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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분들과 인사 나눕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조금 이른 시간에 나오시려고 하니까 더 분주하셨을 텐데 또 오늘 오후 시간 주님 안에서 풍성한 교제와 나눔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별히 오늘 이제 예배 이후에 자연 속에 나가서 우리가 예배하게 되는데 원래는 좀 이럴 때 좀 밖에 나가서 자연 속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이 설교를 해야 조금 더 이게 의미 부여가 될 수 있는데 우리가 몇 해 전에 한번 경험을 했잖아요.
그렇죠 요즘 시대가 참 우리 예배를 밖에서 드리는 것조차가 이제 사람들이 막는 상황들이 돼가지고 특별히 이런 공원 같은 데는 아예 예배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놨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일부 사람들이 모여서 가요를 부르고 노래를 부르고 레크레이션 하는 건 괜찮은데 교회 사람들이 가서 찬송가를 한 구절을 불러도 한 소리를 듣는 그런 시대를 만들어놨어요.
근데 그게 누가 만들었을까요?
우리 기독교인들이 너무 무례했던 것 같아요. 그냥 이때가 되면 언제든지 막 나가서 하다 보니까 불편한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지적하다가 법으로 막 이제 정해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제 자연 속에 나가서 보게 될 터인데 그 자연 속에서 위를 쳐다보면 하늘이 바로 우리의 천장이 될 것이고 또 땅을 보면 흙과 풀이 우리의 바닥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무와 풀과 또 숲 그리고 바람이 우리의 벽이 되어 줄 것입니다.
평상시에 그냥 우리가 지나쳤던 것들을 오늘은 조금 의미 부여를 하면서 바라보시면 조금 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성경 속에서 믿음의 사람들도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들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광야의 여정 가운데 모세는 미대한 광야에 불타는 가시던 불 속에서 엘리야는 호렙산의 세미한 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은 새벽이면 홀로 한적한 곳에 나가서 기도를 하셨어요.
여러분 자연은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손길을 가장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캠퍼스와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야외회를 가는데 이 야외회는 단순한 나들이 개념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 오감으로 느끼는 우리 온몸으로 느끼는 그러한 시간이 되기를 원하고, 또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동력자들과 더욱더 깊은 교제를 나누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04편은 창조를 주제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시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를 따라가듯이 하늘과 바람, 물, 땅, 풀, 짐승, 사람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를 차례대로 노래하면서 각각의 피조물이 어떻게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에서 존재하고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창조가 과거에 완료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행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내용이에요.
그래서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 가운데 27절을 보십시오.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때를 따라 하나님의 섭리적인 돌보심이 없이는 우리 모두는 창조물들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요즘 사계절이 좀 이렇게 짧아지고 길어지고 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느낄 수 있는 우리는 참 복된 사람들이에요. 봄이 되면 싹이 돋고 꽃이 핍니다. 여름에는 과실이 익어지고 가을에는 풍성한 추수를 경험하게 되죠.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요즘에는 너무 귀하게 여겨지고 있지 않으시나요?
이러한 질서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선물입니다. 어쩌면 요즘 우리도 이렇게 지금 원래는 봄을 느껴야 될 계절인데 벌써 여름을 느끼는 시간이 되어 버렸잖아요.
근데 이런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편 104편 말씀과 이어서 마태복음 6장에 있는 말씀을 같이 좀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데요. 산상수훈의 일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세요.
공중에 나는 새들을 보아라. 들의 백합화를 보아라.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단순히 그냥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낙관론을 가지고 살아가라 이런 의미의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연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돌보시고 입히시고 세워가신다는 것을 근거로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거지, 여러분 자연을 잘 관찰하는 것도 우리의 신앙의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 그냥 지나쳤던 자연들을 오늘은 자세히 보면서 하나님이 이런 거 하나하나도 입히시는데 나를 천지만물보다 사랑하는 나를 이끌어주지 않으실까?
