‘참척’의 정황이 절망으로 귀결되지 않고, 사랑으로 승화된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아픈 미덕이다. 그리하여 5연 4행의 “머지않아 푸른 강가에 닿으리라”에 담긴 이보숙 시인의 예언자적 풍모는「사랑의 변주곡」의 김수영에 근접하는 것이다.
그와 만난 햇수가 45년이다
작은 화분 속 자그마했던 식물
긴 세월, 유월이면 흰 꽃을 피웠었다
그 하얀 꽃잎은 늘 맑은 이슬방울 속
제 영혼을 보여 주었다
지난 해 흰 곰팡이들이 넓은 이파리를 침범하더니
시름시름 앓았다
꽃도 못 피우로 잎이 노랗게 변했다
정원사를 불렀다
뿌리에 깊은 병이 들어 있었다
가까스로 위기를 면했다
뿌리를 정리하고 비료 흙과 모래를 섞어
새 화분에 옮겨주었다
말도 못하고 한참 않았나보다, 그렇게 미련해서
사람들도 목숨을 잃는 것일까?
바람이 잘 통하게 하고 햇빛도 많이 쏘였다
베란다에서 겨울을 푸르게 이겨내고 있다
올해는 너끈히 꽃을 피우리라
성장해서 내 품을 떠난 아이들이 생각났다
-「문주란 사랑」전문
이보숙의 시가 출발하는 지점은 대개 ‘음악’이나 ‘자연’인 경우가 많다. ‘라흐마니노프’, ‘바흐’ 같은 음악이나 ‘매미’, ‘동고비’, ‘나무’ 같은 자연을 시의 자양분으로 삼는 경향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번에도 ‘문주란’이라는 자연을 시의 대상으로 포섭한다.
‘4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시의 화자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식물’은 단순한 식물을 넘어선다. ‘나’가 정원사를 불러 문주란의 ‘깊은 병’을 치료해준 까닭은 그것을 ‘가족’처럼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 말을 못하는 미련한 식물이 한참을 앓듯이 ‘나’가 아는 ‘사람들’도 목숨을 잃는다는 진술은 독자들에게 강한 충격으로 다가설 수 있겠다. 수십 년을 함께 한 가족과의 이별 가령 부모님의 별세와 같은 사건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5연인 “성장해서 내 품을 떠난 아이들이 생각났다”에는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화자 ‘나’가 자신의 품을 떠나서 각자의 가정을 꾸린 ‘아이들’ 곧 ‘자식들’을 생각한다는 의미가 일차적이지만, 동시에 ‘나’는 ‘부모님’과 이별한 현재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이보숙 시인은 우리가 ‘부모’와 ‘자식’이라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냉기에 심장이 얼을 것 같았다
따뜻한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워지는 곳
최대한으로 구부려보세요
흰 까운이 명령했다
두근거리는 내 허리께로
서너 번 주사 바늘이 쑤시고 들어 왔다
두 다리로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의 다리가 없어졌다
아무런 감각이 없다
의사들이 뼈를 깎고 살을 찢고 꿰매는 동안
꿈속으로 찾아오신 아버지
열네 살에 이별한 아버지가 왜 오셨을까
한쪽이 마비되어 지팡이에 의존해 겨우 걸으시던
젊어서부터 머리가 희어서 할아버지 같던 아버지가
어떻게 오셨을까
하늘에서부터 지팡이를 짚고 오셨나
중풍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엄마 대신 보살펴야 했던 시절
나는 마비된 아버지의 한편 팔 다리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최대의 숙제였다
이제, 아버지의 비애가 느껴진다
열네 살의 슬픔이 북받친다
잠에서 깨어나니 나의 왼쪽 무릎아래가
하얀 석고로 감싸여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비됐던 한쪽 다리가 내 손에 만져졌다
아버지의 병든 손을 꽉 잡고 싶었다
-「외과 수술실」전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수술’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사건이다. 외로움이 배가되어 유독 서늘한 수술실이라는 공간은 시인의 말처럼 “따뜻한 누군가의 얼굴이 그리워지는 곳”이다. 수술을 하는 동안 시의 화자 ‘나’는 ‘아버지’를 만난다. 물론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의 만남이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진귀한 경험인 것만은 틀림없다.
