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자로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유가 용맹을 좋아함은 나를 넘어섰지만, 재목을 취할 곳이 없다.”고 하셨다.
○ “子路以爲實然, 而喜夫子之與己, 故夫子美其勇, 而譏其不能裁度事理, 以適於義也.” 자로는 진실로 그렇게 여겨서 선생님께서 자신을 인정해준 것을 기뻐하였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그 용맹함을 찬미하면서도 사리를 재단하고 헤아림으로써 의로움에 나아가지 못함을 기롱한 것이다.
慶源輔氏曰 聖人欲浮海 豈有憤世長往之意 其憂時悶道之心 蓋有不得已者 子路不惟今日遂以夫子爲必行而喜其與己 其平日所爲多傷於剛果而不能裁度以適義 如率爾之對迂也之言 皆是也 夫子所以敎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성인께서 바다를 떠다니고 싶다는 것에, 어찌 세상에 분노하여 오랫동안 떠나겠다는 뜻이 있겠는가? 때를 걱정하고 道를 번민하는 그 마음은 대체로 부득이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자로는 단지 오늘 마침내 공자께서 반드시 떠날 것이라고 여기면서, 공자께서 자신을 인정해준 것을 기뻐하였을 뿐 아니라, 그가 평소에 행하는 바도 굳세고 과감함에서 많이 손상되어서, 재단하고 헤아려서 義에 나아갈 수 없었다. 예컨대 경솔하게 대답한 것이라든지, 우활하다고 한 말이 모두 이런 것이다. 공자께서 이 때문에 그를 가르쳐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得時行道使天下無不被其澤 此聖人之本心 世衰道否至於無所容其身 豈聖人之得已乘桴浮海 雖假設之辭 然傷時之不我用也 如子路之勇於義 不以流離困苦而二其心 故謂其能從我是皆憂深思遠而形於言也 子路不知夫子之本心而喜夫子之與己 可謂直情徑行而無所忖度也 호씨가 말하길, “때를 얻어서 도를 행함으로써 천하에서 그 은택을 입지 않은 자가 없도록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성인의 본심이다. 세상이 쇠하고 道가 막혀서 제 몸을 용납해주는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어찌 성인께서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다닐 수 있겠는가? 비록 가설의 말이라고 할지라도, 때가 나를 쓰지 않음을 마음 아파한 것이다. 자로와 같은 사람이라면 義에 용감하여 떠돌아 흘러다니고 곤궁하고 고생하더라도 두 마음을 먹지 않기 때문에, 그가 능히 나를 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니, 이는 모두 걱정함이 깊고 생각함이 먼 것이 말에 드러난 것이다. 자로는 공자님의 본심을 알지 못하고, 공자께서 자신을 인정해준 것만을 기뻐하였으니, 감정대로 곧장 행할 뿐, 미루어 생각하고 헤아리는 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汪氏炎昶曰 集註能不能字是揚而抑之處 所能者稟賦之剛果 所不能者 學力之未至也 왕씨 염창이 말하길, “집주의 能과 不能이란 글자는 올리고 억누르는 부분이다. 능히 할 수 있는 것은 품부받은 굳셈과 과단성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배움에 힘쓰는 것이 미처 지극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旣云勇於義 又云不能裁度事理以適於義 何也 蓋勇於義 是略見大義 能勇於行 不能裁度事理以適於義 是不能審察精義而有誤勇決行之者 故其仕於衛也 知食焉不避其難之爲義 而死之是勇於義 不知食出公之食爲非義 是不能裁度事理以適於義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미 義에 용감하다고 말하고서, 다시 사리를 헤아려서 의에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체로 義에 용감한 것은 大義를 대략 보아서, 능히 실행함에 용감할 수 있다. 사리를 헤아려서 義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義를 정밀하게 잘 살피지 못하여서 용감하게 잘못 결행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위나라에서 벼슬을 했으니, 여기서 밥을 먹으면 그 위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 義가 되는 것만을 알아서 그곳에서 죽었으니, 이것은 義에 용감한 것이다. 위출공의 밥을 먹는 것이 義가 아님을 알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사리를 헤아려서 義에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子路信夫子欲行, 故言好勇過我. 無所取材者, 無所取於桴材, 以子路不解微言, 故戲之耳. 자로는 공자께서 떠나고자 하시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공자께서 용맹함을 좋아하는 것이 나보다 낫다고 말하신 것이다. 재목을 취할 곳이 없다는 말은 뗏목의 재목을 취할 곳이 없다는 것인데, 자로가 은미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를 놀린 것일 따름이다. ○ 乘桴之歎, 原屬寓言, 忽復作莊語. 譏其不裁度事理, 則于夫子本旨, 全然不合. 子路不解微言, 故復以微言諷之曰: “大海蕩蕩, 桴材極難.” 뗏목을 타고 떠난다는 탄식은 원래 우스갯소리에 불과하였으나, 갑자기 장중한 말로 다시 썼다. 자로가 사물의 이치를 재단하여 헤아리지 못했다고 놀린다면, 곧 공자의 본래 뜻에 전혀 부합하지 않게 된다. 