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종로3가역. 1-3-5호선이 교차하는 교통 요충이다.
1번 출구를 나서면 금빛 찬란한 보석가게가 있고 가판대 2개가 있다.
거기에 5분만 서있어 보시라.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놀다 가요."
"쉬었다 가요."
한 두 명이 아니다.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대여섯 명이 몰려온다.
"예?"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4만 원 줘요."
"3만 원."
"난 만 오천 원."
얼마쯤 갔을까. 피카디리 극장이다.
'숀 코네리' 주연의 을 개봉해 대박을 터트렸던 전설의 극장이다.
대한극장, 스카라극장, 중앙극장과 함께 외화관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시대의 물결을 이기지 못하고 멀티플렉스로 변신했다.
광장을 벗어난 여인이 골목길로 스며든다. 따라갈 수밖에,
여인이 모텔 앞에 멈췄다. 힐끗 뒤돌아본다. 따라 들어오라는 눈빛이다.
따라 들어갔다. 요금 받는 주인이 앉아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있다.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한 주인장의 꼼수를 CCTV가 도와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방으로 직행했다. 2평 남짓 작은 방에 침대 하나, 브라운관 TV, 정수기가 전부다.
"빨리 옷 벗어."
여인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재촉한다.
"시간은요?"
"30분."
"그 이상이면요?"
"또 쎈놈이 왔나보군. 아이, 재수없어."
여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투덜거린다.
"왜요."
"추가 요금 내."
"얼마요?"
"따블."
천장을 쳐다보았다. 때 아니게 선풍기가 매달려 있다.
"왜? 돈이 없어 그래? 돈도 없으면서 뭐하러 길게 하려고 그래. 대충 하고 가.
내가 빨리 하게 해줄테니까 빨리 하고 가."
많이 봐준다는 투다.
"안 하고 가도 되죠?"
"안 하려면 뭐하러 들어와?"
"얘기 듣는 게 더 재밌는데요."
"씰데 없는 소리 하지 마. 하러 왔으면 하고 가야지. 어서 벗어. 벗기 싫으면 내놓기만 해."
"옷도 안 벗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기 종묘공원에 가면 공동변소가 있거든.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들어가서 싸.
인생사 아귀다툼하면서 살지만 먹고 싸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
먹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싸는 건 안 돼. 처음 본 사람끼리 무슨 정이 있어? 사랑이 있어? 싸고 가면 그만이지."
여인이 바지 지퍼를 만진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신분을 밝혔다.
"물어보는 건 다 말해 줄 수 있지만 사진은 안 돼. 나도 아들이 있고 손주가 있잖아.
걔들은 인터넷도 잘하고 스마트폰도 잘한단 말이야. 내 얼굴이라도 나와 봐. 어떻게 되겠어?"
"조금 아까 '또 센놈이 왔나보군' 하면서 한숨을 짓던데 이런 일 하면서 제일 싫은 사람은 누구에요?"
"술 취해 들어와 시간 질질 끌면서 하지도 못하고 사람 피곤하게 하는 놈이지."
"그런 사람 진짜 있어요?"
"말도 마, 실컷 하구선 그것 못 했다구 준 돈 달래가지고 가는 놈도 있어."
"그 다음 반갑지 않은 손님은요?"
"대물이지."
"대물이라니요?"
"거 왜, 비정상적으로 큰놈들 있잖아."
"그런 사람 정말 있어요?"
"며칠 전에도 그런 사람 하나 받았는데. 딱 보니까 아니더라구.
그래서 받은 돈 돌려주면서 다른데 가서 알아보라고 그랬지."
"그랬더니요?"
"이 사람이 눈알을 부라리면서 막 화를 내는 거야.
**년들이 사람 차별한다고... 그래 무서워서 했지. 저기 저걸 뭉텅이로 바르고 했는데도 무지 아프더라고.
끝나고 그놈 간 뒤에 보니깐 쓰라린거야. 며칠 일을 못했지."
그녀가 가리킨 곳에 싸구려 로션 병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나이도 있고 한데 왜 이런 일을 하세요?"
"죽지 못해 하지, 누가 이 짓 좋아서 하나? 아들 둘이 있지만 지들 먹고 살기 바쁘다고 용돈 한 푼 안 줘,
몸은 아프지, 약값은 들어가지, 공장에 가서 일도 해보고 식당에 가서 일도 해봤지만 이젠 나이 먹었다고 안 써줘.
앉아서 죽을 수야 없잖아? 누군 이 짓 하고 싶어서 하나. 죽지 못해서 하지."
"힘든 일 하기 싫어서 이런 일 하는 건 아니에요?"
"부인하진 않아,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건데 어떡해."
"사는 사람이 먼저에요? 파는 사람이 먼저에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와 같은 소린데, 적어도 여기서 만큼은 파는 사람이 먼저야.
물론, 사는 사람이 있을 거라 예측하고 나왔지만 파는 사람이 있으니까 사는 사람이 있잖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팔라고 말해봐, 당장 성희롱 죄로 잡혀갈 거니까."
여인의 눈동자가 야트막한 천정을 바라본다.
"이런 일 몇 년이나 됐어요?"
"그런 걸 왜 물어?"
여인이 짜증을 낸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세요."
멍석을 깔아 주었다.
"새벽에 서울역에 내리니까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사람이 붙는 거야.
