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15권, 1년(1609 기유 / 명 만력(萬曆) 37년) 4월 29일(경진)
임해군(臨海君)을 위소(圍所)에서 죽였다.
임해군이 위장(圍墻) 안에 있을 때 다만 관비(官婢) 한 사람만이 그 곁에 있으면서 구멍으로 음식을 넣어주었는데, 이때 이르러 수장(守將) 이정표(李廷彪)가 핍박하여 독을 마시게 했으나 따르지 않자 드디어 목을 졸라 죽였다.
【임해가 죽은 것을 사람들이 능히 밝히지 못하고 또 죽은 날도 알지 못하였다. 무신년 반정 후 임해군의 가족이 그 관비를 불러 묻고서야 비로소 그 실상을 알았다.
부인 허씨(許氏)가 관을 열고 보니 피부가 살아 있을 때와 같았는데, 그 목에 아직 새끼줄을 감았던 붉은 흔적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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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첫째 서자(庶子). 어머니는 공빈 김씨(恭嬪金氏)이다.
성질이 난폭하여 세자(世子)에 책봉되지 못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함경도로 피란, 회령(會寧)에서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났다.
1608년(광해군 즉위) 일부 대신들과 명나라에서 왕으로 즉위시킬 것을 주장하자 이를 불안해 한 광해군에 의해 영창대군(永昌大君)·김제남(金悌男)과 함께 역모죄로 몰려 진도(珍島)에 유배되어 사사(賜死)되었다.
[출처] 임해군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