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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시(詩)란 어떤 글인가 #1.#2.#3.
시(詩, poetry)란 마음 속에 떠오르는 느낌을 운율이 있는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글이다. 시언지(詩言志), 언어로 나타낸 뜻이 곧 시(詩). 시(詩)란, 울림, 운율, 조화를 가진 운문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 시작품을 성립시키는 각 시구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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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詩)와 시가 아닌 것, 황금찬
말(시의 언어)의 일생 - 황금찬
시는 과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아니다. 시는 논리를 요하는 학문도 아니다. 시는 어디까지나 시일 뿐이다.
꽃이 피고 구름이 가고 사람이 사는 것은 시다. 또 왜 꽃이 피고 구름이 가며 사람이 왜 사느냐는 것은 시다. 그러나 꽃이 어떻게 피고 구름이 어떻게 흐르며 사람이 어떻게 산다는 해답은 시가 아니다. 비가 왜 오는가는 시이지만 비가 어떻게 오느냐는 시가 아니다.
시인은 우주의 법도를 시인의 마음대로 창조하고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시인은 이 우주를 창조한 절대 신의 발 앞에 설 수 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은 비천한 자리에 놓일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한 줌의 모래나 보이지 않는 세계는 동해의 모래 같다.
한 노인이 바닷물의 전체를 알기 위하여 풀잎 바가지로 물을 퍼낸다면 그것은 시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전 바닷물의 양을 알았다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지성의 세계와 감성의 세계는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 지성의 답은 지금 해야 하지만 감성의 답은 먼 훗날 있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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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詩란 어떤 글인가 김용진
#2-1.시(詩) 제1강...詩란 어떤 글인가
시(詩)는 운률적인 언어로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 관념이나 정서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문학의 한 형식이다. 따라서 산문과는 달리 논리의 비약, 생략, 함축적 비약 등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해가 쉽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詩)의 정의를 쉽게 말한다면 "시(詩)란 압축된 언어로 표현된 건축물"이다 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시(詩)의 정의에 대해서는 이미 동서고금의 많은 문인들이 수 없이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나 "시(詩)란 결국 인생의 비평이다"라고 한 T.S 엘리어트의 말은 시(詩)가 가진 두 개의 측면을 대표하고 있다.
시(詩)의 언어
시(詩)란 문자로써 표현하는 문학에 소속된 한 장르이며, 그래서 일반적인 문학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생각한 바 또는 생각하는 바를, 혹은 느끼고 있는 것 또는 느낀 것을 문자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詩)가 아닌 운문적 특성은 다른 문학과 달리 문자(시어)를 배열함에 있어서 일정한 규율(운률)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시(詩)에서 사용되는 시어(詩語)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이다. 그러나 그 언어를 어떻게 배열, 조작하느냐에 따라 전혀 일상생활 속에서 쓰여지는 언어와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느낌이 놀랍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시(詩)에는 작가의 언어 운용에 따라 여러 가지 비유, 상징 등이 이를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예문1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
위의 시(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詩)에 사용된 언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전혀 다른 것이 없다. 그러나 운율적 언어 구사가 생략과 압축의 묘미를 가미하여 아주 긴 이야기를 실타래 풀 듯 토해내고 있다. 세상에서 그 누구도 아는 체 하기를 꺼려하는 문둥이, 오히려 해와 달까지 쳐다보기 민망한 문둥이의 처절한 절규가 시행 한 줄로 압축되어 긴 이야기를 끝없이 토로해내고 있다. 보리밭이라는 향토색 짙은 낱말을 배경으로 해서 차가운 달빛의 조명을 받으며 애기의 배에서 간을 꺼내먹는 문둥이의 속설은 어느 긴긴 실화와 같은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문둥이가 우는 꽃처럼 붉은 울음은 인간이면 누구나 자지는 속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처절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시(詩)는 이처럼 압축된 언어로 생략의 묘미를 보여 줄 때 시(詩)가 가지는 요소를 어김없이 나태내 주는 것이다.
