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인생
늘 생각에 잠기는 것도 아닌데 가끔은 불현듯 떠올라 이상하다는 생각에 잠길 때도 있다.
인연, 사랑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관계를 형성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겨난다고 한다.
우리네가 가지고 있는 호르몬 작용 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겨나서 설레고 두근거리고 결국은 용기를 내어 고백하는 경험들을 축적하여 누군가와 부부의 연을 맺고 백년해로하고 잘못된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나 중간에 관두기도 하는 게 우리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랑이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 아닌 것만은 틀림이 없다.
한순간 홀딱 반해 정신없이 질주하다 제정신이 들어 아닌데 하고 갸우뚱하는 경우가 허다함은 순간이나 찰나인 듯한데 왜 그런 감정들이 인간을 훅 가게 만드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젊은 날은 그런 감정들이 자주 일어나지만, 나이가 들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모호해져서 이성을 봐도 전혀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니 아마 몰라도 사랑을 만들어 내는 호르몬은 짧은 수명을 가진 불쌍한 녀석일지도 모를 일이다.
늙으면 감정이 삭막해지는 것일까?
좋고 싫음에 관한 생각들이 무디어져서 그냥 멍하니 바라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도 남았을 비난에도 그저 가만히 듣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 순간이 지나면 분노의 게이지가 꺼져있었던 짧은 순간이 참으로 멋있다고 느껴지는 것 보면 힘이 있을 때 인간의 감정이 요동치는 게 아닐까 하고 요즘 궁금해한다.
어느 날 잠에 취해 세상 걱정 내려놓은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평온하기 그지없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어떻게 이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다.
45년 전 중매로 선을 보고 결혼을 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인연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은 솔직히 없었다.
그런데 아직 부부의 연을 맺고 살고 가끔 잠든 아내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면 곱든 얼굴에 잘게 만들어진 주름살에 괜스레 미안함이 밀려들고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연 중에는 참 좋은 인연인가보다.
그러니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고 이미 식어 사그라진 사랑은 없어도 그것이 오래되어 만들어진 정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말이다.
청춘은 활기차지만 늙음은 느리게 가는 대신 온갖 생각들을 얹어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생각이 많아 좋은듯하다.
불쑥 떠오르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잠시 멈춰 고뇌하다 보면 굳이 화내거나 좋아해야 할 감정의 장난에 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이 타이름에 순응하게 된다.
젊다는 것이 좋다는 것에 부정할 생각은 없다.
젊었을 때 열정이 있었고 그 열정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했고 갈망했고 이루고자 하는 욕망을 불태웠으니 얼마나 황홀한가.
그러나 늙음에도 멋진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내가 비로소 늙어 봄으로써 발견한 것이다.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고 내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좋다는 얘기다.
이런 생각을 하면 결론은 어느 한순간이라도 온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린 늘 많은 얘기를 하면서 사는 부부다.
남들보다 뜨거운 정이 있어서 하는 짓이 아니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알차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내 생각과 당신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어떤 것이 현명한 방법인지 알게 되고 그것을 생활에 적용하면 화냄보다는 웃는 일이 많아지는 여유가 생겨남을 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랬다.
사랑이라는 굴레를 씌어 간섭하면서 그것을 관심으로 포장했지만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그것이 잘못된 사고의 결과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간섭은 간섭일 뿐이지 사랑도 아니고 관심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려 하지 않는 게 보통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흔히 어른인데 남으로부터 이런저런 잔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는 작은 진리만 알아도 내가 하는 소리는 거슬릴 수 있다는 여지를 가졌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행동에 책임지도록 배웠으니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지당하다는 사실을 쉽게 체득할 수 있다.
어디로 가건 무엇을 하건 성인 남녀가 하는 행동은 본인의 판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내가 얻은 결론이다.
믿음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믿고 싶어졌다.
이건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옭아맨 신념 같은 얘기지만 오래 살아와 보니 정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대부분 양심을 저버리며 살 수 없다.
때론 양심 자체가 없는 철면피도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은 상대방에 대한 의무감도 있고 배려심도 가지고 있으므로 해서는 안 될 즉 상대에게 상처 줄 일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살다 보면 몸속에 존재하는 호르몬의 작용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고픈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을 테고 실제로 사랑에 빠질 수도 있지만, 약속에 배신하지 않았다면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람을 피웠다고 난리를 치면서 헤어진 인연도 있다.
