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찰스 디킨스
대중성도 있고 예술성도 뛰어나다는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1861년)은 핍이라는 어린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그린다. 국내에는 ‘위대한 유산’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제의 뜻은 ‘유산’ 자체가 아니라 ‘유산에 대한 큰 기대’이며, 동시에 당시 사회에 만연한 물질적 기대감을 가리킨다. 따라서 훌륭한 유산이라고 이해되기 쉬운 ‘위대한 유산’보다는 ‘막대한 유산’이 더 옳은 표현이라고 하겠다.
사회적 상승욕은 숱한 근대 서구 문학작품의 주제였는 바 이 작품 또한 ‘신사(紳士)되기’라는 차원에서 같은 주제를 다룬 성장소설이라 할 만하다. 디킨스 당대의 이상적 인간상인 신사는 구시대의 귀족적인 이상과 부르주아적 이상이 결합된 사람으로, 일정한 재산과 교양에다 ‘신사다운’ 덕목을 두루 갖춰야 했다. 이는 서유럽에서도 가장 먼저 시민혁명을 일으켰지만 귀족계급과 근대 시민계급의 부단한 타협을 통해 진행된 영국 근대사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신사는 일정한 재산과 사회적 신분에 따라 정해지는 지배집단으로서 계급사회 특유의 배타성과 가부장적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주인공인 핍은 대장장이인 자형(자兄) 조 가저리의 도제로 몇 년을 보내다 런던으로 가서 신사 수업을 받게 된다. 이런 행운은 그가 어린 시절 우연히 도와주었던 탈옥수 매그위치가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유형지(流刑地) 호주에서 크게 성공해 번 돈을 그에게 몰래 보내 주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핍은 자신의 후원자는 그가 짝사랑하는 에스텔라를 양녀로 기르는 미스 해비셤일 거라고 근거 없이 추정하며 자기기만의 길로 빠진다.
핍의 신사 수업은 진정으로 덕목과 실력을 갖추는 과정과 무관하다. 오히려 신사의 속물적 세계에 동화되어 가던 핍 앞에 어느 날 매그위치가 갑자기 나타난다. 핍은 그동안 자신을 후원해 준 사람이 매그위치라는 것을 알게 돼 큰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은인을 저버리지 않는 인간다움을 발휘한다. 회한 속에 큰 병에 걸려 누운 핍을 조가 멀리 찾아와 극진히 간호하고 심지어 빚까지 갚아 준다. 자신의 속물성을 뼈저리게 깨달은 핍은 외국에서 사업가로서 노력하여 성공하게 된다. 또 자신이 짝사랑하던 에스텔라가 첫 결혼에 실패한 뒤 과거와 달라진 모습을 보고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룬다. 핍은 런던 사교계의 화려함 뒤에 숨은 차별과 착취의 현실을 통해 단련됨으로써 조의 세계가 가진 현실적인 무력함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세계의 인간다움을 간직한 원숙한 인물로 남는 것이다.
어린 핍을 그리는 초반부를 제외하면 작품은 전체적으로 당대 사회의 낙관적 분위기와 판이한 환멸의 정조가 지배하며, 신사의 이상이 어떻게 탐욕이나 범죄와 직결되는지를 가차없이 해부한다. 물론 결말의 주인공이 오늘의 눈으로 볼 때 흡족하느냐는 점은 논란거리이다. 작가가 당대의 신사 개념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은 틀림없으나, 신사 이외의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는 없다. 이런 탐색에 대한 주문은 디킨스에게는 너무 무리한 것이지만, 21세기의 한국 독자라면 거기까지 나아가는 성찰을 통해 고전을 읽는 의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 몇 가지 역본이 있으나 고전에 참맛을 제대로 옮긴 것은 없어 아쉬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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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디킨스의 독특한 풍자 속에서 한 인간의 이성의 회복과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진정한 신사의 본질은 물질적인 풍요나 인위적인 교육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핍: 가난한 고아로 성장해, 신분상승의 강박관념 속에서 정신적 방황을 겪다, 이성과 사랑을 되찾는 인물.
에스테일러: 미스 허비샴의 양녀로 부유하게 자라 가난한 핍의 사랑을 물리치고 드러믈과 결혼하게 되나, 실패하고 다시 핍과 사랑하게 되는 여인.
허비샴: 결혼하는 날 아침에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고 평생 동안 결혼예복을 입은 채, 남자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여인.
탈옥수: 자신을 유배시킨 신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난한 핍에게 도움을 주어 신사로 자라나게 하는 죄수.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소년기의 핍은 누나 때문에 불행했고 허비샴으로 인해 야심을 갖기도 했으며, 에스테일러로 인해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또한 제이거슨이 가져온 '위대한 유산'의 소식 때문에 유혹을 당하기도 했다. 핍은 이러한 유혹과 좌절을 맛보면서 점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깨달아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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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 속의 인간관계 묘사
디킨스가 문학사에서 평가받는 점은 작가 자신이 성장과정에서 체험한 금전문제나 사회부조리의 문제들을 그의 작품에서 예리하게 지적한 데 있다. 그는 해학과 사회적 모럴에 대한 반항적인 작품도 서슴없이 썼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산업혁명 이후에 갖가지 사회악이 난무하는 한편 물질적 풍요에 대한 갈구가 강하던 시기였는데, 여기에 그의 시선이 머물렀다. 초기에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던 악의 양상이 점차 사회적인 차원으로 발전하였고, 그에 따라 인간과 사회를 좀더 깊이있게 그려낼 수 있었다.
