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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피영민 목사
서 론
‘여호와의 구원(the salvation of the Lord)'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이사야는 주전 740년부터 690년까지 약 50년간 예언활동을 한 선지자입니다. 이사야가 살았던 시대의 유다 왕들은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였는데, 아하스 왕을 제외한 세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은 왕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통치기간에도 유다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우상숭배가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왕들이 개혁을 하고자 했지만 백성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힌 우상숭배를 뽑아내지 못하였고, 결국 건너지 말아야할 강을 건너버린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전 586년에 유다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당했고, 위용을 자랑하던 솔로몬 성전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사야는 이와 같은 유다의 멸망을 이미 백여 년 전에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살고 있던 시대는 그야말로 영적인 암흑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암흑시대를 살던 선지자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예언을 주셨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시대에 가장 소망스런 예언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여러 가지로 절망스러운 시대이지만, 절망이 지나가면 소망스럽고 영광스러운 시대가 다시 올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누구라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뚜렷한 대조(contrast)가 나타납니다. 유다 왕국의 현재와 미래 사이의 대조입니다. 현재 유다 왕국은 영적 부패의 극치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는 영적인 영광의 극치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본문 6-9절은 유다 왕국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인 야곱을 버리신 원인에 대해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유다에는 금은보화가 풍성하고 마병이 무수했지만, 더불어 동방의 미신과 우상도 가득했기 때문에 천한 자나 귀한 자가 모두 점을 치고 우상에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풍성한 금은보화는 유다를 물질숭배에 빠뜨렸고, 무수한 마필병거는 남의 것을 탈취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습니다. 온갖 더러운 것들 때문에 유다는 영적으로 시궁창과 같이 되었고,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버려 심판에 처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유다의 상황은 네 가지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미신(superstition), 둘째로 물질숭배(materialism), 셋째로 제국주의(imperialism),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상숭배(idolatry)입니다. 어느 시대의 국가든지 타락하기 시작하면 나타나는 네 가지 현상이 유다 왕국에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흑암을 배경으로 이사야는 더욱 찬란한 시대의 빛을 보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앞으로 새로운 시대인 말일(末日)이 올 것이고, 말일이 되면 여호와의 성전이 서 있는 시온산이 모든 산꼭대기 위에 높아질 것이며, 이방 나라 사람들이 시온산에 올라 여호와에 전에 이르러 하나님의 도를 배우고 그 길로 행하고자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선포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온 세상에 전파될 때, 전쟁과 분쟁이 그치고, 영원히 영화롭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소망스러운 비전입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라고 하는 한 나라의 미래만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온 말씀이 이방 국가로 전파되면 결국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아 온 세상에 전쟁이 그치는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내일이 성탄절인데, 이 성탄절의 참된 의미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말일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첫 성탄절로부터 시작하여 이방 나라들은 비로소 진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미신이나 불교, 유교 밖에 알지 못했던 이방의 국가였지만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를 배워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에게 임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 진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도에서, 혹은 메카나 메디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루살렘의 시온산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서 2장의 본문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기억하기 쉽도록 T자로 시작하는 세 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첫째는 ‘참된 종교의 승리(Triumph)’,
둘째는 ‘영적 흐름의 변화(Tide)’,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광의 때(Time)’입니다.
1. 참된 종교의 승리(Triumph)
먼저 이사야 선지자는 ‘참된 종교가 승리할 것(triumph)'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세상에는 종교가 참 많습니다. 철학종교, 윤리종교, 심지어 이단종교까지 합하면 그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종교만이 참된 종교입니다.