그 난리를 친 인연들이 과연 행복할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
단언할 수 없지만 완벽한 사랑이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얻은 것은 별로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람은 머무는 것이 아니고 지나간다.
그러니 잠시 머물고 말 것을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를 피우다가 헤어지면 결국은 남은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상처만 도드라져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화내고 용서 못 할 짓은 처음 사랑했을 때의 약속을 저버리고 신뢰를 깡그리 채 깔아뭉갠 경우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난 고백할 수 있다.
불같은 호르몬의 변덕을 경험한 사실이 있다고.
그것이 내 마음이든 호르몬의 장난이든 상관할 일 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처음 사랑을 언약한 사람과의 약속을 뭉개고 싶은 충동은 없었다는 사실은 진심이었기에 인연이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는 게 아닐까 한다.
늘 궁금한 게 삶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를 만나 사랑을 느끼는 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한결같다.
그토록 느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제 어떻게 도망치듯 몸속에서 사라졌는지도 한결같이 궁금하다.
하지만 이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날도 있듯이 늙은 날이 찾아왔고 마음속에 그 불같은 감정들이 사그라지는 것은 잿불처럼 운명의 순간들이 가까이 다가옴을 알려주는 신호라는 사실을 알아가게 된다.
그래서 내 삶의 방식을 현재에 맞게 수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로 자리 잡아 가는 것이다.
어제 할 수 있었던 일도 오늘은 벅차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또 내일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를 용기와 힘으로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생은 한결같이 변화무상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더라는 얘기다.
용을 쓰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즐기는 것이다.
돈도 힘도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없는 돈을 예전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도 어리석은 짓이고 있는 돈을 아껴야겠다는 생각도 어리석은 짓이라고 믿는다.
가졌으면 쓰고 없으면 포기하고 사는 게 내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별다른 상념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테니스를 치고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지만 무리하여 걸음 수를 채우거나 테니스공을 치기 위해 달음질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늘 하고 싶은 만큼만 걷고 받을 수 있는 만큼만 받아 즐기고 싶을 뿐이다.
남의 눈치 보면서 살고 싶지도 않고 누굴 얽매 간섭하고픈 생각도 없다.
인생은 내 것이니 오롯이 내 방식대로 살다가 어느 날 오라고 연락 오면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게 나의 목표이고 진심이다.
그러니 마음이 평온하다.
무슨 생각으로 나를 비방하든 찬양하든 상관하지 않을 뿐이다.
세상에 늘린 감투에도 관심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라는 존재에 충실하고 현실에 만족하는 나로 살고 싶을 뿐이다.
살아보니 별거 아닌 게 인생이더라.
그러니 별거 아닌 인생을 별거인 양 유난 떨 필요도 없고 남은 인생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유유자적하면서 살고 싶은 게 소망이고 꿈이라는 얘기다.
작은 화분에 물을 주고 이름 모를 꽃을 예쁘다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근심 걱정은 나와 상관없는 감정일뿐이고, 누군가에 대한 바람도 내려놓았으니 기댈 곳은 나뿐인 걸 굳이 탓하며 살면 무엇하겠는가.
오고 감은 내 탓이 아니다.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 인생인데 왜 오지 않냐, 가냐며 시비 걸 필요 없으니 무슨 번뇌가 내 것일 수 있겠는가.
반찬 하나에 밥 한 공기도 만찬으로 여길 수 있는 게 내 생각인데 누구 탓하고 원망한들 뭐가 달라지냐면서 그냥 웃자고 히득거리는 이 순간이 즐거운 것은 명백한 사실 아니든가.
그래서 만들어진 인연에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 벌거벗은 몸 동아리에 감사하고 온전히 흘러가는 시간에 감사하고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누군가 묻더라.
너 잘났냐고.
그래 대답했다. 잘났다고.
만약 누군가 너 바보냐고 물었다면 응 맞아 나 바보야 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잘나고 못난 것을 구별하는 것은 묻는 자의 생각이니 굳이 그것을 아니라고 대답하는 게 싫어서 묻는 대로 대답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게 인생이더라.
오만상을 하고 살아도 한 세상이요, 웃고 살아도 한 세상인데 남의 눈치보면 살 필요없이 내 원하는 방식대로 사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한다.
얼시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오늘이 내 인생에 최고로 젊고 좋은 날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