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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7월 22일 수요일
[(백)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복음서 여러 곳에 나오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는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아래와, 예수님의 무덤 곁에 있던 여인이며(마태 27,56.61 참조),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첫 번째 사람으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 주었다(요한 20,11-18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 시대의 교회가 여성의 존엄과 새 복음화와 하느님 자비의 위대한 신비를 더욱 깊이 성찰하도록 부름받았으며,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가 그 본보기로 합당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예식이 기념일에서 축일 등급으로 로마 보편 전례력에 들어가도록 하였다(교황청 경신성사성[경신성사부], 2016년 6월 3일 교령 참조).
말씀의 초대
아가에서는 밤새도록 성읍과 광장을 돌아다니다가 사랑하는 이를 찾은 신부의 기쁨을 노래한다(제1독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당신의 아버지이시며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하시며, 가서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 아가의 말씀입니다. 3,1-4ㄴ
신부가 이렇게 말한다.
1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2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3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이제는 더 이상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5,14-17
형제 여러분,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2.11-18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요한 20,1) 한 여인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합니다. 구원에 대한 열망은 차가운 주검보다 더 빠르게 식어 버렸고, 이제 아무도 그 곁을 지키지 않습니다.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다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음을 발견하고는, 누군가 그분을 모셔 갔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울고 있는 마리아 곁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가오십니다. 마리아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분께서 눈앞에 계신데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마리아야!”(20,16) 그제야 마리아의 눈이 열립니다. 죽은 사람과 다름없이 살아가던 자신을 살아 있는 인격체로 대해 주신 오직 한 분,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고 삶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바로 그 ‘스승님’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 제아무리 ‘신은 죽었다.’라고 하거나 ‘예수는 없다.’라고 외치며 주님을 무덤에 묻으려 해도, 그분께서는 틀림없이 살아 계십니다. 모두 그분을 외면하고 떠나갈지라도 오직 한 사람, 무덤으로 달려가 눈물 흘리며 그분께서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려는 그 ‘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사건이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만나는 그 ‘한 사람’이 되어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20,18).(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사도들의 사도(Apostle to the Apostls), 위대한 여 사도, 마리아 막달레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초강대국의 흥망성쇠 과정을 보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이집트, 로마...그 나라들의 급격한 쇠락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절정기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해서 약소국을 침공하면서 영토를 확장시킵니다. 확장된 식민지로부터 올라오는 공물과 약탈물로 희희낙락하며 호의호식합니다. 더 이상 땀 흘리며 농사짓고, 뼈빠지게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분수에 넘치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다보니 긴장감이 떨어지고 기강이 헤이해집니다. 장정들은 더 이상 피 튀기는 전선으로 가고 싶지 않다 보니, 이방인 용병들이 투입되며 군사력의 질이 점점 떨어집니다. 그렇게 하느님 무서운 줄 모르고 떵떵거리던 어느 날, 이를 갈며 준비해온 또 다른 강대국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고 침몰됩니다.
보십시오. 상식과 정직, 성실과 겸손의 덕이 사라지고, 자신의 근본과 정체성을 잊고 안하무인으로 살아갈 때, 그 결과는 필패요 폭망입니다. 지금 큰 소리 떵떵 치며 상식 밖의 행동으로 지구촌 전체를 힘들게 하는 몇몇 나라들의 미래 역시 반드시 그러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랜 세월 초강대국 사이에서 수시로 휘둘리며 고초를 겪으면서도 은근과 끈기로 꿋꿋이 버텨온 우리 민족, 분명 하느님의 선택과 총애를 받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의 인생을 묵상하면서 약자들을 총애하시고 존중하시는 하느님 섭리의 손길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그녀의 인생은 산산조각 난 유리병이었습니다. 회복이나 치유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한두 녀석도 아니고 일곱 마귀에 들려 죽을 고생을 하고 있던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매일 매 순간 일곱 친구는 번갈아 가며 마리아의 영혼과 육체를 들었다 놨다 하며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이 인생의 끝자락을 향해가던 그녀가 기적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그분 자비의 손길에 닿아 치유의 은총을 입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다른 치유받은 사람들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그 크신 은혜를 항상 기억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였는지? 이런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은 얼마나 고마운 분이시라는 것을 평생토록, 매일 매 순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마리아 막달레나는 지니고 있던 전 재산을 털어 예수님과 사도단의 의식주 해결을 위한 의연금으로 내어놓았습니다. 빈털털이가 된 그녀는 이제 온 몸과 마음으로 예수님 일행의 구체적인 일상을 보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후 제자들은 앞다투어 줄행랑을 쳤지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모님 옆에 딱 붙어서서 예수님의 인류구원사업이 마무리되는 현장을 끝까지 지켰고 시신까지 수습했습니다.
