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왕국 이스라엘을 아합이 다스리던 때에 남왕국 유다는 여호사밧이 왕이 되어 25년 동안 남왕국을 다스렸습니다(41절, 42절). 여호사밧 왕은 그의 아버지 아사와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선(善)한 왕이었습니다(43절). 그런데 여호사밧에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는데, 극서은 유다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하게 한 것이었습니다(43절). 산당은 남왕국 유다나 북왕국 이스라엘에 있어서 약간 애매한 부분으로 존재했습니다. 때로는 산당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분향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기에 문제가 없다고 여기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산당이 종종 우상을 섬기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세운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다나 이스라엘 전역에서 예루살렘까지 와서 제사 드리는 것이 번거로운 부분도 있었기에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을 묵인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말 그대로 백성의 편의(便宜)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하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면 될 것을, 백성의 편의를 위해 산당을 허용하였다는 것은 일종의 편법(便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 산당이 종종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전락할 때가 많았기에 산당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따르는 온전한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산당을 없애는 것이 깔끔한 선택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도 애매모호한 산당의 존재를 과감히 없애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에 대해 여호사밧이 잘못한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편의성 때문에, 우리가 번거롭지 않기 위해 편의에 맞게 쉽게 바꾸기도 하고, 변형하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라면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자칫 오용(誤用)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그 싹을 자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라면, 우리의 편의대로 마음대로 해석하여 행하는 것은 지양(止揚)해야 합니다.
남왕국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남색(男色)하는 자들을 없앴습니다(46절). 남색하는 자들이란 그 당시 남창(男娼)을 의미하는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우상의 성전에 있는 남창들과의 성행위를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행하기도 하였었는데, 이러한 악습들을 없앤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에 대해 철저히 근절(根絶)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산당은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그대로 두었던 같습니다. 그러나 산당들도 없앴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호사밧은 왕이 없는 에돔 지역에 섭정왕을 파견하여 관리하면서 다시스에서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을 오가며 금을 구해와서 무역을 행하려고 하였는데, 그 배가 에스온게벨에서 파선(破船)하고 말았습니다(48절). 에시온게벨은 아카바 만에 있는 항구로, 홍해를 통해 남 아라비아, 동 아프리카, 인도 등과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항구입니다. 역대하 20:37에 보면 이 무역선이 에시온게벨에서 파선된 이유는 여호사밧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타락한 아하시야 왕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4절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과 더불어 화평했다고 기록합니다. 남왕국과 북왕국이 전쟁을 그치고 서로 화친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하나님 앞에 악독을 행하는 아하시야 왕과 교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꾸짖으셨습니다(대하 19:2). 아마도 아하시야는 여호사밧이 만든 선박을 이용하여 함께 무역을 행하자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를 기뻐하시지 않아 그 배를 파선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의 아들인 북왕국의 아하시야 왕이 여호사밧에게 무역선을 함께 이용하여 무역을 행하자는 요청을 여호사밧이 거절하게 됩니다(49절). 하나님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이 서로 전쟁하기보다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셨지만,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는 왕과의 화친은 금하신 것입니다.
남왕국의 여호사밧은 자기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될 여호람(50절)을 위해 북왕국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를 여호람의 아내로 삼게 합니다. 결국 우상을 섬기는 아달랴 때문에 남왕국도 우상을 섬기는 죄악이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때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는 악한 자들과의 친밀한 교류는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북왕국에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데(51절), 아하시야도 아합과 마찬가지로 악을 행하며 바알을 섬기는 죄악을 범합니다(52절, 53절). 53절은 아하시야도 그의 아버지 아합처럼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온갖 악을 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므리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할 자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며 악을 행하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어두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당시 남왕국 유다는 아사와 여호사밧으로 이어지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고 있었지만, 북왕국 이스라엘은 오므리와 아합, 아하시야로 이어지면서 온갖 악을 행하는 죄악 속에 빠져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 선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을 섬기기는커녕 우상을 섬기는 데 빠져있는 북왕국의 아합이나 아하시야 등과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화친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비록 여호사밧이 하나님 앞에 선한 삶을 살았지만, 아합이나 아하시야와 교제를 이어가고 있었기에 결국 아합의 딸인 아달랴를 자기 아들 여호람의 아내로 삼게 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적인 정(情) 때문에, 혹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악한 자와 손잡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정결하길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의로운 자였어도 소돔과 고모라 땅에 거하면서 그 악의 영향을 받았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우리가 관계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정결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물론 무조건 끊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경계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이 있듯이 나도 모르게 물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접하고 있는 환경, 사람들과의 관계, 행하는 일들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점검하며 분별력을 가지고 잘 관리하는 복된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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