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는 그의 혀에서 드러납니다. 1절에 유순한 대답을 하는 자는 겉으로 볼 때 유약해 보입니다. 뭔가 고함지르고 핏대를 올려야 자기 뜻이 관철되는 세상이 아닙니까? 그래서 손쉽게 자기가 주장하는 것을 얻기 위해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 같아도 실상은 상대방이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분노는 언젠가 결정적인 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4절에 보면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온순한 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생명 나무입니다. 사람도 살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주는 입술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형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마음을 상하게 하면 나중에 그 마음이 상한 자로 인해 결국 고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혀에 대한 교훈으로 23절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대답을 잘하여 기쁨을 줄 수 있는 말, 평안함을 줄 수 있는 말을 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28절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지혜로운 자는 대답할 말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자입니다. 무엇을 생각합니까?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무엇이 진정으로 기쁨과 평안함을 주는 말인가? 어떤 말이 용기와 위로를 주는 말인가? 그러나 악인은 자기의 악한 꾀에 관심이 있습니다. 악한 이득에 관심이 있습니다. 악한 정욕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말들을 쏟아냅니다.
둘째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것을 통해 드러납니다. 8절에 악인의 제사와 정직한 자의 기도가 나옵니다. 제사만 드리면 그만일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예배자의 인격을 보십니다. 그가 아무리 화려한 예배를 기획하고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말씀에 보면 미워하신다고 하십니다. 반면에 정직한 자의 기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에게 뭔가 주실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그의 기도를 기뻐하셔서 그의 드리는 기도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행하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정직한 자입니까? 말씀으로 자기를 비추는 자입니다. 말씀으로 은혜의 역사를 사모하는 자입니다. 말씀으로 깨어지고 말씀으로 갈 길을 인도함 받는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들의 삶을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잘 살고 얼마나 잘 먹고 있는 것만 생각하는 자에게 은총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