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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때문에 사라질 마을이 있습니다. 신고리 핵발전소 건설로 사라진 골매마을 옆의 신리마을을 걷습니다. 약 200호의 마을은 예전의 생기를 잃고 있습니다. 고기잡이와 미역과 다시마 그리고 전복 등 채집으로 풍요롭게 살았던 마을이지만, 집단 이주를 앞두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상업 발전을 하고 있는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와 4호기와 건설 중인 신고리 핵발전소 5호기와 6호기가 병풍처럼 펼쳐 있는 신리마을의 모습. ⓒ장영식
신리마을에서 나고 자라며, 자식들을 키우고 출가시켰던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먼 옛날 같습니다. 사람들은 평화롭던 어촌 마을에 핵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불안했습니다. 청년회를 중심으로 핵발전소를 반대하며 처절하게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바위를 향해 달걀을 던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을 사람들은 핵발전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계 최대 핵발전 단지가 있는 마을에 대형 카페가 들어섰다. 사진으로도 글로써도 표현하기 힘든 풍경이 자리 잡고 있다. ⓒ장영식
후쿠시마 핵사고를 거치면서 마을 사람들의 불안은 커져만 갔습니다. 방사능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냄새도 없었습니다. 마을과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만, 방사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다와 파도 소리는 보고 느낄 수 있었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공포는 더 무섭고, 깊어 갔습니다. 이 공포에서 해방되는 것은 마을을 버리는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리마을 주민들은 역설적이지만, 공포의 대상인 핵발전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해야만 했습니다.
바다와 파도소리는 보고 느낄 수 있지만, 방사능을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장영식
핵발전소로 인해 사라질 신리마을을 걸으며, 핵발전소 때문에 사라진 마을들과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핵발전 50년의 역사 속에서 희생의 삶을 강요받았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눈물과 절규를 기억합니다.
핵발전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핵발전소 건설을 찬성해야만 했다. 이 모순을 핵발전밖의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 서울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장영식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폭염을 이겨 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기는 사람들의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신리마을을 걷기 위해 집을 나오면서 전기 코드를 뽑고 나왔는지 되돌아봅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