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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 코즈믹호러 주의
세계는 그런 것이다.
1997
http://madtaro.net/slippage.htm
우리 집에는 열리지않는 공간이 있다.
이전에는 할머니의 방이었다.
5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창고가 됬고, 이것저것 필요 없는 것, 처리하기 곤란한 것을 넣었고, 지금까지 아무도 연 적이 없게 됬다.
할머니는 상냥했지만, 엄마와 관계가 좋지않아 항상 싸움만 했다.
그 방이 험하게 다뤄지는 것도, 이 이유때문일까.
그래서, 그 방이 어디있냐하면, 사실 내 공부방의 맞은편에 있다.
내가 내 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게임을 하고 있노라면, 그 열리지 않는 공간에 대한 것은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 밤까지는.
나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하긴 했지만, 학교에서 점수는 그다지 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분명 다들 수험생이 되기에, 필사적으로 열심히 하고 있는 거겠지.
나는 수학문제집을 풀었다. 모르는 문제에 막혀, 아까부터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졸려서, 멍하니 문제를 보기만 하고, 뇌는 움직이지 않았고, 단지 시간만 흘려보냈다. 꾸벅꾸벅 조는걸 깨닿고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12시가 지나있다.
내일 아침도 과외가 있어서 아침 6시에 일어나야한다.
나는 자기로 했다. 머리는 몽롱해져서, 공부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는 부담에, 이럴꺼면 차라리 일찍 자는게 더 나았겠다 하는 후회와 졸음으로 뒤죽박죽 섞였다.
나는 흔들흔들거리며 화장실이 가고 싶어 다녀오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 때, 무슨 착각인건지, 나는 내 방이 아니라, 맞은 편의 열리지 않는 공간의 손잡이를 잡았다.
앗, 잘못됬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문을 열었다.
옅게 깔린 어둠 속 내가 본 것은, 발이 부러진 소파나 낡은 스테레오, 현이 녹쓴 기타나, 빛바랜 찬장 등이 빈틈없이 쌓아올려져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달랐다.
문의 건너편에는, 끝없이 펼쳐진 광대한 사막이 있었다. 저 멀리, 평평한 지평선이 보였다. 맑은 밤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떠있었다.
오른쪽엔 초승달이, 왼쪽엔 보름달이 있었다. 푸른 빛이 비치는 불모의 사막이 끝없이 끝없이...
나는 문을 닫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나는 내 방문을 열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변함없는 아침이었다. 책상의 수학문제집을 펼쳤다.
나는, 어젯 밤의 일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방을 나와, 내 맞은 편의 할머니 방의 바라봤다.
손잡이를 쥐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발이 부러진 소파나 낡은 스테레오, 현이 녹쓴 기타나, 빛바랜 찬장 등이 빈틈없이 쌓여있었다. 모든 잡동사니들이, 조금 먼지에 덮혀있었다.
사막같은건 어디에도 없었다.
꿈이었나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혹은, 단지 잘못 본 것이라던가.
문 반대편이 다른 세계라는 건, 영화나 소설에서의 이야기다. 여긴 현실세계다. 그런 일이 있을리가 없다.
그저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이, 끝없이 반복될 뿐이다.
세수를 하고 부엌으로 가면, 엄마가 아침식사 준비를 끝내고있었다. 언제나 똑같이. 다만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식탁에 아버지가 있단 것이었다.
"잘 잤니."
신문을 읽던 눈을 올려, 아버지가 나를 봤다.
"잘 주무셨어요."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7시쯤 넘어 일어나니, 나와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입을 열면 '공부하고 있니'라던가 '요즘 성적은 어때'정도의 말만 하는 인간이다.
"오늘은 희한하게, 눈이 빨리 떠져서 말야."
내 생각을 간파한 것 처럼 아버지가 말했다. 변함없이 차가운 무표정이었다.
그리고 누나 타카코가 일어나 나왔다. 눈이 빨깧고, 아무리봐도 졸려보인다. 누나는 여고에 3학년이어서, 제일 힘을 시기다. 어젯밤 내가 잘때 쯤 화장실로 갔을 때도, 누나의 방에서는 불빛이 삐져나왔다.
엄마가 요리를 식탁에 차렸다. 오랫만에, 가족 4명이 모인 아침식사였다. 엄마는 아직 누나와 내 도시락을 만들고있지만.
나는 모처럼이니까, 어제 밤 본 기묘한 광경을 말해볼까 생각했다.