2절의 말씀이 그 승리의 예언입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예루살렘은 일곱 개의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성전이 있는 시온산은 다른 일곱 개의 산보다 낮습니다. 그러나 말일이 되면 이 시온산이 다른 일곱 개의 산보다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지나치게 문자적(literally)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시온산이 기적적으로 융기운동을 일으켜 다른 여타의 산보다도 높아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언은 상징적인 문헌입니다. 상징을 상징으로 해석하지 않고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우스꽝스러운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시온산과 다른 산들은 모두 종교의 가르침을 상징합니다. 종(宗)이라는 글자는 ‘마루 종’자이므로 종교(宗敎)라는 말은 ‘높은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산들이 있는 것처럼 종교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불교나 회교, 힌두교처럼 큰 산들도 있고, 추종자가 작은 종교와 같은 작은 산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산들이 있더라도 결국 시온산 만이 우뚝 서서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만이 모든 종교를 다 누르고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저는 기독교가 승리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종교 가운데도 거짓 기독교가 많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유일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그리고 유일하신 성령님을 믿는 신앙, 즉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신앙만이 승리할 것입니다. 작은 산들이 무너지고 휩쓸려내려 가듯이 다른 신앙은 모두 다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예언이 상당 부분 실현된 것을 목격합니다. 오늘날 바알이나 아세라, 헬라의 신 제우스를 참 신이라고 섬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우상을 섬깁니다. 이름은 바뀌고 옛날 신들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미신과 거짓 신들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 자기 자신이 노력하면 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허황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거짓에 속지마시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며, 참 신이시고,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건져주시는 분이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성령님만이 우리의 참 인도자가 되십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백성들이 이제 온 세상에 편만하게 되었습니다. 이 승리는 일시적인 승리가 아니라, 영구적인 승리입니다. 완성된 승리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승리입니다.
지는 편에 서는 사람은 지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정치인들의 고민 중 하나가 어떤 대선후보를 지지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권을 잡으면 출세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권력을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편에 서면 이기는 자가 되고 지는 편에 서는 사람은 지는 자가 됩니다.
혹시라도 지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교회에 나오지 마시고 우상이나 숭배하십시오.
그러나 이기기를 원하신다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참된 교회의 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모든 면에서 승리자입니다. 잠깐 지는 것 같아도 결국은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는 편에 서지마시고 이기는 편에 서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영적인 흐름 (Tide)
둘째로 이사야 선지자는 이방 사람들의 영적인 흐름(tide)에 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만방이 그리로 몰려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에는 역류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연법칙에서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낮은 산에서 높은 산으로 물이 흐르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낮은 산들로부터 높은 산인 시온산으로 물이 흐르는 역류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살던 시대에는 시온산이 낮은 산이었고 이방종교들이 높은 산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종교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부패가 유다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장래에는 이 흐름이 반전될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이방풍습과 미신을 버리고 가장 높은 산인 시온산으로 하나님을 찾아서 물결처럼 거슬러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마치 강물이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위로 흐르는 것 같은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자연에도 중력법칙이 있듯이 영적인 세계에도 중력법칙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이 사실이 영적인 중력법칙입니다. 죄를 호리라도 지니고 사는 사람은 영영히 타는 지옥불에 떨어져서 영원히 그 곳에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법칙이 영적 중력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 영적인 역류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주홍빛 같고 진홍빛 같은 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되면 모든 죄를 다 사함 받고, 하나님께 의인이라고 인정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던 사람도 하나님과 화목하며 살게 됩니다. 사죄(forgiveness), 칭의(justification), 화친(reconciliation)의 3대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죽어도 부활과 영생을 누리게 되며 당당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역류현상입니다.
말일에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합니다.
또한 말일에는 구원의 역류현상 뿐만 아니라 시온산에 올라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백성들을 함께 초청하여 올라가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많은 백성들이 산에 오르며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도이며 선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성령님을 체험한 사람은 나 혼자 믿고 천국 간다는 이기심에 빠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참된 신앙의 표식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을병에 걸렸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사람이 산을 헤매다가 한 약초를 발견했는데 그 약초를 먹고 났더니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워지다가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이웃집에 똑같은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초를 자기만 먹고 감추어둔다면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나쁜 행동입니까?
만약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그 사람을 비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얻었다면 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와서 함께 시온산으로 올라가자고 권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민족들이 시온산에 올라가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3절을 보면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주일에 교회 나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매우 어리석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능력이요, 지혜입니다. 주일에 놀지 않아도 다른 날 쉬면됩니다. 차라리 직장을 쉬고 노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배드리는 일을 결코 소흘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세를 알지 못하고 오직 육신에 제한된 삶을 살기 때문에 대화를 해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도, 성령님의 능력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해서 응답을 받았다고 하면 ‘우연히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우연도 한 두 번이지 기도할 때마다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연이란 말입니까? 이런 사상은 바른 사상이 아닙니다.
