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영화제 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는 맨날 전세계의 이목을 끌면서 치뤄진다.
올해도 삼엄한 경비 속에 - 빈라덴, 고마워! - 헐리웃 코닥극장에서 시상이 되었다고 한다.
요 몇 해 시상 결과를 봐도 올해 시상 기준을 종잡기는 상당히 힘들었다.
재작년은 비교적 진보적인 편이었다.
신인 샘 멘데스가 감독상과 작품상을 '아메리칸 뷰티'로 쓸어갔으며, 역시 젊은 힐러리 스웽크가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서 소름끼치는 명연기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반면, 작년은 비교적 보수적인 결과가 표출되었다.
고전적 영웅 이야기 '글래디에이터'가 많은 부문을 휩쓸어 갔으며, 반(反)마약 영화 '트래픽'으로 소더버그가 감독상을 가져갔다.
또한 남우주연상에는 각각 휴머니티가 뚝뚝 묻어나는 배역을 소화한 러셀 크로우와 줄리아 로버츠가 사이좋게 가져갔다.
올해 또한 쟁쟁한 - 정말 쟁쟁한 - 노미네이션이 돋보였다.
보수냐, 진보냐의 줄다리기에서 올해 아카데미가 택한 것은
초대형 깜짝쇼였다
블랙파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결과였다.
드디어 덴젤 워싱턴이 주연상에 다섯번 도전해서 따내고야 말았다.
2000년 '허리케인'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지만, 그때 역시 케빈 스페이시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주고야 말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었던 그가 마침내 남우주연상을 가져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흑인 여배우 할 베리가 수상했다.
아직 국내에 개봉되지 않은 '몬스터즈 볼'이라는 영화에서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인 사형집행관 - 그것도 범죄자인 남편의 사형집행관 - 과의 로맨스를 멋지게 연기해 내어 영광을 얻었다.
뭐 어차피 백인들의 게임인 아카데미 시상식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대이변이니만큼 이 결과가 갖는 의미가 크다.
또한 전체적으로도 매년 나오던 휩쓸기 수상도 올해는 고른 수상배분으로 없었고, 거의 중고신인에 가까운 제니퍼 코넬리가 쟁쟁한 원로배우들을 물리치고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도 상당히 흥미롭다.
과연 이번 결과로 아카데미는 진화하고 있는 것인가?
라고 말한다면 아직은 오버다.
두 주연상을 흑인을 올리기 까지는 흑인단체의 강력한 압박도 한 몫 한것으로 보여진다.
흑인 배우가 셋이나 노미네이트 됐는데 한 명도 받지 않는다면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압박을 가하던 일이나, 시상식 내내 코닥극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일을 고려해 보면 내년에도 진보적인 결과가 나올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아마도 아카데미는 자급자족하는 진화생명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