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김만중의 <구운몽>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九雲夢)>은 서포가 선천에서 귀양살이하며 홀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걸작이지만, 또한 자신이 응시 ․ 관조 ․ 통찰한 인생관을 담은 불가적 깨달음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유배지에서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서포는 붓을 들었다.
- 천하에 명산 다섯이 있으니 동에는 동악 태산(泰山)이요, 서에는 서악 화산(華山)이요, 남에는 남악 형산(衡山)이요, 북에는 북악 항산(恒山)이요, 한가운데는 중악 숭산(崇山)이니 이들이 이른바 오악이라.
이 오악 중에 오직 형산 만이 중토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구의산(九疑山)이 그 남쪽에 있고, 동정호(洞庭湖)가 그 북쪽을 지나며, 소상강(瀟湘江) 물이 그 삼면을 둘렀는데, 마치 조상을 의연하게 그 가운데 모시고 자손들이 그 주위에 벌여 서서 손을 모아 공손히 읍하는 것 같이 늘어서 있더라.
일흔두 봉우리가 혹은 곤두서고, 하늘을 떠받치고, 혹은 깎아 세운 묏부리가 구름을 자르니 현란한 미장부처럼 온몸이 수려하고 청상하여 기운이 뭉친 바 아님이 없더라.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는 축융(祝融), 자개(紫蓋), 천주(天柱), 석름(石廩), 연화(蓮花)의 다섯 봉우리이니 그 형세가 자못 가파르게 치솟고, 매우 높아서 구름이 그 낯을 가리고, 안개가 그 허리를 감싸고 있어서 날씨가 청명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그 참모습을 보지 못하더라.
옛적에 대우씨(大禹氏)가 홍수를 다스리고 이 산에 올라가 비석을 세워 공덕을 기록하니 하늘 글과 구름 전자(篆字)가 천만 년을 지나 아직도 남아 있더라. 진나라 때의 선녀 위부인(魏夫人)이 도를 닦아 개친 뒤에 옥황상제의 분부를 받들어 선동(仙童)과 옥녀(玉女)를 거늘고 이 산에 와 지키니 이른바 남악 위부인이라 예부터 그 영험한 자취와 기이한 일은 이루 다 기록하지 못할 터라.
당나라 때의 고승 한 분이 서역 천축국으로부터 들어와 형산의 맑고 아름다운 경치를 사랑하여 이 연화봉 위에 초암을 짓고 거처하며 대승(大乘) 불법을 강론하여 중생을 가르치고 귀신의 발호를 막아내니 불교가 크게 행해지고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믿으며 그를 가리켜 ‘생불(生佛)이 다시 세상에 나셨다’ 이르더라.
그리하여 부자는 재물을 바치고 가난한 자는 부역을 맡아서 첩첩 산봉우리를 깎고, 끊어진 골짜기에는 다리를 놓고, 재목을 모으며 공인들을 재초하여 매우 경치 좋은, 그윽하고 고요한 숲속에 큰 법당을 지은 지라. 두공부(杜工部 : 杜甫) 시에 읊기를,
절 문은 동정 뜰에 높이 열었고
전각 기둥은 적사호물에 박히니
오월 찬바람은 부처의 뼈에 차고
여섯 때 하늘 풍류는 향로에 조회하더라.
하였으니 이 네 구의 글이 그 대법당의 참모습을 말하고도 남음이 있으려니와 산세의 빼어남과 도량(道場)의 웅대함을 남방에서 으뜸이라 일컫더라.
그 화상은 다만 <금강경(金剛經)> 한 권만을 지녔는데 혹은 육여화상(六如和尙)이라고도 하고, 혹은 육관대사(六觀大師)라고도 하더라. 제자 오륙백 인 가운데 계행(戒行)을 닦아 신통한 자가 삼십여 인이라.
한 나이어린 중이 있는데 이름은 성진(性眞)으로 얼굴이 영롱한 빙설같고 정신이 가을 물같이 맑아서 나이 겨우 이십 세에 삼장경문(三藏經文)을 다 익혀 모르는 것이 없고, 총명과 지혜가 여러 중들 가운데서 훨씬 뛰어나매 대사가 지극히 애중(愛重)하여 장차 그에게 의발(衣鉢)을 전하고자 하더라.
대사가 매양 뭇 제자와 더불어 대법을 강론할 제 동정 용왕이 백의노인으로 화신하여 그 법석에 참석하여 경문을 음미하여 듣는지라 하루는 대사가 뭇 제자에게 이르기를, “내 늙고 병들어 산문을 나가지 아니한 지 이미 십여 년이라 지금도 가벼이 움직이지 못하는지라 너희 가운데 누가 수부(水府)에 들어가 용왕께 나를 대신하여 회사(回謝)하고 돌아올꼬?”
이때 성진이 가기를 청하거늘 대사가 기뻐하며 그를 보내니 성진이 칠근가사를 입고 육환장을 이끌면서 표연히 동정으로 향하여 가더라… -
서포 김만중은 이렇게 서두를 꺼낸 뒤에 <구운몽>의 이야기 줄거리를 풀어나갔다.
-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과 무대는 당나라 때 남악 형산. 연화봉에 서역 천축국에서 불법을 전파하려고 온 육관대사가 법당을 세우고 제자를 모아 불법을 강론하였는데 제자 500~ 600명 가운데 계행을 닦아 신통력을 얻은 자가 30여 명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제자가 성진인데, 그 얼굴이 백설 같고 정신이
추수(秋水) 같으며, 나이 겨우 20에 삼장경문을 모르는 것이 없었다.