‘나’는 “머리가 희어서 할아버지 같던”,“한쪽이 마비되어 지팡이에 의존해 겨우 걸으시던”,“중풍에 시달리는”“아버지”를 기억한다. 너무 어린 나이였던 탓에 ‘나’가 “마비된 아버지의 한편 팔 다리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열네 살’은 아버지의 ‘비애’를 느끼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외과 수술을 받으며 ‘나’는 비로소 열네 살 소녀의 ‘슬픔’을 체감한다. 수술이 끝난 후 ‘나’가 하얀 석고로 감싸인 제 다리를 만지는 행동은 아버지의 마비된 다리를 만지는 행위이기도 하다. ‘가족’특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이보숙 시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항목이 된다.
은하도 늙어간다고 한다
은하의 온도가 낮아지면서
조금씩 삭아든단다
내가 은하에 기대했던 꿈은 어찌 되는가
나의 생명이 위협 받을까?
밤하늘에 하얀 은하수가 흐르면
그 언저리 오로라 같은 쉼터에서
나에게 예쁜 삶을 살기 원했던
부모님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했는데…
그런데 은하계에
젊어지는 샘물이 흐른다는 소식이다
가스로 이루어진 별무리가
끊임없이 은하를 달궈
절대로 늙지 않는 단다
희망이 생긴다
내 유전자를 모두 동원해서라도
스러져가는 나의 별무리를 지켜야 한다
식지 않는 가스가 쉼 없이 분출할 수 있도록
내 아이들이
은하수처럼 파랗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늙지 않는 은하」전문
‘은하銀河’는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별 무리를 가리킨다. 많은 이들은 은하를 바라보면서 꿈을 꾸고 소원을 빌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 시의 화자 ‘나’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은하는 유구한 기복祈福의 매개가 된다. 1연과 2연에서 ‘나’는 은하의 소멸 가능성을 마주하면서 걱정과 근심을 노출하지만, 3연에서는 ‘늙지 않는 은하’라는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서 숨길 수 없는 기쁨을 표출한다.
‘나’가 은하라는 대상에 집중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네 ‘삶’ 또는 ‘생명’과 직결된다는 나름의 신념 때문이다. 작품의 화자 ‘나’는 ‘부모님’에게서 ‘나’로 이어진 ‘삶’이 ‘내 아이들’에게도 원활하게 연결되어서 그들이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인간은 ‘개체발생’은 물론이거니와 ‘계통발생’의 국면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는 존재이기에,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하는 일은 대단히 긴요하다. 4연 4행~5행의 진술인 “내 아이들이/은하수처럼 파랗게 살아갈 수 있도록…”에 담긴 염원은 ‘영원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림 속 여인들은 꽃 드레스를 입고 있다
아이들도 명암이 살아 있는 옷을 입고 있다
빛이 난다
아이들에게서 나팔꽃 채송화가 피어난다
여인들은 바이올린이나 플롯을 들고
봄의 왈츠를 들려주는가 하면
아이들도 트럼펫과 피콜로를 잡고
하이든과 장난감 교향곡을 연주한다
화려한 옷, 손톱발톱의 네일 아트
황금빛 또는 제비꽃으로 물들인 머리카락
모두 낙천주의의 냄새가 난다
세상의 모든 번뇌를 초월한 듯한 미소
예술에 심취한 따뜻한 표정에
사람들이 끌려든다
그 현란한 현대인의 채색에서는
슬그머니 슬픔이 배어 나오고
쓸쓸한 강물이 흐른다
그들의 매혹적인 몸짓에서는 알 수 없는 고독이 묻어 나와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엿보이고
화가가 만들어 놓은 천사 같은 인간상들은
가늘고 슬픈 브루흐의 바이올린 소리를 내고 있다
거친 파도에 휩쓸려 휘익 날아 갈 것만 같다
-「현대인」전문
‘음악’, ‘자연’, ‘가족’ 등 이보숙의 시 세계를 규정하는 키워드들이 궁극에는 ‘인간’이 도사리고 있다. 이 시에는 ‘음악’과 더불어 ‘그림’이라는 또 하나의 ‘예술’이 등장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이나 ‘아이들’은 화려하고 현란하며 매혹적이다. 시인이 이 작품에서 형상화하는 ‘천사 같은 인간상들’은 ‘현대인’이다. 현대인을 감싸는 ‘명암’과 ‘빛’과 ‘채색’은 ‘낙천주의’로 포장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에게는, 아니 우리에게는 숨길 수 없는 ‘슬픔’과 ‘고독’과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봄의 왈츠’나 ‘하이든의 장난감 교향곡’같은 밝고 명랑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다. 현대인은 때로 ‘가늘고 슬픈 브루흐(브루후)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보숙 시인은 이 시에서 언젠가 보들레르가 그러했듯이 현대인에 관한, 우리들 자신을 향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것이다.