예문 2
얼굴 하나여
손바닥 둘로
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나
눈 감을 밖에
정지용 <호수>
이 시(詩)의 화자는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 그 그리운 사람의 얼굴쯤이야 두 손바닥으로 충분히 가릴 만큼의 넓이 밖에는 안 된다. 그러나 보고 싶은 마음의 넓이는 호수만큼이나 된다. 그러니 그것을 가릴 길이란 아예 자기의 두 손을 "호수"라는 말로 빗댐으로서 드러 내는 정서, 그리고 무엇보다 일체의 군말을 생략함으로서 오히려 강렬하게 드러나는 이 시의 주제 등에서 우리는 시의 언어적 특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시에는 시의 운율로서의 음악적 요소와 시의 색상으로서의 회화적 요소, 시의 사상과 감정으로서의 요소가 포함되어 나타난다.
#2-2. 제2강...詩의 종류/김용진
詩의 종류
●서정시(抒情詩)
1.주정시(主情詩)
감정(감각, 정조)을 주 내용으로 하는 시를 말한다.
◎감각적인 시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정조적인 시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이하생략
김소월의 <초혼>
2.주지시(主知詩)
지성(기지, 지혜, 예지)을 주 내용으로 한 모더니즘 시. 초현실주의 시. 심리주의 시와 같은 지적인 시를 말한다.
◎모더니즘 시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지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에 연기를 내 뿜으며
새로 두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러 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민 채
한가닥 구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샐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내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 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김광균의 <추일 서정>
◎초현실주의 시
가을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가을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이하 생략
이 상의 <가을>
3.주의시(主意詩)
의지(저항의지, 긍정, 창조, 의지)를 주 내용으로 쓴 시를 말한다.
◎저항의지의 시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시가 이에 속한다.
*의지의 시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질질하며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유치환의 <바위>
● 서사시(敍事詩)
서정시에 비하여 객관적이고, 비개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신의 이야기, 영웅의 이야기, 한국가의 역사적 체험 등을 서술한 시로써 "호머" "단테" "밀턴" 등이 대표적 서사 시인이며, 동양에서는 이 서사시가 발달하여 인생의 서사시인 소설로 된 것이라 보기도 한다. 이규보의 "동명왕" 이승휴의 "제왕운기" 등은 한문으로 된 장편서사시이고 조선초의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은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서사시이다. 그리고 신문학사상 최초의 서사시는 김동환의 "국경의 밤"을 들 수 있으며 현대에 와서는 신동엽의 "금강"이 있다.
1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말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만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가고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워 놓고
밤 새가며 속태이는 검은 아낙네
물레 젓는 손도 맥이 풀리서
파!하고 붙는 이유 동전만 바라본다.
북극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가는데.
김동환의 <북경의 밤> 전 72연중 1연
●극시(劇詩)
서사적인 이야기에 서정적인 운문 대사를 넣었다고 볼 수 있는 주관과 객관을 겸한 시를 말하며 세익스피어의 여러 작품과 극시, 괴테의 파우스트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극시의 종류에는 비극시와 희극시가 있다. 이 극시는 근대극에 이르러서는 산문인 희곡으로 발전하였다. TS엘리어트의 사극 "칵텔 파아티" 등오 여기에 포함된다.
시의 형태(形態)
●정형시(定型詩)
일정한 외형적 운율에 맞추어 쓴 시로서 우리나라 정형시는 대부분 음수율을 주로 한다. 평시조, 4,4조, 7,5의 민요풍의 정형시, 조선말의 창가 등이 정형시라고 할 수 있다.
●자유시(自由詩)
일정한 외형률이 없이 시인의 내재적 리듬에 의하여 쓴 시로서 미국의 휘트먼, 벨기에계의 프랑스 시인 베르하렌 등에 의해서 완성된 형태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주요한의 <불꽃놀이>를 자유시의 효시로 본다.
●산문시(散文詩)
운율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산문형식으로 된 시로써 넓게는 자유시이에 포함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시 보다 더 구속성이 없고 산문에 가깝다. 다만, 이미지, 시적 함축성, 수사법등이 산문과 다르다. 프랑스의 보들레르 등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지훈의 "봉황수" 김구용의 "성숙" "제비"등이 이에 속한다.
예문.
벌레 먹은 두리 기둥, 빛날은 단청, 풍경소리 날아간 추녀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릉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빫고 가는 나그네 그림자, 패옥소리도 없었다. 품석 옆에서 정일품 종구퓸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조지훈의 <봉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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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논시중미지략언(論詩中微旨略言) 이규보(李奎報)
시(詩) 가운데 있는 은미한 뜻을 논한 약언 이규보(李奎報 1168-1241)
夫詩以意爲主(부시이의위주) : 대저 시는 뜻[意]으로 주를 삼는 것이니,
設意尤難(설의우난) : 뜻을 베푸는 것이 가장 어렵고,
綴辭次之(철사차지) : 말을 만드는 것이 그 다음 어렵다.