한편 동정호 용왕은 대사가 대법(大法)을 강론할 때 백의노인으로 변해 법석에 참석하여 법문을 들었는지라 대사가 용왕에게 답례치 못했음을 미안하게 여겨 제자 중 누가 사례를 하러 다녀올 것인가 물었다. 이때 성진이 나서서 스승을 대신해서 다녀오겠노라고 했다. 대사의 허락을 얻은 성진은 동정호로 내려간다. 수부(水府)에 들어가니 용왕이 크게 반가워하며 큰 잔치를 베풀어 융숭하게 대접하고 술까지 권한다. 성진은 재삼 거절하다가 결국 서너 잔을 기울이고 바람을 타고 돌아온다.
한편 남악 서쪽에 살고 있는 선녀 위부인 진군(衛夫人眞君)은 팔선녀를 대사에게 보내어 문안을 전한다. 절에서 나온 팔선녀는 돌아가던 길에 남악의 아름다운 경치에 혹해 두루 구경하다가 석교(石橋)에 앉아 쉰다.
바로 이때 수부에서 돌아오던 성진이 술기운을 가시려고 시내에 내려가 얼굴을 씻다가 은은한 향기에 취한다. 미목이 수려한 성진과 하나같이 아리따운 팔선녀는 짧은 만남 속에서도 그윽한 연정을 주고받는다.
절에 돌아왔으나 성진은 팔선녀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황홀한 꿈에 젖어 속세의 부귀영화를 그린다. 성진의 속마음을 읽은 육관대사는 제자를 꾸짖고 지옥에 떨어뜨려 인간 세상에 환생케 한다. 그가 바로 <구운몽>의 주인공 양소유(楊少遊).
한편 팔선녀도 부처님의 청정한 도량을 어지럽혔다 하여 역시 육관대사에 의해 지옥에 떨어졌다가 인간 세상에 환생한다. 팔선녀는 정사도의 딸 정경패(鄭瓊貝), 황제의 누이 이소화(李簫和), 진어사의 딸 진채봉(秦彩鳳), 낙양 명기 계섬월(桂蟾月), 하북 명기 적경홍(狄驚鴻), 동정호 용왕의 딸 백능파(白凌波), 여 자객 심요연(沈裊烟), 정소저의 시녀 가춘운(賈春雲)으로 태어난다.
양소유는 과거에 급제하여 계속 출세가도를 달린다. 승상 자리까지 오르는 동안 차례로 팔선녀와 인연을 맺어 정소저 ․ 이소화를 첫째와 둘째부인으로, 나머지 여섯 여인은 모두 소실로 거느린다. 양소유의 지극한 부귀영화를 그 누가 따를 손가!
그러나 세월은 덧없이 흘러 벼슬에서 은퇴한 양소유는 지나온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게 된다. 양소유는 마침내 불문에 귀의하여 영원한 생명을 찾고자 결심한다. 이때 한 호승(胡僧)이 나타나 그를 인도하겠노라 나선다. 호승이 짚고 있던 선장으로 난간을 딱 친다.
그러자 보라! 갑자기 사방 산골짜기에서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오르며 주위의 모든 것을 휩싸는 것이 아닌가. 양소유는 다급하게 소리치나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다. 얼마 뒤 연기가 사라지자 자기가 살던 대저택도, 아름다운 여덟 부인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의 손목에는 백팔염주가 걸려 있고, 머리도 빡빡 깎은 중머리로 변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제까지 화려했던 한 삶이 모두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자신은 틀림없이 불도를 닦는 까까중 성진이지 승상 양소유가 아니었다. 육관대사께서 하룻밤 꿈으로 인간세상의 부귀 ․ 공명 ․ 영화의 덧없음을 깨우쳐주셨구나! 세수를 하고 스승께 달려갔더니 육관대사는 인간세상의 재미가 어떻더냐고 묻는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성진은 더 큰 법을 간청한다. 이때 팔선녀가 들어와 불제자가 되기를 청원한다.
나중에 대사는 도통(道統)을 성진에게 물려주고 서역천축으로 돌아간다. 성진은 팔선녀와 더불어 수도에 정진, 모두 극락세계로 왕생하게 된다. -
나는 <구운몽>을 지금까지 다섯 번을 읽었다. 처음에 읽고 나서는 인생무상을 그린 소설로 생각했는데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읽어본 뒤에는 단순히 인생무상만을 그린 작품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구운몽>은 단순히 인간세상의 덧없음만 그린 작품은 아니다. 그 단순한 무상을 넘어 심오한 일대 긍정의 사상을 담고 있는 걸작이다.
동료 소설가 변영희 선생의 박사학위논문 ‘<구운몽>에 함유된 불교사상과 마음치유 요소’도 읽어보고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서포 김만중은 내가 <금오신화(金鰲新話)>를 남긴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홍길동전(洪吉童傳)>을 남긴 교산(蛟山) 허균(許筠)과 더불어 매우 존경하는 선배 소설가다.
서포의 또 다른 소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는 마지막 유배지인 남해에서 쓴 작품이다. 서포는 옛이야기 좋아하시는 어머니 해평 윤씨를 위해 소설을 썼지만 이 마지막 작품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지었다.
서포 김만중은 뛰어난 문장가, 학자, 정치가였지만 그에 앞서서 만고효자였다. 세상에 나와서 높은 벼슬을 하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행세하는 사람은 많지만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은 드무니 안타깝다. 보모님 살아계신 동안 정성을 다해 효도하지 못하는 자들이 어찌 바깥에 나가서 사람구실을 제대로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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