"저, 안 여는 문 말인데."
엄마는 말없이 도시락을 담고 있었다. 아빠의 어께가 움찔거렸다. 누나는,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날 봤다.
나는 계속 말했다.
"어제말야, 자기 전에 잘못해서 그쪽 방으로 들어가버렸어. 그랬더니 그 방에 사막이 되있었어."
엄마가 조금 놀란듯한 얼굴로 되돌아봤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누나는 지금 이야기를 듣고 지루한지, 하하 하고 웃으며 말했다.
"바보네 히로시, 잠꼬대 해?"
"그치만 엄청났어. 지평선이 보이고, 제대로 하늘도 있었어. 달도 두개나 떠있고..."
그 때, 아빠가 나를 노려봤다.
"잡담은 그만하고 빨리 먹어라, 지각한다."
나와 누나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과묵하고 고지식해 늘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식사 중 대화때 거친 언행으로 찬물을 끼얹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아빠의 눈길에는, 살의마저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아침식사는 이어졌다.
혹시 아빠는 무언가 아는걸까.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알고있다면 뭘 말일까. 어젯밤의 일은 내 꿈이 아니었단 말인가.
아니, 그런 바보같은 일은 생각 할 수없다. 오늘 아침도 어쩌다보니, 아빠의 기분이 나빴을 뿐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앞에 바구니가 달린 아줌마자전거는 처음 탔을 땐 보기 구려서 싫다 생각했지만, 가방도 여유롭게 들어가고, 익숙해지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게 된다.
나는 이 아줌마자전거를 타면 20분정도 정도 걸려 학교에 도착한다. 도중에 강가의 좁은 길과 논 사이의 길을 지나기도 한다.
교문을 빠져들어와 가까운 곳에 있는 자전거주차장에 자전거를 넣었다. 오늘은 희한하게 텅 비었다. 과외를 받는 사람이 많아서, 대게 이 곳의 주차장은 늘 가득차 있어서 나는 항상 뒤쪽의 주차장으로 돌아갔었다.
학교에서 자전거를 훔치는 일이 빈번해져서, 나는 자전거를 자물쇠 두개로 걸고있다.
내 교실은 2학년 4반으로, 학교 건물의 2층에 있다. 낡은 목조의 건물은 꽤 오래되서 걷기만 해도 삐걱거린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꽤 좋았다.
교실에 들어가니 역시 온 사람은 조금밖에 없었다. 평소엔 거의 절반 가득 있었는데.
"안녕."
창가의 자리에 있던 사나다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내 친구, 내가 존경하는, 단 한 명의 남자였다.
"안녕."
나도 인사를 되받았다. 그라면, 어젯 밤 내가 본것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선생님이 들어와 과외가 시작됬다.
오늘은 좀 빠르네. 나는 내 자리에 앉아 교과서와 노트를 꺼내면서,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선생님이 다르다. 오늘은 화요일이고, 스즈키 선생님의 수학과외 차례였다. 하지만 교단에 서있는 사람은 영어의 키도선생님이었다.
하하. 선생님이 착각했나보다. 순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히죽거렸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반 친구들은 모두 영어 교과서를 들고 있다.
나는 내 머리에 피가 몰리는 걸 느꼈다. 내가 틀린거다. 어쩌지. 이러면 아침 일찍 학교에 올 이유가 없다.
혹시몰라, 옆자리의 마에하라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야, 오늘 수학아니었냐?"
마에하라가, 이 놈은 무슨 말을 하는거냐. 라는 눈으로 나를 봤다.
"오늘 화요일이잖아, 영어라고."
마에하라가 말했다.
나는 부끄러움에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수학교과서를 가방에 넣었다.
영어수업은 내 사정과는 관계없이 진행됬다. 마에하라는 교과서를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좀 더 인정미가 있는 놈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내심 마에하라를 원망했다.
"그럼, 3번문제는 무코다."
키도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 책상에 영어교과서가 없는걸 알았다.
"교... 교과서를 잊어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말했다.
선생님은 어이없어 하는 얼굴로 나를 봤다.
"그럼 너는 대체 왜 과외를 받고있냐"
10명 가까이 되는 반 친구들이 웃었다. 그건 비웃음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나다는 웃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서, 교과서와 노트를 가지고, 내 옆의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교과서를 나에게도 보여주었다.
나는 사나다에게 구해졌다.