意亦以氣爲主(의역이기위주) : 뜻은 또 기(氣)로 주를 삼는 것이니,
由氣之優劣(유기지우렬) : 기(氣)의 우열에 따라
乃有深淺耳(내유심천이) : 천심(淺深 얕고 깊음)이 있게 된다.
然氣本乎天(연기본호천) : 그러나 기(氣)는 하늘에 근본한 것이니,
不可學得(부가학득) : 배워서 얻을 수는 없다.
故氣之劣者(고기지열자) : 그러므로 기(氣)가 졸렬한 사람은
以雕文爲工(이조문위공) : 문장을 수식하는 데에 공을 들이게 되어,
未嘗以意爲先也(미상이의위선야) : 일찍이 뜻으로 우선을 삼지 않는다.
蓋雕鏤其文(개조루기문) : 대개 문장을 다듬고
丹靑其句(단청기구) : 문구를 수식하니
信麗矣(신려의) : 그 글은 참으로 화려할 것이다.
然中無含蓄深厚之意(연중무함축심후지의) : 그러나 속에 함축된 심후한 뜻이 없으면,
則初若可翫(칙초약가완) : 처음에는 꽤 볼 만하지만,
至再嚼則味已窮矣(지재작칙미이궁의) : 재차 음미할 때에는 벌써 그 맛이 없어지고 만다.
雖然(수연) : 그러나
凡自先押韻(범자선압운) : 시를 지을 때에 먼저 낸 운자가
似若妨意(사약방의) : 뜻을 해칠 것 같으면
則改之可也(칙개지가야) : 운자를 고쳐내는 것이 좋다.
唯於和人之詩也(유어화인지시야) : 오직 다른 사람의 시를 화답할 경우에
若有險韻(약유험운) : 그 운자가 험하거든
則先思韻之所安(칙선사운지소안) : 먼저 운자의 안치할 바를 생각한 다음에
然後措意也(연후조의야) : 뜻을 안배해야 한다.
至此寧且後其意耳(지차령차후기의이) : 이때에는 차라리 그 뜻을 다음으로 할지언정
韻不可不安置也(운부가부안치야) : 운자는 안치하지 않을 수 없다.
句有難於對者(구유난어대자) : 글귀 중에 대를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 있으면
沈吟良久(침음량구) : 한참 동안 침음(沈吟)하고 나서
想不能易得(상부능역득) :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면
則卽割棄不惜宜矣(칙즉할기불석의의) : 곧 그 글귀는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何者(하자) : 왜냐하면
計其間儻足得全篇(계기간당족득전편) : 그 글귀의 대를 맞추는 시간에 혹 전편(全篇)을 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니,
而豈可以一句之故(이개가이일구지고) : 어찌 한 글귀 때문에
至一篇之遲滯哉(지일편지지체재) : 1편이 지체되게 해서야 되겠는가?
有及時備急則窘矣(유급시비급칙군의) : 그때에 막 당하여 촉박하게 지으면 군색하기 마련이다.
方其搆思也(방기구사야) : 그러므로 시를 구상할 때에
深入不出則陷(심입불출칙함) : 깊이 생각해 들어가서 헤어나지 못하면 빠지게 되고,
陷則着(함칙착) : 빠지면 고착되고,
着則迷(착칙미) : 고착하면 미혹되고,
迷則有所執而不通也(미칙유소집이불통야) : 미혹하면 집착되어 통하지 못하게 된다.
惟其出入往來(유기출입왕래) : 오직 출입왕래하며
左之右之瞻前顧後(좌지우지첨전고후) : 좌우전후로 두루 생각하여
變化自在(변화자재) : 변화가 자재하게 한 뒤에야
而後無所礙(이후무소애) : 막힌 바가 없이
而達于圓熟也(이달우원숙야) : 원만하게 된다.
或有以後句救前句之弊(혹유이후구구전구지폐) : 혹은 뒷 글귀로 앞글귀의 폐단을 구제하기도 하고
以一字助一句之安(이일자조일구지안) : 한 글자로 한 글귀의 완전함을 돕기도 하는 것이 있으니,
此不可不思也(차부가부사야) : 이것은 불가불 생각해야 할 것이다.