이토록 충실했던 마리아, 항상 기억하고 감사했던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도 크게 응답하셨는데, 열두 사도가 아니라 그녀를 최초의 부활 목격 증인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마리아를 일컬어 사도 중의 사도, 위대한 여사도라고 칭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람은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고, 가두려 해도 가둘 수 없습니다. 바람에는 무게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습니다. 예언자와 성인과 성녀들은 모두 그렇게 살았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자유로웠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 외에는 붙잡으려 하지 않았기에 자유로웠습니다. 세상의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세상의 비난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욕심과 원망, 분노와 교만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마음이 무거워지면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작은 손해에도 분노하며, 작은 실패에도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새 세상이라는 그물에 갇히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을 비운 사람은 잃을 것이 없기에 자유롭고, 하느님께 맡기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기에 평화롭습니다.
요즘 인공지능 시대를 이끌어 가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예전에 그는 한국에 GPU 20만 장을 공급하겠다고 하였고, 이는 한국의 인공지능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선물처럼 여겨졌습니다. 한국의 기업 총수들과 깐부치킨에서 치맥을 나누며 친근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도 인공지능의 미래를 열어 갈 새로운 기술과 사업 기회를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베라 루빈, RTX 스파크, 젯슨 토르와 같은 이름은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인공지능과 로봇, 반도체 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합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기술도 하나의 선물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선물을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기술이 욕심과 경쟁과 교만의 도구가 되면 사람은 더 무거워지고, 세상은 더 촘촘한 그물이 됩니다. 그러나 기술이 사람을 살리고, 약한 이를 돕고, 공동선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의 열매가 될 수 있습니다.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듯이, 마음을 비운 사람은 기술과 재물과 성공에도 붙잡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도구를 사용하되, 세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오늘 미사의 감사송은 막달레나 성녀의 삶을 아름답게 전해줍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주님을 뵈었으며, 무덤에 묻히신 주님을 찾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경배하였나이다.” 막달레나는 살아 계신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님 곁을 지켰습니다.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교회는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들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사도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 첫 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막달레나가 예수님께 치유 받은 여인이었다고 전합니다. 일곱 마귀가 들렸던 그를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다고 합니다. 전승 안에서는 막달레나가 때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 눈물로 주님의 발을 씻은 여인과 연결되어 묵상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어떤 과거를 가졌느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난 뒤에 어떻게 변했느냐입니다.
막달레나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왔습니다. 상처에서 치유로 나왔습니다. 죄와 고통의 무게에서 사랑과 자유의 삶으로 나왔습니다. 어쩌면 막달레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나약하고, 부족하고, 쉽게 넘어집니다. 원망과 한을 품고 살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무거워 세상이라는 그물에 걸려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에게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대한 갈망입니다. 그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숨어 있을 때, 막달레나는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주님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주님을 찾았습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두려움보다 강합니다. 사랑은 절망의 무덤 앞에서도 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능력과 재능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결심입니다. 사랑은 주님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서는 용기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선포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바로 이 말씀의 증인입니다. 과거의 상처가 그녀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그녀를 가두지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이 그녀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듯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과거의 그물, 욕심의 그물, 두려움의 그물에 갇히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주님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욕심과 원망, 분노와 교만을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기술도, 재물도, 능력도, 성공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 안에서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이웃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사도들에게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고 전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으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님 찾는 사람을 님께서>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요한 20,1)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
어둠을 헤치고
길을 나선
빛 찾는 사람을
빛께서
끝내
오롯이
품으시다
불신을 거슬러
길을 나선
믿음 찾는 사람을
믿음께서
끝내
오롯이
품으시다
절망을 뚫고
길을 나선
희망 찾는 사람을
희망께서
끝내
오롯이
품으시다
미움을 가르고
길을 나선
사랑 찾는 사람을
사랑께서
끝내
오롯이
품으시다
죽임을 뿌리치고
길을 나선
살림 찾는 사람을
살림께서
끝내
오롯이
품으시다
오늘의 성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y Magdalen)
신분 :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부인
활동연도 : +1세기경
같은이름 : 마들렌, 막딸레나, 메리, 미리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는 복음서에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로 묘사되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십자가 곁을 지켰으며(요한 19,25), 저녁때가 되어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요셉이란 이가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예수님의 시신을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실 때도 그 맞은쪽에 있었고(마태 27,61),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몇몇 여인과 함께 무덤으로 달려가 그리스도의 시신이 없음을 발견했으며(루카 24,3), 무덤 밖 동산에서 슬피 울고 있을 때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는 부활하신 스승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할 사명을 받고 제자들에게 가서 그 소식을 전하였다(요한 20,11-18).
