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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출처레딧
제목: 이건 단지 소설일 뿐이다 -2
그 아이는 아침에 스콘을 들고 내가 묵고있던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스콘과 커피를 아침식사로 먹고 있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내가 식사를 끝내기를 기다리다가 오늘 뭘 할거냐고 넌지시 물었다.
“마을을 한 번 돌아볼까 생각중입니다. 지리를 익혀보려고요.”
“그럼 저도 같이 가요.”
그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내 말에 대답했다.
나는 내심 혼자 가고 싶었지만 그 아이가 꺼내든 차키를 보고 생각을 바꿔먹었다.
아침식사 후, 우리는 그 아이의 작은 비틀을 타고 윌리힐타운을 거닐었다.
“저기는 아주 오래된 상점이에요. 어느 아시안 부부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곳이죠. 그리고 저쪽엔 스폭부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에요. 그리고 저쪽은…”
그 아이는 내가 이미 알고있는 시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소개해주었다. 한 가게를 이야기 하는데에 이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이 언제 윌리힐타운으로 들어왔는지를 상세하게 이야기해주었지만. 시설이 얼마 되지 않아 시설 투어는 금새 끝나버렸다.
“작은 마을이에요. 정말 보잘 것 없죠.”
그 아이는 상점 앞에 차를 세우고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얼떨결에 따라 들어가자 겉보기보다는 큰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만물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이런 시골마을에 필요한 온갖 기구들부터 식료품까지 다양하게 조금씩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 유일하게 대량으로 비치되어있는 물품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여긴….”
나는 손을 뻗어 개별로도, 팩으로도 판매하는 콘돔을 하나 집어들었다.
“이런게 수요가 좀 많은가봐요? 보통은 구석쯤에 진열해두던데.”
“아 그거요.”
그 아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각양각색의 콘돔박스를 손가락 끝으로 툭 건드렸다.
“이 마을에 놀러오는 관광객이 많이들 찾나보더라고요. 그거랑 바깥에 진열되어있던 꽃이 제일 많이 팔리죠.”
그 아이의 말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잠깐 혼란스러웠다.무언가를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그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백패커 두 명이 요란스럽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유명한 비치타운에 왔다고.”
얼굴에 주근깨가 잔뜩 낀 어느 멍청해 보이는 백인 남자가 낄낄거리며 마트로 들어섰다. 그를 따라 두터운 안경을 낀 키가 작은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들어왔다.
“여긴 해변(beach)도 없는데.”
“멍청아, beach가 아니라 bitch타운이라고. 굶주린 개년들이 드글거리는 마을.”
나는 상스러운 놈의 말에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뭐라고 할까 한 걸음 다가가려는데 부드러운 손이 내쪽으로 다가와 나를 말렸다.
그 아이는 놈들의 말에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이 마트에 있는 사람 중 오직 나만 그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한 것 같았다. 아시안 부부는 그들이 내민 콘돔 (심지어 박스였다!)을 덤덤히 계산했고, 그 아이는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그들이 나갈때 까지 가만히 나를 저지하고 있었다.
“한번 보라고! 내가 이 마을 개년들을 하나씩 함락시킬거니까.”
그들은 돌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뻔뻔하고 요란스럽게 마트를 나섰다.
나는 그들이 완전히 멀어질때까지 그들을 노려보다 그 아이에게 물었다.
“대체 왜 저런 말을 하는데 가만히 두는 겁니까?”
“저런 사람은 많아요. 애초에 우리 마을 관광 수입을 올려주는 사람들이고요. 여기 계신 초 부부는 저런 놈들의 돈으로 매출을 올리는 걸요.”
그 아이의 말에 카운터 너머에 있던 초 부부 중 부인쪽이 씩 웃으며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이며 웃었다.
“아주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죠.”
시종일관 입을 다물고 있어서 영어를 못 하는 줄 알았던 아시안 부부는 이제까지 뉴욕에만 살았던 나보다 더 정확한 영어를 구사했다. 하지만 그들의 발음에 놀랄 때는 아니었다. 나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이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 적잖이 놀랐다.
“그러니까, 우린 상관 없어요. 오히려 매출을 올려주니 마을 경제에 보탬도 되고 좋죠.”
이런 상황을 묵인하라고 내가 대학교에서 여성학 과목을 수강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배운 바로는 이럴때 필요한 것은 한걸음 다가서는 것이었다.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이런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 이 상황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떤 부분에서 이 마을의 여성들에게 ‘위험’이 되는지를 알려야한다는 일종의 정의감이 싹텄다.
나는 그 아이를 돌아보며 다시 열을 올렸다.