잘생긴 놈이었어. 낯선 땅에 내려 갈 곳도 없는데 살갑게 대해주니까 무장해제 돼버린 거지.
순진한 촌년이었지. 따라가서 밥 한 끼 얻어먹은 게 엮인 게지."
"그 다음 어디로 갔어요?"
"지금 남대문경찰서 뒤쪽 도동 골방으로 끌고 가서 쳐 넣더라고."
"그래가지고요?"
"다짜고짜 치마를 벗겨, 좋은데 갈려면 딱지를 떼야 한다고."
"잠자코 있었어요?"
"발악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주먹질이었어. 눈탱이가 밤탱이 되었어."
"지금도 미워하세요?"
"소도둑놈처럼 험악하게 생긴 놈이라면 저주하겠지만 그래도 잘 생겨서 그런지 미워하는 마음은 없어.
여자들이란 애나 늙은이나 잘 생긴 놈한테는 약하단 말이야."
여인의 입가에 미소가 내려 앉는다.
"나이가 몇이라고 하셨죠?"
"내 나이 칠십이 넘었지만 여기선 중닭이야. 팔십대도 있다구."
"육십대는요?"
"걔들은 영계지."
"하루에 얼마나 벌어요?"
"젊은 애들은 잘 벌어 집도 사고 그런 애들도 있지만 우린 그렇게 못 벌어."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그만 하시지 그래요."
"여긴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잖아. 마누라가 죽어 상처한 사람,
늘그막에 뜻이 맞지 않아 황혼 이혼한 사람, 젊었을 때 가족에게 못되게 굴어 집에서 쫓겨난 사람,
그런저런 사연 많은 사람이 이 근처 쪽방에 700명이야.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뚱아리 보시한다고 생각하고 일해. 그게 위안이 돼."
고령화 시대의 신 풍속도다.
그 때였다. 옆방에서 야릇한 소리가 들린다.
"방음이 전혀 안 돼 있네요."
"그게 우리에겐 좋아."
"왜요?"
"옆방에서 내는 소리가 상승효과를 내거든. 옆방에서 추임새를 넣고 음향을 넣어주니까 빨리 하고 내려오더라구. 히히히."
"저게 진짜 하는 소리에요?"
"진짜가 어딨어? 그냥 소릴 질러주는 게지."
"남자가 알면 기분 나쁘잖아요?"
"남자들도 알면서도 좋아 하더라고."
"손님을 해주기도 하지만 돼버릴 때도 있어요?"
"있지. 뭔가 끌리는 손님이 오면 '하면 안 돼'하면서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돼버릴 때도 있어.
걔하고 마음은 따로 노는가봐."
"왜 하면 안 되라고 하세요?"
"하고나면 축 처져 일을 못하겠어. 그것도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나봐."
여인의 모습이 웃프다.
"여기도 종묘파와 피카디리 파가 있다면서요?"
"종묘 공원에 박카스 팔고 막걸리 파는 여자들이 있었어. 그 여자들이 술친구 해주고 노래방에 따라가고
그래서 오천 원도 받고 만 원도 받고 그랬어. 그런데 공원에 공사판이 벌어져서 그 여자들이 지하철 역사
안으로 스며드니까 역 직원이 쫓아내고 경찰이 단속해, 지금은 종묘 앞 대명상회에 진을 치고 있어.
걔들하고 우리는 물이 달라. 우리는 술 한모금도 안 하고 딱 그것만 하고 끝인데 걔들은 술 먹고 수다 떨고 같이 놀고 그래.
우리가 화끈파라면 걔들은 질퍽파지."
"그 여자들이 이쪽으로 오면요?"
"머리채 잡히고 난리나지. 텃세라 하면 이 바닥에 제일 셀걸."
"외국인도 있나요?"
"이북에서 온 탈북녀는 없는데 조선족은 몇 명 있어."
"경찰이 단속하나요?"
"피카디리 앞에서 사복 입고 서 있다가 우리가 손님 데리고 모텔로 들어가면 뒤따라와서 문 따 게 하고
남자 여자 다 경찰서로 데리고 갔어."
"그래서요?"
"벌금 냈지. 이래 봬도 나라에 세금 내는 애국자라고."
"그건 세금 아니고 벌금이잖아요."
"벌금이나 세금이나 그게 그거지. 기사 쓰려면 똑바로 써, 요새 기자들 보니까 완전 쓰레기들이더라고.
테레비에 나와서 하는 소리 들어보니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이제 그만 하셔도 되지 않느냐'라는 투로 이야기 하는데
그런 우라질 놈들이 어딨어. 지 애미가 그렇게 당했어도 그렇게 말하려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놈들이야."
여인이 호흡을 가다듬는다.
"우리 입에 할머니들을 올리는 것 자체가 그분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지만 말 나온 김에 한마디 하겠어.
우리야 자발적으로 하지만 그 할머니들은 강제로 끌려갔잖아.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겠어.
과부 속은 과부들이 잘 안다고 그 할머니들 속은 우리가 잘 알아. 아무 관련 없는 사람하고 그 짓 한다는 게 얼마나 고역인줄 알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우리야 돈 벌기위해서 한다지만 그 할머니들이 무슨 죄야?
나라가 힘이 없어 그 할머니들이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는데 한을 풀어주어야 할 나라가 할머니들을 힘들게 하고 있으니
두 번 울린 게지."
여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