"오늘은 수학이라고 생각했어. 줄곧, 화요일은 수학이라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그랬잖아."
수업이 계속되는 중, 나는 작은 목소리로 사나다에게 속삭였다.
"화요일은 전부터 영어였는데."
사나다가 말했다.
나는 내 학생수첩을 꺼냈다. 시간표가 써진 칸을 넘겼다.
화요일 아침엔, 수학이었다. 올해 초에 내가 쓴 것이었다. 계속 이걸 보면서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이 시간표를, 옆의 사나다에게 보여줬다.
사나다는, 가만히 이걸 쳐다봤다.
이윽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외가 끝났을 쯤, 다른 반 친구들도 들어왔다. 와타나베나 이마무라나 하라타라던지 친한 친구들도, 나와 사나다의 주변에 모였다.
"어젯 밤, 신기한 일이 있었어."
나는 그렇게 말을 꺼내, 열리지 않는 공간이 사막이 되어있단 것과, 아침에 다시 한번 열어봤을 때는 잡동사니들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했다.
"꿈이잖아, 꿈."
와타나베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아침의 과외도 바뀌어있고. 아무도 깨닿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난, 지난주까진 화요일이 수학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어. 어제 일이랑, 뭔가 연관이 있는걸까?"
나는 정말로 기분이 나빴다. 사나다 말고 다른 친구들은, 그냥 장난인 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사나다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몇 개정도 생각할 수 있어."
나는 잠자코 사나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첫번째는, 너가 잠꼬대를 해서, 꿈을 본 것 뿐이다."
친구들이 동시에 웃었다. 사나다가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니, 무심코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물론, 그는 농담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를 잘 알고있다. 그는 언제나 진지하다. 길거리에서 친구들이 걷다가 불량배들과 얽혔을 때, 사나다 혼자 그들을 죽을정도로 때렸다. 바로 폭력을 행사하기로 유명한 체육선생이, 특히 이유도 없이 반 친구를 체벌할 때도, 사나다 혼자서 항의하고 서명을 모아서 선생을 면직시킨 적도 있다.
사나다는 무슨 일에도 타협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이성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왔다. 고교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 어른스러운 분위기. 그건 이 더러운 사회의 범람하는 어른들과도 달랐다. 그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이기도 하며, 절대로 닿을 수 없는 목표이기도 했다.
"오늘 아침의 과외에 관해서도, 너의 착각일지도 몰라. 일딴 이게 첫 째야."
"사막에 관한 건 꿈일지도 몰라도, 과외에 관한건 납득이 안가는데, 난 내 기억에 자신있어."
나는 반론했다.
"그런가..."
사나다는, 왠지 의미있는 듯이 나를 봤다. 그리고 다음 가능성을 설명했다.
"두번째는, 지금 이게 전부 너의 꿈인 것."
"뭐?"
나에겐, 그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전부라니 뭘까.
"어제 본 것부터 지금 이야기하는 것도, 전부 너의 꿈에서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는 아직 꿈을 꾸고 있단거야."
"지금 여기 있는 사나다 너도 본인이 아니라, 내 꿈의 등장인물인거야?"
라고 한다면 꿈 속의 사람이, 일부러 이게 꿈이라고 설명해주고 있는게 된다.
"다만 이건 네 입장에서의 가능성 중 하나고, 실제론 다를거야. 나는 실제로 너가 보이고있으니까, 내게 있어선 내 쪽이 꿈을 꾸고있을지도 모르는 것이 돼. 하지만 질문하고있는건 너고, 그 가능성이 너완 관계없지. 결국, 이게 너의 꿈이 아니라는 건 난 알 수 있지만, 그걸 너에게 증명할 수 있진 않아."
"됬어. 잘 모르겠지만, 믿을게. 이게 꿈이 아니다, 라는... 다른 가능성은?"
사나다 이외의 친구들의 표정이, 점점 차갑고 무관심으로 바뀌는 것을 난 알아차렸다. 왜 그럴까. 그래도 그런 것보다 나는, 사나다의 말이 더 신경쓰였다.
"세번째는..."
사나다는 강한 눈을 하고 나를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분명히, 그것을 말했다.
"세계란, 원래 그런 것이다. 라는 것."
"... 그, 그게 무슨..."
그 대답은 두번째의 가능성보다 더 의미불명했다.
"너는, 이 세상이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라고 믿고 있어?"
사나다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물었다.
"화, 확실히, 여긴 현실이지."