純用淸苦爲體(순용청고위체) : 순전히 청고(淸苦)로 시체(詩體)를 삼으면
山人之格也(산인지격야) : 산인(山人)의 격(格)이요,
全以姸麗裝篇(전이연려장편) : 순전히 화려한 말로 시편을 장식하면
宮掖之格也(궁액지격야) : 궁액(宮掖궁궐)의 격이다.
惟能雜用淸警雄豪姸麗平淡然後備矣(유능잡용청경웅호연려평담연후비의) : 오직 청경(淸警)ㆍ웅호(雄豪)ㆍ연려(姸麗)ㆍ평담(平淡)을 섞어 쓴 다음에야 제대로 갖추어져서,
而人不能以一體名之也(이인부능이일체명지야) : 사람들은 일체(一體)로 이름하지 못한다.
詩有九不宜體(시유구불의체) : 시에는 9가지의 불의체(不宜體;마땅하지 않은 체)가 있으니[참고],
是予所深思而自得之者也(시여소심사이자득지자야) : 이는 내가 깊이 생각해서 자득한 것이다.
一篇內多用古人之名(일편내다용고인지명) : 1편 내에 옛사람의 이름을 많이 쓰는 것은
是載鬼盈車體也(시재귀영차체야) : 바로 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요,
攘取古人之意(양취고인지의) : 옛사람의 뜻을 절취하는 것으로
善盜猶不可(선도유불가) : 좋은 것을 절취하는 것도 오히려 불가한데,
盜亦不善(도역부선) : 좋지 못한 것을 절취한다면
是拙盜易擒體也(시졸도역금체야) : 이는 바로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다.
押強韻無根據處(압강운무근거처) : 그리고 강운(强韻)을 근거없이 내어 쓰는 것은
是挽弩不勝體也(시만노불승체야) : 바로 만노불승체(挽弩不勝體 쇠뇌[일종의 활]를 당겨 이기지 못하는 문체.)요,
不揆其才(부규기재) : 그의 재주를 요량하지 않고
押韻過羌(압운과강) : 운자를 정도에 지나치게 내는 것은
是飮酒過量體也(시음주과량체야) : 바로 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요,
好用險字(호용험자) : 험한 글자를 쓰기 좋아하여
使人易惑(사인역혹) : 사람으로 하여금 의혹되기 쉽도록 하는 것은
是設坑導盲體也(시설갱도맹체야) : 바로 설갱도맹체(設坑導盲體구덩이를 파서 앞 못 보는 사람을 인도하는 문체)요,
語未順而勉引用之(어미순이면인용지) : 말이 순조롭지 못한데
是強人從己體也(시강인종기체야) : 굳이 인용하는 것은
多用常語(다용상어) : 바로 강인종기체(强人從己體)요,
是村父會談體也(시촌부회담체야) : 상스러운 말을 많이 쓰는 것은
好犯語忌(호범어기) : 촌부회담체(村父會談體)요,
是凌犯尊貴體也(시능범존귀체야) : 기휘(忌諱)하는 말을 쓰기 좋아하는 것은
詞荒不删(사황부산) : 바로 능범존귀체(凌犯尊貴體)요,
是莨莠滿田體也(시랑유만전체야) : 거친 말을 산삭(지우기)하지 않는 것은
能免此不宜體格(능면차부의체격) : 바로 낭유만전체(莨莠滿田體)다.
而後可與言詩矣(이후가여언시의) : 이 불의체를 면한 뒤에야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다.
人有言詩病者(인유언시병자) : 시의 병통을 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在所可喜(재소가희) : 기쁜 일이다.
所言可則從之(소언가칙종지) : 그러나 그의 말이 옳으면 받아들이고
否則在吾意耳(부칙재오의이) : 옳지 않으면 나의 뜻대로 할 뿐이다.
何必惡聞(하필악문) : 어찌 듣기 싫어하기를
如人君拒諫終不知其過耶(여인군거간종불지기과야) : 마치 임금이 간언을 거절하는 것과 같이 하여 끝내 그 허물을 모르고 넘길 필요가 있겠는가?
