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종'에 담긴 뜻
- 목종스님 : 논설위원 . 부산 대광명사 주지 -
“ 시작은 곧 끝이요
끝은 곧 시작일 뿐이죠
더 나아가 시작도 끝도
시간도 공간도
모두가 허상이죠
이 모두를 보고 이해하고
아는 나도 실체가 없는
꿈속의 모습입니다 ”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도 그 힘을 조금씩 잃어가고 하늘빛과 풀빛은 벌써 가을의 빛깔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습니
다. 문득 지금, 여기는 언제 어디서 시작됐으며 어디로 향해 흘러가고 있는지 내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봅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무시무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다는 말이죠. 우리들의 삶의 세상에서는 반드시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부처님께서는 시작과 끝이 없다고 했을까요?
시작은 무엇이며 끝은 무엇일까요.
모두가 내 마음의 허상일 뿐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시작은 곧 끝이요. 끝은 곧 시작일 뿐이죠.
더 나아가 시작도 끝도 시간도 공간도 모두가 허상이죠.
이 모두를 보고 이해하고 아는 나도 실체가 없는 꿈속의 모습입니다.
이제 무더위와 태풍. 집중호우도 존재감을 드러내던 8월도 끝나고 초가을의 9월이 시작 됩니다.
사실 8월도. 9월도 명확하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삶의 편리를 위해 나누어 놓은 허상이죠.
1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도 마찬가지이고 1시간도 같은 맥락입니다.
어느 시간이든 시작과 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시작과 끝이라고 여길 뿐이지요.
예를 들어 1년이 끝났다고 합시다.
2012년 12월 31일 12시(자정)가 끝나는 순간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은 새로운 2013년의 시작의 순간입니다.
1분, 1초, 1/1000초, 만분의 일초도 역시 끝이면 동시에 시작인 것이죠.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미래의 시작입니다.
본래 시작과 끝이 허상인 것처럼 생사 역시 우리가 지어낸 허상이죠. 고정관념입니다.
매일 잠을 자고 깨어나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지속되고, 매일 옷을 갈아입지만 자신의 몸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의 생사윤회도 이와 같습니다.
다생다겁 무량한 세월동안 윤회를 했다면, 그 윤회의 주체인 나는 단 한번도 사라지거나 죽지 않고 그 오랜세월
지속되고 있는 것이죠.
태어나고 죽는 것은 옷과 같은 육신이지 나 자신은 아니죠.
사실 이 육신조차도 실체가 아닌 내 마음의 고정관념 즉 업식일 뿐입니다.
열반을 얻은 삼세제불이나 생사고에 헤매는 중생이나 죽음이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단지 부처는 허상임을 알아서 집착하지 않고 중생은 내 몸이다 여겨서 집착하기 때문에 생사고를 겪게 되는 것입
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매순간순간 끊임없이 변해가니 영원하지 않음이요.
모든 것이 실재한다는 관념에 불과하니 고정된 실체가 없음이요.
고정된 실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존재한다고 여겨서 집착하니 끝없는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인은 본래 변해가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 순간의 귀중함을 알아서 최선을 다함이요 본래 실체가 없는
허상임을 알아서 애써 구하지 않음이요 집착해서 구하지 않으니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어리석음과 지혜의 차이입니다.
생사윤회와 열반의 차이이죠.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는 이 순간에 우리들은 지금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가요.
끝없는 생사윤회 고통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아니면 항상 즐거움 가득한 열반의 길을 가고 있으신가요?
잠시 지금 이 순간 성찰해 보시길 바랍니다.
- <불교신문 제2942호 '수미산정'>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