"현실이란게 대체 뭔데? 그건 멋대로 우리들이 믿고있는 것 뿐이야. 실제로 우리가 세계라고 생각하고 있는건, 자신의 감각이라는 필터를 통해 들어온 것에 불과해. 모든 것은 자신의 감각뿐이야. 물리 법칙은 단지 가설이야. 너는, 꿈 속의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어? 사계란건,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몰라."
"그, 그치만 법칙은 법칙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으니까..."
나는 동요하고 있다. 어째서 이런 이야기가 되버린 걸까. 현실이 맞는건지 어떨지, 생각한 적도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왔을지도 몰라. 하지만 앞으로도 다 그런 건 아니야. 그것이, 세번째 가능성이야."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바보아냐? 잘 모르겠네"
이마무라가 입을 비쭉거리며 말했다. 나와 사나다 이외의 친구들은 차가운 눈을 하고 떨어졌다. 그들의 눈에는 불안함 같은 것이 있었다. 그들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한, 평상시와는 달랐다. 이건 어찌 된 일일까.
사나다는, 그들의 폭언을 무시했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업은, 아침의 과외 말고는 어떤 문제도 없이 지나갔다.
방과 후의 과외도 끝나고, 나는 노을 빛을 받으며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아침에 사나다가 말한 것이, 줄곧 머리 속에 남아있다.
강가의 길을 달리고 있을 때, 쿵 하고 앞바퀴에 기분나쁜 충격이 전해져 왔다. 딱딱하면서도, 말랑한 감촉.
치어버렸다. 무언가를 깔아뭉갠것 같았다. 여러가지를 생각하느라 앞을 제대로 못봐서 그런걸까.
고양이라던가라면 싫은데. 나는 자전거를 멈추고 뒤돌아봤다.
고양이는 아니었다.
가는 자전거 길 중간에, 살색의 무언가가 있었다.
그건, 사람의, 절단된 손목부터 앞 부분까지였다.
내 자전거가 남긴 타이어 자국이, 손등에 남아 있었다.
손목이 너덜너덜해진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노을이, 나와 손목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몸을 돌려, 자전거를 몰았다. 두번 다시 되돌아보지 않았다.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다녀왔니."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의 말은, 평소와 달리 기운이 없었다.
"엄마, 왜 그래?"
내가 물어보면,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고, 괴로운 듯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기분이 안좋네, 머리도 아프고."
약간 얼굴빛도 파랬다.
"무리하지 말고, 자. 저녁은 누나랑 내가 만들게."
"아니,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응."
나는 내 방으로 향했다.
내 방의, 게임기가 사라졌다. 수십개 되는 게임 소프트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누나가 자기 방으로 가져간건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누나도 꽤 게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정말이지, 수험생인 주제.
그래도, 새 것부터 오래된 것까지, 한번에 게임 소프트를 다 가져가기도 하는걸까.
누나가 아니라면, 아빠가 가져간걸까.
게임이라던지 하지말고 공부나 하라고 가끔 말했었다. 오늘 아침의 태도를 보면, 성적이 오르지 않는 내가 화가 나서, 게임을 전부 버려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제기랄. 그렇게 매일 몇시간씩 하고있지도 않는데. 이렇게까진 안해도 되잖아.
그렇게 됬으니, 책장에서 만화책이나 볼까 하고, 책을 잡다가, 나는 만화책도, 책장 하나가 전부 사라져있단 걸 깨달았다.
그 책장에는, 중요한 초, 중학교때 졸업사진이나, 아버지가 사다 준 세계명작문학집도 꽂혀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비정상적이었다. 더욱이 나는, 무거운 책장을 한번에 짋어져 함몰되있던 바닥이, 그런 일 따위 없었다는 듯이 평평하게 되돌아오는 걸 봤다.
잠시 후 누나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나는 누나의 방에 가 게임기나 책장이 없어진 걸 말했다.
"난 몰라."
누나가 말했다.
이윽고 저녁밥이 다 됬다는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기분이 안좋대. 뭔가 도와드려야 겠는데."
내가 말하면,
"흐응"
누나는 아무래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도, 게임기나 책장에 대해서 물어봤다.
아빠가 내 방에 들어간 적은 없던 것 같았고, 모른다고, 엄마가 약해진 어조로 답했다.
그날 밤, 감자조림은 이상하게 단 맛이 났다.
엄마가 몸이 좋지 않아서, 양념을 잘못 한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조용히 있었다.