“방금 저 남자들이 이 마을을 집창촌 취급했어요. 이걸 어떻게 괜찮다고 할 수 있죠? 이 마을에 사는 여자들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요!”
그 아이는 내 목소리에 잠깐 놀란듯 했지만 이내 아주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내 상상력이 매우 재미있다는 듯이 몇 초정도 웃었다. 곧 그 아이가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그리고 굉장히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뇨, 그런 일 없을 거에요.”
그 아이의 단호함에 놀란 것은 나였다. 그 아이는 마치 하늘은 파랗고, 내가 든 콜라는 갈색이다라는 사실을 말하는 듯한 톤으로 답했다. 나는 그 아이의 확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뭘 믿고 절대 ‘그런 일’이 없을거라고 장담하는가.
“여기 말고 더 멋진곳을 보여줄게요. 거기선 콜라가 더 시원하게 느껴질 거에요!”
내가 그 아이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기 전, 그 아이는 나를 이끌고 마트를 나섰다.
마트를 나서면서 마트 입구에 화려하게 진열된 꽃을 보고 나는 그 꽃의 매출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상상하며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그 아이는 내 표정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작은 비틀을 몰고 숲에 난 구불구불한 도로를 능숙하게 올랐다.
“사실 차로 가면 더 오래 걸려요. 직접 걸어가면 지름길이 있거든요. 숲을 통해서 가는 길이요.”
확실히 이 길은 포장이 엉망일 뿐더러 혹시나 다른 차가 맞은편에서 온다면 아주 곤란할 정도로 좁았다. 심지어 조수석인 내쪽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은 거의 낭떠러지라 나는 은근슬쩍 조수석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이 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작은 오두막이 있어요.”
그 아이는 차를 세 대 정도 세울 수 있을 만한 공터에 차를 대고 울창한 숲 위로 올라가는 샛길을 가리켰다.
나는 곧 그 아이가 말하는 ‘작은 오두막’의 정체를 알 수 있었는데, 그건 확실히 오두막은 아니었다.
“이건 전파탑 관리실이잖아요.”
“윌리힐타운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기도 하죠.”
그 아이는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목재로 지어져 오두막처럼 보이는 전파탑 관리실에는 정말 발코니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으로 나가니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보였다. 작게 감탄하는 나를 뿌듯하게 바라보던 그 아이는 내게 커다란 쌍안경을 내밀었다.
그 곳은 쌍안경을 들고 있다면 마을 구석구석을 한 자리에서 정찰할 수 있는 망루와도 같은 곳이었다. 나는 지인이 일하는 경찰서를 쌍안경으로 지켜보다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에요. 나름 이름도 붙였어요. 버드네스트.”
“새들이 머물다가는 곳인가봐요.”
“나는 새가 되고 싶거든요.”
그 말에 쌍안경에서 눈을 떼고 그 아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환상적인 풍경을 앞에 두고 그 아이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보였다. 아니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면 이 풍경이 지긋지긋하다고 느끼는 듯 했다.
나는 묘한 눈으로 마을을 내려다보는 그 아이에게 왠지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질문을 건넸다.
“왜 이 마을을 떠나지 않는 겁니까?”
“말 했잖아요. 못 떠나요.
“비틀이 있잖아요. 중간에 주유는 좀 해야겠지만 마을을 나가는 길이 저렇게 멀쩡하게 나있는 걸요.”
그 아이에게서 다시금 쓴 웃음이 번졌다.
“비틀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서요.”
나는 그 아이에게서 더이상 물어보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을 느꼈다. 나는 마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화의 방향을 뒤틀었다.
“참 정돈이 잘 된 마을이에요.”
“그렇게들 말하더라고요.”
“이렇게 잘 정돈된 마을을 유지할만한 재정이 전부 콘돔 매출로 나오나요?”
뻣뻣하게 굳어있던 그 아이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돌아왔다. 나는 그 아이에게 거의 코미디언 수준이었다. 그 아이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눈을 반짝이며 듣다가 꽃망울이 터지듯 경쾌하게 웃었다.
“우리는 돼지를 키워요. 마을 사람들 다 같이 돼지 농장을 운영하죠. 그리고 저희 집안은 햄공장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그 아이는 마을을 운영하는 비용은 모두 햄 공장에서 나온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주민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주민들은 모두 햄공장 혹은 돼지농장에서 일하며 봉급을 받았다. 아마도 내가 제일 많이 마주하게 될 곳도 햄 공장이 될 것이다.
“하긴 유명하죠. 윌리힐타운 소세지. 바비큐 파티에 필수품이었는데.”
“그런데 전 그 소세지 별로 안 좋아해요.”
“질려서요?”
