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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출처레딧
제목: 이건 단지 소설일 뿐이다 -1
내가 어떻게 그 마을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그 아이를 만났다는 것. 그리고 빠르게 그 아이에게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그 마을은 윌리힐타운이라고 불렸다. 미주리 공항에서 내려 하루에 딱 한번 있는 버스를 타고 한참동안 관리가 잘 안된 도로를 달려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마을. 실질적으로 같은 대륙에 있었지만 내게는 유럽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곳은 끝이 어딘지 모르는 아주 울창한 숲속에 홀로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동화에나 나올법한 풍경에 작은 공동체가 똘똘 뭉쳐 균형을 이루는, 모든것이 평화롭고 조용한 작은 마을.
딱 한가지 특이점을 꼽자면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은 한 두 가구만 빼고 여자라는 것 정도였다. 내가 이 마을로 한동안 지내러 오라는 지인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이유이기도 했다. 여자들만 모여있으니 비교적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정오가 훌쩍 지나서 나는 마을에 도착했다.
미주리의 태양은 뜨거웠으나, 울창한 숲이 둘러싸고 있는 이 마을은 보기보다 습했다.
마을에는 아주 오래된 상점이 하나, 식당이 하나, 모텔이 하나,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가 하나 있었다. 그 시설중에 가장 최근 것은 의외로 모텔이었다. 하지만 가장 최근이라고 해도 15년은 족히 넘었을것 같은 낡은 모텔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시설은 어느정도로 오래됐는지 감이 올 것이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 마을을 보고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그 마을에 정착한 지인의 손에 이끌려 도달한 으리으리한 저택 앞에서, 나는 진짜 이 마을이 1930-40년대 어드메쯤에 멈춰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짐은 나중에 풀고, 인사하러 가야지.”
지인은 내게 가장 먼저 지주를 만나야한다고 했다. 이 마을의 모든 땅과 실질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농장등은 모두 지주의 것이라고 했다.
"나도 인사를 해야해?"
"그럼 당연하지."
나는 나름 공공기간 산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나, 일단 이 마을에 왔으면 지주에게 얼굴을 비추는 게 예의라는 것이다. 마치 이 마을에는 연방법 이외에 자신들만의 법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로마에 왔으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흔쾌히 지인의 말을 받아들였다.
"분명 널 환영해주실거야. 따뜻한 분들이시거든."
지인의 차를 타고 5분 정도 달리자 딱 봐도 고풍스러운 3층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마을이라 소문도 빨리 퍼지는지, 지주는 우리가 드라이브웨이로 차를 밀고 들어섰을때 이미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마을엔 얼마나 묵을 예정이신지?”
그 말은 지주가 아닌, 지주의 휠체어를 밀고있던, 허리에 두꺼운 벨트로 허릴 잘록하게 보이도록 재단한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성이 한 말이었다. 지인은 그 사람이 지주의 안사람이라고 했다.
따뜻한분들이라는 말에 풍채가 좋은 60대라고 막연하게 상상했지만, 실상 만나본 지주는 풍채가 좋다기 보다는 연약함에 가까웠다. 제 몸을 하나 가누지 못해 바들바들 떠는 그는 비쩍 마르다시피 해서 나를 겨우 겨우 쳐다보며 인사를 건넸다.
"죄송해요, 남편이 이런 상태라... 반가워요. 저는 미세스 빌리랍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세스 빌리."
아마도 전동 휠체어가 아니라 사람이 미는 휠체어를 쓴 이유도, 전동 휠체어를 제어할만한 힘도 되지 못해서 일 것이다. 나는 천천히 눈을 끔뻑이는 지주를 향해 몸을 굽혀 눈을 맞추었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빌리.”
“자세한 건, 지인이 잘 알려줄 겁니다. 모쪼록 우리도 잘 부탁해요.”
지주에게 들을법한 이야기는 모두 지주의 안사람을 통해 나왔다. 지주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겨우 고개나 까딱거린것이 전부였다. 그를 살뜰히 살피던 안사람이 들어가봐야겠다며 휠체어를 밀고 레트로한 가구가 가득한 거실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새로 온 사람이에요?”
그리고 나는 그 거실한 구석,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서있던 그애를 만났다.
첫인상을 정의해보라면 빈티지 TV광고라고 말해야할 것 같다.
그러니까, 그애는 정말 사십년대쯤에나 유행했을법만한 물방울 무늬 패턴의 쨍한 색감이 돋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솔직히 목 아래만 보았다면 나는 아마 유니크한 인테리어 장식을 위한 마네킹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당황스러움을 눈치챈 지인이 내어깨를 툭 건들며 아주 작게 일러주었다.