凡詩成(범시성) : 무릇 시가 이루어지면
反覆視之(반복시지) : 반복 관찰하되,
略不以己之所著觀之(략불이기지소저관지) : 자기가 지은 것으로 보지 말고
如見他人及平生深嫉者之詩(여견타인급평생심질자지시) : 다른 사람이나 또는 평생 심히 미워하는 자의 시를 보듯 하여,
好覓其疵失(호멱기자실) : 그 하자(瑕疵)를 열심히 찾아도
猶不知之(유부지지) : 오히려 알지 못하는데
然後行之也(연후행지야) : 하자를 없앤 뒤에야 그 시를 세상에 내놓는다.
凡所論(범소론) : 무릇 논한 바는
不獨詩也(부독시야) : 시(詩)뿐만 아니라,
文亦幾矣(문역기의) : 문(文)도 그러하다.
況古詩者(황고시자) : 더구나 고시(古詩) 중에
如以美文句斷押韻者佳矣(여이미문구단압운자가의) : 아름다운 문구에 운자를 단 매우 아름다운 것 같은 것은
意旣優閑(의기우한) : 뜻은 이미 우한(優閑)하고
語亦自在(어역자재) : 말도 자유로워서
得不至局束也(득부지국속야) : 구속받는 점이 없다.
然則詩與文(연칙시여문) : 그렇다면 시와 문은
亦一揆歟(역일규여) : 역시 한 법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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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參考) 구불의체(九不宜體)
이규보(李奎報)가 말한 한시 작법에서의 구불의체(九不宜體),아홉 가지 좋지 않은 문체. 용사(用事)·성률(聲律)·수사(修辭)등에 대해 논한 것으로 시작법에 있어서 피해야 할 구체적인 예를 제시한 것이다.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의 권22에 있는 〈논시중미지약언 論詩中微旨略言〉에 실려 있다. 홍만종(洪萬宗)의 ≪시화총림 詩話叢林≫ 첫머리에 있는 〈백운소설 白雲小說〉에 실려 있다. 구불의체(九不宜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한편의 시 속에 사람의 이름을 많이 쓰면, 귀신을 수레에 가득 실은 것과 같은 문체인 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이다.
② 옛 사람의 글뜻을 몰래 취해쓰면 서툰 도둑이 잡히기 쉬운 것과 같은 문체인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이다.
③ 강운(强韻)으로 압운(押韻)하되 근거가 없으면 쇠뇌를 당기나, 그 쇠뇌를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은 문체인 만노불승체(挽弩不勝體)이다.
④ 그 재주는 헤아리지 않고 정도에 지나치게 압운하면,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과 같은 문체인 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이다.
⑤ 어려운 글자 쓰기를 좋아하여 사람을 미혹하게 하면, 구덩이를 파놓고 장님을 이끄는 것과 같은 문체인 설갱도맹체(設坑導盲體)이다.
⑥ 말이 순탄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그것을 쓰도록 하면, 남에게 억지로 자기를 따르도록 하는 것과 같은 문체인 강인종기체(强人從己體)이다.
⑦ 일상용어를 많이 쓰면 촌사람들의 이야기식과 같은 문체인 촌부회담체(村夫會談體)이다. ⑧ 성인의 이름쓰기를 좋아하면 존귀한 이름을 함부로 범하는 것과 같은 문체인 능범존귀체(凌犯尊貴體)이다.
⑨ 글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으면 강아지풀이 밭에 가득찬 것과 같은 문체인 낭유만전체(稂莠滿田體)이다.
구불의체(九不宜體)는 이규보가 시를 창작해가는 가운데 체험으로 깨닫고 스스로 터득한 것임을 먼저 밝혔다. 이러한 시의 병폐를 극복한 뒤에라야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
이것은 실제 창작상의 문제이다. 용사와 독창성, 압운의 문제, 시의 난해성과 논리성·참신성 등을 두루 지적한 뒤에 마지막으로 시적 형상화의 문제를 언급하였다. 각체의 명칭을 비유의 방법을 써서 알기 쉽게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이규보는 신의(新意)를 중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구불의체를 통해서 보면 설의(設意)와 시어를 다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의 내용과 형식미를 함께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구불의체의 특징인 것이다.
<<참고문헌>>李奎報文學硏究(金鎭英, 集文堂, 1984)
<<참고문헌>>李奎報의 詩論―白雲小說을 中心으로―(崔雲植, 韓國漢文學硏究 2,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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