태어나서부터 윌리힐타운 소세지를 먹어왔다면 질릴만도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 옆에서 무미건조한 답변이 들려왔다.
“그렇다고 해 둘게요.”
나는 조금씩 그리고 확실하게 이 비밀많은 아이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곤란한 질문이 나올때마다 묘한 미소와 함께 돌아오는 애매한 답변. 마을 바깥을 이야기할때 반짝이는 눈. 내게 뉴욕 이야기를 조를 때 감도는 미소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이 아이에 대해서 더 알고싶게 만들었다.
윌리힐타운 햄 공장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한 희미한 햄 굽는 냄새를 맡고 있으니 곧 배가 고파왔다. 점심을 먹어야하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그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비틀이 있던 곳으로 팔랑팔랑 뛰어갔다.
어떻게 그렇게 뛰어갔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는 계단을 마치 춤을 추듯 가볍게 발끝으로 디디며 내려갔다가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올라왔다.
“마침 점심으로 먹을만한걸 좀 가지고 있어요.”
어쩌면 나는 그 미소에 홀려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작은 발코니에서 그 아이가 만들어온 음식으로 만찬이 벌어졌다. 나는 신선한 햄을 겹쳐 만든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레시피를 훔쳐가고 싶은 소스를 음미했다. 햄 굽는 냄새와 함께하는 햄 샌드위치는 훌륭한 점심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아이의 손재주에 찬사를 보냈고 그 아이는 별 거 아니라며 손을 내젓다가도 퍼지는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샌드위치 하나를 끝내고 평화로운 마을을 내려다보다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혹시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뭐든지요!”
“이렇게 평화로운 마을인데 왜 밤에 나가지 말라는 거에요?”
그 아이는 내가 이 마을에 들어와서 처음 보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마네킹 같은 무표정 혹은 웃는 모습 혹은 씁쓸한 미소가 전부였는데. 곧 복잡한 표정은 사라지고 차분한 얼굴이 그 자리를 메웠다.
“이리 때문이에요.”
“이리?”
“돼지를 키워서 그런가. 이 마을에는 이리가 많아요. 그래서 밤에 다니면 정말 위험하죠. 장정 서넛도 당했는걸요.”
“위험하네.”
흉흉한 눈을 떠올리니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커다란 개과 동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내 산책을 말려준 호스트에게 감사인사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사실은 그 정도로 위험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 아이가 의외의 말을 내뱉었을때, 또다시 놀랐다. 그 아이는 맑은 눈동자로 해맑게 내게 이렇게 말했다.
“눈을 계속 보고 있으면 당신을 해치지 않을거에요. 눈을 계속 쳐다보면 진심이 전해지거든요. 이리는 마음이 탁한 사람을 물어가요.”
“어떤 진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거죠?”
“이리는 당신의 잘못을 모두 들여다 볼 거에요. 그러니까 이리 앞에서는 거짓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안돼요.”
세상을 살면서 단 한가지의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어떻게 바로잡는 지 알 수 없으니 절대로 밤에는 나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는 언젠가는 돼지 농장에 데려가주겠다며 그날의 투어를 마쳤다. 게스트 하우스에는 호스트가 내 몫의 저녁을 남겨두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두 번째 데워 맛이 충분히 우러난 스튜를 천천히 저으며 호스트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주변에 이리가 다닌다면서요.”
“맞아요. 밤이 되면 위험하죠.”
“제가 산책을 나가지 않게 막아줘서 고마워요.”
호스트는 별 일 아니라며, 내가 조심해야할 것을 몇 가지 더 일러주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꼭 집에 돌아오기.
만일 집에 돌아올 수 없다면 가까운 집을 방문해서 문을 두드리기. 1층 창문은 꼭 닫아놓기 등이었다.
윌리힐 타운에서의 첫날밤. 나는 괜스레 이리가 떠올라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밤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바람결에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 내 창문가를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첫댓글 두근두근... 여샤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주라
익숙하게 문을....!!! 열었다인가요
아 존나재밌다구,,, 빨리 더줘,,,
이 글의 원문이 뭔데? ㅜㅜ 궁금하다노..
홍콩방에 안친한 사촌언니 검색하면 시리 쫘르르 나와!
@Maryisangry 감사합니다! 전편부터 궁금했엌ㅋㅋㅋㅋ
재밌다....ㅠ
여시.. 진짜 천재같아...
오 설마 돼지들이...!
존잼 ㅠㅠㅠㅠ
와 원작도 찾아봐야지 존잼
와... 존잼... 빨려든다
이거 그 섬에 들어갔던 소설이랑 비슷하다! 주인집 아기씨랑 친해졌는데 웬 bj가 여자들만 사는 섬이라고 왔던?!
원작이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