"이 집 딸이야."
어떻게 말았는지 굵은 컬을 넣은 머리를 찰랑거리던 그애는 2층으로 난 계단의 가장 아래칸에 서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나는 그애의 호기심에 부응하고자 먼저 웃으며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미스 빌리, 당분간 이 마을에서 지내게될….”
“밥은 먹었어요?”
그 아이는 통성명을 톡 잘라내며 막 TV 광고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또랑또랑한 말투로 그렇게 물었다.
사실은 이 마을로 하루 딱 한 번만 운행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핫도그 하나를 해치웠으나.
나는 그애의 기대어린 눈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애는 식사를 하고 가라며 우리를 부엌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능숙한 손길로 냄비며, 후라이팬을 꺼내 우리에게 꽤나 거나한 아침식사를 차려주었다.
지인은 이런 대접이 자연스러운 듯 편히 앉아 그애에게 이런 저런 근황을 물었다.
뻘쭘하게 기다리던 나는 완벽에 가깝게 동그랗고 탐스러운 팬케익을 바라보며 감사인사를 건넸다.
"이렇게까지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서 드세요. 식기 전에요!"
시럽과 접시를 내 앞으로 쭉 밀어준 그애는 요리를 정말 잘했다. 이미 어느정도 부른 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중에 들어가는 음식이 정말 맛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그애는 햇살이 들어오는 창을 등지고 나와 지인이 밥을 먹는 모습을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바깥에서 왔다고 들었어요.”
정신없이 밥을 다 먹어갈 즈음, 우리에게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을 건넨 그애의 질문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툭 대답했다.
“네, 뉴욕에 있었습니다.”
그애는 뉴욕이라는 말에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마치 뉴욕이라는 말만 들어도 황홀하다는 듯. 꿈꾸는 표정으로 내게 뉴욕에 대해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타임스퀘어에서 열리는 뉴이어 파티는 어떤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본 적 있는지.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본 적있는지 같은 질문이었다.
“부럽다.”
그 모든 질문의 끝에는 쓰디쓴 미소와 함께 체념한 듯한 말이 있었다.
“언제 뉴욕에 오면, 제가 투어라도 해드릴게요.”
실은 언제 밥 한번 먹자 식의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다. 투어라는 말에 일순간 화색이 돌아왔지만 곧, 생일 케이크 위 촛불마냥 픽 꺼져버렸다.
“못 가요.”
내 말이 빈말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로, 그애는 다시 한 번 실망했다.
“저는 이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거든요.”
나는 그애가 한 말의 뜻이 정확히 뭔지 몰랐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겠다. 하루에 한 번 밖에 없지만 버스만 타고 나가면 되는 거리가 뭐가 어렵다고? 나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그애의 소심함 따위를 가늠했다.
식사를 마치고 지인은 나를 게스트 하우스로 데려갔다. 사람이 퍽 불편했던 나는 모텔에 묵겠다고 했지만, 지인은 모텔보다는 게스트 하우스가 더 좋다며 굳이 흰 페인트를 덕지덕지 덧바른 판때기에 대충 빨간 페인트로 ‘Room for Guest’ 하고 써붙인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시골 느낌이 물씬 나는 현관 문을 바라보며 지인에게 중얼거려보았다.
“모텔로 간다니까.”
“나 못 믿어? 모텔보다 여기가 훨 낫다니까?”
나는 온통 19세기 무언가로 뒤덮인 마을에서 유일하게 근현대의 신선함을 갖춘 모텔을 떠올리며 내심 지인의 말을 부정하고 있었다. TV드라마에서나 겨우 보던 테라스에 나와있는 삐걱거리는 흔들 의자나, 보수에 보수를 거듭한 나무 지붕을 보더라도 조금 전 지나친 모텔이 몇 배는 나아보였다.
그러나 지인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얇은 철제 중문을 똑똑 두드려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불렀다.
“계십니까?”
안쪽에서 작은 소리로 예~ 나가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인은 본격적으로 내 짐을 문 앞에 내려놓고 혹시나 내가 잡고 모텔로 튀어갈까봐 제가 그 앞을 서서 나로부터 내 짐을 지켰다. 나는 나간다고 해놓고 나올 생각이 없는 문을 바라보다 지인에게 툭 물었다.
“뭐, 이집에 돈이라도 빌렸어?”
지인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손이나 내젓고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속으로 지인이 이 집 주인에게 제대로 빠진건가 하고 추측했다. 그러나 5분 가량이 지나 열린 문 안엔 뜻밖의 인물이 생글생글 웃으며 우릴 반겼다.
“어서 오세요. 장기 투숙이신가요?”