여러분 신앙의 회복의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그 제자들에게 말한 보아라라고 했던 그 자연이 여러분들이 오늘 마주할 자연하고 똑같은 거예요. 바로 우리는 하나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자연 교실로 나아가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오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2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기자가 이 자연을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데 많은 얼마나 많은지, 수없이 많은 종류의 식물 동물들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다양한지 또 얼마나 정교한지,
멀지에서만 바라봤던 것들을 오늘은 좀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천천히 살펴보십시오. 다양한 색으로 다양한 모형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꽃들과 또 그 나뭇가지를 타고 다니는 다람쥐, 또 그 나뭇가지를 타고 들려오는 바람소리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여 창조된 것들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중세 신학자들은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권의 책이 있다.
첫 번째는 뭘까요?
책 성경책을 말하는 겁니다. 네 두 번째는 바로 자연을 말하고 있어요. 성경은 글자로 하나님을 개시한다라고 한다면 자연은 그 자연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창조하시고 함께하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그러한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 1장 20절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또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아멘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자연의 하나님이 내가 만들었어 하고 서명을 해놨다는 거예요. 한번 오늘 그런 것들을 발견하는 우리 믿음의 눈이 열리는 귀한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의식적으로 이건 누가 만드셨는가? 한번 오늘은 질문을 던져보면서 그 만드신 분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요.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또한 마태복음의 공중의 새를 보라라고 하는 그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자연을 그냥 즐겨라 이게 아니라 제자들이 지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로 가득한 그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보아라 라고 말씀하신 그 음성이 우리에게 들리길 원해요.
여러분 지금 이 순간 꽃이 피고 나무들이 입이 푸르러지고 새들은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누가 먹이고 입히냐 이것이죠. 그것을 보아라 오늘 27편에서 말합니다. 분명히 이것들은 다 주께서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신다는 것이죠. 짐승도, 새들도, 바다의 물고기도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다리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 자체를 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됩니다.
오늘 28절을 같이 읽어보십시오. 시작,
아멘 여러분 지금 우리가 이렇게 편안한 복장으로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 건강도, 오늘 야외회를 같이 참여해서 함께 먹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걸을 수 있는 건강도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순간순간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자연 속에서 그 자연 가운데 공급자 되신 하나님의 손길을 여러분들의 삶으로도 적용해 보십시오. 내 삶 지나온 여정 가운데 인도자, 공급자 되어 주시는 주님, 보호자 되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깊이 경험하길 원합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창조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창조가 며칠 동안 진행이 됐을까요?
네 6일 동안 진행이 되고 7일째 안식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6일 동안 너무 열심히 일했으니까 피곤해가지고 좀 이제 쉬어야 되겠다 하고 7일째 쉬시는 그러한 것일까요?
그 쉼은 창조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리듬을 집어넣어놨는데요. 일하는 게 있다면 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이는 것들이 있다면 흩어지는 것이 필요하고 수고하는 것이 있다면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우리의 창조물들의 섭리 리듬 삶의 방식입니다.
시편 오늘 31편 104편 31절에 보면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창조물로 인하여 즐거워하십니다. 오늘 자연 속에서 여러분들 즐겁게 쉬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에요. 예배드릴 때는 예배에 집중하고 좀 나가서 함께 교제할 때는 교제하는 데 집중해 보십시오. 꼭 나가서 이렇게 더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들 있죠 놀 때는 놀고 일할 때는 일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가운데는 쉬는 것을 너무 즐기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 많아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이러한 구호들이 우리를 좀 지치게 합니다.
그리고 왠지 좀 쉬면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는 것 같고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참된 안식을 갖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런데 뭐라고 말하세요?
드레베카파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보아라 백합화는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데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세요.
여러분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정말 치열한 삶을 살았던 존재죠. 종교 개혁의 정말 치열한 과정 속에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 사람이 평상시에 갖고 있던 하나의 자신의 취미가 있는데 그 취미는 바로 정원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정원을 가꾸면서도 그 정원을 가꾸는 과정 속에 씨앗이 땅속에 묻혔다가 싹이 나고 자라나는 과정을 보면서 부활 신앙을 묵상하고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는 새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묵상하고 그러면서 루터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꽃 한 송이 속에서 위대하시며 거기서 마치 요람에 계신 것처럼 자신을 보이신다.
