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 시절 기상나팔 소리를 기다리며 가슴조이 듯 새벽을 맞았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이스탄불의 아침은 옛 도시답게 낡은 모습이었다. 보기 위해 왔으니 빠짐없이 보리라는 욕심에 호텔 주변을 돌았다. 식전아침! 참깨가 듬뿍 묻은 고리 모양의 빵을 파는 사내의 검은 손등에서 이스탄불의 아침은 시작되었다. 빵을 파는 그 사내의 검은 손이 그 옛날 형제국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양해되었다.
(토카프 궁전) (토카프 궁전 제 3 정원)
버스에 올라 오즈만 제국의 술탄(왕)이 거주했던 토카프 궁전으로 향했다. 네 개의 정원을 보듬고 있는 궁전에는 국화인 튤립이 다투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제 4정원의 보석관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붙들었지만 난 소 닭 보 듯 해찰을 하며 이 곳 저 곳에 셔터를 눌렀다. 예나 지금이나 보석은 사람들의 소유욕망에 불을 지르는 요괴와도 같아, 전쟁도 마다하지 않고 긁어모았던 당시의 술탄을 탓 할 바가 아니더라.
(서 소피아 박물관) (회로 덧칠한 성당 내부 모자이크 성화)
소피아 성당(지금은 박물관)에 들어서자 정복자의 해코지가 곳곳에 배어있었다. 동로마를 점령한 오즈만 제국은 성소피아 성당의 모자이크 벽화를 석회로 덧칠하고 그 위에 이슬람 문양을 그려 기독교적인 냄새를 지우려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피아 성당을 파괴하지 않은 것이다. 소피아 성당이 있어 관광수입이 올라가니 부럽기 그지없다. 우리는 광화문 앞의 중앙청을 꼭 철거해야만 했을까?
정복자가 자신의 종교 우월성을 과시하고자 맞은편에 블루모스크라는 웅장한 사원을 지어 맞불을 놓던 당시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소피아 박물관보다 2개 많은 6개의 뾰족 탑이 정복자의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미화되고 다시 씌워질 수밖에 없으니 힘을 키우고자 절치부심하는 글로벌 파워의 달콤한 유혹을 새삼 느끼게 한다.
오즈만 제국이 있기까지 역사를 돌이켜보면 동양의 힘이 한 때 유럽을 정복하고 결국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일으키게 만들었다니 동양인인 나도 순간이나마 어깨가 우쭐해진다.
동양의 힘! 600년경 돌궐과 발해(이어 고구려)는 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내왔다. 하지만 돌궐은 한나라 무제에 의해 동돌궐과 서돌궐로 갈라지고 기약 없는 유랑을 계속하여 지금의 터키인 아나토리아 반도까지 밀려갔다. 돌궐족은 그곳 서 아시아에서 세력을 키워 서쪽으로 밀고 갔고 결국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전투를 벌여 승리를 낚아챘다.
로마의 영광은 사라지고 오즈만 투르크족이 유럽을 정복한 것이다.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는 말처럼 유목민들의 저력은 마치 남지나해에서 습한 공기가 세력을 키워 거대한 태풍을 만들 듯이 단박에 큰 세력이 되어 유럽을 제패하고 만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다리,왼쪽:유렵, 오른쪽:아시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 위에 걸쳐진 두개의 다리... 북쪽의 흑해와 남쪽의 에게해를 이어주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전략적으로 중요했고 실크로드를 통해 동방에서 넘어온 비단은 이곳 좁은 해협을 건너 그랜드 바자르(이스탄불 최대 시장)에서 서양의 물건과 교환되었다.
지리적으로 유럽 땅을 일부 갖고 있는 터키! 하지만 유럽연합에 끼지 못한 서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 국민소득이 낮다는 이유로 유럽연합에 끼워주지 않았지만 진짜 속내는 인구가 많기 때문이란다. 한 때 유럽을 통일한 영광이 역사 뒤로 사라지고 EU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는 그들이 만약 2차 대전에서 이스탄불마저 읽었다면 영원히 아시아 국가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해협 양쪽에는 유난히 많은 터키 국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붉은바탕에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국기.... 난 터키 국기를 씨별(C + Star)이라 이름지었다. 기나긴 역사 앞에 유럽인종과 섞여버린 먼 옛날 우리 조상들과 형제였던 민족.... 이젠 서양인의 제스처가 더 어울리는 그 옛날의 형제..
“미르?” “...... Pardon?”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남자가 커피를 따라주며 내뱉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껌벅이며 바라보자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젖 짜는 제스처를 취한다. 함께 간 여자들의 표정을 훔쳐보며 괜히 내가 얼굴이 붉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점심때가 지난 한식경! 대형 스피커를 통해 기도시간을 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에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니 반대쪽 어디선가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응답을 한다. 성당의 종소리도 소음공해가 되어 침묵한지 오랜 우리와 달리 이곳 터키에서는 아직도 60년대의 새마을 노래처럼 용인되고 있었다. |
출처: 춘식아! 놀자! 원문보기 글쓴이: 창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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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영광이여... 인생도 덧없고 역사도 덧없고...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말할는지... 영광뒤에 오는 허무감이 느껴지는 이틀동안 상실감이 컸지요? 그래도 열심히 삽시다. 건강하세요
한국의 역사에도 미약한 사람이 생각하기엔 너무 큰 세계의 이야기네요...하지만 이국의 소식이 좋습니다. 어제 마침에 먹었던 된장국에는 햇 고사리와 ?이 들어 있었죠....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된장국을 처음 먹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요...지리산 자락에서 있었던 일이죠..ㅎㅎㅎ
여행 가고픈 유혹...
이 글을 읽는 내내..날개가 생각났어요..'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말하던 이상의 날개..태양을 향해 더 높게 날려다 태양에 녹아버린 이카루스의 날개..쇠퇴한..몰락한..역사의 비애..
이카루스.. 끝없는 욕심... 박연차가 결국 그리 만들어 온국민에게 슬픔을 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