3.
이번 시집에서 이보숙은 음악과 미술을 포함한 예술을 시의 동력動力으로 삼았다. 또한 시인의 시에는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자연이 그득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할 바는 그녀의 시에 제시된 예술과 자연이 결국 가족을 지향하고 인간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이다.
이보숙은 시「새와 사람」에서 “피처럼 붉은 아픔/새끼를 잃어본 자의 가슴에선/끊임없이 붉은 것이 흘러내린다”라는 처연한 진술을 감행한 바 있는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담은 이른바 ‘참척’시편이 시인의 시편을 관류하는 핵심으로 자리한다.
우리가 부모와 자식의 진정한 관계를 되돌아보고, 현대인으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통찰한 이보숙의 시를 읽는 일은, 참된 자아의 진짜 삶과 마주하는 진귀한 경험과 다른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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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이번 시집에서 이보숙은 음악과 미술을 포함한 예술을 시의 동력動力으로 삼았다. 또한 시인의 시에는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자연이 그득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는 그녀의 시에 제시된 예술과 자연이 결국 가족을 지향하고 인간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이다.
이보숙은 시「새와 사람」에서 “피처럼 붉은 아픔 / 새끼를 잃어본 자의 가슴에선 / 끊임없이 붉은 것이 흘러내린다”라는 처연한 진술을 감행한 바 있는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담은 이른바 ‘참척’ 시편이 시인의 시편을 관류하는 핵심으로 자리한다.
하느님은 엄마들을 위로하려고
새들에게 노래를 지어주셨을 게다
저렇게 아름다운 깃털도 입혀주셨을 게다
동고비 동고비
이름만 들어도 미소가 돈다
천사처럼 쌕쌕 잠들던, 날아간 나의 동고비.
―「동고비를 따라가다」 부분
더 이상 ‘너’에게 젖을 먹일 수 없는 상황 곧 ‘참척’이라는 비극 앞에서, ‘나’는 동고비의 ‘노래’를 발견한다. 시인은 동고비의 노래 곧 ‘음악’이 자식을 잃은 세상 모든 엄마들을 위로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6연과 7연은 이 시의 백미白眉이다. 이 대목은 삶의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시키는 위대한 순간을 감각적인 리듬으로 포착했다. 이보숙은 일찍이 정지용 시인이「유리창 1」에서 포착했던 절제의 미학에 비견할 만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 권온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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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寶淑이보숙 시인∥
∙ 서울 출생
∙ 경희대 영문과 졸업
∙ 의정부시 경민중고교에서 영어 교사 역임
∙ 시집『새들이 사는 세상』발간함으로 문단 활동 시작함
∙ 2007년 시집『코코넛 게』발간
∙ 2010년 시집『목련나무 어린 백로』발간
∙ 2010년『시인들이 뽑는 시인 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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