자로가 은미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은미한 말로 그를 풍자하여 말하길, “큰 바다가 너무 넓어서 뗏목의 재목을 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 孔子爲道不行, 爲譬言我道之不行, 如乘小桴入於巨海, 終無濟理也. 非唯我獨如此, 凡門徒從我者道皆不行, 亦竝由我故也. 子路聞我道由, 便謂由是其名, 故便喜也. 孔子不欲指斥其不解微旨, 故微戱曰: “汝好勇過我, 我無所更取桴材也.” 공자께서 도를 행하여도 행해지지 않는 것을 비유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내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이 마치 작은 뗏목을 타고 거대한 바다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결국 다스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단지 나 홀로 이와 같을 뿐 아니라, 나를 따르는 모든 문도들의 道 역시 행해지지 않으니, 역시 모두 나를 말미암기 때문이다.” 자로가 ‘내가 말미암는다고 말하는 것’을 곧 由가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들었기에 곧 기뻐한 것이다. 공자는 자로가 은미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여 배척하고 싶지 않았기에, 은밀하게 놀리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네가 용맹함을 좋아함이 나를 넘어선다. 그런데 나는 뗏목 재목을 다시 취할 곳이 없구나!”
정다산의 글 ○ 先儒筆頭, 子路爲癡騃不曉事之人, 直令覽者愚弄侮笑若狂夫然, 此大蔽也. 孔子許子路曰: “由也, 千乘之國可使治其賦.” 其在我邦, 即戶曹判書兼宣惠提調者也. 其綜覈(핵=核)事務, 必細入秋毫, 豈後世章句腐儒所可侮弄者乎. 夫乘桴浮海, 尺童且知其不可, 乃謂子路不解微言, 實欲從行, 豈不遠於情乎. 孔子之意, 若曰: ‘乘一片之桴, 涉萬里之海, 此是危險必死之地. 然苟以行道之故, 吾將獨行, 則由也必從之.’ 一則許子路心熱於行道, 一則知子路舍命以從師, 一聖一賢, 意氣相許. 千載之下, 尙令人感激, 子路安得不喜. 喜者, 喜其知己也, 知有行道之誠, 知有冀聖之誠, 不解微言, 喜其從行, 有是理乎. 此唯不辨菽麥, 不知痛癢者然矣, 豈治千乘之賦者所應然者乎. (中略) 唯其好勇過我, 又能遇事直前, 無所裁度, 故我許其從行云耳. 선배 유생들의 붓끝에서 자로는 어리석어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되었는데, 심지어 열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미친 사람처럼 우롱하고 업신여기며 비웃게 만들었으니,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공자는 자로를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로는 천승지국에서 그 군사를 부리고 다스릴 수 있다.” 자로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곧 호조판서 겸 선혜청 제조에 해당할 것이다. 사무를 종합적으로 조사하려면 반드시 작은 일부터 세밀하게 들어가야 하는데, 어찌 후세의 장구에 매몰된 썩어빠진 유생들이 업신여기고 우롱하는 바이겠는가? 무릇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다닌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그 불가함을 아는데, 곧 자로가 그 은미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제로 따라가려고 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찌 실상과 먼 것이 아니겠는가? 공자의 뜻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였을 것이다. “뗏목 하나를 타고 만리의 바다를 건넌다면, 이는 위험하여 반드시 죽는 곳이다. 그러나 만약 도를 행한다는 명분으로 내가 장차 홀로 간다면, 자로는 반드시 나를 따를 것이다.” 한 번은 자로가 도를 행하는 것에 마음이 뜨겁다는 것을 인정해주었고, 또 한 번은 자로가 목숨을 버리고 스승을 따른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니, 한 분은 성인이고 한 분은 현자로서 의기를 서로 인정해준 것이다. 천년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감격해 마지 않도록 하는데, 자로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뻐한 것은 스승이 자신을 알아줌에 기뻐한 것이다. 도를 행하는 정성이 있음을 알고,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정성이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은미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떠나는 것을 기뻐하였다는 이런 이치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은 오직 숙맥을 분별하지 못하고, 아픔과 가려움을 알지 못하는 자만이 그렇게 하는 것이니, 어찌 천승지국의 군사업무를 다스리는 사람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바란 말인가? (중략) 오직 그가 용맹함을 좋아하는 것이 나를 넘어서고, 또한 일을 당하면, 능히 곧장 앞으로 나아가되, 재고 헤아리는 바가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나는 그가 따라서 떠나는 것을 인정해준다고 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