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와의 전쟁’ 끝이 없네
중국, 퉁팅후 붕괴 위험…산샤 댐 건설 등으로 물난리 ‘연례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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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유례 없는 폭우가 쏟아져 산시와 장시 등 중국 중·북부 지역 8개 성에서 8백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했다. |
중국의 13억 인민이 자연 재해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봄에는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샤천바오(沙塵暴), 즉 황사가 불어닥치더니, 여름에 접어들자 중부 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심각한 물난리를 겪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4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8년의 대홍수 때와 마찬가지로 창장(長江·양쯔 강)의 퉁팅후(洞庭湖)가 붕괴할 위험에 처해 중국 전역을 불안에 떨게 했다. 퉁팅후 붕괴는 주변 주민 천만명이 위험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행히 붕괴 직전 비가 그쳐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폭우가 쏟아지면 언제라도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 지금도 호수 주변 지역에 홍수 비상 사태가 선포되어 있고 주민 60여만 명이 대피한 상태이다.
이미 6월에 폭우가 쏟아져 중부와 북부의 산시(陝西)와 장시(江西) 등 8개 성에서 8백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하고, 약 3백억 위안(미화 36억 달러) 규모의 재산 피해를 냈다. 이같은 상황은 올해 제16차 전국당대표대회를 앞둔 중국 지도부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중국 역사에서 역대로 물을 다스리지 못한 정권은 바로 몰락했다. 이같은 교훈 때문인지 중국 지도부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부산하다. 주룽지(朱鎔基) 국무원 총리는 각종 회의석상에서 잇달아 홍수 억제 및 피해 복구 사업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유력한 차세대 총리 후보인 원쟈바오(溫家寶) 국무원 부총리도 방재 작업을 격려하기 위해 후난성 창사(長沙) 시에 설치된 홍수통제본부를 찾았다.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예년보다 빠른 8월 중순에 끝난 것 또한 게릴라성 집중 폭우로 중부 지역에서 물난리가 날 위험이 있다고 보고되었기 때문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퉁팅후가 중요한 것은 이 호수가 상습 홍수 지역인 창장 유역의 마지막 방벽 노릇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이다. 퉁팅후 제방이 무너지면 호수가 자리잡고 있는 후난(湖南) 성은 물론 후베이(湖北) 성 일부와 쓰촨(四川)·윈난(云南)·구이저우(貴州) 등 서부의 성들마저 물에 잠길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1998년 대홍수 이후 방재 시스템 구축에 전력을 다해 이번만큼은 문제가 없다고 공언했던 터라 그만큼 더 충격이 컸다. 지난 8월 중순부터 시간당 40여 mm씩 내린 폭우는 1998년 이래 기울여온 홍수 억제 노력을 모두 쓸모 없게 만들었다. 창사 시 홍수통제본부는 8월24일 퉁팅후가 위험 수위를 1.8m나 초과하자 이 지역에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주민 60여만 명에게 대피를 지시했다. 이와 동시에 군인·공무원 100만명을 동원해 호수 주변의 제방 930km를 모래 부대로 보강하는,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공사를 벌였다. 또 인근 후베이 성의 우한(武漢) 시도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주위 하천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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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은 군인·공무원 100만명을 동원해 퉁팅후 주변의 제방을 모래 부대로 보강하는 공사를 벌였다. |
무분별한 개발로 퉁팅후 면적 반 넘게 줄어
해마다 중국 당국이 두려워하는 홍수의 위협은 두 가지 원인에서 말미암는다. 첫 번째 원인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다.
실제로 지난 겨울에는 겨울철 기온으로는 50년 만에 두 번째로 높은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났고, 봄에는 매년 발생해온 황사가 오래된 가뭄과 무분별한 벌목 탓에 더욱 극성을 부렸다. 인도에서 불어온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시베리아의 차가운 대기와 만나 여름철 계절풍을 형성하면서 시작된 올 6월의 홍수는 예년과 달리 상습 홍수 발생 지역이 아닌 북부 내륙 지방에서 발생했다.
이런 이상 기후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에 없던 현상이라며 전반적인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중국 기상국의 뤄후이(羅輝) 기상예보관은 “지구 온난화로 각종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현재 기상 상태는 비교적 정상을 회복했다고 할 수 있으나 내년에 더 심각한 기상 이변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원인은 환경 파괴이다. 퉁팅후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위치도 위치이지만, 이 호수가 해가 갈수록 최후 방어선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수로 흘러드는 여러 강 상류에서 무분별한 삼림 벌채와 개간 사업이 이루어진 탓에 퉁팅후는 토사로 메워지고 있다. 실제로 그간 후난성이 대대적인 퉁팅후 개간 사업을 벌인 결과 100여 년 전 6400여 ㎢에 달했던 호수 면적이 현재는 2800여㎢로 줄어들었다.
물론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1년 ‘수토보지법(水土保持法)’이 공포되어 각종 하천을 개발할 때 엄격한 심사를 거치게 되었고, 특히 1998년 대홍수 이후에는 창장 유역에 대한 개발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문제는 이같은 조처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당 간부들의 말 한마디면 이 모든 제한 조처가 효력이 없어진다고 한 수리 부문 기술자는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홍수 피해의 또 다른 원인으로 현재 창장 상류에 건설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산샤(三峽) 댐을 지목하기도 한다. 산샤 댐을 에너지 공급에만 역점을 두고 설계하는 바람에, 건설 과정에서 주위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홍수 억제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 홍수가 상습 발생 지역이 아닌 창장 지류에서 오히려 더욱 심각한 양상을 보여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밖에 홍수 대책을 무력화하는 요인은 또 있다. 부패한 일부 간부들이 전국 각지에서 답지하는 성금과 국가 보조금을 홍수 억제 사업에 쓰지 않고 착복하는가 하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는 홍수 억제와 재해 복구에 전체 비용의 30%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주민 스스로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홍수는 중앙 정부로서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인명과 경제 손실도 손실이거니와 민심이 흉흉해지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중앙 정부는 1998년부터 홍수 방지를 위한 사업에 천억 위안(약 1백20억 달러)을 쏟아부었다. 또 2020년까지 인공 위성 2백여 기를 발사해 홍수 방지와 환경 감시 등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해만 해도 인공 위성 2기를 발사했다.
각급 지방 정부에 대해서는 환경 훼손에 적극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한 소식통은 이미 지방 정부 수장들의 인사 고과에서 홍수 통제 능력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고속 경제 성장을 주창하는 무차별한 개발 논리가 선행하는 중국의 현실에서 홍수까지 배려하는 환경 친화적 개발이 과연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한 중국 환경 전문가는 “당분간 근본 대책 없이 계속 둑을 높고 튼튼하게 쌓는 일만 진행될 것이다”라고 씁쓸히 말했다.
베이징·주장환 통신원 jjhlmc@sisapress.com">jjhlmc@sisa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