밤이 되서 텔레비전을 보는 정도밖에 할게 없어서,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어젯 밤 수학문제집을 계속 풀었다. 못 풀것같은 문제는 건너뛰고, 풀릴 것 같은 것만 풀었다. 도중에 누나의 방에서 바보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뭘 하고 있는걸까. 텔레비전이라도 보는걸까. 수험생인 주제.
또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었다. 뭔가 조금만 더 하면 풀릴 것 같은데, 뭔가가 부족하다.
그렇게 풀어가고 있을 때, 머리가 붕 뜨는 것 같이 흐리멍텅해지고, 정신을 차려보면 오전 2시가 넘었다.
나는 욕을 하고 잠을 자기로 했다.
화장실에 간 뒤, 열리지 않는 공간에 닿는 일도 없이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을 잤다.
어느 때와 똑같은 아침이었다. 아빠의 모습은 없었다. 아직 자고있는 거겠지.
엄마는 부엌에서 아침식사와 도시락을 만들고 있었다.
"상태는 좋아졌어?"
내가 물어보면, 엄마는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응, 좋아졌어."
엄마는 묵묵히 요리를 만들었다. 그 뒷모습만 보였다.
누나가 졸린듯이 일어나 나왔다.
"어제 웃는 소리가 들렸다고."
내가 말하면, 누나는 이상하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하, 하하. 바보야? 난 수험생이라고."
뭐가 웃긴걸까.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나를 신경쓰던 차에 아침식사가 차려졌고, 나와 누나는 먹기 시작했다.
7시 40분 쯤, 나는 자전거를 탔다. 어제 돌아오는 길의, 기분나쁜 감촉이 생각나버렸다.
아침의 과외는 영어가 아니라 수학이었다. 나는 혹시몰라 모든 교과서를 가지고 왔다.
과외가 끝나고 HR이 지나서 1교시, 2교시가 지나갔다.
수업 내용 자체는 변한게 없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도 변한게 없다.
그런데 왜, 반 애들은 왜이렇게 웃는걸까.
뭔가, 선생님의 시시한 개그에 엄청 웃는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말 그대로 배를 움켜잡고 웃는다. 선생님도 웃겨서 수업을 멈추는 일도 있었다. 모두, 정말로 즐거워보인다.
처음엔 나도 모두가 웃는 것에 재미가 없어도 웃었는데, 점점 내가 웃는 것에 쥐가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의 웃음 소리가, 학교에 울려퍼졌다. 정말로 밝고 즐거운 수업이다. 무서울 정도로.
내 눈은 도움을 바라는 것처럼 사나다를 찾았다.
사나다는 웃고있지 않았다. 미소만 띄울 뿐이었다.
나는 안심했다. 그리고 웃는 걸 멈췄다.
선생님이, 그 때 살짝 나를 쳐다봤다.
쉬는 시간이 되어서, 와타나베와 이마무라, 하라타는 내 가까이 오지 않았다.
나는 교실 구석에서 사나다에게 말했다.
"다들, 뭔가 이상해."
나는 사나다에게 말했다. 그리고 어제 돌아가는 길에 본, 사람의 손목에 관한 것도 말했다.
"사람에게, 의사意思가 있다고 생각해?"
사나다는, 갑자기 전혀 다른 걸 물었다.
"무슨 의미야?"
"자신의 의사가, 정말로 자신의 의사라 생각해?"
사나다의 눈은, 똑바로 내 눈을 보고 있었다.
"... 자신의 의사면 자신의 의사겠지."
"애초에, 의사가 대체 뭘까. 그게 정말로 자신이 만들어 내는걸까. 나는 가끔 생각할 때가 있어. 의사나 감정같은게 내 머릿속에 멋대로 떠오를 뿐이고, 나는 내 몸을 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걸 보고있을 뿐이고,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생각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사나다의 눈은 매서웠다.
그 말은 나의 마음에 강하게 남았다.
어느샌가, 반의 모두가 우리를 말없이 보고있었다. 마치 방해자나 적을 보는 눈초리였다.
사나다는 자신을 '나'라 말하는 걸 깨달은 건, 나중에 가서의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보니 엄마는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엄마는 생기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는, 조금 화장이 짙어진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귀에는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누나네 고등학교에선 괜찮을 걸까.
밤이 되서 아빠가 돌아왔다. 나는 게임기나 책장의 관한 걸 이야기했다.