바쁜 개혁, 정말 치열한 개혁의 한복판에서도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늘 발견하려고 했던 우리의 종교적 리더의 모습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오늘 자연 속에서 온전한 심, 또 온전한 회복, 더욱더 주님의 손길을 깊이 누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교재도 예배다. 우리 한번 따라 해볼까요?
교제도 예배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함께 예배하는 것 은혜고 은혜고 너무 감사의 제목입니다. 오늘은 유초등부 아이들까지 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 각자 가정이 다르고 여러분들 삶의 모습이 다르고 연령이 다르고 삶의 이야기가 다 다릅니다.
근데 우리가 여기에 모여 있는 공통적인 것이 한 가지 있죠?
뭐예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믿음 안에서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그 단 하나의 이야기 이후로 우리는 함께 모여서 밥 먹고 또 교제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는 공동체를 주신 거예요. 초대교회 공동체의 사도행전 2장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예배하는 공동체였지만 네 이렇게 2장 46절 읽어봅니다. 시작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교제가 예배 안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삶에서 함께 먹고 또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기뻐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삶의 예배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먹는 점심 한 끼 그냥 식사가 아니라 웃음 한 번으로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산책하며 걷는 시간으로 끝내지 마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함께라고 하는 선물, 하나님 나라의 작은 맛보기를 누릴 수 있는 귀한 교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전도서 말씀 우리가 잘하는 말씀이죠. 같이 읽습니다. 시작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물을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아멘 여러분 가운데는 좀 요즘 힘들고 어려운 삶의 여정 가운데 있는 분들도 계십니다. 오늘 교재 가운데 좀 서로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작은 활동을 하더라도 뒤로 빼지 마시고 서로 이끌어주고 당겨주고 함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길 원해요. 그래서 함께 자연을 바라보면서 먹고 마시고 함께 풍성한 교제를 통하여서 다시 일상의 자리로 우리의 삶의 자리로 돌아갈 힘을 얻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적용할 것 몇 가지만 나눕니다. 오늘 야의회 가운데 여러분들이 보실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사진으로 찍으십시오. 몇 장을 찍으셔도 되는데, 우리 교재 방에는 그중에 내가 가장 볼 때 아름답다라고 여겨지는 한 장의 사진을 올리셔도 됩니다. 그의 자연이 일 수도 있고 인물일 수도 있고 뭐든지 괜찮습니다. 근데 거기에 토를 달지는 마세요. 이 사람은 왜 이런 걸 가지고 했을까 혹시 궁금하시면 개인적으로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그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그리고 그 사진을 이렇게 찍으면서도 이것을 누가 만드셨는가라는 질문은 오늘 계속 던지십시오. 또 여러분 제가 오늘 말씀 속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나도 그런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나의 삶 가운데 지난 시간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을 더욱더 깊이 묵상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오늘만큼은 철저히 좀 쉬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좀 이렇게 혼자 놀지 마시고 옆에 사람들 얼굴을 좀 많이 바라보세요. 평상시에 예배 때는 저만 보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오늘은 교제 시간이니까 좀 서로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그 얼굴 가운데도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 있습니다.
혹시 좀 얼굴이 어둡다. 다크 서클이 많이 내려왔다. 그러면 좀 먹을 것 좀 한 입 더 주시고 좀 격려도 해 주시고 위로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시편 1104편의 마지막 절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시편 기자가 자연을 보면서 막 감탄하다가 마지막에 하는 것이 바로 찬양으로 기결되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이 시편의 기자와 같은 신앙의 체험이 있기를 원합니다. 오랜만에 밖에 나갔더니 너무 피곤했어 뭐 이거 짐 옮기고 뭐 하느라고 힘들었어 이런 그런 거 요소에 빠지지 마시고 오늘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함께 먹으며 그 공급하신 분을 찬양하고 또 서로 웃으며 즐기며 우리 공동체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러한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24절 한 목소리를 읽고 우리 찬양하겠습니다.
시 시 넘겨서 네 시작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아멘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