아마 영국 문학사에서 디킨스만큼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도 흔치 않다. 당시 모임석상 등에서 "나는 디킨스를 읽지 않았다"고 말하면 대화에서 소외되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그는 죽기 직전에 빅토리아 여왕을 단독으로 만나는 영예를 가졌고, 대중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다른 작가들이 생전에 얻지 못한 인기를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얻었고, 경제적으로도 중년 이후는 풍족했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생애와 작품활동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되는 디킨스는 소박한 평민이나 교양있는 사람들, 빈민이나 여왕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호소력을 가져, 생전에도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그는 하인출신인 조부, 그리고 해군 경리국에 근무하는 하급관리의 장남으로, 남부영국의 군항 포츠머스 교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존은 호인이었으나 금전관념이 희박하여 남의 빚을 갚지
못해 투옥된 일도 있었다. 그 때문에 디킨스는 소년시절부터 빈곤의 고통을 겪었으며 학교에도 거의 다니지 못하고 12세부터 공장에 나갔다. 어린 시절 한때 살았던 채텀은 '잉글랜드의 정원'이라 불리는 아늑한 도시로, 그의 어린 심성에 깊은 인상을 주었고, 훗날 채텀 시대를 거의 유일한 행복했던 시절로 회고할 정도였다.
자본주의의 발흥기였던 19세기 전반의 영국 대도시에서는, 번영의 뒤안길의 심각한 빈곤과, 어린이와 부녀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사회전반을 어둡게 했다. 이러한 사회의 모순과 부정을 직접 체험한 디킨스는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15세경에 변호사 사무소의 사환, 법원 속기사를 거친 끝에 신문기자가 되어 의회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되었다. 그는 소년시절부터 고전을 탐독하면서 일찍부터 문학에 눈을 떴는데, 여기에 기자 생활로 인한 많은 여행은 풍부한 관찰과 식견을 더해주었다.
1833년 어느 잡지에 단편을 투고하여 채택된 데 힘입어 계속 단편. 소품 등을 여러 잡지류에 발표하고, 1836년 이들을 모은 [보즈의 스케치 집]이 출판되어 24세의 신진작가로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했다. 다음해 완결한 장편소설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은 4명(도중부터 5명)의 인물이 여행하는 도중, 곳곳에서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일으키는 단순한 줄거리였으나, 그의 뛰어난 유머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다음 작품인 [올리버 트위스트]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작가적 지위가 확립되었다.
그 뒤 영국과 미국의 각계각층 독자들의 호응에 보답하여 [니콜라스 니클비] [골동품 상점] [크리스마스 캐럴] 등 중. 장편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문명을 떨쳤다. 이렇듯 문명이 높아진 것은 몸소 체험으로 알게 된 사회 밑바닥 생활상과 그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묘사함과 동시에, 세상의 부정과 모순을 용감하게 지적하면서도 유머를 섞어 비판한 점에 있었는데, 그의 소설에 영향을 받아 연소자 학대와 재판의 비능률이 개선되기도 했다.
1850년에 완결한 자전적인 작품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쓸 무렵부터 작품의 질이 조금씩 변하여 그의 후기 특성이 두드러진다. 다음 작품 [황폐한 집]이 그 좋은 예로 이전의 작품처럼 주인공한 사람의 성장과 체험을 중심으로 사회 각층을 폭 넓게 바라보는 이른바 파노라마적 사회소설로 다가갔다. 작품 속에서 앞을 가로막는,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사회체제의 벽에 가로막혀, 디킨스의 장기인 유머도 어딘지 쓴웃음으로 바뀌고, 무력감. 좌절감이 전편에 흐르게 되었다.
그러나 창작력은 조금도 쇠퇴하지 않아 공장 스트라이크를 다룬 [고된 시기], 버너드 쇼에 의해 [자본론]보다도 위험한 책이라고 평가된 어두운 사회소설인 [어린 도릿], 프랑스 혁명을 다룬 [두 도시 이야기], 다소 자전적인 [위대한 유산]등의 장편 외에 많은 단편과 수필을 썼다. 또 잡지사의 경영과 편집, 자선사업에의 참가, 연극상연, 자작 공개낭독, 각지로의 여행 등 쉴 사이 없이 정력적 활동을 계속하여 건강을 잃었으나 쉬려 하지 않았다.
또한 1858년에는 20년 이상 함께 살며 10명의 아이를 낳은 아내와 별거하는 등 정신적 고통도 겹쳐 70년, 추리소설풍의 수수께끼로 가득 찬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 각계각층의 애도 속에 문인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죽은 뒤 그의 소설은 1세기에 걸쳐 각 나라말로 옮겨져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되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소설과 디킨스의 주요작품
빅토리아 여왕(재위기간:1837-1901) 시대에 영국은 부르주아 계급의 생활수준이 급속히 향상되고,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는 등 경제대국이 되었다.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빅토리아 시대는 이성보다 감성,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낭만주의로 시작하여, 현실을 객관적. 과학적인 태도로 묘사하고 산업혁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사실주의로 끝났다. 빅토리아 시대의 주요 소설가로는 디킨스와 [허영의 시장]을 쓴 새커리, [올턴 로크]를 쓴 킹즐리, 조지 엘리어트, 하디 등이 있다. 이중 디킨스는 가장 널리 알려진 작가로 사회비판 및 항거의 기풍이 전 작품을 흐르고 있다.
그는 중산층의 일상생활과, 특히 산업팽창의 지나친 사회악과 사회불의에 항거하는 개인들,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디킨스는 근본적인 낙관주의와 진보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존의 산업제도에서 유래하는 빈민굴과 빈자의 비참한 생활을 리얼하게 묘사하였는데, 거기에서 낭만주의적 요소와 사실주의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디킨스는 영국문학의 위대한 민주주의자라고 평가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