복음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또 다른 마리아로는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
(루카 7,36-50)와 성녀 마르타(Martha, 7월 29일)의 동생인 베타니아의 마리아, 그리고 클레오파(Cleophas)의 아내 마리아(4월 9일)가 있다. 이 중에서 죄 많은 여자와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 인물인지 성경에 분명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방 교회 전통에서 오래 전부터, 특히 교황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604년) 이후로는 위의 두 마리아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서방 교회 전승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여인으로서 통회와 관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왔다. 실제 많은 예술가들이 이런 모습의 성녀를 그림으로 많이 표현해왔다.
로마 순교록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중세 시대에 있었던 세 명의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사도 성 요한(Joannes)과 약혼한 사이로 나오기도 한다.
또 성령 강림 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사도와 함께 에페수스(Ephesus)로 가서 전교하다가 그곳에 묻혔다고 전해온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오빠인 성 라자루스와 동료들과 함께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 도착해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 때 순교했다고도 한다.
2016년 6월 3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예수 부활의 첫 목격자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의무 기념일을 축일로 승격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경신성사성 차관 아서 로시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단히 사랑했고, 아울러 그분에게 사랑받은 이 여성의 중요성이 자비의 희년에 새롭게 조명되길 바란다.”며 “이 결정은 여성의 존엄성과 새로운 복음화,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위대함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성녀는 특히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 소식을 알림으로써 그들이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며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을 걷는 교회는 성녀의 이런 특별한 역할에 주목하고 전례를 통해 공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성 요한 로이드(John Lloyd)
활동년도 : +1679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영국(UK)
같은 이름 : 로이드,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영국 웨일스(Wales) 중동부 포이스(Powys) 출신의 성 요한 로이드(Joannes Lloyd)는 교구사제였다. 그는 에스파냐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성 알바누스(Albanus) 왕립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1649년 선교사 서원을 한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웨일스 지방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그는 1678년 11월 티투스 오츠(Titus Oates) 음모의 혼란 중에 글래모간셔(Glamorganshire)의 펠린(Penllyn)에서 체포되어 성 필리푸스 에반스(Philippus Evans)와 함께 웨일스의 카디프(Cardiff) 성에 투옥되었다.
그는 몇 달에 걸친 혹독한 조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가톨릭 사제라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다음 해 7월 22일 카디프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70년 10월 25일 잉글랜드(England)와 웨일스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필립보 에반스(Philip Evans).
활동년도 : 1645-1679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영국(UK)
같은 이름 :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영국 웨일스(Wales) 남동부 지방의 만머스셔(Monmouthshire) 출신인 성 필리푸스 에반스(Philippus Evans, 또는 필립보)는 세인트오메르(Saint Omer)에서 교육을 받다가 20세 때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1675년에 벨기에 남동부 리에주(Liege)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남부 웨일스 지방의 신자들을 사목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다가 글래모건(Glamorgan)의 스켈(Sker)에서 1678년 12월에 체포되었다.
그는 영국 왕을 국교의 최고 수장으로 모시고 교황권을 배격한다는 선서를 거부하여 카디프(Cardiff) 성에 투옥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성 요한 로이드(John Lloyd)를 만났다. 이 두 사람은 티투스 오츠(Titus Oates) 음모의 일환으로 체포되었으나, 그들의 공범 여부에 대한 증거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기소되어 잉글랜드(England)에서 불법적으로 사제직을 수행한 죄로 카디프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