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고립된 섬, 그 짙은 푸름을 낚다
다시 짐을 꾸린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계절, 눈부신 볕을 등지고 굳이 슬픔이 고인 땅으로 발걸음을 돌린 것은 내 안의 어떤 묵직한 갈증 때문이었을까. 발길이 닿은 곳은 강원도 영월. 조선의 6대 왕이었으나 너무도 일찍 권력의 비정한 칼날에 베여 스러져간 어린 왕, 단종의 애달픈 숨결이 묻힌 유배지다.
산은 물을 안고, 물은 다시 산을 휘감아 도는 영월의 지세는 한 폭의 유려한 수묵화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이 수려한 풍경이 5백여 년 전, 열일곱 살의 어린 소년에게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천연의 감옥이었음을 상기하면, 눈앞의 절경은 이내 가슴을 찌르는 서늘한 비수가 된다. 서강의 맑은 물줄기가 삼면을 빙 둘러 흐르고, 등 뒤로는 험준한 육육봉이 우뚝 솟아오른 청령포(淸泠浦). 배를 타지 않고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이 육지 속의 고립된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작은 나루터에 선다.
짧은 물길을 건너 청령포에 발을 내디딘다. 빽빽하게 들어선 수백 년 된 울창한 송림이 대낮의 햇빛마저 가리며 무거운 적막을 쏟아낸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소나무들 사이로 한 맺힌 바람 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저 바람은 5백 년 전, 영문도 모른 채 이곳에 버려진 어린 노산군의 귓가에도 똑같이 불어왔으리라. 소나무 숲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단종 어소(御所)는 그 주인의 운명만큼이나 작고 초라하다. 댓돌 위에 가만히 앉아 마당을 쓸고 지나는 솔바람을 바라본다. 한양의 화려한 궁궐을 떠나, 서걱이는 거친 옷을 입고 이 좁은 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어린 왕의 두려움과 절망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숲의 가장 깊은 곳에는 두 갈래로 굵게 뻗어 오른 거대한 소나무, 관음송(觀音松)이 서 있다. 단종이 그 갈라진 틈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을 품은 나무다. 어린 왕의 애통한 눈물을 보았고, 밤낮으로 토해내는 비통한 탄식을 들었을 터. 나무는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그 곁을 묵묵히 지키며 푸른 바늘잎으로 역사의 상흔을 덮어주고 있었다. 나무의 굵은 둥치를 가만히 쓸어본다. 마치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서서 한 인간의 극한의 고독을 증언하는 늙은 수행자의 단단한 등짝을 만지는 듯하다.
발길을 돌려 험한 벼랑인 노산대(魯山臺)로 향한다. 해 질 녘이면 단종이 올라가 한양 땅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는 서강의 푸른 물이 무심히 흘러가고, 시야의 끝에는 첩첩이 쌓인 산맥만이 아득하다. 아무리 발돋움을 하고 눈물로 지켜보아도, 궁궐에 남겨두고 온 어린 정순왕후의 얼굴도, 자신을 품어주던 어미의 품도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절망의 끝에서 소년이 주워 모았을 망향탑(望鄕塔)의 거친 돌무더기 앞에 서니, 그저 경치를 탐하러 온 길 위의 객(客)마저도 가슴 한구석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청령포를 빠져나와 단종의 능인 장릉(莊陵)으로 향하는 길. 길 위에서 풍경을 낚는다는 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산수(山水)의 아름다움만을 렌즈나 원고지에 담는 가벼운 유희가 아니다. 진정한 풍경은 그 땅이 품고 있는 시간의 결, 그곳에 머물다 간 이들의 한과 눈물, 그리고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작고 쓸쓸한 뒷모습을 함께 낚아 올리는 일일 테다.
장릉은 여느 조선의 왕릉과는 사뭇 다른 고즈넉함과 처연함을 안고 있다. 권력에 의해 죽임당한 어린 왕의 시신을 강물에 버리고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엄명 속에서도, 영월의 호장 엄흥도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야밤에 시신을 수습해 이 산자락에 암장했다. 두려움을 이겨낸 충절 덕분에 단종은 비로소 거친 강물을 벗어나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푸른 잔디가 곱게 입혀진 봉분 주변을 천천히 걷는다. 능을 호위하는 소나무들이 하나같이 봉분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어린 왕에게 뒤늦은 예를 올리는 충신들의 낡은 도포 자락처럼 보여 숙연해진다.
권력의 비정함도, 역사의 소용돌이도 결국은 시간의 강물 속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러나 영월의 산천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깊고 푸르러서, 그 짙은 대비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깊게 베어낸다.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자연 속에 철저히 내던져졌던 한 생애. 단종의 유배지에서 마주한 풍경은 단순히 슬프다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어떤 투명하고도 서늘한 철학적 사유를 던져준다.
절대적인 고독 속에 놓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히고 오직 자연과 나만이 남겨졌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본연의 맨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영월의 바람과 강물, 그리고 소나무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어쩌면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벼운 세상의 평판이나 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스스로의 내면에 더 깊이 닻을 내리라는 무언의 가르침이었을지도 모른다.
해가 저물어가는 장릉의 솔숲을 빠져나온다. 가슴 속에 맺혀 있던 알 수 없는 헛헛한 응어리들이 서강의 맑은 물결에 말끔히 씻겨 내려간 듯하다. 척박하고도 슬픈 역사의 땅에서 나는 또 하나의 무겁고도 단단한 풍경을 길어 올렸다.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발길을 돌린다. 슬픔을 온몸으로 통과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투명한 시선이 생겼음을 느낀다. 영월의 깊고 푸른 바람을 등 뒤로 한 채, 묵묵히 다음 목적지를 향해 이 서늘하고도 맑은 문장들을 가슴에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