이처럼 이방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시온산에 오릅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동기(motive)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 말씀을 배워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단순히 지식과 학문의 폭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 아닙니다. 오직 순종하여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육신은 흙에서 온 육신입니다. 흙에서 온 육신은 일정 기간 동안 생을 이루다가 언젠가는 무너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흙이 되어서 마므레 동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이처럼 흙이기 때문에 흙에서 나오는 식물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농사지어서 밥도 해먹고 과일도 따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육신은 생명의 본질이 아닙니다. 생명의 본질은 영혼입니다. 그리고
이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면 영혼도 힘을 잃기 마련입니다. 어떤 분들은 모임 때문에, 취미 때문에 2주일에 한 번 씩 교회에 나와서 예배만 대충 드리고 가시기도 하는데 이런 분들을 향해 우스개 소리로 ‘이주일 집사’라고 합니다. 이처럼 예배에 빠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영적인 금식을 너무 잘 실천하는 분들입니다. 또 주일예배는 잘 참석하는데 그것으로 끝인 분들도 있습니다.
주일에만 영적 양식을 드셔서야 영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집에서도 영적 양식인 성경을 읽고 배우십시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더욱 가까이 하시기 때문에 귀신들이 떠나가고 어둠이 물러가며 축복이 가까이 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동기로 시온산에 올라 말씀을 배우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침례 받고,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헌신하며 용서합니다.
원수 같은 사람이라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살라고 명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극복하고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이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이 말씀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말씀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악한 길을 걷는 악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의로운 삶을 누리는 의인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중력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은혜의 법칙, 기적의 흐름을 따라 시온산을 향해 역류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이해서 은혜의 물줄기를 따라 시온산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런 영광의 때 (Time)
세 번째로 이사야는 이런 영광의 때(time)가 말일임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말일(末日)’이라는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첫째는 주전 538년부터 시작된 포로 귀환의 때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4장 30-31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유다의 백성들이 이방나라의 포로가 되지만 말일이 되면 그들이 다시 순종하고 돌아와서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였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말일은 망한 나라, 포로 된 나라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하는 말일은 더 우주적이고 세계적인 사건입니다. 이 말일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탄생으로 시작된 신약시대,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일’이라는 단어를 ‘말세’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흔히 말세라고 하면 악하고 부패한 오늘날의 시대를 떠올리는데 성경의 말세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의 말세는 축복되고 영광스러운 시대인데,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신약시대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장 2절을 보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말일의 영광스러운 시대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정치, 경제가 어렵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너무 절망스럽게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사야가 바라본 영광의 비전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말세입니다. 이 시대가 지나면 더 이상 구원의 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time)의 개념은 사라지고, 영원(eternity)이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원시대에 부활의 몸을 입고 영생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세가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하는 일도 없게 됩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때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 계시면 오늘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구원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내일 있을 침례식에 참여하여 침례도 받으십시오. 그것이 이기는 인생입니다.
결 론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 5절을 통해 말일을 사는 우리에게 권면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비록 야곱은 형의 축복을 빼앗은 나쁜 짓을 행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그리
고 야곱의후손을 용서하고 와서 빛을 따라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어둠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캄캄한 세상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다가 결국 영원히 어두운 곳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빛을 따라가야 합니다. 빛을 거스르면 방황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빛의 근원이시며,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성경은 진리의 빛이며, 성령님은 빛의 인도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빛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흑암 가운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권면한대로 빛을 따라 사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빛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사야서 2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 빛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남을 헤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김정일처럼 핵이나 만들고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은 어둠의 자식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빛을 받은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칼이 변하여 쟁기가 되게 하고, 창이 변하여 낫이 되게 합니다. 평화를 추구합니다.
둘째로 빛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교만하거나 자고하지 않습니다(12).
여호와의 날에는 교만한 사람이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교만한 사람이나 자고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빛을 따라 사는 사람은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셋째로 빛을 따라 사는 사람은 말씀의 지배를 받습니다.
우상이나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22).’ 사람은 호흡하는 존재입니다. 코가 막히고 기도가 막혀서 몇 분만 숨을 쉬지 못해도 생명을 잃는 연약한 존재인데 어떻게 사람을 의지해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빛을 따라 행하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처럼 빛을 따라 사는 삶을 결단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