"시끄럽다. 그런 걸 내가 알겠냐!"
아빠는 엄청나게 무서운 얼굴로 소리쳤다.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아빠의 관자놀이에는 시퍼런 핏줄이 솟아있었다.
나는 내 방에서 공부를 했다.
그것밖에 할 게 없었다.
내 방에서, 아직도 뭔가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뭐가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수학문제집은 여전히 막혀있었다.
누나의 바보같은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닿아온다.
뭔가 이상하다. 뭔가가 변하고 있다.
문득 시계를 보면 2시였다.
나는 자기로 했다.
문제집은 3페이지밖에 풀지 못했다.
끼긱, 끼긱, 끼긱.
무언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끼긱, 끼긱, 끼긱.
학교. 뭔가 변한 건 없다.
모두, 단지 웃고있을 뿐이다.
요즘, 수업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것 같다.
아니, 내 착각이었다. 오히려 느려진 것 같다.
선생님이, 가끔 나를 힐끗 본다. 사이좋았던 친구들과,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왜 그런진 모르겠다.
내가 웃지 않아서일까? 웃지 않으면 안되는걸까? 공부만 하고있으면 안되는걸까?
사나다는 웃고있지 않았다. 그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다행이다.
엄마는 힘이 없다. 요즘, 담담하게 부엌에서 요리를 만드는 모습밖에 보지 않는다.
누나는 점점 치장이 화려해졌다. 역시 밤중의 바보같은 웃음도 계속됬다.
아빠는 화를 잘내게 됬다. 툭화면 목소리를 높혔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걸까. 엄마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참았다. 무표정으로 참았다.
나는 변함없었다. 가끔씩 시간표를 틀렸고, 학교가는 길을 잘못 들기도 했지만, 대체로 순조로웠다. 길을 잘못 들은 것 뿐. 1년 이상 다녔던 길을. 그래도 틀려도 어쩔 수 없다. 10분이나 15분 정도 늦게 도착할 뿐이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공부. 공부는 하고있어. 내년엔 수험생이니까. 아빠도, 내 얼굴을 보면 공부해라 공부해라 시끄럽다.
내 방에서, 무언가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가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분이 든다. 공부책상과 침대는 지키고싶다.
그 때,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머리 속을 누군가 손으로 휘젓고있는 느낌이다.
세계는, 원래 그런 거야. 자신의 의사意思가 진짜 내 의사인걸까. 사나다의 말이 생각난다.
세계는 어찌됬든, 내 의사는 내 의사일 것이다. 나는 내 의사로 살고, 내 의사로 공부를 하고있다.
아마.
오늘 돌아오는 길도 길을 잃었다. 낯선 건물과 풍경. 이 근처는 길이 하나 뿐일텐데, 어째서 나는 길을 잃은걸까.
계속 나아가면, 분명 아는 길이 나오겠지. 그렇게 믿으며 나는 페달을 밟았다.
어느덧 좌우에는 똑같은 모양의 하얀 건물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작은 병원같은 분위기였다. 가끔 어디선가 누군가의 비명이 들린다.
시계를 보면 7시였다. 한시간 넘게, 자전거를 밟고 있고있단 거였다.
길가에 사람이 앉아있다. 대머리의 중년 남자였다.
나는 길을 물을려 멈췄지만, 남자의 입에서 침이 늘어져있는 걸 알고,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너, 이시카와지, 이시카와 타쿠미지?"
그 때, 남자가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나는 이시카와 타쿠미가 아니다. 무코다 히로시다.
남자는 일어섰다. 남자의 눈은 이상한 빛을 띄고 있었다.
"아니에요."
나는 자전거를 멈추지 않고 말했고, 남자의 옆을 지나갔다.
"아니, 너는 이시카와다. 나야. 사가와 노보루라고."
남자는 비틀비틀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침이 질질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조용히 속도를 올렸다.
"이시카와, 이시카와. 기다려 봐."
남자는 도로 한가운데를 달리는 나를 쫓아왔다.
나는 더 속도를 올렸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나왔다.
돌아보면, 남자는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이상한 자세로, 나를 쫒아 왔다. 그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서, 전력으로 달리는 자전거에 닿을 것 같았다.
"나는 이시카와가 아니야. 무코다 히로시야!"
나는 외쳤다.
"이시카와, 기다려, 이시카와."
남자는 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남자는 얼빠진 미소를 띄고 있었다.
"도와줘, 누가 도와줘요!"