어쨌든 지인이 이 사람한테 푹 빠진 것은 아니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어찌됐든 20대에 가까웠고, 호스트는 우리보다 우리 어머니 세대와 가까워 보이는 여자였다. 지인은 나를 짐과 함께 통째로 떠맡기듯 호스트에게 넘겨주곤 저는 일을 하러 가야겠다며 서둘러 마당을 가로질러 나섰다.
“여자 화장실은 이쪽인데, 걱정 마세요. 손님이랑 나만 쓰는 곳이에요.”
호스트는 꽤 친절했다.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음성에 나도 모르게 모텔로 갈까 갈팡질팡 하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게다가 호스트가 안내해 준 방은 깨끗하고 감각적이기까지 했다. 칙칙한 담요나 출처모를 꿉꿉한 침구를 상상했던 나는 방안 가득 햇빛 냄새가 나는 실내에 지인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사과를 전했다.
짐을 모두 풀고나니 벌써 저녁시간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었으니 저녁은 됐다고 말할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못했다.
호스트는 어딘가로 나갔다가, 내 몫의 저녁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차마 거절을 못해 깨작거리며 치킨 포트럭을 입에 넣는 내 모습을 묘하게 뿌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머쓱해진 나는 주인의 신경을 돌리려 슬쩍 물었다.
“식사는 바깥 식당에서 가져오나요?”
“아뇨. 이 마을 주민들은 끼니때만 되면 다같이 나와서 밥을 짓고, 먹고, 같이 치워요.”
호스트는 그것이 이 마을에 살며 마을의 보호를 받는 일종의 절차라고 했다.
식사 시간에 항상 모여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아야, 누가 아픈지, 누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서.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독거노인들이 자신의 생사를 알리기 위해 일부러 신문 배달을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다음번에는 꼭 함께해요. 매일이 피크닉 같아서 얼마나 좋은데요."
"비가 오면 어떻게 해요?"
"그럼 지주의 집에서 먹지요. 그 집 가봤어요? 그 저택엔 연회장도 있어요!"
나는 식사시간을 이용해 살가운 호스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을에 대한 이야기, 호스트가 어쩌다가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따위의 이야기였다.
딱히 특별하지는 않았다. 폭력적이고 집요한 남편에게 시달리던 호스트는 아이를 데리고 이 마을로 숨어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마을, 그러니까 지주는 호스트에게 집을 지을 땅을 소개해주었고 마을은 힘을 합쳐 호스트에게 지금의 집을 선물했다.
호스트의 이야기는 내가 포크를 내려놓는 순간 끝났다.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싱크대로 가져가 넣었다. 바깥은 벌써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부엌 창문 너머 노을이 내려앉는 것을 흘끔 내다보다 넌지시 일렀다.
“소화 시킬 겸 산책이나 다녀오려고요.”
내말에 식탁에서 벌떡 일어난 호스트가 내가 서있던 싱크대 앞으로 화다닥 달려왔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산책을 다녀오려고요…?”
눈을 동그랗게 뜬 호스트가 내 어깨를 부여잡고 부엌 창문에서 날 멀찌감치 떨어뜨렸다.
얼마나 놀랐는지 커다란 눈동자에 천장에 있는 조명이 또렷이 비쳤다.
호스트는 튀어나올 것 같은 눈동자로 내게 당부했다.
“절대로, 절대 절대 밤에 나가면 안돼요.”
“에이, 이런 작은 시골이 뭐가 위험하다고요.”
“뉴욕보다 곱절로 위험해요! 사람보다 더 위험한게 돌아다니니까요!”
“곰이라도 돌아다니는 거에요?”
장난스럽게 받아쳐보았지만 심각한 분위기는 도통 풀리질 않았다.
호스트는 설마 내가 몰래 나가기라도 할까봐 안절부절 못했다.
결국 호스트는 내게 절대,절대, 밤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아내고 나서야, 내 어깨를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
위 소설에 나오는 지명, 사람명 등은 모두 실제와 전혀 상관이 없으며
이후 이어지는 사건 등등은 모두 글쓴여시의 창작물입니다.
첫댓글 뭘까 도대체 밤에 뭐가 돌아다니는겨
이게 원문이구나!! 관점이 달라서 새로운 글 같아ㅎㅎ 고마워!!
헐 존잼각
오 외국 소설처럼 보니까 색다르다
오메 나 다른 여신줄 알고 뭐여 얘기 똑같네 이러고 있었다 와우
헐 뭔가 색다르다
ㅁㅊ.. 개재밌네..
두근두근한다 진짜 저러면
뭘까 왜못나가게해
헉스
와 잼겠다!!잘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