나는 마침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길에는 나와 대머리의 남자 의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곳은 아주 조용했다. 아까 들린건, 나의 비명이겠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런 때에 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지.
"이시카와. 이시카와아"
나는 필사적으로 페달을 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다가왔다.
"이시카와아아!!!"
남자의 손이, 내 목에 닿았다.
나는 자전거에서 떨어졌다. 그 때, 길 건너편에서 엄청난 속도의 대형 트럭이 달려왔다. 트럭은 휘청거렸다. 트럭은 넘어진 나에게 덤벼들던 대머리 남자에게 부딪쳤다. 남자는 엄청난 기세로 날아갔다. 망가진 인형처럼 바닥에 떨어진 남자가, 다시 트럭이 깔아뭉갰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단지 고기와 뼈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내 눈 앞에, 뭔가가 날아와 풀썩 떨어졌다.
남자의 잘린 손목이었다.
이 전에 보았던 손목은, 이거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정하는 것도 귀찮다. 나는 지쳐있었다.
트럭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도로에는 남자의 너덜너덜한 살점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일어나 자전거에 앉았다. 5분도 안되 낯익은 길에 들어섰다.
우리 반에는, 낯선 녀석들이 많아졌다. 전학생인가. 하지만 자기소개도 없었다.
모두와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함께 웃고있었다.
반의 인원이 늘진 않았다. 누가 대신 나간걸까.
하지만 누가 없어졌는진 모르겠다.
사나다에게 말해봤다.
"나에겐, 새로운 녀석이라던지 누구도 들어온 것 같진 않은 것 같은데. 반 애들은 전이랑 바뀐게 없어."
그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내 기억력이 어떻게 된걸까. 요즘 길도 잘 잃어버리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
조금 생각하더니, 사나다가 조언을 해주었다.
"일기를 써보면 좋겠네."
나는 그러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교복을 벗으면 옷걸이가 없어졌다는걸 깨달았다.
뭐 괜찮아. 없어진 걸 알아챈 것 만으로도 불행 중 다행이다. 교복은 바닥에 던졌다.
나는 새 공책을 꺼냈다.
오늘이 며칠이었지.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봤다.
6월 35일이었다.
6월의 달력은, 날짜가 48일까지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나는 울고있었다.
하늘이, 초록색이다.
하늘이, 무슨 색이었지.
일기를 쓰자. 잊어버리기 전에, 변하기 전에.
선생님이 다른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저 선생님, 이름이 뭐였지."
나는 옆자리의 마에하라에게 물었다.
마에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큰소리로 웃고 있을 뿐, 내 질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후, 사나다에게 물었다.
"스즈키 선생님이야."
스즈키 선생님은 그렇게 뚱뚱하지도 않았고, 안경도 쓰고있지 않았을 터였다.
변한건 내 머리인가, 아니면 세상인가.
사나다는 알아차리지 못한게 많다.
하지만 사나다는 변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엄마는 죽은 사람같은 얼굴빛을 띄고 있었다. 동작도 느리다.
아버지는 항상 화를 내고 있다. 항상 이마에 혈관이 몇 개 튀어나와있다.
누나는 머리도 빨갛게 염색하고, 당당하게 담배를 피운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가끔씩 터지는 것 처럼 웃는다.
남동생인 신지는 게임만 하고있다. 정말 할일 없는 놈이다.
어.
나한테 동생이 있었나.
원래 우리는 남매고, 누나인 타카코랑 나 케이지...
내 이름이 케이지였나. 누나도 부모님도, 나를 케이지라 부른다. 동생인 신지는 나를 형이라 부른다.
옛날에는 좀 더, 다른 이름이었던 것 같다. 히로... 히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원래 케이지였다. 난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걸까.
동생인 신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
가장 처음에 내 방에서 없어진 게 뭐였지.
뭐 됬어. 공부하자. 수학문제집을.
이것만은 전과 변함없다.
왠지모르게 텔레비전을 켜봤다.
심야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 오후 3시 경, 이시카와 타쿠미 씨의 집의 이시카와 타쿠미 씨가 이시카와 타쿠미 씨와 이시카와 타쿠미 씨로 이시카와 타쿠미 씨의..."
아나운서는, 내 얼굴을 보고 있다.
아나운서는 웃고 있었다.
'이시카와, 기다려, 이시카와아... 이시카와아아아....'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누나의 바보같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공부하자.
학교의 수업은, 내용이 없었다.
선생이 웃고, 학생이 웃고, 선생이 웃고, 학생이 웃고, 반복될 뿐이었다.
나는 소음 한 복판에서, 혼자 수학 문제집을 풀었다.
3교시 수업이 시작될 때, 낯선 사카타 선생님(내가 아는 사카타 선생님은 여자였다. 그래도 아마, 같은 사람이겠지)이 나와 사나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다른 수업을 받을거야."
왜 우리들만 일까.
분명, 웃지 않아서 겠지.
사마귀처럼 마른 사카다 선생님은 우리 둘에게 커다란 삽을 주고, 교정 구석으로 데려갔다.
"구멍을 파."
선생은 차갑게 말했다.
나와 사나다는 얼굴을 마주 봤다. 그리고 사나다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나도 조용히 삽으로 파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학교는 철근 콘크리트로 된거지. 목조 교사를 좋아했는데.
구멍파기는, 힘들었다. 선생님은 보고만 있을 뿐 도와주진 않았다. 우리는 말없이 땅을 팠고, 1시간 넘게 1미터 정도의 구멍을 파올렸다.
우리 둘이 충분히 들어갈 만한 넓이였다.
그리고 사카다 선생님이 다음 명령을 내렸다.
"묻어."
"..."
"묻으라고, 흙을 덮어 다시 돌려놔."
"그럼 뭣하러 판겁니까."
사나다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 말 안 듣니? 이건 수업이야."
사카타 선생님은 오만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기껏 판 구멍을 메우기 시작했다.
40분 쯤 걸려, 겨우 구멍이 메워졌다. 우리는 발과 삽으로 튀어나온 흙을 평평히 했다.
"그럼 이쪽을 파."
선생님은 또 다른 땅을 가리켰다.
"벌써 4교시도 끝났어요. 이제 점심 시간이에요. 그래도 계속 해요?"
사나다가 말했다.
"이러쿵 저러쿵 하지마. 빨리 파면 되잖아."
우리들은 땀투성이가 되가며 파냈다.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는거야. 하지만 웃고있을 뿐인 수업도 별 차이는 없나. 구멍파기는 체력이라도 붙지. 하하하.
다시 한시간 정도가 지나, 아까와 같은 구멍이 생겼다.
그런 다짐의 삽을 쥐었을 때, 쿵 하고 딱딱한 감촉이 있었다.
돌 조각인가, 아니면...
사나다는 그것에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것보다 선생님의 다음 말이 문제였다.
"묻어."
"... 선생님..."
결국 사나다가 이성을 잃었다. 그는 천천히 구멍에서 올라가, 선생님의 앞에 섰다. 키가 큰 그는, 자연스럽게 선생님을 내려다 보게 됬다. 그의 눈은 증오로 불타고 있었다.
나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안고, 구멍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빨리 메워!"
사나다의 박력에 기가 죽었으면서도 위엄을 유지하고 사카타 선생님은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무엇을 위해서 입니까."
반대로, 사나다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시끄러워, 빨리 묻어. 선생한테 반항하는거야?"
"스스로도, 왜 이런 일을 시키고 있는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사나다의 말은, 선생님의 마음에 강한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뭐, 뭐라고..."
선생님은 눈을 떴다. 그것은, 공포의 표정과 비슷했다.
"교사는 하루만에 철골이 됬고, 하늘은 녹색이 됬습니다. 자신의 얼굴도 성별도 변해갑니다. 기억은 의문을 품진 않습니다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다들, 당연한 것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의문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세계가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것을 인정하고, 그 기둥을 잃어버리는 것을 무서워하니까."
사나다는 쐐기를 박듯, 무거운 말을 지어냈다.
"닥쳐!"
사카타 선생님이 사나다의 뺨을 때렸다.
사나다는 팩, 선생님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대형 삽을 힘차게 휘둘렀다.
"으갸아아악!!"
비명을 지른 선생님의 목이 으직 하고 옆으로 구부러졌다. 샵의 얇은 가장자리가 칼처럼 선생님의 목을 파고들고 있었다.
"사나다..."
나는 구멍의 바닥에서 친구를 올려다봤다.
사나다는 무표정으로 선생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떡해."
내 몸은 가늘게 떨렸다.
"어떡해가 아냐. 세계는 그런거야."
사나는 조용했다. 거기에 시체가 없는 것 같이.
"이제 구멍파기는 끝. 돌아가서 도시락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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